살인하는 공권력에 대처하는 우리들의 자세

"노무현이여 사과하지 말라. 허준영이여 사퇴하지 말라"

이밝은진(다산인권센터)  / 2005년12월30일 17시10분

‘허준영, 우리는 결코 당신을 보내지 않습니다’

허준영 전 경찰청장의 사퇴식에 내걸린 비장한 내용의 걸개 글이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허준영은 “농민들의 불법 폭력시위에 대한 정당한 공권력 행사 중 우발적으로 발생한 불상사에 공권력의 상징인 경찰청장이 물러날 사안은 아니라는 판단에는 변함이 없다”는 고별사를 남겼다.

곧이어 열린우리당은 “합법적이고 평화적인 시위는 철저히 보장하는 한편, 국가 공권력의 확보를 위해 불법 폭력시위에 대해서는 엄중 대처해 나갈 수 있도록 제도와 체제를 마련하겠다”는 공공질서법 제정 추진의견을 밝혔다.

두 농민의 죽음에 대한 공권력의 자세를 읽는다. 국민의 인권을 지키기 위해 만들어진 국가인권위 조차 농민사망사건에 대한 진상조사 발표를 하면서 “이번 집회에서 발생했던 것과 같은 불행한 사태가 반복되지 않고, 귀중한 생명과 재산의 희생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평화적 시위 문화의 정착이 필요하다”고 말꼬리를 달았다.

이 말들의 뒤편에 숨은 의도를 좀 더 간결하게 정리해 보자면, “실수로 죽인 것은 미안한데, 니들이 너무 폭력적이잖아. 앞으로 니들이 계속 까불지 못하도록 이번 기회에 법을 확 뜯어 고치겠어”

인권위의 권고, 노무현의 사과, 허준영의 사퇴로 이어지는 과정을 통해서 두 농민의 죽음에 대처하는 공권력의 자세란, 결국 사태를 무마하기 위한 정치적 쇼일 뿐이란 의혹을 지울 수 없다. 사람을 죽여 놓고 이토록 뻔뻔스러울 수 있다니, 공권력에 대한 불신이 깊어간다.

지난 10월 4일 경찰청은 ‘인권수호비전선포식’이라는 것을 가졌다. 박종철 열사를 죽이고, 수많은 사람을 고문으로 상처 냈던 그 곳. 남영동 대공분실을 ‘경찰인권보호센터’로 만든다고 말이다. 인권경찰로 거듭나기 위해 경찰차의 쇠창살을 없애고, 수사과정에서의 인권침해를 최대한 근절하며, 유치장에서의 무죄추정주의 원칙에 따른 정책을 시도하고, 집회시위 현장에서 불법장비의 사용을 억제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런 경찰의 발표를 환영할 만도 한데, 같은 날 인권단체들은 ‘인권 없는 인권경찰’ 규탄기자회견을 가졌다.

'인권은 지켜서 좋은 것이 아니라, 지키지 않으면 안되는 절대적 가치‘라는 경찰의 인권포스터 앞에서 인권활동가들은 울산 SK 건설 플랜트, 청주 하이닉스, 평택 평화대행진, 오산 수청동 철거에 대한 기억을 되새겨주었다. 그때까지 경찰은 7월 달 평택 황새울에서 “방어하지 말고 공격하라” “저들은 적들이다’라고 기동단을 선동했던 서울시경 이종우 경무관에 대해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은 상태였다. 허준영과 경찰은 인권을 검찰과의 수사권 조정 수단으로 삼았던 것이지, 진정한 인권경찰을 만들겠다는 의지를 보여주지 않았었다.

인권의 역사는 위선의 역사다. 인권이라는 인류의 보편적 언어가 계약의 자유를 얻고자 했던 부르주아 계급에 의해 탄생했고 결국 신흥 권력자들의 계급적 이익에 철저히 복무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인권은 많은 순간 사회적 약자들의 탄압받는 권리를 눈가려주는 데 이용당했다.

부시가 이라크 민중의 인권을 위해서 전쟁을 벌이고, 한국 경찰이 인권경찰이라는 방패를 휘두르면서 곤봉으로 민중들의 목을 찍어 누르는 것을 묵인하게 만들었다. 시위현장에서 농민들의 죽창과 경찰의 곤봉이 같은 선상에서 이해되도록 만드는데도 인권은 이용당한다. ‘그러는 니들은 인권을 말할 자격이 있나. 반인권, 폭력주의자들 주제에’

농민들이 왜 거리에서 죽창을 들었는지, 도대체 몇 명의 농민이 농약을 마시고, 몇 명의 노동자가 크레인에 목을 매었는지 인권은 모르쇠하고 있는 듯하다. 인권의 계산법에는 투기자본과 재벌의 이익을 위해 가난한 이들의 설 자리를 빼앗는 폭력은 산입되지 않는다. 공공의 영역을 축소시키고 이윤의 영역을 확대하는 국가와 자본의 욕망은 고려되지 않는다.

그래서 일상을 살던 한 소시민이 졸지에 철거민이 되어, 망루를 쌓고 쇠파이프를 들고 화염병을 던지는 것을 폭력이라고 말한다. 모를 심던, 나물을 무치던 손을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반대하는 주먹으로 불끈 쥐고, 홍콩 가는 비행기에 몸을 싣는 그들의 절규가 반인권이라고 한다.

초일류 기업의 총수는 법을 바꾸면서까지 자기 새끼에게 부를 되 물리고, 국회는 로비스트들의 돈을 받아 챙기기 위해 법을 만든다. 법원과 검찰은 관습헌법이니, 독수독과니 하는 난데없는 법 이론을 들고 국민을 가르치려고 한다. 그 소용돌이 복판에 세상의 80%가 넘는 사람들이 자꾸 가난해진다. 가질 것 다 가진 자들이 벼랑 끝에서 버티고 선 사람들의 손에 쥔 짱돌을 버리라고 종용하고 있으니, 무엇이 인권인가.

거리에서 사람을 죽인 경찰은 거대한 폭력을 보호하는 장구에 불구하다. 인권을 가질 수 없는 만인의 투쟁을 막기 위해 공권력이 휘두르는 곤봉에 불과하다. 그래서 지금 경찰폭력 뒤편에 서서 사람들을 죽이고 있는 공권력의 살해행위를 폭로하는 투쟁. 그야말로 양보할 수 없는 가치인 인권을 사람의 이름으로 지키는 투쟁이 필요하다. 그것이 죽은 이들을 위해 산자들이 할 일이다. 노무현이여 사과하지 말라. 허준영이여 사퇴하지 말라. 우리 손으로 끄집어내려 주겠다. 사람을 죽인 공권력에 대처하는 우리들의 자세를 보여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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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밝은진 님은 다산인권센터 상임활동가로 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