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비엔날레 그밖에 어떤 것, '마이너리티 현장-3'

최인기  / 2004년10월09일 1시20분

- 낯선 곳에서 희망을 보다 -

광주 비엔날레 전시관에서 마지막으로 떠나는 셔틀버스를 타고 상무대로 향했다.

거리 곳곳 비엔날레를 알리는 현수막들이 가을 바람에 휘날리고 있고 울긋불긋한 셔틀버스가 이곳이 축제의 장이라는 것을 생생하게 알려주고 있다. 그밖의 어떤 것으로 명명된 마이너리티의 현장은 도착할 때쯤 중간에서 서너 명이 내리고 막상 현장에는 나를 포함하여 10명 정도가 관람을 목적으로 하차를 하였다.


너무도 외진 곳에 자리를 잡고 있어서 그런가 아니면 늦은 시간이라서 관람객이 없나 하는 생각으로 5.18 자유공원의 잔디 위를 걸으며 상무대로 향했다. 아파트가 빽빽하게 들어선 신도시가 되어버린 상무대. 이곳은 과거 8천 평이 넘는 어마어마한 부대로, 80년 광주항쟁 당시 폭도로 몰린 시민항쟁군을 몇 달씩 가두고 고문을 자행했던 곳이다.

우리는 한때 5월만 되면 만사를 다 제치고 달려갔다. 감당하기 어려운 무게를 안고 무엇인가에 씌워 광주 금남로로, 망월동으로 달려갔다. 하지만 꿈에서 깨어난 직후의 멍한 기운처럼 눈에 들어오는 상무대를 인식하기 어려웠다. 나의 추억이나 기억과는 다른 너무도 낯선 곳으로 변해 있었다

상무대 안의 주변 곳곳에 설치되어 있는 각각의 프로젝트는 광주항쟁을 구성하는 장소와 기억들을 시민들의 의식 속에서 끄집어내어 작가들과 소통하고, 반영하며, 다양한 방식으로 설명하고 있었다. 특히 구금시설인 영창 안의 설치 작업은 당시 상황을 생생하게 상징적으로 재현해 놓았는데 닭털들이 둥둥 떠다니는 방, 그리고 박스 위에 어린아이부터 어른까지 다양한 계급계층들을 모아 그려놓고 세워 놓은 방, 그런데 전시된 장소가 감옥이라니 마치 감옥 안의 또 다른 관속에 갇혀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밖에 상무대 곳곳에는 사회 주변의 기층민중들에 대한 편견과 마이너리티들에 대한 차별을 다루는가 하면, 학생과 교사들이 함께 참여한 교육에 대한 문제, 관료주의와 상업주의에 의해 파헤쳐지고 있는 공간과 환경에 대한 관심을 끌어내었다. 나아가 한국 사회의 전반에 걸쳐 대두가 되고 있는 크고 작은 다양한 의제들을 제치 발랄하고 패기 있게 때로는 조롱으로 혹은 풍자로 드러내고 있다.

오후 6시가 가까워지면서 이번 전시회의 기획 일을 하셨다는 한 분과 풀밭에 앉아 이야기를 나눴다. '현장 3'의 기획 의도는 암울했던 광주의 역사에 대한 기억을 넘고자 하였다는 것이다. 이제는 체제 내로 제도화되고 물신화된 광주를 극복하고 표면으로 드러나지 않았던 ‘그 밖의 어떤 것’들을 찾아 광주 항쟁과 또 다른 개인의 삶과 장소를 역사적, 문화적인 맥락에서 되짚어 보자는 것이라고 한다.

돌아오는 길, 현지인이 가르쳐 준대로 아파트 사이 붉은 벽돌 담을 끼고 상무대 전철역으로 향했다. 이제 날은 어두워지기 시작하고 군데군데 사람의 발길도 뜸해질 무렵, 아무런 생각 없이 걷는데 일상의 건조한 공간 위에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는 또 다른 유쾌한 작품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지역의 초등학생들과 주민들이 함께 어우러져 만들었다는 작품이었다. 전시장 밖의 지하철까지 가는 길목, 아파트 사이의 담 벼락에는 아이들의 소박한 소망이 빼곡하고 촘촘하게 박혀 있었다. 소망 하나 하나가 모여서 단순히 수동적이거나 관조적인 관람자들의 일상을 넘어 현장에 대한 개입과 참여로 향해 있다.


길 양편 거대한 아파트 사이로 전깃불들이 어느덧 환하게 밝혀지고 있었다. 상무대 맞은 편의 포크레인과 고공을 맴돌던 크레인이 멈춰 있다. 20여 년 전 참혹한 고문을 이빨 앙다물고 견디다 스러져간 투사들의 신음이 들릴 듯도 한데...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고 있는 상무대. 과연 이곳을 누가 앞으로 지배할 것인가? 저 하늘의 크레인과 주변의 네온싸인일까? 아니면 견고한 벽들 사이로 촘촘히 밝혀 있는 아이들의 작은 소망들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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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임

최인기 씨는 전국빈민연합 사무처장 일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