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디오 : 이제 우리의 무기가 된다!

조동원  / 2004년10월10일 19시33분

사회변화를 위한 미디어

진보적 사회운동이 변화 발전하면서 새로운 사회상과 투쟁의 필요성에 대한 자기 내용을 대중들과 소통하기 위한 커뮤니케이션 전략과 독자적 미디어를 만들어내는 일은 언제나 중요한 사안이었다. 커뮤니케이션 자체가 사회적 투쟁의 근본적 영역일 뿐만 아니라, 다양한 사회운동의 투쟁 방법론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최근 몇 년 동안의 굵직한 사안만을 보더라도, 대우자동차 투쟁이나 발전노조의 파업에서와 같이, 노동운동을 비롯한 한국의 사회운동은 이미 비디오, 인터넷, 휴대전화를 비롯한 다양한 정보통신 기술의 성과를 일상 활동과 투쟁 과정에서 활용하고 있다.

이와 같이, 전문 미디어 조직들의 선도적 활동, 노동자 영상패의 조직화, 인터넷 방송의 적극적 활용 등 풍부한 성과를 내기는 했지만, 이상하게도 라디오의 경우에 있어서는 불모지였다. 해외의 여러 나라에서 주파수 획득을 위한 오랜 투쟁의 과정을 거치면서 합법적으로 진보적 라디오 방송국을 세워 내거나 FM 주파수를 임의로 활용하는 “해적 라디오”를 통한 일종의 합법성 쟁취 투쟁을 벌인 것과 비교해 보면 더더욱 그렇다.

지난 번 지하철 파업 당시 기존 주류 라디오 방송을 통해 파업의 정당성을 알리는 광고를 싣는 정도가 있지 않나 싶다. 워낙에 주파수에 대한 강력한 통제, 그리고 그러한 통제에 의해 자기 미디어에 대한 상상력까지 박탈당한 탓인지 사회운동 진영의 무관심으로 라디오는 여전히 잠자고 있다.

라디오는 왜?

그러나, 라디오는 비디오와 인터넷과는 또 다른 그 특징 때문에 여전히 포기할 수 있는 사회운동의 전술적 미디어가 아닐 수 없다. 주파수를 확보하고 이를 통해 누구나 라디오를 듣고 또 말할 수 있는 것은 비디오나 인터넷으로는 쉽게 획득할 수 없는 집단적이고 쌍방향적인, 더 나아가 실시간의 커뮤니케이션 수단을 확보하는 것을 의미한다.

더욱이 한국처럼 인구밀도가 높은 지역은 낮은 출력으로도 훌륭한 민주적 방송을 만들 수 있으며, 이 때 초고속 인터넷은 지역간 프로그램의 교류를 가능하게 하는 기반 역할을 할 수도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최근 방송위원회가 그렇게 요구했던 자기 일을 찾아내어 추진하고 있다. 여전히 문제가 많기는 하지만, (시청자미디어센터 설립 및 운영 지원과 함께) 지역 공동체 라디오 방송을 위한 시범방송 공모 사업을 추진한 것이다. 일정한 제도 기구 내의 민주화와 함께, 그 동안의 미디어운동 진영의 지속적인 연구와 로비, 지역 차원의 대중적 실천의 노력들이 추동해낸 결과일 것이다.

방송위원회의 지역 공동체 라디오 시범방송

방송위원회는 2003년 방송법 개정안에 행사안내방송인 ‘미니FM’과 ‘공동체라디오방송’을 구분하여 ‘소출력지상파라디오방송사업자’를 전향적으로 도입했지만 개정안이 부분 통과되면서 소출력라디오방송 법안을 신설하지는 못했다. 그러다가 지난 7월 28일 ‘소출력 라디오방송 도입을 위한 전문가토론회’를 통해 방송위원회는 기존 라디오방송 관계자 및 미디어 학자의 의견 수렴을 거쳤고, 방송권역, 주파수와 출력에 대해 정보통신부와 협의를 했다.

그리고 방송위원회는 9월 13일부터 10월 15일까지 ‘소출력 라디오 시범방송’ 공모를 통해 시범방송 운영주체를 선정하여 2004년까지 개국 준비를 끝내고 2005년부터는 시범 방송의 본방송을 실행할 예정이다. 또한 시범방송을 통해 방송법에 지역공동체 라디오 방송 법안을 신설하고 정비할 계획에 있다.

방송위원회의 시범방송 사업은 전국의 5개 내외 지역(수도권 2, 비수도권 3)을 공모를 통해 선정하여, 방송시설과 제작 장비의 일정 부분을 지원한다는 것이다. 물론, 신청주체가 (현행 방송법을 그대로 따르게 되면서) 법인으로 국한되었고, 안정적인 운영재정 및 지원정책이 거의 부재하다는 문제를 비롯한 개념과 의미(“소출력” 혹은 “지역 공동체”에 대한 정의), 방송권역(반경 5km 내외), 편성 및 심의, 주파수 확보, 방송시스템과 설비, 시범방송 평가, 법적 지위 획득 등의 쟁점들을 정리되고 있지 않다.

이러한 쟁점들에 대해 싸워나가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이번 시범방송은 국내 지역 공동체 라디오 방송의 도입 및 제도화의 향후 방향을 결정짓는 중요한 근거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 시범방송의 의미를 좀 더 확장하면 기존 주류 미디어 구조의 한계를 극복하는 '다른' 미디어를 가능케 할 것이라는 점이다. 그렇게 보자면, 지역공동체 라디오 시범방송은 국내 방송 구조 개혁의 계기가 될 것임에 틀림없다. 따라서 진보적 사회운동과 시민사회영역에서는 이를 적극 활용하여 다양한 시도와 실험을 이끌어 낼 필요가 있으며 시범방송에 대한 관심과 주의를 기울려야 한다.

라디오운동, 이제 시작이다!

그에 따라, 촉박한 일정에도 불구하고 현재 전국적으로 10여 개를 넘게 헤아리는 곳들에서 공모 신청을 준비하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기존 방송에서 근무하던 방송 노동자들이 드디어 꿈꿔오던 일이 실현된다면서 부산하게 움직이는 곳도 있고, 지역운동에 기반한 시민사회단체들이 모여 있는 곳들, 그리고 대규모 작업장이나 공단의 노동자들이나 이주노동자들을 위한 라디오 방송을 준비하는 곳들도 있다!

지금까지 억압적인 미디어 통제 및 수용 구조에 갇혀 있던 노동자 대중들에게 이 라디오 방송은 자신들 속에 엄청난 정치적이고 문화적인 에너지가 숨어있다는 것을 드러내며 이를 폭발시킬 뇌관과 같은 것일 수 있으며, 이 미디어가 가진 해방적 가능성을 현실화시키고도 남을 상상력과 만나면서, 이제 ‘라디오’는 점점 우리가 알던 라디오와 다르게 되는 것이다.

“... 우리가 라디오운동을 한다는 것은, 기술적인 의미에서가 아니라 사회적이고 문화적이고 그리고 정치적인 의미에서 이 라디오를 새롭게 발명하자는 것이다.”(파농)

이는 곧, 라디오 방송이란 것이 처음 등장했을 때 이미 브레히트가 진정한 커뮤니케이션 수단으로서 라디오에 주목했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곧 단지 수신하는 것만이 아니라 송신도 하며, 청취자가 단지 듣고만 앉아있는 게 아니라 발언도 할 수 있고, 따라서 고립되어 있는 것이 아니고 연결되어 있는 시스템을 말한다.”(브레히트)

이렇게 라디오를 통해 이뤄질 새로운 실험들은 무엇보다도, 생활과 투쟁의 구체적인 공간인 지역 차원의 사회운동을 강화시키면서 민주적 미디어 커뮤니케이션 구조를 구축해 나가는 과정일 것이다. 특히, 노동자 대중들이 미디어에 접근하는 문제, 사회적인 학습(즉, 교육)의 과정, 생산(제작) 과정과 분리되지 않도록 하는 문제에 있어서 라디오는, 기존 주류 미디어에 대한 접근(퍼블릭 액세스)뿐만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미디어 생산수단을 소유한다는 차원에서 매우 중요한 실험이 아닐 수 없다.

전세계적으로 '가장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고 운영하고 소유하기까지 한 미디어'였던 라디오운동이 보여주는 역사가 바로 이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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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임

조동원 님은 영상미디어센터 정책실장 일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