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비를 보면서도 낭만에 젖을 수 없는 현실

[기고] 인권으로서의 물과 FTA

송유나(에너지노동사회네트워크)  / 2006년05월06일 13시57분

오랜만에 황사와 가뭄에 찌든 대지를 적시는 비가 시원스럽게 내렸다. 보통 때 같으면 당연히 막걸리나 파전을 생각했을 봄비를 보면서 과연 이 비의 얼마만큼이나 대지에 스며들어 지층수가 되고 지하수가 될 것인가, 그 담수능력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줄줄 흘러가는 빗물은 도시에서는 그저 하수구로 흘러들어가 오염되어 먹을 수 없는 것으로 금새 전화되고 말 터이다.

사람은 이토록 간사한지, 에너지 산업을 접하면서는 온통 전선과 전주, 가스통만이 눈에 들어오더니 이제 물이라는 것을 고민하게 되니 물의 순환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는 사실이 한 편으로는 참혹하다.

물 쓰듯 쓴다. 그야말로 헤프고 낭비하는 사물에 대한 태도를 지칭하는 한국인들의 관용어구이다. 그러나 이제 그 물은 적합한 비유의 대상이 아니다. 전 세계적으로 물의 고갈과 기근, 오염의 문제가 심각하다는 사실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이미 유엔에서도 세계 31개국이 물 부족 사태에 직면했다고 보고 있으며, 현재 10억이 넘는 사람들이 깨끗한 식수를 제공받지 못하고 있고 30억 명 가량이 제대로 된 하수시설을 갖추지 못하고 살고 있다고 발표한 바 있다.

2025년이 되면 세계 인구는 지금보다 26억 정도 늘어날 것인데 그렇다면 그 중 2/3는 심각한 물 부족 사태에 직면하게 되며, 1/3은 절대적인 물 기근 속에 살아갈 것이라 예측된다. 향후 물의 수요량은 공급이 가능한 양보다 56%가 많아질 전망으로 대략 예측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사실 지구에 존재하는 물 중 먹을 수 있는 물은 0.5%에도 미치지 못한다. 현재 지구에 존재하는 물은 대략 14억 km3이다. 그러나 먹을 수 있는 물인, 민물의 양은 3천 600만km3로, 전체 물의 2.6%에 불과하다. 그런데 이 중에서도 전체의 0.77%인 1천 100만km3 정도만이 순환하는 물이다. 그렇다고 이 모든 물이 우리가 마실 수 있는 물도 아니다.

인간이 마실 수 있는 물, 즉 민물은 지표면 아래나 더 깊은 지하 속에 저장된다. 흔히 이 물을 지하수라고 한다. 이 지하수의 양은 지표면 위에서 발견되는 물보다 대략 60배가량 많다. 그런데 이 지하수는 여러 가지 형태로 존재한다. 강이나 호수로 흘러들어가는 소위 순환수가 있지만, 지하수 중에서 암석이나 깊은 곳에 갇혀 있는 물은 순환하지 못하고 닫혀 있다. 다행히 이 물을 발견하여 사용할 수 있는 가능성도 있겠으나 현실적으로 사용 가능한 물로 추정하기는 어렵다.

물 순환에서 비는 절대적인 역할을 한다. 비가 내리면 물이 땅 속으로 스며들고, 증발하여 대기로 돌아간다. 물의 순환은 지표면 위 15km 높이와 지표면 아래의 5km 사이에서 일어난다. 비가 오면 빗물이 지하로 스며들어 지하수가 되고 이 지하수가 지표면으로 다시 올라오는 과정을 거쳐 하천의 물로 고인다. 지표수와 바닷물이 대기 중에 증발하면서 수증기가 생성되며, 수증기는 대기로 올라오면서 포화수증기로 형성된다. 비구름이 형성되고, 이것이 차가워졌을 때 비로소 비가 되어 대지를 적신다고 우리는 어릴 적 과학교과서에서 배워왔다. 이 전 과정이 물 순환의 과정이다.

그런데 자본주의의 콘크리트와 엄청난 도시화로 인해 이 순환의 고리는 점점 끊어지고 있다. 아스팔트에 뒤덮인 도시는 물을 머금을 수 없다. 한국의 경우 하절기로 집중되어 비가 내리면 빗물은 대부분 바다로 유출되어 버린다. 더구나 인류는 순환의 속도를 엄청나게 초과하여 물을 소비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물 순환의 주기는 허덕이고 있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지하로 흘러가거나 강으로 유입되어 다시 바다로 나오는 물의 양은 연간 3만 4천km3에 불과한 실정이며 인류가 의존해야 할 물의 전부가 이것이다.

물의 기근과 고갈 상태는 향후 인구의 증가와 더불어 심화될 수밖에 없다. 향후 10년 뒤 인구는 2억 5천만 명이 늘어날 추세이다. 특히 중국, 인도, 파키스탄 등 아시아 인구의 증가가 주목할 만하다. 중국의 경우 10년 안에 현재 61억 인구에서 57%가 늘어나 26억 명이 늘어날 것이한다. 인도의 경우 10년 안에 2억 5천만 명이 늘어날 것이며, 파키스탄 역시 현재 인구의 2배로 늘어 2억1천만여 명에 이를 것이다. 더욱이 이들 도시의 산업화와 이에 따른 물의 안정적 공급은 더욱 어려워질 것이다.

더욱이 공업에서 차지하는 물의 소비는 전체 물 소비의 20-25%에 달하지만, 매우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특히 아시아와 라틴아메리카의 인구 증대와 산업화는 물 소비를 엄청나게 증대시키고 있다. 자동차를 한 대 생산하는데 물이 40만 리터가 필요하다. 컴퓨터 제조업체는 제품을 생산하기 위해 막대한 양의 탈이온수를 사용하는데, 제품 생산 이후 배출되는 것은 엄청나게 오염된 폐수이다. 한국 자본주의 성장의 주춧돌인 IT 산업, 반도체 산업 등 역시 물을 과소비하는 환경 파괴, 공해 산업에 해당한다. 농업과 축산업의 공장화, 대량화 역시 물의 소비를 증가시키며, 소비한 만큼 엄청난 오․폐수를 방출하고 있다.

여기까지의 내용은 사실 필자 스스로에게도 어려운 소위 자연과학적(?) 상황이기도 하거니와 시쳇말로 “대략 난감”한 경우이다. 그러나 물이 처한 이러한 조건을 어렵사리 언급하는 이유는 바로 물의 상품화를 부추기는 원인, 즉 물 사유화의 현실이 매우 단순명쾌하다는 사실을 지적하기 위함이다. 오염과 기근, 물의 고갈은 물 산업의 시장화를 서두르게 한다. 왜 물이 이토록 갑자기 상품으로 떠오르는 것인가? 바로 물 자원의 희소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희소성이 커진다는 것은 돈이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과 에너지와 같이 수요탄력성이 적은 상품(자본의 입장에서)은 매력적인 돈벌이 대상일 수밖에 없다.

생수 시장이 무한히 확장되고, 정수기 시장이 발전하고 있는 한국에서 물 관련 시장 확장이 현실적 문제로 체감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은 심각하다 아니할 수 없다. 현재 프랑스를 국적으로 하는 대표적인 물 관련 다국적 기업은 비방디와 수에즈를 꼽을 수 있다. 비방디와 수에즈 두 회사는 전 세계 130여 개를 넘는 국가에 물을 공급하고 있으며, 1억이 넘는 사람들에게 물을 팔고 있다. 이들은 세계 물 포럼 등을 이끌면서 개별 국가의 물 산업의 개방과 자유화를 주도하고 있다.

WTO 서비스 협정이나 각종의 무역기구를 통해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면서 이미 수많은 나라의 민영화 정책을 이끌어 내었다. 한국 역시 IMF 외환위기의 부채상환 대가로 공공부문 매각을 요구받았듯이 수많은 개발도상국, 소위 남반구 국가들이 물과 전력 등 공공서비스를 내놓아야 했다. 그리고 이들 노동자 민중은 요금인상, 서비스의 차별화, 그리고 정리해고를 경험해야 했다.

이러한 과정에서 한국의 물 사유화 정책은 현재 진행형이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가 먹는 수도를 누가 공급하고 있는지 과연 알고 계십니까?

많은 사람들은, 정말 놀랍게도 많은 사람들이 한국수자원공사를 꼽는다. 그러나 상수도 공급은 각 지자체에서 담당하고 있다. 수자원공사는 원래 댐 건설과 관리를 담당하였다. 현재 상수도 공급은 167개 지자체를 통해 수행되고 있다. 그러나 수자원공사를 통해 지자체가 원수와 정수를 공급받거나, 최근 물 사유화의 한 단계로 수자원 공사로의 민간위탁 등이 추진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와 관련해서 해야 될 이야기가 너무 많아서 이는 다음 비 내리는 날로 미루면서(?) 현재 한국에서 진행되는 물 사유화 정책과 FTA 정세와의 연관성만 간략히 지적하도록 하자.

한국의 물 사유화 정책은 167개 지자체 중 7개 특광역시를 중심으로 하여 경쟁력 있는 공사화를 한 편에서 추진하며, 나머지 160개 지자체는 7개 특광역시 혹은 수자원 공사에 대한 민간위탁을 추진하여 통폐합하는 전략을 취하고자 하였다. 이로써 논산, 정읍, 사천, 예천 등의 지자체가 수공으로 민간위탁된 바 있다. 이렇듯 현재의 물 사유화 정책은 현재 진행형이면서 FTA 등 개방화 정책과 맞물리면서 직접적으로 초국적자본의 이해관계 하에 놓이게 되었다. 앞서 말했듯 베올리아와 온데오 등 세계 1-2위를 다투는 초국적자본은 하수도와 오폐수 처리 사업 분야에 이미 진출해 있다. 삼성이나 한화 등 대기업과 함께 공업용수 민간위탁 사업, 수처리시설 위탁 운영 등에 이미 뛰어들어 있는 상황이다. 이들 초국적자본과 국내 자본의 결탁은 향후 상수도 부분 및 물 관리 시스템 전반을 공략하고 있다 할 것이다.

쌀이라는 식량, 에너지, 물! 그 어느 하나가 없이도 우리는 살아갈 수 없다. 그러기에 자본의 입장에서 수요탄력성이 낮을 수밖에 없는 귀중한 상품을 공략하기 위한 거센 바람이 바로 FTA와 같은 망령으로 불고 있는 것이다. 사실 우리가 고민해야 할 바는 비가 오면, 이 비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와 미래를 살아갈 새로운 세대를 위한 자원으로 어떻게 보존될 것인가의 문제이어야 한다. 물 자원을 관리하고 보존하기 위한 정책이 선행되어야 하는 것이며, 이것이 결국 인권이자 삶의 권리로 직결되는 것이다.

그러나 물을 먹을 수 있는 기본적인 권리인 인권은 물이 상품이 되는 순간, 인권이 아닌 소비의 능력이 되고 만다. FTA가 모든 것을 상품으로 전화하면서 공략하고 있는 현실에서 우리는 흘러내리는 빗물을 안타깝게 바라볼 수밖에 없다. 저 빗물이 향후 우리가 마실 수 있는 물이 되기 위한 국가 차원의 물 관리와 공급이라는 기본권 보장의 영역일 것인가? 아니면 오염과 기근을 부추기면서 물자본의 이윤 논리에 따라, 소비의 논리에 따라 차별적으로 공급 혹은 소외당하고 말 상품으로 결국 추악하게 떨어지고 말 것인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 말이다.

비가 내릴 때마다, 아니 물을 마실 때마다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봐야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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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염되지 않고 신선한 생수를 그냥 마실수 있는곳에서 산다면 무병장수 할것입니다. 도시인들은 모두 먼곳에서 가져오는 물을 사먹어야 하니 그것도 자꾸만 가격이 오른다면...
호숫가
2007.11.23 06:11

덧붙임

송유나 님은 에너지노동사회네트워크 사무처장으로 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