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젊은 것들’이 출산파업 하는 이유

1.1명대 무너진 세계최저출산율, 무엇을 말하는가

이황현아(노기연)  / 2006년05월10일 9시58분

어제 신문들의 머리기사들은 하나같이 출산율 문제를 다루었다. 그도 그럴 것이 정부가 발표한 지난해 합계출산율이 마지노선이라 할 1.1명대를 무너뜨리고 말았기 때문이다. 정부가 내놓은 ‘저출산종합대책’을 비웃기라도 하듯 지난해 우리 나라의 합계출산율(가임여성이 낳는 평균 자녀수)은 1.08명이란다. 게다가 아이를 낳은 산모 중에서 30대 여성의 비율이 50.3%로 사상 처음 20대 여성의 비율(47.7%)을 넘어섰다.

2002년 경악스런 1.17을 기록한 이래 출산율은 해마다 갱신되고 있는 셈이다. 이러니 정부건 매스컴이건 호들갑을 떨 수밖에 없다. 2-3년 전까지만 해도 ‘출산 위기’ 정도로 치부되던 저출산 문제가 이제는 바야흐로 ‘출산 재앙’이 되고 있다.

‘저출산 재앙’이 다가오고 있는 만큼 저출산 문제에 대한 정부의 대응방식도 현저히 달라지고 있다. 정부는 1.16에 머무르고 있는 합계출산율을 2010년대까지 OECD국가의 평균수준인 1.6명까지 회복한다는 계획 아래 30조를 쏟아 붇겠다는 거대한 대책을 세웠다.

오는 16일에는 그 연장선에서 ‘저출산ㆍ고령사회 기본계획’을 발표하여 보육ㆍ교육비 지원 강화, 육아인프라 구축, 가족친화적ㆍ양성평등적 사회문화 조성, 어린이와 청소년에게 안전한 성장환경 제공을 약속한다고 한다.

그러나 이번 계획도 지난 1월의 ‘저출산종합대책’과 같이 일하는 여성에겐 유감스럽기 짝이 없다. 대책 어디에도 일하는 여성으로서 ‘여성노동자’에 대한 정책은 없기 때문이다. 물론 정부는 가정과 일의 양립정책이 여성노동정책이 아니고 무엇이겠냐고 할 것이고, 보육문제해결이 가장 큰 문제이니 그것을 해결해주는 것이 일하는 여성을 위한 일이 아니고 뭐겠느냐고 할 것이다.

나아가 가족친화적이고 양성평등적인 사회문화를 조성하게 되면 양육과 보살핌노동, 가사노동도 분담될 것인데 왜 볼멘소리를 하느냐고 할 것이다. 하지만 정부는 헛다리를 짚고 있다. 일하는 여성인 여성노동자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아이를 낳아도 아무 걱정 없이 다시 돌아갈 수 있는 직장이다. 산전산후휴가가 90일로 늘어난 게 몇 년 전이고 이제는 사회보장까지 되어 있는 상황인데도 여성들은 아이 낳기를 꺼린다.

왜 그럴까? 산전산후휴가가 90일로 늘어나기는 했지만 아무 눈치 안보며 주어진 휴가를 다 쓸 수 있는 직장 여성들이 얼마 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더구나 여성노동자의 70% 이상이 비정규직인 현실에서 이들이 고용보험의 혜택을 누리지 못할 것이라는 것은 짐작이 갈만한 얘기다. 정규직의 60%도 안 되는 임금을 받고 있는 여성노동자들이 돈이 없어 아이들을 낳을 수 없다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요즘은 이른바 강남에 사는 여성들만이 또순이 엄마, 삼순이 엄마가 될 수 있다고 한다. 집 걱정 없고 먹고 살 걱정 없는 형편 좋은 전업주부가 되어야 감히(!) 아이를 낳을 수 있다는 거다. 아이들을 떼어두고 와도 아무 염려 없이 일할 수 있는 사회제도, 정부가 말하는 육아인프라 구축은 그 다음 순번으로 논할 문제다.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렀는데도 언론은 한 술 더 떠 젊은 여성 ‘출산기피증’이니 젊은 부부 ‘이기주의’니 하며 인륜을 무너뜨리는 ‘요즘 젊은 것들’이라고 내몬다.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이는 엄연히 가임여성이다. 이들이 대체 무엇 때문에 몇 년 째 아이를 낳지 않는 무언의 ‘출산파업’을 강행하고 있는지 이 사회는 도무지 알려고 들지 않는다.

자그마치 30조를 들이 붇겠다고 하는데 그게 최소한 사회주의 사회의 무상교육 수준도 안 된다. 어차피 재원은 국민의 주머니에서 나올 것 아닌가? 이라크 파병철수하고 국내 미군철수하고 대규모 군축하면 무상교육에서 더 나아가 무상의료까지 실시할 수 있지 않나? 현재 셋째 아이 보육지원이라는 게 만 2세(!) 이하 아동에게만 해당된다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에서 종합보육정책이란 것에 뭔 기대를 얼마나 걸란 말인가?

‘저출산종합대책-보육정책종합세트’를 들이밀면 과연 여성들이 단박에 아이를 낳으려고 할 것인가. 정부는 똑바로 봐야 한다. 정부가 말하는 여성은 그냥 여성이 아니라는 것을. 여기서 여성은 일하는 여성, 명백히 ‘여성노동자’여야 한다. 여성경제활동인구가 50%다. 그러나 정부의 공식적 통계에 잡히지 않는 ‘비공식부문 노동자’들은 셀 수 없이 많다. 그리고 비공식부문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대부분 여성들이다.

간병인, 우유배달원, 텔레마케터, 가사청소도우미, 미싱사, 가내노동자, 장애여성노동자, 학습지교사나 보험모집인과 같은 특수고용노동자들... 법적으로나마 명시되어 있는 근로기준법, 최저임금법의 적용조차 받지 못하는 여성노동자들. 이들이 출산휴가나 육아지원금 같은 것을 꿈 꿀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이런 일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가사노동의 연장으로 볼 수 있는 일들이 많고 그런 까닭에 많은 여성들이 비공식부문으로 편입되고 있다.

정부가 말하는 일하는 여성을 위한 보육인프라 구축이나 양성평등적 사회문화 조성은 일하는 여성 중에서도 일부만을 위한 것일 뿐이다. 일하는 여성은 여성노동자이고 이들은 정부정책과 법제도에 의해, 그리고 자본가들에 의해 공식부문과 비공식부문 노동자로 분할되어 있으며, 당연한 권리인 노동자성도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게다가 낡아빠진 성별분업 이데올로기는 여전히 여성을 비공식부분의 전담자로서 기능하게끔 하는데 일익을 담당하고 있다.

비정규직 노동자와 비공식부문 노동자들은 신자유주의 노동유연화 정책 최선두에 동원되고 있지만 정부는 이들이 여성노동자임을 부정한다. 국가와 자본은 ‘저출산 재앙’이라고 연일 호들갑을 떨고 있지만 발등의 불이 된 ‘저출산 재앙’을 극복할 묘수는 ‘보육정책’이나 ‘친가족적 기업문화’에 있지 않다. 자본주의 사회 근간이 무너지는 위기의 저출산율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출산위기의 사회적 해결에 여성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시키는 정부의 접근방식 그 자체를 바꿔야 한다.

자본주의 사회의 일차적인 토대인 출산과 가족의 위기가 심각한 사회적 위기로 재연되는 것은 자본주의의 내재적 위기와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만들어내는 재앙일 뿐이다. 대대적인 출산장려운동으로 이 위기가 극복될 수 있을 것 같은가? 단연코 그렇지 않다. ‘저출산종합대책’ 같은 사탕발림이야말로 위기를 철저히 은폐할 뿐이다.

정부의 저출산 위기 인식은 미래사회에 대한 사회적 부담을 개인에게 전가하는 방식으로 해결하려한다. 총력출산운동을 벌이고 가족의 가치를 부르짖는다고 해서 재앙의 위기를 지연시키거나 극복할 수 없다. 신자유주의 정부의 일관된 여성정책인 ‘일과 가정의 양립’이라든가, ‘성차별적 노동관행’, ‘여성의 생산-재생산노동의 가치절하’, ‘빈곤의 여성화’와 같은 사회구조적 모순이 해결되지 않는 이상 당분간 세계최저출산율은 극복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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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자요..
저출산고령화 대책위라는 걸 만들고 거기에 들어간 민주노총은 뭐하는 건지 원... 민주노총 여성위도 저출산고령화를 여성에게 넘기는 이문제에 대해 입장이있어야 하지 않나요?
ㅎㅎ
2006.05.11 17:37

덧붙임

이황현아 님은 노동조합기업경영연구소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