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할 매각 우회하는 직격탄! 가스 직도입에 주목하라

[한미FTA저지특별기획](21) - 한미FTA와 가스

송유나(에너지노동사회네트워크)  / 2006년05월16일 12시58분

외환위기 이후 공기업 민영화 정책이 급물살을 타면서 에너지 산업 사유화 정책의 중단과 폐지, 사회공공성 강화를 위해 싸워온 시절이 어느덧 8년을 꽉 채우고 있다. 8년이란 세월이면 한 아이가 자라서 초등학교에 입학하듯이 에너지 사회공공성 관련한 사회적 담론도 영유아기를 거쳐 이제서야 초등학교에 들어간 듯 하다.

에너지 산업과 관련하여 쉽게 한 자리에 같이 앉지 못하던 환경운동가들과 노동자들이 이제 머리를 맞대고 사유화 정책의 문제점에 깊이 공감하고 있으며, 나아가 지속가능한 에너지 체제 전환이라는 전략적 문제를 궁구하기에 이르렀다. 또한 에너지 사회공공성의 의제는 이제 다양한 측면에서 접근되고 있다. 사유화 정책이 야기하는 노동권의 후퇴와 요금 인상 등의 문제 등 일반적으로 인식되던 공공성의 측면만이 아니라 에너지의 안정적 공급, 즉 에너지 자립과 정치적 독립이라는 사활을 건 주제에 대해 시급히 대답을 요구받고 있는 시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역시 FTA는 우리에게 잠시간도 숨 돌릴 시간적 여유를 허용하지 않는다. 현재 진행되는 FTA의 진척 속도라면, 에너지 산업 사유화의 최단저지선이 급격히 무너질 것이 명약관화하기 때문이다. 실상 에너지 산업의 시장화 개방화의 진척은 자본의 입장에서 소위 “손대면 톡 하고 터질 듯하게” 진척되어 있는 상황이기도 하다.

유일하게 최단저지선을 지켜올 수 있었던 에너지 산업

역대 대통령 모두 시장에 내어놓았던 알짜배기 상품인 전기 가스 철도 물 등 그야말로 필수기간산업은 통신과 금융, 철강 등이 두루두루 사적자본으로 전화되는 과정에서도 다행히 공공적 영역으로 남아 있을 수 있었다. 물론 이유가 있다. 무엇보다 해당 노동자들이 투쟁했기 때문이다. 집단이기주의와 철통밥그릇 등으로 무수히 몰매를 맞았어도 노동자들이 저항했기 때문에 가능하였다. 실지로 사유화 정책을 투쟁으로 막아낸 나라는 많지 않으며 특히 에너지 사유화 정책을 중단시킨 사례는 한국이 세계 역사상 유일하다는 점은 분명하다. 그러나 되돌아보면 가슴을 쓸어내릴 만큼 다행인 일이 있었다. 사유화 정책을 성급히 추진하여 초국적 자본에게 상납하고자 하는 자들의 시나리오의 부재, 그 무지몽매함이 그것이다.

1998년 외환위기가 발발하고 본격적으로 1999년부터 에너지산업 사유화가 추진되면서 당시 김대중 정권은 부채 상환의 명목으로 갖가지 공기업을 시장에 내어놓기에 이른다. 한국통신, 한국중공업, 담배인삼공사는 곧바로 상품으로 전환되었지만, 이 사연 많은 에너지 산업은 분할 매각 방식을 채택하여 결국 “자발적 상납”에 제동이 걸리고야 말았다. 당시 정책을 추진했던 사람들은 통탄에 통탄을 금하지 못하고 있을 것임이 눈에 선하다.

그렇다면 분할 매각 방식이 무엇인가?

최근에도 삼성과 재계 순위를 다투고 있는 거대 공기업 한전을 보자. 그야말로 거대하여 한 몫에 팔기 쉽지 않다. 자본의 입장에서도 검증되지 않은 에너지산업 시장경쟁체제에 대한 위험부담을 감지하기 마련이다. 더욱이 발전-송변전-배전으로 유기적으로 형성되어 있는 네트워크 산업을 매각하는 방식은 용이하지 않다. 그리하여 70년대 신자유주의를 선도했던 영국과 호주는 분할 매각 방식을 택하였다. 송변전 즉 전기를 나르는 단위는 쪼개지 못하지만, 발전과 배전을 따로 따로 적절히 쪼개어 판다는 것이다. 매각에 급급했던 한국정부와 자본은 이미 실패한 것으로 판명 난 영국과 호주의 방식을 그대로 모방하였고, 이에 따라 발전 분야를 화력과 복합발전 5개사와 원자력 부분으로 2001년 4월 분할하고 말았다.

현재 발전 부분은 중부, 남동, 동서, 남부, 서부 등 5개 발전사와 원자력 1개사 즉 6개사로 쪼개어졌다. 그런데 이 각 사는 지역적으로 보면 중부가 중부에 있지 않고, 남동이 남동에 있지 않다. 원 참, 호부호형도 아니고, 우리는 서부를 서부라 동서를 동서라 결코 칭할 수 없는 상황인 것이다. 이것은 그야말로 매각에 용이하며, 매각 대금에 맞춰 적절히(?) 쪼개었기 때문이다. 당시 각 사는 대략 3조 2천억 원짜리 상품(?)이었다. 더 깊이 들어가서 설명하고 싶으나 다음 이야기를 위해 미룰 수밖에 없겠다.

가스 역시 분할 매각 방식을 취하였다. 전력산업 구조와 비슷하면서도 참으로 다른 것이 가스 산업이다. 한전이 생산에서 공급까지 일관된 체계를 가진다면, 가스는 도입 도매와 소매가 나뉘어 있다고 봐야 한다. 2004년 동해가스전이 발견되었다고 난리법석이었지만 한국은 거의 100% 천연가스를 도입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가 익숙하게 알고 있는 한국가스공사는 천연가스의 도입부문만을 책임지고 있다. 도입한 가스를 소매부문으로 넘기는 배관망까지 관리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그리고 가정에 공급하는 도시가스는 지역적인 독점으로 이루어져 있는 지역 도시가스사로 배분되어 있다. 그 동안 추진되었던 가스공사 민영화 방식 역시 이 도입 부문을 3개로 분할 매각하겠다는 것이었으며, 한전의 송변전 즉 망 시스템과 마찬가지로 배관망 부분은 설비공동이용제(OAS)를 실시하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유럽과 미국 시장이 천연가스를 가스관을 통해 들여오는 PNG 방식이라면 우리는 액화해서 수송선을 통해 도입하는 LNG 방식으로 일본과 동일한 양상이다. 전세계 LNG 도입에서 일본 다음으로 한국이 최대 수입국이다. 그리고 대부분을 중동과 아시아 지역에 의존하고 있다. 그런데 LNG 도입 방식은 PNG와 달리 20-30년 장기도입 계약을 한다. 가스를 수입하겠다고 결정하고 소위 수입할 가스전을 뚫는데서부터 협상을 시작하는 것이다.

가스전을 찾아 뚫고 장기계약을 하는 한국의 천연가스 도입 시스템은 분할 매각 방식을 채택하기 어려웠다. 산자부와 가스공사 사측에서 계속적으로 민영화 정책을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결국 분할 매각 방식의 민영화 정책이 유보되었던 것은 이 장기 도입 계약을 어떻게 쪼갤 것인가에 대해 답을 내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즉 기존에 체결된 장기도입 물량을 쪼개는 방식을 해결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한 편에서 가스 산업 사유화는 답보 상태를 거듭하기에 이르렀다.

가스 직도입의 등장과 에너지 산업 시장경쟁 체제의 본격화

바로 이러한 상황에서 가스 직도입이 등장한다. 외국인 지분 69%에 달하는 포스코는 이미 직도입을 승인받아 광양에 자체 인수기지와 저장탱크를 설치했으며, 50%를 쉐브론 텍사스가 소유한 GS칼텍스, 50% 엔론의 소유인 SK 엔론 역시 가스공사의 도입구매를 경유하지 않는 직접 도입, 즉 직도입을 이미 허용받았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분할 매각 방식을 우회하여 시장 자체를 여는 민영화 정책의 직접적 관철이다. 이에 따라 대림, 발전자회사 등 우후죽순 가스 직도입을 요구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 상태가 지속된다면 가스공사는 기존에 도입해왔던 물량이 점차적으로 사라지면서 배관망을 관리하는 회사로 전락할 것이고, 에너지원을 둘러싼 국내외 자본의 치열한 각축전은 단지 가스의 도입 공급만이 아닌 전기, 도시가스 시장 전반의 경쟁 확대로 나아가게 될 것이다. 이렇듯 직도입은 답보 상태의 에너지 산업 사유화 정책과 경쟁, 개방화 정책에 물꼬를 트는 분수령이 된다. 가스의 직도입은 단지 가스공사의 사유화 정책에 국한되지 않는 에너지 산업 전반 시장화의 촉매제가 될 수밖에 없다.

앞서 언급했듯이 에너지 산업 공공성 사수를 위해 발전매각과 가스 산업 경쟁체제 도입을 저지해온 것은 그야말로 최소한의 저지선이었다. 그런데 가스 직도입이 확장된다는 것은 5개사로 분할된 발전 5개사 내의 연료 경쟁이 시작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그 동안 사유화 정책의 일견 답보상태로 인한 형식적 분사상태가 실질적인 분할 경쟁 상태로 전화하는 것을 의미한다. 더욱이 심각한 것은 소위 제한조치의 철폐이다.

포스코, SK, GS 등이 이미 직도입을 허용받은 상황이지만, 이들에게는 “자가소비용”이라는 제한조치가 매달려 있다. 즉 자체적으로 전기를 생산하던, 가스를 주 연료로 소비하던 간에 생산한 전기를 직접 팔 수 없도록 되어 있다. 그러나 발전 5개사에까지 직도입이 허용된다는 것은 사적 자본의 입장에서는 같이 전기를 생산하는 업자로서의 차별 조치에 해당한다.

즉 발전 5개사는 LNG를 도입하여 전기를 생산하여 일반 가정에까지 공급하는데, 사적 자본에게는 자가소비용이라는 이름으로 판매를 제한하고 있기 때문이다. 역시 이는 소매 도시가스사의 입장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동등한 대우라는 이름으로 자가소비용 제한 조치는 향후 곧바로 폐기될 것이 분명하다. 바로 이러한 점에서 가스 직도입은 에너지 산업 전반의 경쟁과 시장화를 부추기는 촉매제가 될 수밖에 없다.

일국의 공공성을 위한 제반의 조치는 FTA 논리대로라면 무역장벽일 뿐

FTA의 최혜국대우, 내국민대우 조항이 미칠 영향과 마찬가지이다. 앞서 말한 제한조치들, 나아가 환경규제 등 모두가 사적 자본의 입장에서는 무역장벽이 된다. 국가기간산업에 대한 외국인 지분 제한 역시 마찬가지이다. 지분 제한을 하더라도 무역장벽으로 간주되면 곧바로 철회해야 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최근 러시아는 가즈프롬의 국유화 정책을 관철시키면서 서러시아 지역에서 유럽으로 유통되는 가스 공급 시스템을 좌지우지한 바 있다. 러시아의 에너지원을 무기로 한 정책이 유럽 전역을 뒤흔들어 현재 유럽의 정세는 에너지 주권, 에너지 안보가 시대의 화두가 되고 있다. 고유가의 지속 속에서 그나마 석유보다 매장량이 넉넉하며,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상대적으로 적은 천연가스에 대한 관심은 폭발적이다. 동북아 역시 지난 몇 년 동안 PNG 노선을 둘러싼 논의가 현재 진행형이다. 앞서 말했듯이 LNG 수송망에 국한되었던 한국에서도 이르크추크를 경유하는 PNG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었으나, 중국과 러시아 그리고 미국과 일본을 둘러싼 에너지 전쟁은 한국과 같이 초국적 자본에 벌벌 기는 약소국을 끼워줄 심산은 결코 아닌 셈이다.

중국과 러시아, 그리고 파키스탄의 인구 증가는 동북아 지형의 에너지 위기를 고조시키고 에너지를 둘러싼 전쟁을 불사하는 정세를 형성하고 있다. 미국의 이라크 전쟁이 에너지를 둘러싼 것이었듯이 동북아를 둘러싼 에너지 위기는 과히 심각한 수준을 넘어서고 있다. 바로 이 지점에 에너지의 안정적 수요와 공급에 대한 국가의 정책이 존재해야만 한다. 에너지의 안정적 공급과 이를 통한 공공성의 확보는 국가가 해야 할 마땅하고 유일무이한 역할 일 수박에 없다.

그러나 FTA를 추진하는 현 정부의 작태는 에너지 문제만으로 국한해 보더라도 실로 망연자실을 금할 수 없다. 안정적인 공급권과 에너지 수급 체계를 관리할 그 어떠한 방도도 없이 에너지 산업을 팔아치우고 시장을 개방하겠다는 정책으로 일관하고 있을 따름이다. 대통령이 이 나라 저 나라 다니면서 앵벌이 하듯이 에너지를 상호 교류하자는 립서비스만으로 에너지의 안정적 공급은 결코 보장될 수 없다.

식량, 물, 공기와 마찬가지로 에너지 역시 인간이 살아가는데 필수불가결한 요소라는 사실에 대해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에너지의 사회공공성을 고민하면서 에너지의 안정적 공급과 수급 관리 문제, 그리고 에너지가 정치적 무기로 휘둘리지 않는 정치적 독립의 화두가 되어야 한다는 사실에 대해 우리 함께 더 깊이 고민해 나가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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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임

송유나 님은 에너지노동사회네트워크 사무처장으로 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