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이라는 이름을 갖게 된 내 친구야"

[한미FTA저지 연구자의편지](5) - 박이은실이 비정규직 친구에게

박이은실(여이연)  / 2006년06월06일 20시10분

지난 금융위기 후 비정규직이라는 이름을 갖게 된 내 친구야.

지난 금융위기 때 그렇게 성실히 다니던 직장에서 쫓겨난 뒤 오랜 동안 희망을 잃은 채 방황을 했던 네가 드디어 새로운 일자리를 찾고 자리를 잡아가는 걸 보면서 얼마나 마음이 놓이든지. 그러나, 그렇게 어렵게 잡은 일자리였지만, 너는 곧 이것저것이 뭔가 잘못된 거 같다며 불만을 얘기하기 시작했지.

네가 잡은 일자리는 일년마다 새로운 계약을 해야 하는 비정규직. 네가 하는 일의 내용도 예전과 다를 바 없고, 너의 성실함은 이전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은데도 네가 받는 월급은 이전에 비해 절반이 줄어들어 형편이 없었고, 회사에서 네가 낼 수 있는 목소리는 아주 작고 작아 너는 네 몸과 정신이 반으로 줄어든 것만 같다며 가끔 많이 힘겹다고 말하곤 했지.

그런 네게 힘줄 수 있는 얘기를 해 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내가 지금 간절한 마음이 되어 네게 건네는 얘기는 그러나 오히려 너와 나의 마음을 더 힘겹게 만들지도 몰라 안타깝기 그지없다. 그러나, 네가 알고 나도 알아, 이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미연에 막지 않으면 삶이 지금보다도 더 힘겨워질 것이기에 이렇게 네게 편지를 쓴다, 사랑하는 내 친구야.

오늘 저녁 뉴스에서는 우리 정부가 미국과 FTA라는 자유무역협정을 맺기 위한 1차 협상을 하러 미국에 도착했다는 보도가 있었어. 너도 봤니? 나는 도대체 왜 우리 정부가 저렇게 한미FTA 체결을 하겠다고 저 난리인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아.

정부는 우리 경제가 세계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한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국내 시장을 열고외국의 자본이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하지만, 지난 97년 외환위기를 극복한다고 외국자본을 들인 후 좋아진 것이 뭐가 있니? 기껏해야 알짜기업들과 은행들을 무더기로 외자에 팔아 넘겨 이제 한국의 기업들과 은행들은 소유권이 외국자본들에 잠식되게 된 게 다 아니니? 무더기로 노동자들을 해고하고서는 투자자본이라는 이름만 거창하게 단 그 외국자본들이 이제까지 투자해서 만들어 놓은 게 도대체 뭐라니? 반반한 기업을 하나 세워놨니 아니면 도로에 길을 닦아 공공에게 이로운 일을 해놓기를 했니?

게다가 그렇게 팔려간 은행들을 잘 운영한 것도 아니고 두 세 해 운영하는 척하다가 이윤만 챙겨서 한국에서 있을 결과야 어찌됐든 이제 나 몰라라하고 돈이나 챙기고 나가면 그만이라는 작태를 보이면서. 무작위로 들어오는 투기성 외국자본들의 본성이 어떤지를 외환은행 사례는 너무나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질 않니.

이제 한미FTA가 체결되고 외국의 자본이 더욱 손쉽게 한국의 금융을 손에 넣고, 한국 기업들의 주식을 사들여 경영권을 확보하고 나면 이윤극대화라는 자본의 논리를 가지고 아주 지속적이고 악착같이 구조조정의 바람을 몰고 올 거라고 해. 그런 구조조정은 너무도 일상적으로 일어나게 되서 97년 금융위기 때처럼 한꺼번에 눈에 띄게 드러나지는 않을런지는 몰라도 아예 일상적으로 아주 속속들이 구조조정이 일어날 것이고, 해고가 줄을 잇게 될 거라고 해.

멕시코가 경쟁력 강화와 경제 발전을 빌미로 미국과 FTA협정을 맺은 뒤에도 이와 똑같은 일이 발생했다고 하잖니. 얼마 전 텔레비젼 방송을 보니 멕시코의 한 은행에서 일하던 은행원은 그렇게 일상적으로, 소규모로 그러나 아주 지속적으로 자행되던 구조조정에 의해 해고된 통에 한번 저항하고 싸워보지도 못한 채 정신을 차리고 보니 벌써 해고된 뒤였다고 하소연을 하더구나. 그 사람은 지금 택시운전을 하고 있다고 해.

그렇게 멀쩡한 일자리들을 잃게 되면 결과적으로 이전보다 생활형편이 형편없이 나빠질 것임이 분명한데도 한미FTA가 불러올 더한 악재는 의료의 양극화, 교육의 양극화 등을 통한 삶의 질의 악화일 거야. 현재 한국의 병원과 학교는 비영리법인이란 걸 너도 알잖니. 비영리라고 묶어 놓음으로써 병원과 학교가 공공의 이익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는 당위성을 못박아 놓은 셈인데.

이제 한미FTA가 체결되면 미국의 병원과 학교들이 영리법인으로 국내에 들어오게 되고, 너무도 당연히 이는 다시 한국의 병원과 학교가 영리법인화하게 되도록 하는 압력이 될 거야. 결국, 병원과 학교에도 양극화가 발빠르게 진행될 것이고, 우리가 내는 값싼 건강보험증은 아예 취급도 안해주고 값비싼 민간보험만 취급해주는 병원들이 생기게 될테지.

고용은 더욱 불안정해지고, 일자리는 더욱 저임금화되고, 사회가 보장하는 안전망은 양극화 속에서 그 질이 열악해질 것인 게 뻔한데 도대체 우리 정부는 어쩌자고 저러는 것일까?

농업이 개방되면 우리 농촌 인구의 다수인 소농들이 삶의 수단을 잃게 될 것이고 이들이 도시로 일자리를 찾아오게 되면 다시 도시빈민이 되는 악순환이 생길테지. 가난한 우리들은 몸에 좋은 신토불이 우리 농산물을 먹고 싶어도 이제 그런 거는 우리 국민의 1%도 안된다는 부자들이나 사먹을 수 있을 만큼 비싸서 못 사먹게 될테니 싫어도 생존을 위해서는 유전자조작이 된 걸 뻔히 알고도, 농약이 수도 없이 뿌려졌을 걸 뻔히 알고도, 또 이밖에도 알지 못할 화학약품들에 의해 수도 없이 처리된 것인 줄 짐작하면서도 미국에서 들어온 식품들을 사먹을 수밖에 없게 되겠지.

친구야, 예쁜 딸을 낳았다고 자주 와서 엄마 대신 좀 놀아주고 그러라고 함박웃음을 지으며 말하던 네 얼굴을 보며 나는 차마 이게 우리가 닥칠 현실이야 하고 그 자리에서 말할 수가 없었어. 나는 그날 네게 어쩌자고 이런 세상에 애를 낳았니 하고 역정을 낼 뻔까지 했단다. 조그만 손발을 곰지락거리며 옹알이를 하는 아기를 보며 내 마음도 참 따뜻해져 왔지만, 나는 덜컥 걱정이앞서고 말았던 거야.

이 편지를 쓰며, 이제 절대 쓰러지지 않고 악착같이 살거라고 말하며 씩, 웃던 너의 얼굴과 엄마와 단둘이 풍파를 헤치고 살아가야 할 너의 예쁜 딸을 생각해본다. 그래, 우리 악착같이 살아야지. 나는 악착같이 싸울 수 있도록 할거야. 그래서 미국과 맺은 FTA 때문에 멕시코에서 일어났던 일들이 이 땅에서 반복되지 않도록 한미FTA를 저지하는 데 힘을 보탤거야. 협정이 체결되면 우리 나라의 법도 이 협정 앞에서는 힘을 못쓰게 되고, 우리가 뽑은 정부를 외국기업들이 마구마구 고발하고 법정에 세우고 손해를 물어내라고 할 수가 있다는데. 도대체 지금 우리 정부는 왜 이런다니?

친구야, 너도 내일은 나하고 집회에 같이 가자. 멕시코처럼 나중에 알고서 후회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하지 않겠니? 우리의 지금과 우리들의 딸들과 아들들의 미래를 위해서 말이야.

2006년 6월 4일
박이은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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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이은실 님은 여성문화이론연구소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