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 광장에 초대형 월드컵 백화점이

[월드컵 너머 연속기고](3) - 월드컵 광장, 월드컵 백화점

정희석(노동자)  / 2006년06월08일 22시35분

우리에게 월드컵이란 2002년으로만 기억된다. 1954년 월드컵 첫 출전 이후 단 1승만을 염원하던 패배의 월드컵은 잊혀졌다. 오직 2002년 4강의 신화만이 남아있다. 2002년 월드컵에서 우리나라는 일본과 공동개최국이기도 했다. 하지만 개최국 국민으로써의 사명감, 자부심을 강요하거나 강하게 느꼈던 이들은 없었다.

이런 모습은 1988년 서울올림픽과는 사뭇 다르다. 1988년 올림픽에서 우리나라 대표팀은 금메달 12개로 종합성적 4위라는 기대 이상의 성적을 거뒀다. 하지만 그 때 우리는 경기에서의 승리보다 올림픽의 성공적 개최에 더 집중했다. 올림픽의 성공적 개최를 위해 우리는 국가로부터 동원되고, 강요되었다. 그리고 은폐 당하기도 했다.

매스게임에 동원된 학생들에게 학교수업은 생략되었다. 전 국민이 생활영어쯤은 해야 한다며 영어가 강요됐다. 허름한 주택 앞에는 호돌이가 새겨진 콘크리트 담벼락이 급조되어 가난한 이웃들은 은폐되었다. 이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머슴처럼 묵묵히 손님접대에만 열중했다. 어리숙하게 소외당할지언정 내 조국이 자랑스러워지는 일이라면 마다하지 않았다. 이렇게 권위주의 국가시대에 애국은 가슴을 뛰게 했었다.

하지만 2002년 월드컵 때 우리는 너무도 흥에 겨워 광장으로 뛰쳐나왔다. 개회식이나 폐회식이 아닌 대표팀 경기가 있는 날에 모였다. 그리고 대표팀의 계속되는 승리를 즐기며“대한민국”을 외쳤다. 그러나 실제로는 애국심 속 승리자에 대한 경외감을 외쳤다. 이를 통해 승리자를 응원한 자신도 승자이자 덤으로 애국자까지도 되는 대리만족을 즐겼다.

이렇게 절차적 민주주의가 진전된 시대에 우리는 신성한 조국이 아닌, 승리에 가슴 설레었다. 이는 대한민국 국적을 가지지 않은 이방인 히딩크에게 국민적 영웅 칭호를 선물한 현상에서도 나타난다. 만일 이방인 히딩크가 대한민국을 위해 헌신했을지라도 패배한 감독이 되었다면 그는 대한민국의 영웅이 될 수 없었다. 또한 승승장구하며 애국자를 자처하던 황우석 박사와 그를 애국자라 치켜세우던 우리의 부끄러운 모습을 돌아보면 이는 단순히 스포츠 애국주의에 국한되는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 또한 알 수 있다.

88올림픽 때 우리는‘맹목적 애국’이란 옷을 입고 노동했다. 그리고 2002년 월드컵 때는‘경쟁에서의 승리’라는 새 옷을 갈아입고 응원했다.

새로운 월드컵이 다가왔다. 하지만 4년 전 우리가 한바탕 놀아보려고 모여들었던 광장은 더 이상 없다. 우리가 축구뿐 아니라 경제동물로써 시장에서의 맹목적 승리만을 꿈꾸며 질주하던 사이 광장은 폐쇄됐다. 그리고 그 자리에는 초대형 월드컵백화점이 우뚝 솟았다.

이 백화점에는 없는 게 없다. 음식과 옷은 당연하다. 핸드폰 매장은 물론 방송국, 인터넷 포털, 그리고 은행까지도 입점해 월드컵을 판다. 그러니 고객도 남녀노소가 따로 없다. 상품에는 획일적으로“필승!”,“태극전사”,“할 수 있다!”등의 호전적이며 촌스런 군대식 포장이 가득하건만 없어서 못 팔 지경이다.

우리는 세계 축구 축제를 즐기기보단 월드컵을 소비하게 되었다. 그 대가로 함께 환호하고 춤췄기에 즐거웠던 광장을 잃었다. 그래서 우리는 창문도 없어 답답한 백화점 안에서 응원해야한다.

백화점에서의 소비보다 광장에서의 축제를 다시 꿈꾼다면 자본주의 대한민국의 불온한 국민 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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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석 님은 '글쓰기를 실천하는 노동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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