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노동자? : 생산영역 바깥에, 사회노동 바깥에

성산업 노동자의 시민권, 노동권 확보로, 성매매 여성에 대한 억압과 착취 끝장내야

이황현아  / 2004년10월18일 18시18분

성매매방지법이 시행된 지 3주가 흘렀다. 건군 이래 최초의 일이라는 성매매종사자 집회가 3천 명 규모로 국회 앞에서 이루어졌다. 지금 국회에서는 국감이 한창이다. 지난 주 여성부장관은 "법 시행 이후 집창촌 단속 비율은 전체의 7.2%에 불과하며, 성매매방지종합대책에 따라 집창촌 폐쇄는 2006년부터 시범적으로 이뤄질 것"이라고 했다.

이 말에 뒤이어 국회위원들의 입에서는 어떤 말들이 쏟아지고 있을까? 16일 여성위 여성부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열린우리당의 모 의원은 "성매매방지법 시행은 성매매와의 전쟁이며, 24조에 육박하는 성산업 시장에 대한 구조조정이자 도전"이라며 "우리 사회 대다수 남성들의 회의론적 시각과 비아냥거림에도 불구하고 이 법은 더욱 강력하게 시행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과연 여당다운 면모를 보여주는 대목들이다. 친일진상규명법을 만들고 국보법을 폐지한다고 요란스럽게 과거청산운동을 벌이더니, 마침내 기생관광 외화벌이, 인신매매의 송출지라는 국제적인 오명을 벗기 위해 '윤락행위등방지법'을 40년 만에 '과거청산 성매매방지법'으로 바꿔내지 않았던가?

이제 '윤락 - 스스로 타락한, 타락하여 몸을 버리는'이라는, 이 말도 안 되는 말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고 박수 쳐야 할 건가? 그렇지 않다. '성매매방지법'은 '윤락행위등방지법'의 재판이 될 공산이 크다. 왜? 시행되고 있는 '성매매방지법'은 성매매 피해 여성을 '성매매된 자'와 '성매매한 자'로 구분하고 인신매매, 선불금, 마약중독, 중증장애, 이주노동자 여권압류 등의 이유로 강제 성매매된 자는 피해자로 분류돼 처벌하지 않는다고 명시돼 있다.

이는 결국 모든 성매매 여성을 동의 여하에 불문하고 피해자로 규정, 비범죄화한다는 국제규약에 서명한 것을 무색케 하는 일이다.

성매매 여성, 즉 성판매자의 법적 지위는 범죄자인가? 노동자인가? 아니면 피해자인가? 성매매의 본질을 파악하는 의견 차이가 성매매에 대한 대책의 차이로 나타날 것은 자명하다.

도덕주의적 접근의 성매매에 대한 대책이 지금 한국에서 시행하고 있는 금지주의다. 단순 성매매의 경우 구매자와 판매자 모두 처벌의 대상이 되는 범죄자인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입장에 반대한다. 이는 금지정책이라는 표면과 달리 현실에서 성매매를 필요악으로 보고 음성적 성매매를 온존 육성하는 자본주의 가부장제 국가와 남성의 공모이기도 하거니와 성매매 피해 여성들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은 성매매 여성들을 어떠한 사회적 존재로 규정할 것인가와 성매매 여성들 스스로가 생존할 수 있는 물적 토대를 어떻게 만들어낼 수 있는가 하는 문제에 대한 해답이다.

그렇다면 성매매를 사회적 절대악으로 보고 성매매를 없애는데 혈안이 되어 앞장서야 하는가? 급진주의 페미니즘에서처럼 성매매를 성노예제, 여성에 대한 폭력으로 보고 성매매 여성을 노동자로 보지 않을 수도 있다. 과연 성매매 여성의 일이 노동인가?

그것이 노동으로 인정될 수 없다는 논리의 저변에는 여자가 '몸을 파는 일'에 대한 사회적 거부가 있다. 다른 한 측면 성매매 여성이 성적 존재로 취급 당하는 바로 그 지점에 다른 여자들의 '여성'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중요한 기제가 작동하고 있다.

더구나 노동은 가치를 창출해야 하는데 성매매가 가치를 창출하는가? 성매매의 근절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성매매를 노동으로 인정하게 되면 성매매의 합법화로 나아가 성매매가 창궐할 것이라고들 한다.

어디 한 번 보자. 일단 성매매는 노동개념에 부합되든 안 되든 힘든 성적 서비스 노동이다. 그리고 그 일을 하는 이들이 전국에 걸쳐 150만 명이나 된다. 최근 10대 원조교제까지 성매매의 형태를 띠고 있음은 엄연한 사실이다. 성매매 여성들 스스로 자신을 살피고 돌볼 수 있도록 '전략적 비범죄화'와 동시에 노동조합의 '가능성' 또한 열어두고 논의해 들어가야 한다.

법 시행 이후 우리가 목격할 수 있었던 대구, 인천 등지에서의 성매매 종사자들의 집단시위는 이들을 'Sex Worker', 즉 성노동자로 규정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던져주고 있다. 과연 무권리, 무복지 아래서 이들은 '성매매특별법'을 반대하는 시위를 할 수밖에 없다.

엔터테이너, 연예인들도 '문화노동'이라는 특정한 노동을 상품화하여 가치화시키는 자본주의에 맞서 노동조합을 만들고 투쟁하고 있지 않은가? 이제 노동자에 대한 전통적 개념은 새롭게 재구성되어야 하지 않을까? '성노동은 없다'고 주장한다고 해서, 성을 파는 사람들이 놓인 열악한 현실에서 자신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 무시될 수 있는가?

가령, 성매매 여성은 자신을 노동자로서 위치 지우며 자립할 수 있는 방법들, 고객이나 업주와 협상하는 방법, 더 안전한 성거래를 위한 방법,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 마약이나 약물로부터 보호, 자녀 양육 문제, 법적 문제를 처리할 수 있는 지원, 자신에게 필요한 각종 상담과 지원체계 등에 대해 이 사회의 시민으로서 노동자로서 자신의 권리를 주장할 수 있다.

남성의 욕망은 억제할 수 없다는 이중적인 성규범이 고스란히 거울로 반사된 성매매 여성에 대한 이중잣대와 시민권의 불인정은 민족주의, 도덕주의에서 이제는 신자유주의로 사회윤리를 재구성하려는 국가에 의해 보호라는 명목으로 특별 조치되고 있다.

허나 우리는 보아오지 않았는가? 식민지 종군여성과 미군기지촌, 그리고 기생관광 외화벌이가 한국 정부의 성매매 정책이라는 것을. 우리는 국가가 성매매에 개입하는 방식과 관련해, 일체의 성 착취를 금지하되 성매매 여성을 범죄 행위자가 아닌 피해자로 바라보는 '전략적 비범죄화' 관점을 채택할 것을 요구한다. 이 요구는 성매매를 기존 처벌 위주의 형법적 틀 내에서 위치 지우려는 금지주의-합법화 구도를 깨나가기 위한 과도기적 주장이다.

이제 여성운동은 자본의 위기, 신자유주의 모순을 윤리적 차원에서 봉합하려는 국가의 의도를 정확히 포착하여 이를 비판해 내는 것이 자신의 책무임을 방기해서는 안 될 것이다. 성산업 노동자의 시민권과 노동권을 요구하여 성매매 여성에 대한 억압과 착취를 끝장내고, 여성의 빈곤화에 맞서 투쟁하기 위한 한 걸음을 내딛자.

성매매는 성 구매자-판매자, 즉 당사자만의 문제가 아니라 모든 여성 일반의 문제다. 성매매에 대한 엠마 골드만의 이야기는 사회 속에서 공통적으로 형성된 '여성'의 정체성을 잘 말해준다.

"어느 곳에서도 여성은 그녀의 일의 공헌에 따라 대우받지 않고, 하나의 성으로 취급되었다. 그러므로 거의 필연적으로 그녀는 어떤 식으로든지 성적 호감과 연결되는 위치를 보유함으로써 존재할 권리에 대한 대가를 치루어야만 한다. 따라서 그녀가 결혼 안에서든 밖에서든 자신을 한 남자에게 파느냐 여러 남자에게 파느냐 하는 문제는 단지 정도의 문제일 뿐이다. 우리의 개혁가들이 인정하든 안하든, 여성의 경제적, 사회적 열등성은 성매매에 대해 책임이 있다."(엠마 골드만, "The Traffic in Women" 1917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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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성매매를 하나의 산업으로 인정한다? 그속에서 성매매여성의 시민권?과 노동권?을 지지한다고요? 성매매산업의 폐기를 주장하는 것이 아니고요? 헷갈리네요.
성매매산업은 폐기해야지 되는것 아닌가요? 다만 법집행에 있어서 처벌은 업주와 성구매자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성매매 여성을 제외하고. 다른 한편으로 실업수당처럼 성매매여성에 대한 생계비용과 사회적응능력을 높일수 있는 교육이나 지원시설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고... 이런것이라면, 물론 한국의 상황에서 150만명이 폭력적으로 정리해고되는 양상을 벗어나기 어려울수도 있지만요...진보운동은 바로 이 지점에서 성매매여성들의 생존권투쟁과 접합될수 있는것 아닐까요? 그리고 이러한 내용을 지금부터 적극적으로 선전해나가는 것이 필요한 것이 아닐런지, 성매매 여성들에게도 인식시키고.
그래도, 노동이라고 할려면, 성매매노예노동이라고 해야 될것 같네요. 느낌상.
잘못하면... 성매매종사자의 시민권, 노동권이라는 이름으로 오히려 현행 성산업에 대한 개량적 조치를 요구하는 보수권논리에 잇닿을수 있는 함정이 느껴집니다.
sksldk
2004.10.20 23:14
근래 사회적 노동자라는 말은 들어보았다. 그래서 전업주부나 학생 등을 노동자라고 , 사회적 노동자라고 한다.
가사나, 육아, 공부 자체가 크게는 노동력 재생산이라는 의미에서 생산을 하는 노동이지만,
성매매에서는 뭐가 생산되나???
재생산되는것은 남성이 여성을 성적으로 착취하고 지배할수 있다는 사회적관념과 행위의 정당화, 그 뿐이지 않은가?
그러한 관념과 행위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자와 그렇지 않은 자, 여기서 보수와 진보는 갈라지는 것이 아닐까한다. 성매매여성들의 사고도 기존의 사회적관념에서 자유롭지 못한만큼, 그녀들의 사고의 전환도 요구된다. 노동자라고 해서 모두 계급의식을 갖고 있지는 않은 것 처럼.

도저히...
2004.10.21 00:19
도저히...님과 sksldk님이 남겨주신 글 잘 읽었습니다.
두 분의 견해에 대하여 몇 말씀 드립니다.

성매매 여성들의 주체화전략은 그녀들 스스로 주체로 서면 되는 문제가 아니다. 이 사회가 그녀들을 인정하는 데서 출발한다. 그녀들의 노동은 엄연히 성적 서비스 노동이다. 왜 그녀들의 노동이 사회 속에서 인정되어지지 않는가? 그것은 그녀들의 노동을 몸을 파는 것으로 전제하기 때문이다. 몸을 파는 것은 부도덕하고 정녕 인간이 할 짓이 아니라고들 한다.

대개 여성들도 이렇게 생각한다. 다만 그들이 보기에 성매매 여성은 구제의 대상이니까 적당히 보호해주면 된다. 신자유주의 국가의 가족정책은 위해한 환경요소(성매매)로부터 아이들과 여성을 지켜줄 건강가족을 들먹인다.

그렇디면 그녀들은 왜 인간의 탈을 쓰고 해서는 안되는 일을 하고 있는가? 그녀들 각자의 유입경로는 논외로 치더라도, 그녀들은 자본주의 사회의 구조적 빈곤화, 특히 여성을 더욱 더 빈곤화시키는 자본주의 사회구조 그 자체로부터 형성되어 왔다. 여기에 더해 자본주의 가부장제는 이들 여성에게 남성 중심의 성문화를 폭력적으로 행사한다. 가부장적 국가는 가장 큰 포주집단이다. 남성과 국가, 이들의 공모는 여성의 성을 억압하고 착취하고 끝내 말살한다.

섹슈얼리티와 연관된 노동이면서, 한편으로 자본주의적 노동 범주에 들어가지 않고 재생산에도 포함되지 않지만, 여성들이 대표적으로 행하는 노동이야말로 성적 서비스 노동이다. 이러한 노동의 극단적인 형태가 성매매이겠으나, 근래에 이와 유사한 효과를 가져오는 서비스 노동 중 성적인 매력과 실질적인 노동력을 혼합하여 얼핏 보기에 자본주의적 원리에 충실한 것으로 보이는 노동이 새롭게 등장하고 있다. 이름하여 나레이터 모델과 각종 도우미들.

이런 종류의 노동은 이들 노동으로부터 추상화된 성적 욕망이 암암리에 기대되고, 이의 충족은 여성들이 행하는 노동 그 자체로부터 제공되기보다 여성적인 몸매(잘 빠진 몸매?)를 갖춘 존재로부터 부가적으로 제공된다.

성매매와 나레이터 모델이나 도우미의 차이는 그다지도 엄청난 것인가? 성적 서비스 노동은 섹슈얼리티가 노동의 사회적 개념 정의와 통합되어 나타나는 거의 유일한 노동이다. 섹슈얼리티의 사용, 즉 비주체적인 쓰임이 전면에 부각되는 노동이다. 따라서 고전적 의미에서 본다면, 생산이라기보다는 소비에 가까운, 욕망의 왜곡된 소비에 근접해 있다.

그렇다고 해서 수동적으로 쓰여지는 몸의 논리가 곧바로 몸에 깃든 섹슈얼리티를 수동적으로 정의하고 그래서 이들은 주체화할 수 없다고 말 할 수 없다. 가부장적 자본주의 사회의 보수성을 유지시켜주는 도구적 수단으로 인식할 필요는 더 더욱 없다.

성매매는 가부장제의 왜곡된 성문화와 여성차별이 만들어낸 합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성매매 여성이 비난의 대상이 되고 남성과 국가에게는 면죄부가 주어지는 어처구니 없는 이 현실.

남한, 신자유주의 가부장적 국가는 성매매 법제도의 변형을 통해 무엇을 얻으려는 것일까? 성매매방지법, 과거청산-개혁조치(?)라는 구도 속에서 전체 여성은 어떻게 연대할 수 있을까? 군수산업과 마찬가지로 성산업을 볼 수는 없을까? 이렇게 이야기한다고 해서 성매매가 근절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질 않는가?
이황현아
2004.10.22 15:33

덧붙임

이황현아 님은 노동조합기업경영연구소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