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걸리 한 사발 타는 목마름 - 인사동 방문기

"사람들이 스쳐 지나가도 쉽게 교감하지 않는 거리는 죽은 거리"

최인기  / 2004년12월21일 10시52분

연말을 앞둔 거리는 부산하다. 탑골공원을 끼고 낙원동 떡집을 지나 인사동으로 들어간다. 낙원동 떡집을 지나 한 블록 더 들어가 보면 문화의 거리라는 공식적인 명칭을 부여받고 있는 ‘인사동!’ 입 간판이 보인다. 임금님 수랏상에나 받쳐지던 명품들이 늘어섰던 이곳의 터줏대감은 이제 화랑과 전통 찻집이 노릇을 한다. 서울의 다른 거리에 비해서는 차량 소통이 적어서 그런지 많은 사람들이 퇴근길에 종로의 혼탁함을 피해 발길을 옮기는 곳이 바로 인사동이다.

인사동은 600년 전 도읍지를 옮기면서 고관대작의 출입이 잦았던 곳으로, 일제 강점기에는 골동품을 좋아하던 일본인들이 자리를 잡고 선조들의 물건들을 긁어 모으기 시작했고, 해방이 되면서는 조선인들이 골동품들을 하나둘씩 내다 팔기 시작하여 미술품, 글씨, 도자기, 거래가 시작됐다는 곳이다. 그후 70년대 들어서 자연발생적으로 이곳에 고서점과 화랑가가 조성이 되었고, 80년대는 시위 대열이 종로를 지나 시청 앞 광장으로 진출하기 위해서 결집하던 곳이 또한 인사동이었다. 시위를 주도하는 사람의 신호가 떨어지기를 초조하게 기다리며 주변에 모여있는 낮익은 동지들과 눈으로만 인사를 주고받던 곳, 거리를 누비던 시위대는 어둑어둑 해질무렵 종로 뒷골목의 피맛골로, 인사동 골목으로 모여들어 밤늦게 까지 벗들과 막걸리 한 사발에 타는 목마름으로 시대의 울분을 토로하던 곳...

하지만 몇년 사이에 인사동은 소비문화 중심으로 완전히 바뀌었다. 화려함을 넘어서 사치스러움으로 치닫고 있다. 이제 과거의 인사동거리가 아니다. 언제나 미래와 희망으로만 꿈틀거릴 것만 같은 인사동이 낯설다. 시인 천상병이 찻집 ‘귀천’ 앞 문턱에 앉아 시를 읊을 것 같은 인사동이 이제는 변해도 한참을 변해 있다.
인사동을 깊숙이 한번 들어가 어귀에서 엿을 팔고 있는 노점상 이영석 씨를 만나보자. 그는 젊은 시절 소리를 하던 사람이다. 전국을 떠돌면서 소리패 생활을 하던 이다. 한때는 생계를 위하여 밤무대에서 올갠을 켜기도 하였고 밴드마스터 활동을 했던 인사동 터주대감의 말을 들어보자.

"인사동은 첫번째 문화 관광지구로 선정되었지만 서울에서 최초로 용역깡패를 동원하여 노점상에 대한 단속을 자행했습니다. 98년에는 인사동 바닥을 들어내고 보도블록을 까는데 무려 80억이라는 돈을 투자하고 몇 달동안 장사는커녕 길거리에 나 앉아야 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2002년 월드컵 때도 마찬가지고요... 왜? 노점상은 문화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노점상들이 관광객의 모습에 부끄러운 대상이지만은 않습니다. 세계 각국에서는 노점상을 어엿한 하나의 문화상품으로 육성하지 않습니까? 저들이 국제적인 문화의 거리를 만든다면서 약장수나 노점상을 쫓아내는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노점상이 사라진 거리는 일단은 보행이 쉽고 겉으로 보기에 깨끗해 보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내년 이후로는 청계천 복원공사가 끝나고 이곳에 화단들이 대대적으로 설치가 된다고 합니다. 소위 걷기 좋은 거리 조성을 한다는 것인데 화단이란 게 보기에는 좋아 보일지 모르지만 사실 걷기에는 보행자들의 흐름을 방해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거리라는 게 그렇다. 화사하고 안락하게는 보이지만 활력이나 용솟음이 없는 거리, 사람들이 서로 스쳐 지나가도 쉽게 교감하지 않는 거리는 죽은 거리다. 화려한 쇼윈도에 마네킹과 같은 사람들이 그들의 몸짓과 언어로 거리를 다람쥐 체바퀴 돌듯 맴돌 뿐이다. 거리에서 삶을 가꾸는 사람이 없으면 사람이 아무리 많이 다녀도 그 거리는 창백하다. 뿐만 아니라 통행이 쉬워졌다고 거리가 모두에게 개방되는 것은 아니다. 거리에 펼쳐있는 공간은 실은 걷는 이들의 삶과는 어쩌면 무관한 것인지도 모른다.

인사동의 거리는 문인들을 비롯하여 소위 예술을 한다는 사람들이 주로 찾는 곳이다. 그런 공간을 비집고 언제부턴가 레스토랑이나 카페 등은 물론이려니와 고객접대 유흥점이 하나둘씩 생기더니 이제는 유흥가가 무색해질 정도로 변하고 있다.
노점상 김형석 씨에게 물었다. 저 안에 있는 찻집에 들어 가봤냐고... 대답은 “아니요” 이다. 십년을 넘게 장사를 했지만 노점상들이 등지고 있는 건물의 안에는 무엇이 펼쳐지는지 잘 모른다. 이제는 익명성이 보장된 사람들 주변엔 한끼에 몇 만원씩 하는 한식집과 고급스러운 전통 찻집 유흥업소들이 즐비하게 서 있는 곳이 바로 인사동의 자화상이다. 그 거리 위에서는 수많은 일이 벌어져도 아무도 알지 못한다. 인사동을 문화의 거리로 육성하고 나서 일시적으로 노점상들이 없어진 적이 있다. 한겨울 '몸빼바지'에 칭칭 '목도리'를 두르고 겹겹히 털옷을 껴 입은 채 추위를 피하는 부류와 문화공간은 애초부터 차원이 다르다는 생각으로 노점상들은 내몰린 것이다.

나아가 국제적인 관광 명소로 알려지면서 최근에는 일본인을 비롯한 외국인이 뒤섞여 국적 불명의 거리로 뒤바뀌고 있다. 이제 이곳을 찾는 사람들의 물도 달라졌다. 강남 쪽에서나 놀법한 아이들이 새로운 것들을 찾고자 하나둘씩 찾아 들고 있다. 스치고 지나가는 생각이 하나. 혹시 작업복을 입은 생산직 노동자의 모습은? 물론 보일리 만무하다. 만약에 작업복 차림의 노동자가 거리를 활보한다면 넌센스다. 사실 구로공단 가리봉 5거리조차 이제는 작업복 차림이 자취를 감춘지 오랜데 이곳 인사동의 거리를 걷는 아이들의 모습에서 노동자니, 우리 사회의 현실이니 하는 것은 우스운 이야기가 아닐까? 이중에 누군가 버스를 타고 창신동에 내려 철거가 끝나가고 있는 청계천 삼일 아파트로 돌아갈지언정 아니면 수원행 전철 타고 아직도 남아 있는 가리봉 역에 내려 1평 남짓 닭장집으로 들어갈지언정 거리에서는 아무도 모른다. 그가 누군지...

과거 인사동에도 제대로 된 문화가 있었다. 그것은 아웅다웅 왁자지껄 생활하는 사람들의 문화다. 때로는 악다구니가 짜증스러워 보여도 생활하는 사람들의 활기 있는 문화가 있었다. 재래식 시장이나 하늘 아래 산동네 철거민촌 등에서 잘 나타나는 삶! 고되면서도 펄펄뛰는 생명력이 있어 보이는 삶 ! 민중들의 삶이 있었다. 인사동에 약장수나 야바위꾼이 있던 시절은 옛날이지만 그때의 거리는 활기가 있었다. 결코 '토토의 오래된 물건' 처럼 진열장에 갖혀 과거를 뜯어먹고 사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 시절 그때 귀정이의 장례 행렬이 종로 3가 탑골공원 앞에서 막히던 날. 싸우다 싸우다 밀리면 가방을 숨겨주던 노점상들, 물 한잔 건네주던 사람들, 상가 앞에 지쳐서 잠시 쉬어가도 나무라지 않던 시절이 있었듯이...

이제는 하늘 아래 공간조차 우리의 것이라고는 없다. 집회를 개최하던 대표적인 장소인 종묘 공원을 보라. 불과 몇 백명 정도만 간신히 집회를 할 수 있지 않은가? 이미 시청은 시장의 사유물인 된지 오래다. 자본은 우리 사회의 모든 것을 빼앗아 가면서 거리도 빼앗아 갔다. 거리는 우리에게 아무 것도 주지 않는다. 주변의 보이는 것은 우리의 것이 아니다. 단 한 평 땅조차도 허용을 하지 않는다. 짐켈리가 출연한 영화 「트루먼쇼」에서처럼 그저 우리는 짜여진 틀에 맞춰 하루 하루를 살아간다. 우리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그리고 화려한 쇼윈도우에 진열된 고급물품처럼 미래에 대한 환상을 갖는다.

누구나가 이런 식으로 나가면 앞으로도 좋을 것이라는 환상을... 노점상을 쫓아내고 거리를 청소한 다음 심어놓은 이 환상은 사실은 자본의 이윤을 위한 환상이다. 그리고 신기루다. 누가 인사동 거리가 아름답다고 하였나 인사동 거리, 그 화창한 길모퉁이의 한쪽 거리에 앉아서 담배를 한 모금 삼키고 있는 무리들이 있다. 노점상이다! 얼굴이 검게 구슬린 노점상들... 그들은 앞으로 벌어질 용역깡패와의 한판 싸움을 위하여 깃발을 세우고 있다.

공간은 ! 누구의 소유가 될 수 없다. 하지만 거대한 자본은 공간과 거리 곳곳을 장악하고 이윤을 넓히기 위해서 힘없는 자들에 대한 퇴출을 반복하고 있다. 노점상이 길거리를 무단으로 점유해서 보행권을 침해한다는 것은 더많이 가로채고자 하는 이들의 이익창출에 방해가 된다는 것일 뿐이다. 빈곤문제에 대한 사회적 보장이 되지 않는 사회, 수많은 사람들이 불안정한 고용상태에 놓여 있거나 내몰리고 있는 현실 속에서 그나마 한뼘 공간을 지키려는 싸움은 정당하다. 화려한 인사동의 거리에는 물확이 놓여있고 그 안에는 연꽃들이 자란다. 그 옆자리에서 밥그릇을 지키기 위하여 싸우고 있는 이들을 보면서 드는 생각은

진정
사람은
꽃보다 아름다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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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임

최인기 님은 전국노점상연합 사무처장 일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