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권? 노동권?!

이주노동자의 노말헥산 중독사태를 바라보며

해미  / 2005년01월24일 21시06분

2001년이었다. 학교 선배의 손에 이끌려 ‘외국인 노동자 무료진료’에 끌려갔다. 당시 인턴이었던 나는 무료 진료형의 봉사활동을 냉소적으로 바라보고 있었고, 몸도 피곤한지라 즐거운 마음으로 가지는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하루 종일 말도 잘 안 통하는 이주노동자들과 이런 저런 이바구를 떨며 그들의 이야기를 듣다가 많이 놀랐던 기억이 있다.

태국에서 왔다는 13살밖에 안 된 꼬마가 하루 13시간 넘게 일한다고 하지를 않나, 월급이 적어도 너무 적었고, 사는 곳은 대충 들어도 낙후하기 그지없었다. 가구공장에서 일하고 있는 그 꼬마의 이야기에 의하면 작업장에 먼지가 너무 심해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라고 했다. 숨을 쉬기가 힘들 정도인데 조금만 일을 하고 나면 입안에 뭔가 꺼끌거리는게 씹힐 정도라고 했다.

같이 일하던 어른들 중에는 감기가 오래 낫지 않더니만 결국에는 회사를 그만두고 만 경우도 있다고도 했다. 정황으로 유추해 보건데 직업성 천식 증상으로 고생하다가 결국에는 회사를 그만두고만 것이 틀림없었다.

이번에 화성에서 발생한 태국 이주노동자 8명의 노말헥산 중독으로 인한 다발성 신경장애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 꼬마가 생각났다. 아직 건강하게 지내고 있기는 한 건지 걱정이 되었다. 문득 무사히 16살을 맞이했을지 걱정이 되었다. 이번 노말헥산 중독건은 곪을 데로 곪은 상처가 터진 것이고 이주노동자 건강의 문제를 놓고 보았을 때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아니, 이주노동자 뿐만이 아니라 중소영세사업장 전반을 놓고 보았을 때도 그러하다.

내가 방문하는 소규모 사업장들(그래도 50인 이상이지만)을 가보면 사실 별로 다르지 않다. 유명한 수제화를 만드는 사업장이었다. 본드에는 유기용제가 가득 들어 있는데 그 작업을 성수기에는 하루 10시간 이상씩 날이 추워 창문도 안 열고, 불편한 자리에 앉아서 일을 한다. 나는 들어가자마자 유기용제 냄새에 머리가 띵할 지경인데 거기서 일하시는 분들은 만성이 돼서 잘 모르겠다고 하신다.

그 사업장은 작업환경측정도 하고 있지 않았다. 사측 보건관리자는 ‘노동부에서 아무 얘기가 없다’며 작업환경측정에 대해 이야기 해 줘도 귓등으로도 듣지 않는다. 참지 못한 나는 결국 노동부 근로감독관에게 그 사업장의 현황을 이야기 해 줬고 작업환경측정이라도 하게 강제해 달라고 전화를 했다. 하지만 노동부는 그 사업장에 나가지 않았다. 여전히 그 사업장에서는 노출 수준도 모르는 채 머리 아픈 유기용제 냄새를 맡으며 노동자들이 일하고 있다.

그나마 보건관리 대행이라도 하는 사업장이 이럴진데 영세 사업장들은 오죽이나 할까? OECD 회원국가라는, 그리고 국민소득 2만달러 시대를 외치는 나라에서 88년 문송면 군이 사망했던 수은 중독과, 그리고 지금은 중국노동자들을 병들게 하고 있을 원진레이온의 이황화탄소 중독과 비슷한 양상의 재래형 사건이 21세기라는 2005년 대한민국에서 발생한 것이다. 참으로 세계적으로 망신살이 뻗친 일이 아니라 할 수 없다.

노동보건영역에서 보자면 이번 사건은 산안법에서 보장하고 있는 가장 기본적 관리인 작업환경 측정의 부실과 특수건강검진의 미시행, 관련 보호구의 미지급이 문제였다고 할 수 있다. 이 바닥에서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검진제도와 측정제도의 부실과 노동부 및 정부의 관리감독 소흘이 비극적인 형태로 드러난 것이다. 그러나 이게 다 일까?

노동부와 법무부는 합동 조사팀을 꾸려 해당 공장장과 사업주를 구속하였다. 또한 사건이 발생한 직후 367개 사업장에 대한 특별점검을 실시하겠다는 대책을 발표했으며 해당 사업장에 대한 현장 점검과 조사도 즉각적으로 시행했다. 그리고 23일 타이 노동부 장관이 위로방문차 한국을 다녀갔고, 언론에 보도된 후 12일이 지난 24일 산재인정을 받았다. 정부는 정말 성심성의껏(?) 법과 제도가 보장하는 선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 그것도 유래가 없을 정도로 신속하고 단호하게 말이다. 왜 이러는 걸까?

정부는 이번 일로 인하여 비인간적인 이주노동자 정책에 대한 문제제기가 전면화 되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다. 아무리 아파도, 최저 임금도 못 받고 착취당해도, 하루에 14시간이 넘게 일을 할 수 밖에 없어도, 감금을 당해도 ‘불법’이기 때문에 아무 소리를 못하는 것이 지금 이주노동자의 현실이다.

‘불법’이란 이름하에 자행 되고 있는 신종 노예제도에 다름이 아닌 것이다. 존재 자체가 ‘불법’이니 유독물질을 다루다가 쓰러져도 하소연 할 데가 없는 것이다. 실제로 이번 건의 경우 가장 증상이 심해 제일 먼저 쓰러진 것으로 알려진 노동자는 처음 두 번을 제외하고는 병원에 가질 못했다.

작업관련성이 의심되기 시작하자 병원에도 가지 못하게 했고, 결국 몰래 몰래 병원을 다니다가 출국 당했다. 심지어 출국할 때도 ‘아프단 얘기를 하지 말라’는 주의를 받았고, 태국에 도착해서는 가족들에게까지 거짓말을 해야만 했다. 지금 이 노동자는 하지뿐만이 아니라 상지의 신경장애까지 생겨 손가락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는 상태라고 한다.

이렇게 이주노동자들을 ‘불법’이라는 이름으로 더욱 공고한 착취의 구조에 가두어 자본의 이해를 배가 시키고 유연화에 박차를 가하고자 하는 것이 그들의 속내가 아닐까? 이번 사건은 이러한 정부 정책에 균열을 낼 수 있는 사회적 관심의 계기가 되었다. 그것이 무서워서 그렇게 서둘러 사건을 ‘치료’와 ‘보상’문제로 국한시켜 해결하려는 것 아닐까?

이주노동자들은 신분이 노출되면 강제출국 당해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이러다보니 노동부가 특별근로감독을 확대한다고 해도 하나도 반갑지 않다. 그동안 이 문제를 방치해놓은 사업주들이 특별근로감독을 준비하면서 이주노동자도 정리할 것이 뻔하고 정부의 감독과정에서 신분이 노출된 이주 노동자들은 ‘강제출국’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러한 우려는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실제로 노동부와 법무부의 특별감독을 받은 해당 사업장에서 일하던 이주 노동자들이 출입국 관리소로 연행이 되었고, 이중 일부는 강제 출국을 당한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이니 아무리 법적인 시스템이 있다하여도 이용할 수가 없다. ‘불법’으로 낙인 찍혀 있는 사람들에게 법의 보호는 불가능 한 것이다. 법의 적용을 받으려면 최소한 ‘합법’적으로 인정되는 신분이어야 함을 잘 알지 않는가? ‘불법 체류인데 왜 근로기준법을 지켜줘야 하냐?’고 물었다는 사업주나, ‘어떻게 14시간이나 일할 수 있냐? 못 믿겠다’던 노동부 근로감독관이 이상한 게 아니다.

‘불법’이니 ‘법’의 적용을 못 받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귀결이다. 이번 사건의 핵심은 ‘다발성 신경장애’가 아니다. 최소한의 법정 장치에서조차 소외되어 있는 ‘불법’이 문제인 것이다. 산재로 인정받고 이에 대한 보상으로 치료비를 받고 추후 남을지도 모르는 장애에 대해 국가가 민사상의 보상을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타이 노동부 장관의 이야기처럼 “이제는 한국 정부에서 모든 치료와 배려를 해준다고 하니 걱정하지 말라”고 이야기할게 아니다. 이주노동자들이 ‘노예’가 아니라 ‘인간’으로서 살아갈 수 있게 단속추방을 중단하고 노동비자를 제공하는 것이 구체적인 요구가 되어야 한다.

그동안 발생했을 많은 인권탄압 및 노동기본권 침해 사례들을 발굴하고 은폐되었던 산재 문제들을 사회적으로 부각시켜야 한다. 이주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목소리로 ‘아프다’고 이야기 하는 것을 개별적인 것이 아닌 집단적인 현상으로 조직해야 한다. 또한 이 문제를 계기로 단적으로 드러난 중소영세 사업장의 열악한 노동조건에 대한 실증과 산재은폐사례를 발굴하고 전선을 확장할 필요가 있다.

건강권의 문제인지 노동권의 문제인지 고민할 필요가 없다. 건강이라는 인간의 기본권을 매개로 한 노동권의 문제다. 이주노동자들의 ‘합법화 쟁취’는 쳐다보기만 할 구호가 아니라 이주노동자들의 구체적 현실이다. 당연한 것에 고마워하지 말자. 그들이 두려워하는 것에 파열구를 만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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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미 님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