떨꺼둥이에 대한 편견

최인기  / 2005년01월28일 19시12분

운동을 하다보면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그중 평소 좀 미안한 생각을 갖고 있는 친구가 하나 있다. 우선 그의 이름을 밝히기에 앞서...

나는 사실 냄새에 좀 민감하다. 코가 개 코라서 그런지 평소에도 냄새라면 질색을 하는 편이라 가끔 전철을 타다보면 혼자서 긴의자 자리를 다 차지하고 누워있는 노숙인이나, 구걸을 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들의 몸에서 풍겨 나오는 악취에 고개를 돌리거나 일찌감치 떨어져 피하고 외면하기 일쑤였다. 혹자는 빈민운동을 한다는 사람이 그럴 수 있냐고 질타를 하겠지만 노숙인에 대해 소위 '룸펜프롤레타리아'로 규정을 하면서 사회가 바뀌어도 언제나 이들은 골칫거리라는 일각의 편견이 나에게도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2004년 상반기 '빈곤사회연대'가 결성이 되고 한사람을 알게 되었는데 그는 다름 아닌 '노숙인 복지와 인권을 실천하는 사람들'의 대표를 맡고 있는 '문헌준'이라는 이다. 그는 첫인상이 어딘지 모르게 외모나 분위기에서도 노숙인과 비슷하다는 느낌을 풍겨 혹시 노숙인이 아닌가하는 생각을 갖게도 하였다. (며칠 전 미디어참세상에서 인터뷰한 그의 사진을 보라)

작년 여름 '거리에서 죽어간 노숙인 추모제'에서 있었던 일이다. 그 날은 정말 가관이 아니었다. 앞에 마련된 간이무대에 한 민중가수가 기타를 치고 노래를 부르자 술에 취한 채 앞에 나와서 요상한 춤을 추는 사람이 있지 않나, 마이크를 서로 잡으려 하는 사람, 무언가 끊임없이 하고 싶은 말이 있는 사람, 그리고 이를 말리는 사람(이 또한 노숙인이다), 바로 이때 '문헌준' 동지가 쓰윽 나서자 참 신기하게도 모두들 자리로 다 돌아가 앉고 스르르 정리가 되었다.

'문헌준'동지는 그중 제일 심하다 싶은 '무언가 할 말이 아주 많은 노숙인' 한 분을 모시고(?) 한쪽으로 가서 그의 이야기를 끝까지 진지하게 듣고 있는 것이 아닌가. 나에게 이런 상황이라면 어땠을까 죽어도 저리 못한다. 일단은 나의 신경을 마비시키는 노숙인의 몸에서 풍겨 나오는 악취를 견디지 못할 뿐만 아니라 횡설수설하는 말을 조용히 들어주기에는 내 인내심이 허락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 1월 22일 토요일 오후에는 '빈곤사회연대' 주점이 있었다. 몇몇 동지들과 자리를 함께 하였다. 그 날은 '문헌준' 동지와 잠깐 눈인사를 나눴는데, 한참 지난 뒤 술이나 한잔 하려 찾아보니 그가 보이지 않았다. 무슨 급한 일이 생겼는지 자리를 떴다는 것이다.

적당히 뒷풀이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자 뉴스에서는 속보로 서울역의 노숙인과 경찰들이 심한 충돌이 있었다는 것과 그리고 노숙인 2인이 서울역사 안에서 숨졌다는 소식이 아나운서의 목소리를 통해서 전해 졌다. (그날 숨진 사람을 쓰다버린 폐지나 물건을 수거해 가는 손수레에 짐짝처럼 실어 운구하는 상식 이하의 방법으로 시신을 처리를 했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노숙인의 죽음은 하루 이틀의 문제가 아니다. 대표적으로 지난 2004년 7월 철도 공안의 단속 과정에서 가출인 한 사람이 사망한 사건을 비롯하여, 일년이면 무려 300명 가량의 노숙인이 다양한 이유로 목숨을 잃고 있다고 한다. 한 언론 기사를 살펴보니, 노숙인들을 돌보기 위하여 지출되는 의료지원비가 연간 20억 원이 필요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임에도 불구하고 2004년 서울시에서 지출된 실질적인 순수 목적의 노숙인에 대한 치료비는 2002년의 10억에서 삭감된 8억 원에 불과하다고 한다.

이는 서울시가 지난해 시청 앞 잔디광장을 조성한다고 쏟아부은 비용의 3분의 1 수준에도 못 미치는 금액이다. 말하자면 잔디보다도 못한 것이 노숙인인 셈이다. 더욱이 서울시가 2004년에 책정한 8억 원의 예산집행 마저도 이미 2003년도 지출된 노숙인의 의료비 청구에 사용되고 있다니 정말 기막힌 현실이 아닐 수 없다. 노숙인에 대한 태도는 지난 1월 3일 발생한 7호선 방화사건을 처리하는 경찰의 수사과정에서도 잘 드러난다. 노숙인 인권단체들의 성명에도 나와있듯이 단지 행색이 '노숙인 차림' 이라는 목격자의 증언을 토대로 노숙인을 표적수사하고 마치 마녀 사냥식의 여론 몰이를 하는 등, 모든 노숙인을 잠정적인 범죄자 취급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 최근 노숙인의 문제가 갑자기 불거지자, 해결책으로 ‘노숙인을 강제로 수용하거나 격리시킨다’는 말도 되지 않은 발상으로 일관하고 있는 실정이다.

솔직히 노숙인에 대한 일반인의 정서가 변하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이들이 거리로 내몰리는 가장 주된 원인은 무엇인가? 바로 우리 사회의 불평등한 사회구조이지 않은가. 구조조정으로 내몰리는 불안정한 노동자들, 경제불황과 실업으로 인한 소득의 감소, 그리고 불충분한 사회보장제도와 감당하기 어려운 주거비 부담은 평범한 사람들도 언제 노숙인이 될지 모르는 그런 현실에서 우리가 살고 있다. 이러한 사회적인 환경 때문에 이번 서울역 노숙인 2인의 죽음을 계기로 수많은 노숙인 인권단체들은 입을 모아서 “주거와 의료, 자활과 일자리 창출을 포함한 포괄적인 사회안전망이 수립되는 틀 속에서 노숙인 복지정책이 연계될 수 있도록 제대로 된 정책을 수립하라!”고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더 이상 노숙자가 이 사회에서 실체가 없는 존재로서 통제나 격리의 대상으로 살아가는 것에 대해 반대한다... 불행하게 선택되어진 우리는 모두의 가족 친구 이웃이 되고자 한다.”라는 '노숙자 권리선언문'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들도 사회의 당당한 시민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노숙인의 처절한 몸부림에 늦었지만 이제 우리는 귀를 기울여야 하지 않을까?

운동을 하는 사람은 세상의 수많은 편견에 맞서 싸우는 것만큼 스스로도 알게 모르게 갖는 자신의 편견을 스스로 극복해 나가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뒤늦게나마 노숙인 문제에 대해 좀더 고민하게 해준 '문 동지'가 고마울 따름이다.

미안하오. 나 이 글을 쓰면서 부끄럽게 생각합니다. 그리고 걱정마소. 까짓것 가진 것 없는 우리들 서울 시청 앞 광장 잔디풀이라도 뜯어먹으면서 싸우지 뭐...그 풀 값이 무려 30억 가까이 된다지 않소. 식성에 맞지 않아 못 먹겠으면 몰래 뽑아 노점에 내다 팝시다.

# 참고: 떨꺼둥이란 ‘의지하고 지내던 곳에서 맨손으로 쫓겨난 사람’을 뜻하는 말로 ‘homeless’와 비슷한 뜻을 가진 순수한 우리말이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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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자주 '왜'라는 질문을 잊지요. 그 사실을 다시금 떠올리게 하는 글이군요. 잘 읽었습니다..
kriti
2005.01.28 22:28
부끄러워지는군요...
두개의 R
2005.01.29 01:52
노숙인, 노숙자, 홈리스 그리고 떨꺼둥이 어떻게 부르는게 좋나요?
각각 차이가 있나요?
물음
2005.01.30 23:07

덧붙임

최인기 님은 전국빈민연합 사무처장으로 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