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이렇게는 계속할 수 없어요

이상용 인디포럼 객원 프로그래머가 평가하는 '인디포럼2005'

이상용  / 2005년06월08일 22시27분

인디포럼2005를 시작하기도 전에 프로그래머들 사이에서 입버릇처럼 붙어있던 제목은 폐막작인 윤성호 감독의 <이렇게는 계속 할 수 없어요>였다. 어쩌면 이 제목은 반대의 열망을 품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윤성호 감독의 영화를 빌자면, 계속해서 영화를 찍고 싶다는 것이고, 연애를 하고 싶다는 것이다. 프로그래머들의 소망을 털어놓자면, 계속해서 인디포럼을 운영해 나가야 하지 않겠냐는 것이다.

지난 10년 간의 한국 영화의 역사는 꽤나 역동적이다. 10주년을 맞이한 중요한 한국영화담론들이 즐비하게 형성되었다. 인디포럼만이 아니라 부산국제영화제는 10주년을 맞이하여 대대적인 행사를 개최할 예정이다. 올해의 행사는 여러 가지 특별 프로그램으로 채비를 갖췄다. 우선적으로 눈에 띄는 것은 10주년 기념 행사로 열리는 `아시아 필름 아카데미`이다. 아시아 필름 아카데미는 부산 국제영화제가 아시아 영화 발전을 위해 준비한 것으로 아시아 지역의 영화 유망주 30명을 선발해 감독으로 데뷔시키는 프로젝트다.


10주년을 기념하는 곳은 또 있다. 명실상부한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영화 주간지 <씨네21>이 올해로 창간 10주년을 맞이했다. 지난 달 인디포럼 상영관 옆에 있는 필름포럼에서 10주년 기념영화제가 열렸었다. 아마 인디포럼을 찾은 관객 중 상당수도 그곳을 찾지 않았을까 싶다. 씨네21이 만들어 온 행보에 대해서는 영화문화에 대해 조금만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입아프게 설명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부산국제영화제와 씨네21은 한국의 영화제와 영화담론의 위상을 안착시켜 왔다. 이들의 10년은 최근 한국영화문화의 변화와 위상을 고스란히 말해주는 것이다.

인디포럼은 독립영화에 관심 있는 일부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여전히 그들만의 행사에 지나지 않는다. 내부적인 사정은 더욱 좋지 않다. 비축해 놓은 재정은 바닥이 난 상태이고, 10주년을 통해 내일의 비전을 제시하기는커녕 내년도의 개최 여부에 대해서도 불투명하다. 영화제라는 축제로서의 내실은 그렇다고 치더라도, 뒤에 붙어 있는 ꡐ포럼ꡑ이라는 이름에 대해서도 이렇다할 값을 하지는 못했다.

10주년을 맞이한 인디포럼은 최근의 한국영화에 대한 관심과는 거리가 멀다. "인디포럼이 뭐예요?"라고 묻지 않으면 다행인 수준이다. 아시아는 고사하고 동네 영화인들을 위한 필름 아카데미를 개설하는 것은 꿈도 꾸지 못한다. 이것이야말로 한국의 독립영화가 겪어온 지난 10년일지도 모른다.

인디포럼과 한국의 독립영화를 동일시하는 것은 무척이나 위험한 태도이지만 누가 뭐래도 인디포럼은 한국독립영화의 뜨거운 상징이었다. 좋은 의미에서건 나쁜 의미에서건 인디포럼은 최근 독립영화 진영의 뜨거운 감자였다. 2002년 '꽃순이 칼을 들다'라는 슬로건은 인디포럼의 변화를 선포하는 몸부림이었다. 그 후로 오랫동안 작품의 선정과 프로그래머의 자질을 둘러쌓고 게시판은 조용해 질 줄을 몰랐다.

그것은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다. 인디포럼은 어째서 잡음을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일까. 영화제라는 행사를 위해서라면 잡음을 일으키는 것은 응당 피해야 할 일이다. 지루하게 최근 3년 간의 논쟁을 되풀이할 필요는 없는 일이었다. 지난 일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가끔은 스스로 묻곤 한다.

도대체 인디포럼이 최근에 쌓으려고 했던 논쟁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 것인가, 하고 말이다. 많은 이들이 불평을 늘어놓기는 했지만(주로 사적인 자리에서), 이를 공론화 시키거나 깊게 자문해 본 적은 별로 없는 것 같다. 독립영화라는 이름 아래 자신을 다르다고 생각하는 많은 사고방식 속에서는 기성화 된 사회와 마찬가지의 구태의연함과 솔직하지 못함과 위선과 위악들이 숨어있다.

나는 이것을 한 비평가의 표현을 빌어 카달로그에 실린 글에 설명한 적이 있다. 홍콩의 비평가인 레이 초우는 서구의 마오주의자들을 다음과 같이 지칭한다. "전형적인 마오주의자는 자본주의 사회에 살면서 자본주의에 싫증난 문화비평가이다.

다시 말해서 그는 자신의 작업을 지탱해주는 것과는 반대되는 사회질서를 원하는 문화비평가이다." 나를 비롯한, 수많은 독립영화들이 이러한 마오주의자가 되어 버린 것은 아닐까. 레이 초우의 일침은 이렇다. "마오주의자가 원하는 것은 항상 타자 속에 위치해 있으며, 그 결과 자신이 아닌 것 또는 자신이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동경과 찬미가 나타난다."

지난 10년 간의 독립영화가 이러한 태도로 흘러온 것은 아닌지 나 자신의 삶을 비롯해서 묻지 않을 수 없다. 독립영화를 스스로 타자화 하면서, 자신이 아닌 것 혹은 자신이 지니지 못한 것에 대한 동경과 찬미로 변해버린 것은 아닐까. 타자라는 거대한 환상 속에서 독립영화를 정당화시킨 것은 아닐까. 물론 한 편의 영화가 타자에 대한 동경과 찬미로 얼룩지지 않기란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묻지 않을 수 없다. 독립영화는 오랫동안 그러한 착각 속에서 이루어 진 것은 아닌지. 10년의 세월은 독립영화에 대한 냉정함을 요구한다. 그것은 단순히 독립영화라는 틀로 한정지을 것이 아니라 지난 10년 간 한국영화가 이룩한 성과가 무엇인지를 냉정하게 묻는 것으로 이어진다.

독립영화는 때로는 칸이나 베니스의 수상작보다 더 중요한 결과를 낳았는지도 모른다. 물론 한국영화사 안에서의 이야기 일수는 있지만 말이다. 왜 우리에게는 이러한 차원의 담론, 이러한 시선의 역사가 제기되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80년대 말 이후 독립영화는 주류 영화가 담아내지 못한 사회적인 이슈나 민주화 운동의 일환을 포섭하면서 중요한 영화사의 흐름으로 성장해 왔다. 그러나 오늘날의 시대는 사정이 많이 달라졌다. 지금 독립영화권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은 다양한 분화이다.

인디다큐페스티벌은 명실상부한 다큐멘터리의 축제로 자리를 잡았고, 애니메이션은 산업의 후원 아래 다양한 작업들을 해나가고 있다. 단편영화를 상업영화로 나아가기 위한 포트폴리오로 여기는 풍토는 ‘미장센 단편영화제’를 통해 방향을 잡고 있다. 이 영화는 충무로의 기라성 같은 감독들이 심사위원 역할을 맡고 있다.

인디포럼이 맞이한 위기는 이러한 분화의 시기에 어떤 영화를 옹호할 것인가와 연결이 된다. 일부에서는 인디포럼이 편협해진다고 지적한다. 그 말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러한 편협함이 더 이상 독립영화를 백과점식으로 진영할 수 없는 시대적인 상황과 맞물려 있다는 것을 인식하지는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아니, 절감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인디포럼의 미래를 불투명하기에, 절실함은 더욱 가중된다.

10년 전 감독들의 자발적인 동참으로 시작된 10주년을 맞이한 인디포럼이 오늘날 갈림길에 서 있다는 것을 절감해야 한다. 인디포럼은 절실하다. 변화를, 위기를, 미래를 어떻게 선택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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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글을 참세상에서 보다니 놀랍군요. 참세상 공식칼럼은 아니죠?

"전형적인 마오주의자는 자본주의 사회에 살면서 자본주의에 싫증난 문화비평가이다." 라는 말이 가슴에 와닫는군요

매년 노동영화제를 가보면 남미의 혁명적인 상황을 다룬 다큐들을 보며 좋아하고 있습니다. 마치 한국에도 저런 상황이 곧 올것이고 그런 영화만이 진짜 액티비즘인것 처럼..
하지만 한국에선 아무리 총파업을 하자고 해도 그런 상황은 오지도 않고 그런 다큐만을 꿈꾸다보니 정말 한국의 노동현실을 다룬 좋은 다큐는 나오지않죠.

최근에 반전집회를 다룬 노동자의 힘 기관지를 보니 거기 편집장이라는 자칭 미디어 활동가가 반전집회에서 경찰과 몸싸움이 없었다고 자신같은 폭력주의자는 찍을 생각조차 없었다고 하더군요

이건 뭐.. 마오주의자라 부르기에도 말이 아까운 그런 느낌이더군요.
하여튼 좋은글 잘 보고 그런 고민들이 널리 공유됬으면 좋겠네요
참세
2005.06.27 21: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