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명(改名)엔 이유가 있다

여성가족부 출범에 부쳐

호성희(사회진보연대)  / 2005년06월24일 10시15분

여성가족부 출범을 앞두고 22일 국정브리핑에서 장하진 여성부 장관은 올해를 가족정책 수립의 원년으로 삼겠다며, 여성가족부의 가족정책비전으로 새로운 가족문화 조성, 다양한 형태의 가족 지원 확대, 가족친화적 사회환경 조성, 돌봄의 사회화 및 역할분담, 가족정책인프라 확충 등 5대 핵심 추진과제를 제시했다. 이에 각계각층의 기대와 우려의 목소리들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여성'의 입장에서 통합적인 가족정책을 수립할 것에 대한 기대는 정부정책 속에서 여성정책의 위치와 의미를 보지 못하게 할 수도 있다. 이 글에선 경제위기에 대응한 신자유주의 정책 추진과정에서 등장한 여성정책과 여성가족부 출범의 의미를 다루고자 한다.

여성가족부 출범까지

한국에서 국가차원의 종합적인 여성정책의 수립과 여성정책 전담 부서의 등장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1970년대까지는 복지차원에서 요보호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업무가 중심이었고, 1980년대 들어와서는 UN의 여성정책에 대한 관심이 국내에 영향을 미치긴 했지만, 가족법개정과 출산억제를 내용으로 하는 인구정책이 여성과 관련된 정부 정책의 주를 이루었다.

1995년에 국제적인 여성정책의 전략인 성주류화 개념이 한국에도 수용되면서 여성발전기본법이 제정된다. 김대중 정권이 집권한 이후, 1998년에는 정부조직법 개정으로 정무장관 2실이 대통령 직속 여성특별위원회로 개편되면서 6개 부처에 여성정책담당관실이 설치된다. 이번 여성가족부의 출범으로 사라지게 된 남녀차별금지 및 구제에 관한 법은 1999년 여성특별위원회의 소관 법률로 제정된 것이다. 당시 여성운동은 여성담당 단위의 독립된 정책총괄과 집행력을 요구했고, 그것이 2001년 여성부의 출범으로 이어졌다.

여성부는 여성특위에서 이관된 남녀차별개선 업무와 노동부에서 이관된 여성인력개발센터, 보건복지부에서 이관된 여성에 대한 폭력업무를 담당하는 부서로 출범하였다. 2005년 여성가족부는 여성부의 남녀차별과 성희롱 상담·구제 업무를 국가인권위원회로 이관하고, 2004년 제정되고, 2005년 시행되는 건강가족기본법의 소관 기관으로서 출범하게 되는 것이다.

여성부 그리고 여성가족부 출범의 의미

1998년 김대중 정권의 출범은 한국의 경제위기에 대응하는 IMF 구조조정 정책의 수행에 있었다. 대규모 정리해고에 따른 '고개 숙인 아버지들'의 등장은 이러한 구조조정 정책의 필연적인 결과였다. 이와 동시에 이루어진 한국정부의 '여성'에 대한 관심은 고개 숙인 아버지들을 대신할 값싼 노동력의 필요에 있었고, 경제적 빈곤으로 인한 가족해체의 속도를 늦추어줄 완충지로서 여성의 역할에 대한 기대였다. 김대중 정권부터 노무현 정권으로 이어지는 여성정책의 총적 방향인 '직장과 가정의 양립 지원'은 이러한 기대의 반영이다.

여성들은 감소한 실질임금을 보충하기 위해 노동시장으로 진출하고, 양육과 병행하기 위해 시간제나 비정규직을 선택하거나 비공식부문으로 진출한다. 여성부가 말하는 것처럼 파트타임 등의 신축적 근무조건은 여성이 좋아서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어쩔 수 없이 자신의 노동력을 '출혈판매'한 것이다. 정부의 여성정책의 수립과 여성부의 등장은 여성이 경험해야 하는 빈곤과 여성의 이중부담 강화를 사실상 은폐하는 역할을 해왔다. 이러한 정책의 결과가 여성노동에 한정되지 않는 광범위한 노동의 불안정화이며 현재 문제시되고 있는 저출산의 이유인 것이다.

이는 한국 자본주의의 특성과 무관하지 않다. 한국 자본주의의 축적은 가족이 복지의 모든 기능을 담당하고 있었고, 가족 내에서 여성이 이를 전담함으로써 가능했다. 현재 사회적 관심이 '여성의 역할'에 대한 강조에서 현재 '가족의 중요성'에 대한 강조로 이동하는 것은 사실 큰 차이라기 보단 그동안 정권의 여성정책의 예정된 결론이다. 이미 노동자들의 60%이상이 비정규직일 정도로 광범위한 불안정노동층이 형성되고 이로 인한 사회적 불만을 관리해야 하는 정부의 입장에선 세계최저의 출산율로 인한 노동력부족과 고령화사회 진입으로 인한 사회적 부담을 경감해줄 여성들의 '출산장려'가 시급한 과제인 셈이다. 이에 호응하여 여성부가 '건강가족'형성과 지원을 위한 여성가족부로 재출범하는 셈이다.

이번 여성가족부 출범을 앞두고 여성단체들의 우려처럼 '건강가족' 규정이 담을 수 없는 다양한 가족형태에 대한 배제를 낳는 것에서 그 문제점을 찾을 수도 있겠지만, 오히려 더욱더 문제는 그동안 정부의 여성정책 수립, 여성부, 여성가족부 출범이 여성들의 이중부담을 강화하고, 여성인력을 활용하는데 그 목적이 있는 신자유주의적 여성정책에 대한 근본적인 비판의 부재에 있을 것 같다.

여성가족부 출범에 거대는 기대?

2001년 여성부 출범이 가져온 결과 중 하나는 여성운동의 제도화였다. 여성운동가들의 정계진출과 국가기관으로 입성을 논외로 친다고 하더라도, 여성운동이 법, 제도 정비와 제정에만 주력하는 위로부터의 세력화에 경도되어 '여성운동의 자율성'을 잃고 있다는 지적은 꾸준히 있어왔다. 가족의 위기와 여성노동의 비정규직화는 경제위기의 결과이지, 원인이 아니다. 경제위기의 지연정책으로서 신자유주의는 얼마든지 '여성'의 이름으로 '여성'을 활용할 수 있다. 세계적으로도 경제위기 시기, 가족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신가족주의가 함께 등장했고, 이는 대중운동으로서 여성운동, 사회운동의 쇠퇴의 후과이기도 했다.

사회운동이 힘을 모으고 기대를 모아야 할 것은 좋은 가족정책의 제언을 통한 여성가족부의 개조가 아니라,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불안정노동에 저항하는 여성노동자들의 투쟁과 운동에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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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성희 씨는 사회진보연대 여성국장으로 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