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정학 경제(geonomics)는 국제 경제 이론과 정책을 설명하는 새로운 용어다. <파이낸셜 타임스>의 질리언 테트(Gillian Tett)에 따르면, 과거에는 “합리적인 경제적 이익 추구가 지배한다고 일반적으로 가정되었으며, 천박한 정치가 아니라 경제가 우선이라고 여겨졌다. 정치는 경제의 파생물처럼 보였고, 그 반대는 아니었다. 이제 더는 그렇지 않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촉발한 무역 전쟁은 그것이 신자유주의 경제학의 기준으로 보면 매우 비합리적으로 보이기 때문에 많은 투자자들에게 충격을 주었다. 그러나 그것이 ‘합리적’이든 아니든 간에, 이 현상은 경제가 미국뿐 아니라 다른 많은 나라들에서도 정치적 게임에 종속된 세계로의 전환을 반영한다.
레닌은 한때 “정치는 경제의 가장 집중된 표현”이라고 말했다. 그는 국가 정책과 전쟁(다른 수단에 의한 정치)이 궁극적으로 경제적 이해관계, 즉 자본의 계급적 이해와 ‘다수의 자본들’ 사이의 경쟁에 의해 좌우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도널드 트럼프는 레닌의 관점을 완전히 뒤집었다. 이제 경제는 정치적 게임에 종속되고, 자본의 계급적 이해는 각종 파벌들의 개별 정치적 이해로 대체되었다. 그래서 우리는 이러한 현실을 모형화할 수 있는 새로운 경제 이론, 즉 지정학 경제가 필요하게 되었다.
지정학 경제는 이제 패권적 권력 정치의 정당화 도구로 등장해, 이를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것으로 포장하고 있다. 자유민주주의와 ‘인터내셔널리즘’, 그리고 자유무역과 자유시장으로 대표되는 자유주의 경제학은 더는 의미가 없다. 경제학자들이 과거에 배운 대로 균형, 평등, 경쟁, ‘비교우위’에 기반한 세계를 지향할 필요는 사라졌다. 그런 세계는 사라졌고, 이제 경제는 각국이 자국의 국익을 관철하기 위해 벌이는 권력투쟁의 장이 되었다.
최근 한 논문은 경제학자들이 이제 경제적 이익보다 권력 정치를 우선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미국과 같은 패권 국가는 자국 내 생산성 향상이나 투자 증대를 통해 경쟁력을 강화하려 하기보다는, 타국에 대한 협박과 무력을 통해 경제적 이익을 확보하려 한다. 논문은 “패권 국가는 자신이 직접 통제할 수 없는 외부 행위자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하고자 한다. 그러한 국가는 상대방이 원하는 행동을 하지 않을 경우 불이익을 줄 것이라 위협함으로써 참여 제약 조건의 외부 선택지를 낮추거나, 반대로 원하는 행동을 할 경우 혜택을 주겠다고 약속함으로써 영향력을 행사한다”고 설명했다.
세계은행 소속의 이 저자들에 따르면, 이런 ‘권력 경제학’은 패권국과 그 위협의 대상 양측 모두에게 이익이 될 수도 있다고 한다. 그들은 “패권주의는 거시경제학자에게도 친숙한 방식으로 모형화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정말 그런가? 미국이라는 현재의 패권국이 지위를 잃을까 두려워 정치적 수단(전쟁을 포함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어떤 반대 세력이라도 약화고 무력화하려는 가운데, 제재와 수출 금지, 막대한 관세, 투자 및 기업 활동 차단 등의 조치로 경제적 질식을 강요당하는 중국에 그런 말을 해보라. 미국 수출에 대해 높은 관세 장벽에 직면한 세계 빈곤국들에게도 그런 말을 해보라.
물론, 무역과 시장 확대를 위한 동등한 국가 간의 국제 협력이란 애초부터 환상이었다. 동등한 국가들 사이의 무역은 단 한 번도 존재한 적이 없었고, 경제 내에서든 국제 무대에서든 대체로 비슷한 규모의 자본들 사이에 ‘공정한’ 경쟁이 존재한 적도 없었다. 강대하고 거대한 자본은 항상 약소 자본을 집어삼켰고, 이는 특히 경제 위기 상황에서 더 심각하게 나타났다. 제국주의 핵심부인 글로벌 북반구는 지난 200년 동안 주변부 경제로부터 수조 달러 규모의 가치와 자원을 추출해 왔다.
그럼에도 경제 정책에 대한 시각이 일부 엘리트들 사이에서 변화하고 있다는 점은 사실이다. 특히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와 그 이후 이어진 장기 불황으로 인해 성장, 투자, 생산성이 침체한 이후 그 변화가 두드러졌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 국제 무역 및 금융 기구들은 주로 미국의 통제하에 설립되었다. 당시 주요 경제권에서 자본의 수익성은 높았고, 이는 국제 무역의 확장을 가능케 했으며 유럽과 일본의 산업력이 회복되는 계기가 되었다. 이 시기는 또한 케인스주의 경제학이 지배하던 시기로, 국가는 경기 순환을 ‘관리’하고 산업을 지원하기 위해 인센티브를 제공하거나 심지어 일정한 산업 전략을 실행하기도 했다.
이 ‘황금기’는 1970년대에 막을 내렸다. 마르크스의 이윤율 저하 법칙에 따르면 이 시기 자본의 수익성이 급격히 하락했고, 주요 경제권은 1974~75년에 처음으로 동시에 불황을 겪었으며, 이어 1980~82년에는 심각한 제조업 침체를 겪었다. 케인스주의 경제학은 실패로 드러났고, 경제학은 자유 시장, 자유로운 무역 및 자본 흐름, 국가의 개입과 산업 및 금융 부문 소유에 대한 규제 철폐, 노동조합의 탄압이라는 신고전파적 관점으로 회귀했다. 주요 경제권에서는 자본의 수익성이 (소폭) 회복되었고, 세계화는 새로운 시대의 슬로건이 되었다. 실제로는 국제 무역과 자본 흐름을 가장한 제국주의적 주변부 착취의 확장이었다.
그러나 다시금 마르크스의 이윤율 저하 법칙은 중력처럼 작용했고, 밀레니엄 전환기를 지나며 주요 경제권은 생산 부문에서 수익성 하락을 경험했다. 금융, 부동산, 기타 비생산 부문에서 신용에 의존한 호황만이 그 이면에 자리 잡은 수익성 위기를 한동안 가려주었을 뿐이었다(아래 파란 선은 미국 생산 부문의 수익성을, 빨간 선은 전체 수익성을 나타낸다).

출처: 미국 경제분석국(BEA) 국민소득 및 생산계정(NIPA) 표, 필자 계산
그러나 결국 이러한 과정은 세계 금융 붕괴, 유로존 부채 위기, 그리고 장기 불황으로 귀결되었고, 여기에 2020년 팬데믹 불황의 충격이 더해졌다. 유럽 자본은 산산조각 나버렸고, 미국의 패권은 이제 제조업, 무역, 그리고 최근에는 기술 부문에서 눈부신 부상을 이룬 중국이라는 새로운 경제적 경쟁자와 마주하게 되었다. 중국은 서구의 경제 위기에도 영향을 받지 않았다.
그래서 2020년대에 들어서자, 질리언 테트가 말했듯 “지적 추는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고, 더 강한 민족주의적 보호주의(여기에 군사적 케인스주의가 가미된 형태)로 향하고 있다. 이는 역사적 흐름과도 맞아떨어진다.” 미국에서는 트럼프주의가 극단적이고 불안정한 형태의 민족주의로 등장했고, 이제 ‘지정학 경제’라는 새로운 학파에 의해 본격적으로 연구 대상으로 부상하고 있다. 바이든은 약화한 미국 생산 부문을 보호하고 재건하기 위해 케인스주의적 정부 개입·지원 방식의 ‘산업 전략’을 출범시켰고, 이는 미국의 기술 대기업을 대상으로 한 정부 인센티브와 자금 지원, 그리고 경쟁국, 즉 중국에 대한 관세와 제재를 결합한 것이었다. 트럼프는 이제 그 ‘전략’을 더욱 강화하고 있다.
국제적 보호주의는 국내적으로는 정부 개입과 결합하고 있다. 이는 공공서비스 축소, 기후변화 대응 예산 중단, 금융 및 환경 규제 철폐, 군대와 국토안보 병력 강화를 수반하고 있으며(특히 강제 추방과 공포 조성을 위한 목적이 강조된다), 전면적인 체제 전환을 수반하고 있다.
이러한 조야한 패권 정치가 이제는 우익 경제학자들에 의해 논리적이고 심지어 모든 미국인에게 유리한 것으로 포장되고 있다. ⟪미국을 위한 산업 정책⟫(Industrial Policy for the United States)라는 새 책을 통해 마크 파스토(Marc Fasteau)와 이언 플레처(Ian Fletcher)라는 두 경제학자는 이를 주장하고 있다. 이들은 마가(MAGA) 지지자들에게 환영받는 인물들이며, 주로 국내 생산과 무역에 관여하는 소규모 기업들로부터 자금을 지원받는 ‘미국 번영을 위한 위원회(Council for a Prosperous America)’ 소속이다. 위원회는 다음과 같이 밝힌다. “우리는 제조업자, 노동자, 농민, 목장주들로 구성된 독보적인 연합체로, 우리 자신과 자녀들, 손주들을 위해 미국을 다시 세우고자 함께 노력하고 있다. 우리는 값싼 소비보다 양질의 일자리, 국가 안보, 국내 자급자족을 더 중요하게 여긴다.” 이 위원회는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기’ 위한 자본과 노동 간 계급적 통합에 기반한 조직이다.
파스토와 플레처(F&F)는 미국이 글로벌 제조업과 기술 분야에서 패권적 지위를 상실한 이유가 신고전파적 자유시장 경제학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그들은 “자유방임주의 사상은 실패했고, 강력한 산업 정책이야말로 미국이 번영과 안보를 유지하는 최선의 방법이다. 트럼프와 바이든이 일부 요소를 실행에 옮겼지만, 이제 미국은 관세, 경쟁력 있는 환율, 신기술의 발명만이 아니라 상용화를 위한 연방 정부의 지원을 포함하는 체계적이고 포괄적인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F&F가 말하는 ‘산업 정책’은 세 가지 ‘기둥’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째, 핵심 국내 산업을 재건한다. 둘째, 수입 관세와 미국 수출에 장애물을 두는 외국 정부에 대한 제재를 통해 외국 경쟁으로부터 이들 산업을 보호한다. 셋째, 미국의 무역적자가 사라질 정도까지 달러 환율을 ‘관리’한다, 즉 달러 평가절하를 추진한다.
F&F는 ‘비교우위’라는 리카도(Ricardo)의 무역 이론을 거부했다. 이 이론은 모든 국가가 비교우위를 가진 상품에 특화하여 수출하면 국제무역이 모든 국가에 이익을 가져다준다는 주장을 펼치며, 주류 경제학의 기반이 되어왔다. 하지만 이들은 ‘자유무역’이 오히려 저임금 국가의 값싼 수입품으로 인해 국내 생산자가 붕괴하고, 수출 시장 점유율을 확보하는 자국 생산자의 능력이 약화함으로써 미국과 같은 나라의 생산과 소득을 줄일 수 있다고 본다. 이들은 수입 관세와 같은 보호주의 정책이 오히려 자국 경제의 생산성과 소득을 증진할 수 있다고 본다. “미국의 자유무역 정책은 한때 전 세계 경제를 지배하던 시기에 형성된 것이지만, 이론적으로나 현실적으로 모두 실패했다. 혁신적인 경제 모형은 산업 정책의 하나인 잘 설계된 관세가 더 나은 일자리, 더 높은 소득, GDP 성장률을 가져올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저자들에 따르면, 관세는 모두에게 더 높은 소득을 가져다줄 수 있다고 주장한다.
F&F는 더 이상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을 유지할 수 없는 국내 기반 미국 자본의 이해를 대변한다. 엥겔스가 19세기에 주장했듯, 패권적 경제력이 국제 시장을 제품으로 지배하는 동안에는 자유무역을 지지하지만, 그 지배력을 상실하면 보호주의 정책으로 전환하게 된다(자세한 내용은 필자의 책 ⟪엥겔스⟫ 125~127쪽 참고). 19세기 말 영국의 정책에서 이런 변화가 나타났고, 이제 미국의 차례다.
리카도(그리고 오늘날의 신고전파 경제학자들)는 모든 국가가 비교우위를 가진 상품에 특화해 무역하면 서로 이익을 얻게 된다고 주장하지만, 이는 잘못된 이론이다. 자유무역과 비교우위에 기반한 특화는 상호 이익으로 수렴하지 않으며, 오히려 불균형과 갈등을 심화시킨다. 이는 자본주의적 생산과정의 본질이 생산의 집중과 중앙집중화 경향을 초래하며, 그로 인해 불균형 발전과 위기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반면 보호주의자들도 수입 관세나 기타 조치가 한 국가의 과거 시장 점유율을 회복시킬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이 역시 옳지 않다. 그러나 F&F는 산업 전략에서 관세에만 의존하지는 않는다. 이들은 산업 정책을 “정부가 의도적으로 산업을 지원하는 정책”으로 정의하며, 그 지원은 두 가지 범주로 나뉜다. 하나는 환율 관리와 연구개발(R&D) 세금 감면처럼 모든 산업을 돕는 광범위한 정책이고, 다른 하나는 특정 산업이나 기술을 대상으로 한 관세, 보조금, 정부 조달, 수출 통제, 정부가 수행하거나 자금을 지원하는 기술 연구 등이다.
F&F의 산업 전략은 효과를 내지 못할 것이다. 한 경제에서 생산성 향상과 비용 절감은 생산성 향상 부문에 대한 투자 증가에 달려 있다. 그러나 자본주의 경제에서 이는 이윤 추구 기업들이 더 많은 투자를 감행하려는 의지에 달려 있다. 이윤율이 낮거나 하락하고 있다면, 기업들은 투자를 하지 않는다. 지난 20년간의 경험이 이를 보여준다. F&F는 국내 산업, 과학, 군사력을 강화하기 위해 전시 체제와 냉전 전략으로의 회귀를 원한다. 그러나 그것이 효과를 내려면 국영 기업을 통한 직접적인 공공 투자와 국가 산업 계획으로의 대전환이 필요하다. F&F는 그것을 원하지 않고, 트럼프 역시 원하지 않는다.
F&F는 자신들의 경제 정책이 좌도 우도 아니라고 말한다. 그리고 어느 정도 그 말은 사실이다. 산업 전략은 영국의 좌파 케인스주의자들, 미국의 엘리자베스 워런과 버니 샌더스, 심지어 유럽의 마리오 드라기까지도 주장하고 있으며, 20세기 후반 동아시아 대부분의 국가들이 경제 정책으로 채택했던 바 있다(다만 지금은 점차 그 경향이 약화하고 있다).
그러나 물론, F&F의 겉으로는 ‘중립적’인 산업 전략도 중국 문제에 있어서는 전혀 중립적이지 않다. 이들은 “중국은 미국이 200년 넘게 직면한 적이 없던 최초의 군사적·경제적 위협”이라고 주장한다. 이들은 이렇게 단언한다. “중국의 산업들 중 점점 더 많은 수가 고부가가치 미국 산업과 첨예하게 경쟁하고 있으며, 중국의 성장은 곧 우리의 손실이다. 미국은 산업 초강대국이 되지 않고는 군사 초강대국으로 남을 수 없다.” 이것이야말로 지금까지 경제학과 국제경제기구를 지배해온 신고전파적 자유무역 경제학에서 벗어나려는 전환의 동기를 요약하는 말이다. 미국과 유럽의 경제적 패권은 이미 약화했고, 이에 따라 한 세대 내에 중국이 세계를 지배할 위험이 커지고 있다. 그래서 이제는 장갑을 벗고 맨주먹으로 싸우려 한다.
자유 경쟁, 자유 시장, 자유 무역이라는 개념은 이제 폐기되었다. 애초에 그것은 결코 실재하지도 않았다. 이제는 정치적·경제적 권력을 얻기 위한 싸움에서 어떤 수단이든 동원해 승리하는 현실주의가 대세가 되었다. 이것이 바로 새로운 지정학 경제의 본질이며, 머지않아 글로벌 북반구의 대학 경제학과에도 등장할 것이 분명하다. 이는 여전히 지배적인 신고전파·신자유주의 경제학 교수들의 후퇴 전 방어에도 불구하고 일어날 것이다.
[출처] Geonomics, nationalism and trade
[번역] 이꽃맘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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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로버츠(Michael Roberts)는 런던 시에서 40년 넘게 마르크스 경제학자로 일하며, 세계 자본주의를 면밀히 관찰해 왔다. 참세상은 이 글을 공동 게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