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야 이거, 우리 나라 얘기잖아?!

[김규종의 살아가는 이야기] 토니 길로이 감독의 첫 번째 영화 '마이클 클레이튼'

외국영화를 보면서 그것이 결코 남의 이야기가 아님을 생각하는 경우가 있다. <몬스터>를 보면서 군산 개복동 사창가에서 죽어나간 성매매 여성들이 떠올랐고, 오락영화 <스파이더맨 3>에 나오는 ‘샌드맨’의 비참한 처지에서 대한민국의 실업자들을 생각했다. 이런 식의 자연스러운 대비와 겹치기가 영화 <마이클 클레이튼>에서도 쉽사리 포착된다.

불법상속과 부도덕한 경영권 이양을 위해 ‘삼성’이 축적한 비자금을 폭로한 김용철 변호사가 영화 내내 마음에 어른거렸다. 목적을 위해서는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는 거대기업의 야만적인 횡포가 시종일관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아버지와 아들의 끈적끈적한 사랑은 ‘한화’에서 확인했지만, 돈과 권력의 유착은 콜타르처럼 더욱 끈질기고 끈끈했다.

<마이클 클레이튼>에서도 부자관계의 사랑과 연대는 확인된다. 그러나 그들이 보여주는 상호존중과 사랑은 그 빛깔과 향기가 전혀 다르다. 마이클이 보여주는 아버지의 전범은 이건희 회장의 탈법과 부정, 회유와 협박의 전천후 양상과는 거리가 너무 멀기 때문이다. 아버지다운 아버지 마이클은 아들이 아들답기를 바라는 마음을 소박하게 전달할 뿐이다.

청소부와 해결사

뉴욕 최고의 법률회사 ‘KBL’에 소속된 마이클 클레이튼은 합법적으로 처리할 수 없는 사건을 전담하는 해결사로 떳떳하지 않은 분야에서 100% 성공하는 검사출신 변호사다. 그래서 마이클 같은 변호사의 다른 이름은 ‘청소부’다. 일반 변호사들이 싫어하는 분야의 전문가. 하지만 그들은 필수불가결한 존재다. 마치 초원의 청소부인 하이에나나 독수리처럼.

영화는 마이클이 당면한 개인적인 금전문제와 동료 변호사 아서가 연루된 사건 사이를 갈지자로 누비면서 진행된다. 마이클은 알코올중독에 빠진 동생 때문에 8만 달러의 빚을 일주일 안에 갚아야 한다. 그와 동시에 아서가 진행하던 세계적인 대기업 U/노스사(社)의 거대한 소송재판에 개입하게 된다. 486명의 희생자와 30억 달러가 걸린 전대미문의 소송.

<마이클 클레이튼>은 유심하게 지켜보지 않으면 지루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영화처럼 보인다. 두 가지 사건이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한 눈을 팔다가는 낭패 보기 십상이다. 이것은 마이클의 사생활과 가족관계, 또 다른 뺑소니사건과 연결되면서 보다 복잡한 양상을 띠게 된다. 하지만 영화의 고갱이는 어디까지나 거대기업의 비리다.

제초제를 생산하는 대기업 U/노스사의 선전광고는 호소력이 크고 아름답기까지 하다. 작은 씨앗을 뿌리고, 그것을 가꾸어 수확의 기쁨을 선사하는데 일조하는 제초제 광고. 녹색 어린잎과 소년의 천진한 얼굴이 부드럽고 잔잔한 음악과 함께 조화를 이루면서 편안함과 만족감을 선사한다. 그러나 광고의 뒤, 현실에서는 죽음의 악마가 차갑게 웃고 있다.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제초제가 가져온 결과는 혹독하다. 그것의 유독성분은 보이지도 않고, 냄새도 나지 않는다. 하지만 지하수와 대기에 남아서 사람들의 생명을 위협한다. 소리도 없이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가는 연탄가스처럼. 아서는 제초제의 치명적인 폐해를 깨닫고 7년 동안 끌어온 소송에서 원고 편에 서려고 한다. 아서를 뒤처리하는 임무가 마이클에게 부여된다.

삶의 막바지에서 진실에 눈을 뜨고 인간적인 생활을 시작하려는 아서. 그런 변호사를 용서할 수 없는 법률회사 ‘KBL’. 독자생존이 어려워진 ‘KBL’이 영국의 법률회사와 합병을 눈앞에 둔 상태이기에 상황은 더욱 절박하다. 개인부채를 갚기 위해서도, 소속회사의 생존과 번영을 위해서도 마이클은 동료를 소리 소문 없이 말끔하게 처리해야 한다.

당신이 마이클이라면 어떤 선택을 하겠는가. 동료가 밝혀낸 진실 편에 설 것인가. 아니면 돈과 평안을 위해 침묵하겠는가. <마이클 클레이튼>은 어려운 결단과 선택의 순간을 스쳐지나가는 창밖의 풍경처럼 대수롭지 않다는 듯 가볍게 처리한다. 마이클의 내면풍경은 보일 듯 말듯, 시나브로 지나가버린다. 대도시 뉴욕의 분주하고 신속한 일상처럼.

만일 영화가 이런 양자택일에 정지해 버렸다면 관객의 흥미는 반감되었을지 모른다. 단선적인 선택은 언제나 그렇듯 너무 빤하니까 말이다. 하지만 신예감독 토니 길로이는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왜냐하면 그는 세상과 관객이 무엇을 요구하는지 제대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소송 당사자인 대기업과 법무팀장을 자연스레 등장시키는 것이다.

대기업과 법무팀장 사이

카렌은 대기업 U/노스사의 법률팀장으로 승진한다. 그녀에게 맡겨진 가장 큰 임무는 물론 목전에 닥친 제초제 소송에서 승리하는 것이다. 그러나 진실의 그림자가 행운의 걸림돌로 작용하기 시작하자 그녀의 번민도 함께 시작된다. 대기업의 이익을 위하여 진실을 은폐하고, 개인의 이해관계를 관철할 것인가. 아니면 '실체적' 진실에 성큼 다가설 것인가.

영화 장면 하나가 카렌의 깊은 고민과 번뇌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정체불명의 사내들에게 특명을 내리는 과정에서 겨드랑이가 흠뻑 젖어버린 그녀의 육신이 바로 그것이다. 결단의 순간에 자신도 모르게 분비된 체액이 목전에 닥친 사태의 엄중함과 절박함을 드러내는 것이다. 느닷없이 다가온 검은 그림자를 쫓아버리고 싶은 욕망과 양심 사이의 동요.

영화 <마이클 클레이튼>이 보여주는 등장인물들의 내면묘사는 이런 방식으로 드러난다. 하지만 영화는 도저히 빠져나올 수 없는 어떤 미로를 보여준다. '성공신화'를 향하여, 보다 큰 야망을 실현하기 위하여 보통의 인간들이 어떤 경로를 선택하는지. 그런 상황에 직면할 때 관객들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를 낮지만 차분한 목소리로 묻고 있는 것이다.

카렌이 얻고 싶었던 것은 결국 돈과 명예, 그리고 고위직이다. 그것은 누구에게나 커다란 유혹이자 매력적인 도전이다. 거대기업의 법률팀장 자리에 오르기까지 그녀가 겪었을 인내와 고통의 나날들을 감독은 보여주지 않는다. 하지만 이사회에 나가기 전에 그녀가 준비하는 몸치장 장면만으로도 관객들은 그 자리의 크나큰 무게를 실감할 수 있다.

맺음말

<아마겟돈>, <본 아이덴티티>, <본 슈프리머시> 등의 시나리오 작가로 큰 성공을 거둔 토니 길로이의 감독 데뷔작이 <마이클 클레이튼>이다. 그런데 <마이클 클레이튼>의 결말은 아리송하다. 권선징악이냐 하면 그런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악이 승리하는 것도 아니다. 아마도 감독은 영화의 빤하고, 그저 그런 결말에 선뜻 동의하기 싫었던 듯하다.

그래서일까. 마지막 장면에서 영사기는 마이클의 얼굴과 눈동자 그리고 복잡다단해 보이는 미묘한 표정에 집중된다. 더러는 안도의 한숨으로, 더러는 착잡함으로, 더러는 매우 무표정해 보이는 중첩된 얼굴로 관객들과 만나는 마이클. 따라서 <굿나잇 앤 굿럭>의 조지 클루니가 아니었더라면 영화 <마이클 클레이튼>은 성공하기 어려웠을 성싶다.

미국에서 <마이클 클레이튼>은 평론가들의 호평과 함께 개봉 두 번째 주에 상영관 수를 15개에서 2,511개로 늘리면서 전국으로 확대상영에 돌입하여 매표구 순위 4위를 기록했다. 그러나 한국에서 영화 <마이클 클레이튼>은 순항하는 것 같지 않다. 다소 복잡한 분위기와 인간관계, 대기업의 불의와 부정에 관대한 사회풍토가 원인이 아닌가 한다.

세계적인 대기업 삼성의 비자금을 폭로한 김용철 변호사가 대단한 인물이란 생각이 든다. 거액의 보수와 수당 그리고 ‘삼성 법률팀장’이란 자리의 위력과 명예. 이 모든 것을 내던지고 진실과 정의를 위해 분연히 떨치고 일어선 그의 용기가 매우 가상해 보이는 것이다. 대한민국은 이런 분들의 헌신과 희생으로 그나마 조금씩 전진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덧붙이는 말

김규종 님은 경북대 연구자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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