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육정책과문화사회①] 스포츠:아직도 민족중흥의 역사적사명?

[문화사회 편집자주] 스포츠는 언제나 국민화합을 위한 중요한 계기이자 국위선양의 통로였습니다. 2002년 월드컵을 맞아 정부는 체육정책을 운운하고 스포츠 강국을 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즐기는 스포츠가 과연 국민의 건강을 증진시키고 일상을 풍요롭게 하는 문화인지 의심스럽습니다. 현재 스포츠는 정부의 잘못된 문화체육정책으로 인해 국가주의, 자본주의와 맞물려 왜곡된 방향으로 흐르고 있는 상황입니다.

[문화사회]는 6차례의 기획연재기사를 통해 문화체육정책의 현실과 문제점들을 살펴볼 것입니다.

기획연재시리즈 : 문화체육
1.스포츠 : 아직도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2.개발도상국다운 과시적 외향성과 전근대적 사명감
3.이제 학교체육은 버리는가?
4.국가대표선수는 먼 훗날을 생각하지 않는다!
5.골프 : 개발도상국 대한민국의 대중스포츠
6.도박공화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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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아직도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우리에게 스포츠만큼 일상적이고도 열광적인 문화가 있을까. 삶 그 자체가 문화라 하니 그렇게 따지고 본다면 스포츠가 먹고사는 문화보다야 절박할 수는 없겠지만 잠시라도 평범한 일상을 잊어보고자 하는 우리에게 스포츠는 오아시스가 되기도 한다. 정말 그랬다. 우리가 열심히, 근검절약하며 살던 시절 고교야구와 권투는 서민들의 손에 땀을 쥐게 했고, 한국축구는 온 국민이 하나가 되게 했다. 올림픽에서의 승전보와 선수들의 뒷이야기에 우리는 자랑스럽기도 했고 눈시울이 뜨거워지기도 했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며 자조하던 시절, 우리에게 스포츠는 아마도 유일한 기쁨이었을 것이다.

이제 우리 스포츠는 많이 성장했다. 솔직히 비근한 예가 없을 정도로 컸다. 지난 두세기 동안 우리나라는 어느 올림픽에서건 안전한 20위권이었다. 자랑스러운 것은 우리가 개발도상국으로서는 유일하게 20위권에 들어간다는 것이다. 순위 위쪽에는 서구자본주의국가 아니면 사회주의국가들 뿐인데 유독 리퍼블릭 오브 코리아가 고집스럽게 매번 스포츠강국들의 틈바구니에서 또아리를 틀고 있는 것이다.

냉전 속, 스포츠가 미국과 소련의 대리전을 치루던 시절이 있었다. 양국은 하나라도 더 많은 제삼세계 국가를 감동시켜 그들의 우산 아래 거느리기 위해 우주개발과 핵무기개발에 정성을 쏟기도 했지만 정작 맞붙어 승패를 가려야만 하는, 피할 수 없는 결전장은 역시 스포츠였다. 우리의 분단상황 역시 스포츠를 양보할 수 없는 자존심의 문제로 만들었다. 북한도 북한이지만 선진국들과 어깨를 겨루고 일본을 무찌를 수 있는 유일한 장소는 경기장이었다. 우리는 아마추어스포츠의 강국이 된 것에 만족해하지 않았다. 곧 프로의 세계로 뛰어들었다. 축구, 야구, 농구, 배구에 무수한 개인종목들까지, 개발도상국 중 프로스포츠가 이만큼 발달한 나라가 어디에 있을까 싶다. 하기도 잘 한다. 야구와 골프는 본토인 미국에서도 통한다 하고 축구는 곧 있을 世界盃에서 16강에 들겠다고 한다. 거대한 (어마어마하게) 스포츠이벤트 유치도 잘 한다. 80년대 그 힘들었던 시절, 아시안게임과 올림픽을 뚝딱 해치우더니 올해엔 월드컵과 아시안게임을 두 달 간격으로 치러내겠다 하고 쉴 틈도 없이 내년엔 유니버시아드 대회가 기다리고 있다. 2010년 동계올림픽도 이미 따 두었다 한다. 동계올림픽 유치과정에서 인상적이었던 것은 외국도시들과의 유치경합보다 국내예선이 더욱 불을 뿜었다고 한다. 국내 선수층(?)이 그만큼 두터워졌다는 의미라면 참으로 바람직한 현상이다.

이제 정신을 가다듬고 바로 앉아 질문해 본다. 과연 이것이 우리 스포츠의 미래상이 되어야 하는가? 극소수의 선수들에게 막대한 금액을 투자하고 국민들은 '한마음'만 되면 되는 스포츠? 프로선수들은 돈 벌기 위해 열심히 뛰고 우리는 응원만 하는 스포츠? 땀은 선수들이 대신 흘려주고 우리는 느긋이 돈만 써주면 되는 스포츠? 그때나 지금이나 한결 같이, 세계가 주목한다며 바른 생활을 강요하고 또 국가적 대역사를 준비한다며 온 국민의 헌신, 인내, 희생을 요구하는 그런 스포츠? 스포츠의, 체육의 가치가 여기에 있었던가? 우리는 특히 요즈음 들어 위에 언급된, 국가주의와 맞물리고 자본주의와 결탁한 스포츠만이 스포츠인줄 착각하고 있는 듯하다. 사실 우리는 이에 열광하는 중이다. 정부조차 스포츠가 국민의 건강을 증진할 뿐 아니라 일상생활을 풍요롭게 하고 결국에는 삶의 질을 높인다는, 그러한 본래의 가치는 가벼이 보고 오직 스포츠를 통한 국가 경쟁력강화와 홍보에만 치중하고 있다. 순진무구한 스포츠의 본질을 오염시키고 있는 것이다. 국민의 정부는 생활체육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고 엘리트체육도 생활체육과의 연계를 중요시하겠다고 수 차례 천명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 정부는 스포츠를 국민보다는 국가를 위해, 그리고 남북대화 유지를 위해 그 매개물로 활용할 궁리만 하고 있다. 더욱이 저들은 학생선수들이 학업을 병행할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한다는 너무나 당연한 목소리를 무시했고, 체육이 입시에 의해 교과과정에서 밀려나는 현실을 방치했으며, 생활체육을 활성화한다며 골프대중화를 용맹스럽게 추진하기까지 하였다.

비록 힘은 없지만, 이제 나름대로 고민하면서 저들에게 한마디 건네야할 때가 된 것 같다. 프로스포츠의 융성과 과시적 소비문화의 확산이 참되고 순수해야할 스포츠를 왜곡된 방향으로 밀어붙이는 마당에 국가까지 나서서 생활체육을 설자리를 허무는 현실을 간과할 수는 없다. 건강한 삶의 기회가 우리에게서 멀어져 가는 것을 이대로 지켜보고만 있을 수는 없는 것이다.

전희준 (동아대학교 체육대학 체육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