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스포츠는 언제나 국민화합을 위한 중요한 계기이자 국위선양의 통로였습니다. 2002년 월드컵을 맞아 정부는 체육정책을 운운하고 스포츠 강국을 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즐기는 스포츠가 과연 국민의 건강을 증진시키고 일상을 풍요롭게 하는 문화인지 의심스럽습니다. 현재 스포츠는 정부의 잘못된 문화체육정책으로 인해 국가주의, 자본주의와 맞물려 왜곡된 방향으로 흐르고 있는 상황입니다.
[문화사회]는 7차례의 기획연재기사를 통해 문화체육정책의 현실과 문제점들을 살펴볼 것입니다.
기획연재시리즈 : 문화체육
1. 스포츠 : 아직도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2. 생활체육의 활성화: 잊혀진 약속?
3. 스포츠 망치는 금메달 지상주의: 땀과 수고와 보람에는 색깔이 없습니다.
4. 국가대표선수에게 미래는 없다!?
5. 골프: 개발도상국 대중스포츠
6. 도박공화국
7. 월드컵, 그렇게 좋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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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망치는 금메달 지상주의: 땀과 수고와 보람에는 색깔이 없습니다.
근대화를 거치면서 우리 자랑스런 한국인들은 통계수치에 기반한 업적이나 성과를 중시하게 되었다. 1970년대 무슨 기술이건, 건물이건, 댐이건, 조선소건 간에 '동양 최대', '세계 몇위', '아시아 최초' 등의 표현을 내세우기 좋아했고 국민들도 이를 자랑스러워했다. 여기에 보태고 싶은 작금의 현실도 있다. 이러한 과시적 성향은 오늘에 이어져 좀 먹고 살만하다 하는 사람들은 이제 세계적 수준의 소비수준을 과시하고 있다. 서울 압구정동에 있는 어느 외국계 패밀리 레스토랑(금요일이라 감사하다는)은 1990년대 초반 이미 전세계 동일 프랜차이즈 매장 중 연매출 1위의 위업을 달성했다 하니 우리가 우리 자신에 다시 한 번 놀랄 뿐이다. 찢어지게 가난했던 과거에 대한 성공적인 복수다. 이런 생각을 해 본다. 이러한 우리의 한 단면이 혹시 '한다면 한다'는, 또는 '안되면 되게 하라'는 군사문화와 연관이 있는 것이 아닌가? 군사독재가 우리에게 쓰라린 기억이었고, 또 이로 인한 군사문화는 한강다리가 동강나 뚝 떨어지고 백화점이 무너져 내리는 기상천외한 비극도 가져다 주었지만 지금까지 우리는 참으로 해낸 것도 많다. 사실 미국의 어느 사회학자는 한국의 경이로운 경제성장의 첫째 요인으로 군복무를 통해 배출되는, 세계 최고수준 양질의 노동력이라 꼽기도 하였다.
굳이 군사문화가 아니라도 이러한 과시적 성향과 저돌적인 근대화, 그리고 성과주의는 스포츠에 큰 영향을 미쳤다. 단적인 예는 성적지상주의, 특히 국제대회에서의 금메달지상주의이다. 국제무대에서 경쟁력 10위권의 거의 유일한 개발도상국으로서 그 역량을 이미 오래 전에 증명했음에도 아직도 올림픽 등 국제대회 출전시 체육계 전체가 목표 달성 여부에 전전긍긍하고 있다. 여기서 이야기하는 '목표'에는 '금메달'만 해당된다. 은메달과 동메달은 '실패'로 받아들이는 현실은 대단히 안타깝다. 금메달 획득이 예상되었던 선수가 다른 빛깔의 메달을 따면 '패배'한 '죄인'이 되고, 은·동메달은 별 '보탬'이 안 된다는 정서는 정말 큰 문제이다.
1996년 아틀란타 올림픽 마라톤에서 은메달을 획득한 이봉주선수의 골인 직후 모습은 지금도 기억에 새롭다. 주경기장 어디에선가 태극기를 구하더니 이를 머리 위로 들어 올려 흔들며 우승자와 함께 트랙을 돈다. 환한 얼굴로 말이다. (개인적 의견이지만 이봉주선수 웃을 때 정말 환하다.) 그런데 어딘지 어색하고 이상하고 불편했다. '저 사람 저래도 되는 건가?' '감히 2등이!?'
당장 시정해야될 점들이 있다. 바꾸거나 개혁하고자 하는 것들이 산적해 있을 때 우선순위 정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돈 안 드는 것부터 먼저하면 된다. 첫 번째 제안이다. 올림픽에 한정된, 상징적인 것이긴 하지만 국가순위를 정할 때 금메달만 카운트할 것이 아니라 금·은·동메달의 합을 기준으로 하는 것이다. 모든 참가국가를 조사한 것은 아니지만 미국이나 가까운 일본 등, 거의 모든 국가들이 이 방식을 따르고 있는데 유독 우리나라만 금메달 수만 가지고 국가별 순위를 정하는 것이다. 이러니 전혀 보탬이 안 되는 은과 동에 대해서는 온 나라가 냉담한 것이다. 두 번째다. 국제대회 메달수상자들에 대한 포상시스템을 바꾸는 것이다. 시드니올림픽 금메달 궁사 윤미진에 대한 언론의 표현이 재밌다. 줄잡아 3억여원의 포상금을 받은 사실을 '대박', '돈벼락', '돈방석'이라 표현하고 있음은 이제 우리 사회 어느 구석 할 것 없이 '대박'을 꿈꾸는 시대가 되었음을 증명한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금메달을 걸지 못한 선수들의 박탈감은 당연하다. 일시불 아닌 연금형식으로 지급 받을 경우도 은·동메달리스트들은 착잡하다. 올림픽 금메달리스트가 평생 한달 100만원, 은메달리스트가 45만원, 동메달리스트가 30만원을 받는 데에서 보듯 금메달을 과도하게 보상해주고 있다. 우리 선수가 결승에 올랐으나 패하여 은메달에 머무른 경우, 경기 직후에서 시상대에서 내려올 때까지 억지로라도 웃을래야 웃을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중국 같은 사회주의국가도 포상제도를 운영하니 없앨 수야 없을 것이나 적어도 차등의 간격을 균등하게 하고 또 최소화해야 할 필요가 있다. 세 번째는 언론에 관한 것이다. 언론은 올림픽에서 금메달 나오면 온갖 수선을 떨며 갖은 스토리를 만들어 내고 있는데 그 수고를 은메달이나 동메달을 획득한 선수, 그리고 메달획득에 실패했지만 국민들에게 즐거움과 감동을 주고 귀감이 될만한 선수들에게도 나누는 것이다. 사실 2000년 시드니올림픽 중계방송에서 아나운서들과 해설자들은, 예를 들어 은메달이라 안타깝다는 표현을 자제하고 상당히 기쁜(?) 톤으로 중계하려 신경쓰는, 과거와는 대비되는 모습을 보여줬다. 그러나 이에 만족하지 말고 언론은 올림픽 같은 스포츠제전은 그야말로 '축제'라는 개념을 확실히 가지고 그 축제분위기를 전달하는 데에 중점을 두어야할 것이다.
과시적 외향성, 성적지상주의는 한국의 스포츠를 왜곡되게 한 원동력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참여'에 뜻을 두지 않고 '결과'에만 집착하다 보니 엘리트스포츠의 뿌리인 학원스포츠도 엉망이 되는 것이다. 모든 노력과 수고가 결과로만 평가받으니 왜 감독에게 부정과 선수혹사의 유혹이 없겠는가? 또 결과만 중시하는 동문회가 지켜보고 있고, 동문후원금문제까지 걸려있다 보니 초·중·고등학교 학생선수들에게 수업은 빠지지 말고 들어가라 지도하시는 교장선생님이 그리도 찾기 힘든 것이다. 과정보다 결과를 중시하고 금메달만 대접해 주는 것, 꼭 고쳐야할 정말 나쁜 버릇이다.
정희준(동아대 체육대학 체육학부 교수) chunghj@daunet.dong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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