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과 미국 : 정동을 지배하는 것은 미국이다.


[CopyLeft By 문화연대]문화연대 문화유산위원회


정동은 참으로 한스런 곳이다. 애초에 이곳은 태조의 둘째 부인이었던 신덕왕후의 능이 있던 곳이다. 그 능의 이름이 정릉이었다. 정동이라는 지명은 바로 이 능 이름에서 나온 것이다. 잘 알다시피 지금 정릉은 미아리 고개 너머 북한산 자락에 자리잡고 있다. 태종이 신덕왕후를 미워해서 정릉을 이곳으로 옮겼던 것이다. 능은 떠나고 이름만 원래의 자리에 남은 셈이다. 신덕왕후와 태종의 사이는 아주 안 좋았던 모양이다. 태종은 신덕왕후의 자식들을 모두 죽여 버렸다. 그리고 그 능을 옮겼고, 또 그 신장석을 광통교의 다리 기둥으로 쓰도록 했다. 그래도 신장석에게는 그 시절이 좋았으리라. 태조가 사랑해서 늘 곁에 두고 싶어했던 여인의 무덤을 지키던 신장석은 지금은 일년 내내 한점 빛도 들지 않는 아스팔트 아래서 완전히 버려지고 잊혀졌다. 문화재급의 유물인데도...

정동이라는 동네를 보면, 이 신장석의 비참한 운명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정릉이 옮겨가고 오래 뒤에 이곳은 궁으로 바뀌었다. 본래 월산대군의 집과 다른 민가들이 있었지만, 임진왜란으로 경복궁이 타 버린 뒤에, 선조가 이곳에서 거처하다가 죽었고, 광해군이 이곳에서 즉위해서 경운궁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 뒤 그는 창덕궁으로 옮겨갔지만, 인조반정으로 다시 이곳으로 끌려와 유배의 길을 떠나게 된다.
우리 민족사의 최대 비극은 일본 제국주의의 식민지가 되었던 것이다. 이 전락의 장소도 바로 정동이었다. 지금의 정동극장 옆 골목으로 쭉 들어가면 하얀색의 이층 건물을 만나게 된다. 중명전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는 이 양식 건물은 본래 경운궁의 부속건물이었다. 바로 여기서 고종은 이또오 히로부미의 강요로 을사조약에 서명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경운궁과 정동은 제국주의의 침략과 식민지의 역사를 담고 있는 곳이다.
일본 제국주의는 침략을 위해 명성황후를 죽이기도 했다. 고종은 일본 제국주의로부터 나라를 지키기 위해 나름대로 애썼다. 그 중의 하나가 다른 열강들의 힘을 빌리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그는 경운궁의 땅을 잘라내서 열강들의 대사관이 들어서도록 했다. 지금의 덕수궁 둘레에 미국 대사관저, 영국 대사관, 러시아 대사관이 자리잡고 있는 것은 그 때문이다. 정동은 제국주의의 침략사와 왕조의 몰락사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생생한 역사의 공간이다.
잘 알다시피 고종의 노력은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제국주의 열강 중에서 그의 청에 귀 기울이는 쪽은 한 나라도 없었다. 모두 어떡하면 더 많이 뜯어 먹을 수 있을까 하는 것만이 그들의 유일한 관심사였다. 고종이 미국의 힘을 빌려고 했을 때, 미국은 일본 제국주의와 이른바 '테프트-카츠라 밀약'이라는 것을 맺어서 필리핀과 조선을 나눠먹기로 했다. 우리에게 미국은 처음부터 '아름다운 나라'가 아니었고, 또 하나의 제국주의 열강이었을 뿐이다.

정동의 명소로 가장 유명한 것으로는 이른바 '덕수궁 돌담길'을 들 수 있다. 그러나 이 돌담길은 원래의 돌담길이 아니다. 일본 제국주의는 경운궁을 멋대로 부숴서 길을 내고 건물을 지어서 경운궁의 본래 모습을 없애 버렸다. 공간적 상징을 파괴해서 조선이 사라졌다는 것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자 했던 것이. '덕수궁 돌담길'이란 이런 파괴의 산물이다. 이런 길을 낭만 어쩌구 하면서 즐긴다는 게 도대체 말이나 되는 일인가?

서울시에서는 꽤 큰 돈을 들여서 이 길을 제법 그럴 듯하게 다듬어 놓았다. 그러나 정동의 복판에 들어서게 되면, 이 길의 운치고 뭐고 다 끝장나고 만다. 돌담길이 휘는 부분에는 공사장 가건물 같은 것을 들여서 전경들의 임시막사로 사용하고 있고, 오른쪽으로 꺽어도는 길 앞에서는 전경들이 길막이쇠마저 세워놓고 오가는 길을 통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쪽으로 사진이라도 찍을라치면, 전경들이 득달같이 달려와 한사코 못 찍게 한다. 뚜렷한 이유도 없다. 그저 위에서 못 찍게 하라고 했단다. 보기는 그럴싸하지만, 이곳은 여전히 박정희, 전두환 시절 그대로다.

그 까닭은 미국 대사관저가 이곳에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이곳을 보호하기 위해 사방에 전경들을 깔아 놓은 것이다. 중명전을 보기 위해 정동극장 옆 골목길로 들어가도, 러시아 공사관 터를 보기 위해 예원여고 옆 골목길로 올라가도, 우리는 언제나 한 무리의 볼품없는 전경떼를 만나게 된다. 그들이 시민들의 눈총을 받으며 그토록 애써서 지키고 있는 높다란 담장 안에는 녹음이 울창한 데, 그 사이로 성조기가 휘날리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정동을 지배하는 것은 미국이다.

지금 그 자리에 있는 것만도 충분히 잘못되었거늘, 미국은 아예 한 술 더 떠서 그 담장 안에 직원용 아파트를 짓겠단다. 이렇게 되면 우리는 아예 정동으로 다니지도 못하게 될 것이다. 미 대사관저와 덕수궁 사이의 길은 아마도 완전히 통제되고 말 것이다. 이 길을 넘어서 신문로 쪽으로 가다보면 미 대사관저의 담장 아래로 넓은 빈 땅이 있는 것을 보게 된다. 가까이 가서 보면, 문에 '미 정부 재산'이라고 써 있는 팻말을 볼 수 있다. 세종로의 미 대사관이 옮겨올 땅이다. 미 대사관저도 대사관이 옮겨올 이 땅도 모두 경운궁이었다. 언젠가는 복원해야 할 곳이라는 뜻이다.

정동은 여전히 백년 전에 머물러 있다. 그러나 더 이상 제국주의 열강이 정동을 지배하게 해서는 안 된다. 우리가 호혜평등한 시대를 살고 있다면, 정동부터 그런 곳으로 다시 태어나게 해야 한다. 그 안에 아파트를 짓는 것은 고사하고 미국 대사관저가 파괴의 역사를 반성하고 다른 곳으로 옮겨가야 한다. 대사관을 정동으로 옮기겠다는 계획도 당연히 취소되어야 한다. 차제에 모든 일을 분명히 바로잡아야 한다.

홍성태 (문화연대 공간환경위원회 부위원장) rayhope@chollian.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