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도권 진입은 노동자대중의 정치적 진전을 위한 목표가 아니라 수단이다

'1표는 노동당에게'든 '다른 서울'이든 그 기본적 발상은 현장과 지역을 분리하는 것이다. 노동과 자본의 대립을 현장의 울타리를 넘어 일상으로, 지역으로 확장 확대해 나가야 한다.

고민택(노동자의 힘 선전위원장)

제도권으로의 진입과 제도권으로의 포섭 사이에 만리장성은 없다.

노동자대중의 입장에서도 제도권으로의 진입은 분명 매력적으로 보인다. 그것을 곧 부르주아 정치에 대항하는 수단이라고 보거나 자신이 정치 권력에 접근할 수 있는 손쉬운 또는 가장 빠른 길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사회의 경우는 제도권 진입의 경험 자체가 없는 까닭에 제도권 진입에 대한 노동자대중의 기대와 원망(遠望)은 더욱 크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최근 세계적 현상으로 등장하고 있는 제도권 좌파의 정치적 파산 또는 정체성 혼란에서 알 수 있듯이 제도권 진출이 노동자대중의 정치활동 영역을 확장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때문에 노동자대중이 부르주아 정치체제 내로 포섭될 가능성이 더 크다는 현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고 제도권 진입 자체를 부정하지 않는 이상에는 이와 같은 우려를 최소화 할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할 것이다. 그것은 직접적 대중투쟁전선을 강화하는 것을 제도권 진출보다 우위에 두
는 정치활동을 실천하는 길뿐이다. 그러나 이는 말처럼 결코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그 동안의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오히려 역사적 현실은 개량주의와 생디칼리즘을 가장 강렬하게 보여줄 뿐이다.
그런데 오늘의 자본주의를 이루고 있는 신자유주의 아래에서 정치지형은 국내외 모두에서 매우 모순적으로 움직이고 있으며 동시에 역동적으로 변화하고 있다. 신자유주의에 저항하는 대중행동은 갈수록 강화되고 있으면서도 노동자대중은 제도권 좌파에게 실망하여 돌린 발을 엉뚱하게(?) 자신이 원하지 않는 방향을 향해 걷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한국의 경우에도 발전노동자 투쟁에서처럼 노동자대중의 정치성과 계급성이 상승하고 있는 이면에 노무현 현상이 동시에 일어나고 있다. 예컨대 김대중 정권에 대한 반발과 저항이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노무현 현상으로 수렴되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와 같은 지형에서 민주노동당과 사회당은 이미 냉동식품과 다름없는 제도권 진입과 '현대적(?) 진보정당'을 마치 생물인 것처럼 포장하고 있다. 제도권 진입이 제도권으로의 포섭으로 귀결될 가능성은 대단히 높은 반면 이를 차단하기 위한 진
지하고 구체적인 논의는 이루어지고 있지 못한 현실이다. 모든 초점은 선 제도권 진입에만 맞추어져 있다. 그러나 제도권 진입이 그 어떤 것에 앞서 일단 통과해야 일차 관문은 아니다. 노동자대중의 투쟁과 정치활동이 제도권 진입으로 모아지게 하는 방식이 아니라 반대로 제도권 진입은 노동자대중의 투쟁과 정치활동의 성과로서 취할 수 있는 여러 경우 중에 하나로서의 지위와 의미를 가질 뿐이다.

'1표는 노동당에게' 또는 '다른 서울'이 아닌 '현장에서 지역으로'가 되어야 한다.

현장(공장)은 노동자계급의 진정한 정치적 기반이자 근거(진지)이다. 반면 부르주아 정치체제는 지역을 권력의 형성 단위로 삼고 있다. 그런데 현장에서 벌어지는 투쟁이 지배계급과의 대립을 보다 직접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것에 반해 지역은 그와는 반대로 지배계급과의 대립을 대부분 은폐·왜곡시키고 있다. 이 때문에 노동자대중은 현장과 지역 사이에 자신도 모르게 경계를 긋거나 서로 다른 공간으로 간주하기가 쉽다. 그 결과 현장이 지역에 의해 포위 당하는 처지로 몰리고 있다. 노동자대중이 현장에서는 계급으로 행동하다가도 지역에서는 개별화된, 탈계급화된 유권자 또는 국민으로 돌아서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민주노동당이 내세우고 있는 '1표는 노동당에게'나 사회당 서울 시장 후보가 말하고 있는, 그가 비록 자신을 사회주의자라고 공개적으로 밝힌 것과는 상관없이, '다른 서울'은 기본적으로 부르주아 정치체제에서 기능하고 있는 지역의 정치적 의미와 효과를 그대로 답습하는 것이다. '1표는 노동당에게'든 '다른 서울'이든 그 기본적 발상은 현장과 지역을 분리하는 것이다. 노동과 자본과의 대립을 현장의 울타리를 넘어 일상으로, 지역으로 확장·확대해 나가야 한다. 현장과 지역 사이의 차이조차도 이러한 원칙 아래에서 구체성을 획득해야 한다. 한편 부르주아 정치는 처음부터 득표 전략만 있을 뿐 계급형성 전략은 있을 수 없다. 그러나 노동자정치는 득표 전략이 아닌 계급형성 전략을 상위의 목표로 삼아야 한다. 득표 전략과 계급형성 전략은 일치할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런데 경험적으로 이 둘을 일치시키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는 것을 알 수 있다. 투쟁과 선거의 결합, 선거 공간을 통한 선전선동의 강화라는 원칙은 정책과 공약 앞에서 맥없이 무너지기 일쑤이다. 노동자대중에게 무릇 선거는 그것이 어떤 선거이든 한편으로는 지배계급과의 표 경쟁을 담고 있으며, 동시에 지배계급에게는 있을 수 없는 노동자계급 내부 조직화 성격을 띠고 있다. 내부 조직화에 실패하고 표 경쟁에서 이기기를 바라는 것은 연목구어(緣木求魚)일 뿐이다.

서로의 정치적 차이를 인정한 속에서도 연대가 필요하다.

노동자의 힘 역시 제도권 진입을 위한 정치활동을 부정하고 있지 않다. 다만 어떤 원칙과 경로를 통해 거기에 도달할 것인가와, 제도권 진입이 제도권으로의 포섭으로 나아가는 것을 어떻게 차단할 것인가를 놓고 민주노동당이나 사회당과 차이가 있을 뿐이다. 우리는 이번 6.13 지방선거에 조직의 후보를 내놓지 못했다. 한마디로 그럴 만한 역량을 갖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민주노동당과 사회당이 그럴만한 역량 또는 자격을 갖고 있는가는 여기서는 논외로 한다. 분명한 것은 그들과 우리 사이에 정치적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정치행위가 낳을 결과로부터 우리 역시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오해는 하지 말자. 성과가 있다면 그것은 그들의 몫이다. 문제는 우리의 우려가 현실로 등장할 경우이다.
지난 호 특집에서 다루었던 '신자유주의 포섭된 제도 좌파의 정치적 파산'은 결코 남의 일이 아니다. 바로 한국 노동자대중 자신의 문제이다. 민주노동당이 프랑스 대선 결과를 바라보는 한 측면으로 좌파의 분열을 문제삼고 있지만 우리는 비제도 좌파의 정치적 약진을 보다 주목하고자 한다. 물론 한국의 현실은 그와 꼭 같지 않다. 민주노동당과 사회당이 비록 의회·선거전략을 중심에 두고 있기는 하지만 한국에서는 아직은 비제도 좌파이다. 또한 한국사회에서 노동자 민중진영이 제도권 진입이 가능하게 할 수 있도록 정치지형을 진전시켜야 하는 것은 노동자 민중진영에게 주어져 있는 공동의 정치적 과제이다. 이를 위해서는 정치적 차이를 떠나 서로 연대해야 한다고 판단하고 있다. 우리는 민주노동당과 사회당이 노동자대중이 원하고 있는 방향에서 이번 지방선거에서 선전하기를 기대하고 있으며, 우리는 우리 자신의 독자적인 정치활동을
통해 한편으로는 노동자계급정당 건설을 위한 기반을 다져나가면서 다른 한편에서 이러한 활동의 연장 위에서 민주노동당이나 사회당과의 연대의 접점이 이루어지기를 또한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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