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균(노동자의 힘 정책위원)
오늘날 우리에게 보여지는 선택의 지점은 무엇인가?
민주노동당과 사회당, 그리고 녹색평화당이 독자적 정치 세력화를 내세우고 '6.13지방선거'와 '대선'에 자신의 모든 조직적 총력을 모으고 있을 때, 프랑스 대선은 사회당의 몰락과 극우파 르펜의 등장을 알려 왔다. 르펜의 등장에 대해 사람들은 '좌파의 분열'을 질책했다. 하지만 그것은 '대단결'과 '통합'에 익숙한 남한 좌파의 관점에서 그럴 뿐이었다. 이번 선거에서 몰락한 세력은 사민주의이고 비제도적 좌파는 약진했다. 그것은 유럽의회선거 전 블레어와 슈뢰더의 공동 선언이 오히려 사민당의 참패를 가져온 것처럼 이미 부르주아 지배 체제의 하위 파트너로 기능하는 제도적 좌파의 필연적 귀결이었다.
과거 사민주의와 케인즈주의는 유효수요 창출과 소득재분배 정책을 통해서 자본의 주기적 공황을 막아 왔을 뿐만 아니라 노동자 계급에 대한 자본의 계급 포섭 전략의 파트너로 기능해 왔다. 하지만 신자유주의 세계화는 더 이상 부르주아 국가가 담당해 왔던 공공성의 영역을 국가의 부담으로 떠 안으려 하지 않았다. 세계는 독점자본간의 '목숨을 건 전쟁'으로 비화되었고 사민주의는 '시장의 자유'를 받아들여 이미 자유주의화된 '제 3의 길'을 걸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스스로의 족쇄를 자본의 운명 안에 더욱 옭아매는 것이었다.
남한 자본주의 또한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길을 따라 갔다. '시장 합리성'과 '국가 경쟁력 강화'라는 이데올로기 하에 위로부터는 국민승리 21과 사회적 조합주의에 따른 노·사·정 위원회의 결성과 산별노조 건설이 진행되었으며 횡적으로는 시민운동의 급속한 성장과 전통적인 연고주의에 대한 비판이 잇따랐다. 하지만 IMF 위기를 계기로 대대적으로 진행되었던 신자유주의 개혁(?)의 결과는 빈부 격차의 확대와 사회적 안전망의 파괴였다.
'정치의 위기'는 기존 '정당 체제의 위기'로 귀결되었고 민주당은 '정치개혁-정당개혁'을 통해서 이 위기를 다시 재편해 들어가는 전략을 선택했다. 민주당은 국민경선제의 도입과 당권-대권의 분리, 집단지도체제의 도입을 통해서 '이반된 민심'을 지배체제로 포섭해 내는데 성공했으며 그것은 '노풍'으로 드러났다. 비록 무늬만 갖춘 형태에 불과하기는 하지만 한나라당도 이를 따랐다. 바야흐로 남한의 신자유주의 지배 체제는 더 이상 과거와 같은 족벌정당의 형식으로 그 지배 능력을 유지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이미 수구보수 세력은 '위기'를 느끼고 있었으며 그래서 그들은 스스로 합리적 보수로의 변신을 이야기해 왔다. 하지만 수구보수와 보수개혁간의 대립이 당적 조직을 통해서 구별되지 않는 이상, 양자의 투쟁은 상징적 이미지 이외에 다른 무엇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풍'은 '지배 계급에 대한 불신'을 지배체제 전체에 대한 것이 아니라 정당 정치의 대한 불신, 그 중에서도 특히 수구보수세력에 대한 불신으로 축소시킴으로써 이를 성공적으로 흡수해 냈다. 신자유주의 '개혁' 그 자체가 불러온 위기는 은폐된다.
여기에 '노무현'을 정점으로 하여 시민운동 세력과 일부 사회조합주의적 노동운동 세력이 편재되어 있다. '옥석논쟁'과 민노당 내의 후보들과 노무현과의 근접성을 보라. 모든 악의 근원은 '수구보수-반북'에 놓여진다. 하지만 민주당이든 한나라당이든 그들 서로가 공유하는 지반은 신자유주의이다. 하지만 이 문제는 은폐된다. 노무현에게 있어서 수구보수에 대해 합리적 진보세력, 또는 일부 시민세력을 포함하는 합리적 정당운동은 세계화가 'NGO'을 필요로 하듯이 명백한 '개혁'적 아군으로 기능한다.
따라서 한나라당/민주당으로 표상되는 지배 체제 개편은 그 결말이 무엇이든 간에 한국 사회가 세계화의 일부로서 기능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누가 집권을 하든 간에 신자유주의 '개혁'은 지속될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다시 민중을 생존 경쟁의 장으로 몰아 넣으면서 국가 경쟁력을 극대화하는 '사회의 합리적 재편'의 과정이 될 것이다.
남한 좌파의 '정치세력화' 담론은 어떻게 의회주의의 덫에 다시 갇히는가?
민주노동당과 사회당의 목표는 정확히 남한 사회에서 유럽의 좌파와 달리 그들 스스로 한번도 쟁취해 내지 못한 좌파의 정치적 시민권을 향해 있다. 프랑스와 독일, 그리고 최상으로서의 스웨덴은 환상의 모델이다. 따라서 그들이 보기에 현재 남한 좌파가 당면하고 있는 과제는 탈자본 또는 자본의 극복에 놓여져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너무나 비현실적이다. 그것은 먼 미래, 적어도 정치권으로의 진입 이후에 가능한 과제이다. 대신에 그들이 보기에 현재 남한 진보진영에게 주어진 과제는 제도 정치권으로 진보진영이 진출해서 수구보수/개혁보수의 양당체제, 정치상의 독과점 구조를 파괴하는 것이며 국가보안법이 실정법으로 현존하는 남한 사회에서 '사회주의'의 시민권을 확보하는 것이다.
김영삼-김대중으로 이어지는 민주화의 과정은 '민주화의 왜곡과 변질', 그리고 '이념적 지향성이 없는 기형적인 패거리 정당 구조의 산물'이다. 하지만 소위 '삼김시대'의 마감과 더불어 남한 사회를 지탱해 왔던 수구보수지배체제는 신자유주의 개혁과 함께 변해 가고 있다. 김종필을 위시한 박정희 파시즘과 근대화 세력의 징표였던 자민련의 몰락과 민주당이 도입한 '국민경선제'에서 확인된 '노풍'의 위력은 아래로부터 변화를 바라는 국민 대중의 열망을 표현하는 것이다.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이 변화를 어떻게 좌파의 정치권 진출의 열망으로 모아내는가'이다.
진중권과 강준만을 필두로 하는 옥석 논쟁은 바로 이 지점에 서 있다. 김민석(민주당)을 주장하는 사람은 노무현을 중심으로 진보진영의 단결과 수구보수세력에 대한 청산을 주장한다. 반면 이문옥(민노당)을 주장하는 사람은 개혁보수세력을 통한 민주대연합은 이미 김대중 정권을 통해서 파산된 것이라고 본다. 그래서 민주노동당 내의 좌파는 더 이상 비판적 지지론이 유지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대신에 그 자리에 들어선 것은 '범진보진영의 통합'이다. 그리고 그 선두에 아이러니하게도 진중권이 그렇게도 비판하는 전국연합과 한총련을 비롯한 소위 'NL'이 서 있다.
비록 현 정세를 진단하는 방식과 앞으로의 변혁의 상에 대한 입장도 다르지만 그들은 '수구보수세력'에 대한 '범진보진영의 대단결'이라는 관점을 공유한다. 민족주의 진영은 현재의 정세를 '조국통일의 대사변기'라고 규정한다. 그들은 3년 동안 '민족민주정당'과 '민족민주전선'을 구축하고 10년의 계획 속에서 '자주적 민주정부'를 수립하여 '통일'을 완수한다는 '통큰 전략 목표'를 내세우고 있다. 따라서 그들은 남한 노동자·민중 운동의 내용과 방향을 '반미자주화'와 '민족민주전선체'로 재편하고 상승 발전(?)시키겠다는 '남한 운동판 전체의 판정리'라는 거대한 '야심'을 가지고 있다.
사실, 여기에 민족주의 세력과 민주노동당 내 좌파가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가 내재되어 있다. 수구보수세력의 청산을 위한 광범위한 민주연합이 우선적인 과제냐, 아니면 보수개혁세력과는 분리정립된 진보진영의 독자적 정치 세력화가 우선적인 과제냐의 문제가 내재되어 있는 것이다. 이것은 애초부터 민주노동당 내에 존재하는 '계급정당'이 아닌 '계급연합정당'의 건설과 사회적 조합주의라는 틀, 즉 선거-의회 등 정치투쟁은 정당, 경제투쟁은 노조가 담당하는 협상 모델에 준하여 건설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을 묶는 것은 당면한 정치 일정-지자체, 대선으로 이어지는 선거 국면에서의 득표의 최대화라는 목표이다. 한편에서는 민족민주세력의 결집이, 다른 한편에서는 광범위한 민주-진보진영의 결집이 최대 득표 전략으로의 서로의 이해를 묶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이것은 다른 한편으로 2001년 12월14일 '통합진보정당' 창당을 위한 '일차적 과제로 사회당과의 통합' 추진 의사를 밝힌 민주노동당의 재창당 계획의 발목을 부여잡는 부메랑이 되어 돌아왔다.
민주노동당의 제안을 받은 사회당은 작년 12월21일 양당 대표 단독회담을 다시 제의했으며, 이에 1월18일 양당 대표회담이 성사되었다. 하지만 사회당은 민주노동당의 아킬레스건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었으며 그들은 '반조선노동당'을 내걸었다. 통합 논의를 던진 것은 민주노동당이었지만 오히려 그들은 역으로 압박당하는 처지에 놓였다. 민주노동당은 이를 피해 가고자 했다. 하지만 민주노동당이 피해 갈 수 없는 질문은 '반조선노동당 그 자체'가 아니라 사회당에서 제기한 '당대당의 통합에서 세워져야 할 원칙', 즉 사상적 통일성의 문제였다. 통합 논의는 벽에 봉착했다.
그러나 이 또한, 이미 의회주의의 길로 나서서 '제도권 진출'을 목표로 삼고 있는 남한의 좌파에 대해서는 진실의 절반만을 보여주는 것이었을 뿐이다. 최근 밝혀진 사회당과 민주노동당의 통합 협상은 결국 양당의 발목을 잡은 것은 '원칙'이 아니라 '후보' 문제였다는 점을 보여준다. 협상안을 최초로 공개한 주대환은 서울시장 후보를 '경선'으로 하자는 데 대해 사회당이 이를 거부했다고 주장한 반면 최혁은 애초 민주노동당이 서울시장 후보를 사회당에 할당하기로 한 이후 말을 바꾸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정확한 내막이야 당사자들 이외에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이것은 지방선거와 대선을 분리하자는 사회당의 입장과, 함께 처리하자는 민주노동당의 입장이 서로 대립하고 있는 상황을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6.13지방선거'와 '대선'을 앞둔 현재 남한의 좌파가 처한 자신의 자화상은 본질적으로 의회-선거 공간에서의 정치세력화에 놓여져 있다. 그것은 제도권에 포섭된 유럽의 사민주의와 공산당이 걸었던 길이다. 여기서 바뀐 것은 없다. 다만, 유럽이 아니라 천박한 자본주의가 지배하는 남한의 현실이 그 길을 다시 걸어가는 그들의 발걸음을 정당화해 주고 있을 뿐이다.
오늘날 남한 좌파에게 요구되는 혁신은 무엇인가?
사회당과 민주노동당은 통합 진보 정당의 '이념적 지향형'으로 '푸른 사회당'('생태주의와 마르크스주의' 양자를 포함하는 당의 정체성에 대한 합의)에 합의하였다. 하지만 코소보 사태에 대한 독일 녹색당의 파병지지와 아프카니스탄에 대한 파병 결정은, 녹색당이 집권 좌파로 전화되었을 때 그들 또한 제국주의 군사 동맹의 한 축으로 기능하는 역사의 아이러니를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이와 같은 제도적 좌파의 자기 배반은 단지 유럽과 같은 선진자본주의국가에서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남아공의 민족회의와 공산당, 니카라과의 산디니스타전선, 브라질의 노동자당 역시 제도권으로 진입한 이후 정체성의 혼란을 경험하고 있다.
그런데 남한의 제도적 좌파는 우리에게 주어진 '현실' 때문에 미래를 포기하는 일을 지속적으로 재생산해 가고 있다. 그것은 이미 세계사적 보편성에 의해 주어지고 있는 상황에 대한 남한 좌파의 지체 현상을 반영한다. 신자유주의 세계화는 사민주의적 프로젝트도, 노동계급 중심성을 상실한 신좌파적 이념에 의해서도 극복될 수 없는 길이다. 하지만 87년 대선에서 '노동자·민중의 독자적 정치 세력화'가 던져진 이래, 92년·97년 대선을 겪으면서, 특히 '일어나라 코리아'의 '국민승리21'을 겪으면서 노동자·민중의 정치세력화라는 남한 좌파의 화두가 선거를 통한 제도 정치로의 진입으로 굳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이번 발전파업의 결말이 보여주듯이 노동조합의 관료화와 개량화는 진보정당-노동조합으로 연결되는 자본주의 지배 구조로서의 하위 파트너의 제도화 가능성이 시작되었음을 예고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는 단순히 '선거를 통한 제도권'으로의 진입이 될 수 없다. 오히려 제도 정치권에의 참여는 보다 근본적인 다른 과제에 의해 결정되고 발전되어야 한다. 그것은 시민운동과의 연합, 또는 계급 연합적 전술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도 아니며 녹색 이념과 마르크스주의를 병행함으로써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일어나라, 코리아'는 국민승리 21의 캐치프레이즈였다. 이번에 내세운 민주노동당의 대중설득 방식은 '1표는 노동당에게'이다. 그것은 근본적으로 선거 공간이 낳는 '일인일표'라는 등가성의 원리와 특정 지도자를 선택하는 대의제적 원리에 근거한다. 따라서 계급은 없고 유권자만이 존재하며 정치적 주체로서 대중은 없고 득표의 대상으로서의 대중만 존재한다. 이것이 선거 공간이 만들어 내는 부르조아적 정치 주체화의 한계이며 '국민정당화'의 유혹이 살아나는 지점이다. 민주노동당의 황광우가 고백하듯이 좌파에게 선거는 체질적으로 맞지 않으며 성두현이 말하듯이 대중을 대상화하는 자기 배반적 고통이 뒤따르는 이유이다.
하지만 남한에서 좌파의 정치세력화는 90년대 이후 의회정당의 세력화로 고착화되어 왔다. 그런 관점에서는 '정치의 주체화'라는 보다 근원적인 정치 세력화에 대한 질문과 고뇌는 봉쇄된다. 장석준은 "노동계급의 성장을 가로막는 제도권 정치라는 장벽을 뚫는 활동으로 결정적 일격을 시도"한 연후에야 "우리는 비로소 주저없이 '노동계급'을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노동자 계급 그 자신의 정치적 조직화는 연기된다. 따라서 여기서 근본적으로 비어 있는 질문은 '노동자 계급의 정치적 주체화'와 '대체 권력의 조직'이다.
이제, 남한 좌파의 모색은 근본적으로 '혁신' 되어야 하며 새로운 관점이 정립되어야 한다. 그것은 우리를 남한이라는 지역적 한계 안으로 몰아 넣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대한 반대 투쟁의 중심축으로서 세계사적 흐름의 한 가운데 놓고 전세계 좌파가 겪고 있는 문제의 현지점에서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우리의 실천을 시작해야 한다. 그것은 결코 대중정당→계급연합정당→국민정당이라는 의회주의적 덫에 빠져드는 광범위한 연합전선의 구축 또는 제도권의 진입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개혁 파트너로 기능하면서 노동자 계급에 대한 헤게모니를 행사하고 제도화하는 시민운동과 제도권 좌파에 대항하는 데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그리고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복원해 내는 '노/자 대립'의 근원적 중심성을 축으로 하여 시민운동의 '공공성'과 '공공선'을 비판해 들어가면서 '시민'의 정치적 주체화와 지역 사회의 직접 통치체제를 구축해 들어가도록 투쟁을 지도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노동운동의 관료화와 체제내화에 대항하여 현장에서 생성되고 발전해 가는 현장 권력을 반관료적·반자본적·대체 권력의 맹아적 형태로 발전시켜 가는 투쟁을 전개해야 한다.



![[영상] 현대기아차비정규직 농성..](http://www.newscham.net/data/coolmedia/0/KakaoTalk_20180411_120413041_copy.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