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박정미 woodfish@kdlpnews.org
지난 23일 ‘한국발전산업노동조합 창립 1주년 기념식’이 열린 날은 간만에 장마비다운 굵은 빗줄기들이 전날 밤부터 계속되고 있었다. 마치 “1주년 기념일이지만 슬픈 날입니다”라고 깊은 한숨 섞인 말을 던지는 발전노조 류인관 복지후생실장의 마음을 대신하는 것처럼.
행사장인 평택화력발전소 강당에 마련된 3층 행사장에서 조합원들이 삼삼오오 모여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발전노조 조끼를 입고 있었는데 조끼의 색깔이 빨강과 남색 두 가지인 것이 눈에 띄었다. 색깔의 ‘깊은 의미’는 행사가 시작되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노동가수 최도은 씨와 노래공장 그리고 ‘몸짓’의 공연으로 행사는 처음부터 뜨겁게 달아올랐다. 신종승 발전노조 위원장직무대행의 기념사에 이어 회사측 대표인 이임택 남부발전 사장의 축사가 이어지자 실내에는 잠시 어색한 적막이 흘렀고 누군가의 “교섭이나 해라”라는 외침이 그 적막을 뚫고 나왔다. 잠시 술렁거릴 뻔한 분위기를 정리한 것은 민주노총 비상대책위 황민호 부위원장이었다.
“이 자리는 가슴에 카네이션을 꽂고 화환을 앞에 두고 넉넉해 할 자리가 아니다. 지금 이 자리는 우리 모두를 위해 감옥에 갇힌 이들을 위한 자리이다.”
차분히 이어지는 황 부위원장의 이야기에 장내는 숙연해 졌다.
“우리의 싸움은 정당하다. 그리고 현재진행형이다. 여기 노동자들의 빨간 조끼가 남색으로 바뀔 때까지는 절대 끝날 수 없는 싸움이다. 무엇보다 우리의 싸움은 공공부문 노동자들이 져야할 ‘역사적 책무’로서의 싸움이다. 그렇기에 발전싸움은 결코 발전만의 싸움이 아닌 것이다.”
장내는 우렁찬 박수소리로 가득 찼다. 그리고 빨간조끼와 남색조끼에 대한 의문이 풀렸다. 한달이 넘는 긴 파업을 끝내고 대다수의 조합원들은 현장으로 돌아갔지만, 3백명이 넘는 해고자들은 ‘빨간조끼’를 입고 복직투쟁을 시작해야만 했다.
행사가 끝나고 오명훈 평택지부 부지부장과 함께 평택공장 일대를 둘러보며 파업 이후 현장분위기들을 전해들었다.
“파업 후에 노조에 등돌린 노동자들이 있어요. 회사측의 강요도 있었지만 많은 경우 자발적으로 돌아선 사람들이라 상당히 적대적이죠. 그러나 이보다 더 큰 문제가 있습니다.”
오씨가 말하는 더 큰 문제란 회사측이 해고노동자들의 복직문제를 미끼삼아 서약서를 강요하고 기업별 노조로의 전환을 종용하는 것이다. 오씨는 돌아선 노동자들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무엇보다 산별노조의 힘을 키워 개별 조합원들에게 영향력을 미쳐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한편 뒤풀이 장소에서 만난 양기철 청평 양수지부 총무부장을 통해 청평 현장의 소식도 들을 수 있었다. 청평 현장도 나름대로 쉽지 않은 상황인 듯 했으나 평택보다 복귀자들 사이의 갈등은 훨씬 덜해 보였다.
“조기 복귀자들 사이에는 미안한 마음이 대부분입니다.” 그러나 그는 “회사측으로 돌아선 소수의 복귀자들이 민주노총에 대해 상당한 불신을 갖고 있다”며 소수인 그들 하나 하나가 현장에서 미치게 될 파급력에 대해 우려하고 있었다. 그는 이러한 상황에서 가장 힘든 것이 바로 해고노동자들 문제라고 말한다. 생각보다 해고상태가 길어짐에 따라 의지가 흔들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제 이들에게 절실히 필요한 것은 지난 파업에서 발전소 사기업화 반대에 동의했던 80% 국민들의 지지이다. 이러한 국민들의 지지가 인내심을 갖고 이어진다면 긴 시간을 견뎌온 발전노조의 싸움은 분명 승리할 것이다.
[ 98호] 7.29 ~ 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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