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문석/성공회대 강사
북한은 2002년 9월 12일 ‘신의주특별행정구 기본법’을 채택했다. 신의주특별행정구에 입법권, 행정권, 사법권을 부여하며 행정구의 법률제도를 2052년 12월 31일까지 50년간 변화시키지 않기로 했다. 또한 신의주는 국가가 위임한 범위에서 자기의 명의로 대외사업을 하며 행정구 여권을 따로 발급할 수 있게 됐다.
따라서 신의주는 국가의 위임 아래 국제적인 금융, 무역, 상업, 공업, 첨단과학, 오락, 관광지구로 변모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물론 신의주에 설립된 기업은 공화국의 노동력을 채용하도록 했다.
이례적인 외국 장관임명
이와 더불어 신의주특구의 첫 장관으로 네덜란드 국적의 양빈(楊斌: 유럽-아시아국제무역회사 총재)을 임명했다. 외국인 양빈을 임명한 것은, 홍콩을 모델로 삼아 적극적인 외자유치를 도모하려는 북한 당국의 의지라고 볼 수 있다. 이는 여타 장관직에 외국인을 임명하겠다는 의도에서도 엿볼 수 있다.
양빈은 신의주의 발전목표로 “동북아 지역의 고도로 발전된 경제중심지로서 최첨단기술, 부두가공업, 화물진출업, 금융업, 관광업을 기본으로 하는 국제적인 지역으로 건설”한다는 야심에 찬 목표를 설정하고 있다.
이러한 ‘신의주 기본법’의 채택은 2002년 7월의 경제개선조치 이후 연이어 급물결을 타고 있는 남북관계개선과 북일관계개선 과정에서 발표된 것이라 그 의미에 대해서 다양한 추측을 가능케 하고 있다.
개방정책의 신호탄
그러나 이러한 일련의 과정들은 2000년부터 전국적 규모로 실시되기 시작한 ‘새로운 경제전략’하에서 착실하게 준비된 시간계획 속에서 나온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크게 봐서 ‘새로운 경제전략’은 북한식으로 말하면 강성대국 건설의 구상이라 할 수 있겠지만 그 솔직한 핵심목표는‘경제정상화’이며, 이는 1999~2000년의 연합기업소 구조조정과 올해 7월의 경제관리개선에서 명확히 나타나고 있다. 따라서 ‘신의주 기본법’의 채택도 큰 틀에서는 ‘새로운 경제전략’ 하에서 (재정) ‘정상화’의 목표를 의도하면서 이뤄진 것이라 볼 수 있다.
사실 신의주특구에 대한 구상은 이보다 훨씬 이전인 80년대 말부터 이미 구상되기 시작했다. 당시에는 현실화 가능성에 대한 의구심이 있었겠지만 현재로선 다방면에서 가능성이 엿보였던 것이다. 이미 오래 전부터 신의주 내에서도 남신의주 개발이 본격적으로 진행됐다는 사실은 신의주 개발이 매우 심사숙고된 이벤트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신의주는 북한의 전통적 무역도시이자 유명한 경공업 도시이다. 중국을 중심으로 한 교역이 활발히 진행돼 왔으며 소규모지만 화교의 상업자본들이 이미 투자됐고 특구 지정 이후에는 유럽의 자본을 필두로 그 속도와 양에서 이전과는 비교되지 않을 정도의 봇물이 터질 것으로 예상된다.
입지적으로도 나진-선봉지역과는 비교될 수 없을 정도로 충분한 장점을 가지고 있으며 당장은 물류 인프라의 부족이 문제가 되고 있지만, 개발 가능성은 충분하다.
따라서 이번의 특구 지정은 상당히 오래 준비된 것이어서 성공할 확률이 높으며 개방정책의 신호탄으로 볼 수 있는 부분이 많다. 물론 대외환경이 성공의 변수로 작용할 것이지만 북미관계가 결정적인 변수가 될 것 같지는 않다.
북한의 대외개방 이미지는 미국에게 북한 압박을 위한 명분을 축소시킬 것이며 게다가 최근까지 꾸준히 개선돼 온 유럽국가들간의 활발한 경제교류는 현재로선 투자 규모가 미미하지만 점차 증가해 미국을 결정적인 변수로 만드는 기제들을 약화시킬 것으로 보인다.
국가제도 변화의지 담고 있지 않아
한편 이번 신의주특구 지정 조치가 개방정책의 신호탄이 된 것은 확실하지만 ‘특구’라는 개념 자체가 갖는 한정적 의미를 생각한다면 그 의미를 확대 해석할 수는 없다. 결국 신의주에 한정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번 조치는 빈약한 국가 재정에 대한 대응으로 활용되는 측면이 크기 때문에 전면적인 시장경제로의 전환으로 보기는 힘들다.
게다가 홍콩식 모델이라고 언급되는 상황에서 중국과의 경험을 비교할 때 시장을 공론화시키고 국가제도변화를 도모했던 중국과는 상당한 괴리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신의주특구를 통해서 국가제도를 그에 맞춰 변화시키려는 의도를 절대 갖고 있지 않다.
따라서 신의주특구는 적어도 현재로서는 일차적으로 북한경제의 정상화(재정정상화)라는 목표 하에서 추진됐다는 점과 이차적으로는 대외개방에 대한 노력을 외부에 알림으로써 그동안의 고립적 이미지를 벗어나려는 정치적 고려 하에 있다는 이중적인 관점에서 이해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 105호] 9.30 ~ 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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