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앞 천막농성장 누가 지키나

천막을 떠나는 하이닉스매그나칩 최화용 씨를 만나다

국회에서 비정규법안 논의가 미뤄지면서, 28일 민주노총 총파업은 자동 폐기됐다. 금속노조는 “단식투쟁 이상의 결의로 3월 총파업을 준비하자”는 결의를 23일 임시대의원대회에서 결정하고, 대의원들의 뜻에 따라 위원장과 지부장의 단식을 중지하기로 했다.

  청주로 내려가는 하이닉스매그나칩 조합원

23일 저녁 국회 앞 천막농성장을 지키던 금속노조 4개 투쟁사업장 조합원들은 과자봉지를 앞에 두고 소주를 한잔 마셨다. 그리고 24일 아침 KM&I를 시작으로 하이닉스매그나칩, 현대하이스코 투쟁사업장 조합원들은 군산으로, 청주로, 순천으로 내려갔다. 그들의 가방에는 침낭과 땀엔 절은 투쟁조끼만이 담겨있다. 올라올 때와 마찬가지로 내려가는 그들의 손에 쥐어진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올라올 때와 마찬가지로

천막은 오리온전기 조합원들이 지키기로 했다. 결국 천막에 남는 사람은 투쟁사업장 조합원들이다. “1년 6개월을 공장에도 들어가지 못하고, 쫓겨 다니며 싸우고 있다. 직장 없이 싸우는 게 너무 힘들다. 일하고 싶다. 일할 직장만 있으면 어떤 싸움도 두렵지 않겠다.” 하이닉스매그나칩의 최화용 조합원은 일하러 청주로 가는 게 아니다. 다시 거리에서 싸워야 한다.
  최화용 씨

“자취방에 기름 떨어진지가 오래 됐어요. 가스렌지도 켤 수 없지요. 가스 살 돈이 있어야지요. 전기장판을 틀고, 부탄가스 한 통 사와 휴대용 렌지에 밥을 해 먹어요. 정말 비정규노동자가 되지 않고서는, 비정규 해고자가 되지 않고서는 이 마음 모를 겁니다. 우리가 얼마나 절실한 지를.”

하이닉스매그나칩은 도지사가 직접 나서 협상자리를 만들었다. 두 번의 대화 자리가 열렸다. 대화를 위해 천막도 걷고 현수막도 치웠다. 하지만 대화는 제대로 진행되지 않는다. 원청이 하이닉스와 매그나칩 두 군데인데, 협상은 하이닉스측만 나오고 있다. 하이닉스는 매그나칩 조합원 일은 상관할 바가 아니라고 한다. 또한 고용에 대해서는 이야기 할 수 없다고 한다.

“매그나칩은 협상 자리에 나오지도 않으니 대화 상대가 있어야 (문제를) 풀어가지요. 협상도 고용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 게 아니에요. 생계비를 지원할 테니 그 선에서 마무리하자는 거지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돈이 아니에요. 일을 할 수 있는 직장이 필요한 거지요. 가정이 깨지지 않는 직장이 필요해요.”

돈보다 가정이 깨지지 않는 직장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기사에 어찌 나올지 몰라 속을 터놓고 이야기 할 수 없다고 한다. 1년 6개월을 거리에서 쫓겨 다니며 싸워왔는데, 얼마나 더 버틸지 솔직히 약속할 수 없다고 한다. 조합원들의 투쟁의지도 시간이 길어지다 보니 늘 한결 같을 수는 없다고 한다.

“이제 새 임원도 뽑히고 그랬으니 잘 될 것 같아요. 상급단체에서 일회성 싸움하지 말고, 계획적인 싸움을 했으면 좋겠어요. 국회일정에만 질질 끌려가지 말고, 준비된 싸움, 이기는 싸움을 했으면 해요.”

민주노총이 하이닉스매그나칩 문제에만 매여 싸우기를 바라지 않는다고 한다. 큰 틀에서 준비하고 싸워야 한다고 최화용씨는 말한다.

“상경을 하라면 상경해서 싸울 거고, 죽을 각오로 싸우라고 하면 죽기로 싸울 겁니다. 하지만 답답해요. 국회일정에 따르는 (비정규)법안 싸움도 중요해요. 하지만 우리가 아니더라도 금속노조 투쟁사업장 가운데 한 곳이라도 이겼으면 좋겠어요. 위원장과 지부장이 단식을 하며 금속노조가 밀고 나갔잖아요. 법안은 연기됐지만 비정규투쟁을 이어갈 고리는 있었는데….”

이어갈 고리는 있었는데

가방을 챙기는 최화용 씨의 손은 아쉬움에 떨고 있다. 휴대폰이 끊긴 지도 오래다. 있는 가정도 깨지는 판국에 연애는 꿈도 꾸지 않는다고 한다. 올해 나이 스물여덟. 나이스물에 지녀야 할 삶의 무게보다 몇 곱이나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청주로 내려가는 승합차에 몸을 싣는다.

“잠깐만요. 내려가서 다시 투쟁을 일굴 겁니다. 대화로 모든 게 해결될 거라고 믿지 않아요. 이제 마음으로 하는 투쟁을 할 겁니다. 흔들리지 않는 마음으로 비정규 싸움 꼭 끝장낼 겁니다.”

  국회의사당 앞 천막농성장은 끝까지 자리를 지킨다

하이닉스매그나칩 조합원을 실은 승합차는 국회의사당 지붕 쪽으로 사라진다. 천막농성장 앞에는 경찰차가 가로막고, 가로수엔 푸른 금속노조 깃발이 걸려있다. 의사당 지붕의 푸른 칠은 바랜지 오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