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슈, 에이즈 환자 생명 담보로 '배짱'

한국로슈 사장 "푸제온, 3만원 이하면 공급 불가"


에이즈 치료제 '푸제온'에 대해 한 병당 3만원(환자 1인당 연간 약값 2천2백만 원)의 가격을 요구하며, 국내 공급을 거부하고 있는 초국적 제약회사 로슈가 '3만 원 이하로 책정될 시 약을 공급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재차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울스 플로어키거 한국로슈 사장은 3일 건강사회를위한약사회(건약)와 HIV/AIDS인권연대 나누리+(나누리+) 등 보건의료.인권단체들과의 비공개 간담회에서 이 같이 밝혔다고 간담회 참석자들이 전했다.

서울 삼성동 인터켄티넨탈 호텔에서 진행된 이날 간담회에는 로슈 측에서 플루어키거 사장을 비롯해 김홍배 상무, 윤순남 이사, 최인화 이사 등이 참석했고, 단체에서는 윤 가브리엘 나누리+ 대표, 강아라 건약 활동가, 명숙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 등이 참석했다.

지난 2004년 5월 국내 시판이 허가된 푸제온은 같은 해 11월 1병당 2만4천996원으로 보험에 등재됐으나, 로슈는 가격이 낮다며 4년째 국내 시장에 공급을 거부하고 있다. 로슈 측은 현재 푸제온 가격을 3만970원으로 인상해줄 것을 요구하며, 보건복지가족부에 약가조정신청을 제기한 상태다.

한국로슈 사장 "국민건강보험공단에 가서 항의하라"

간담회 참석자들에 따르면, 이날 플로어키거 사장은 단체들이 약가 인하를 요구하며 항의하자 "한국에 건강보험시스템이 있는데, 뭐가 비싸냐"며 "국민건강보험공단에 가서 항의하라"고 말했다.

또 플로어키거 사장은 푸제온 약가 책정의 근거를 묻는 단체 관계자들의 질문에 "A7(선진7개국) 기준으로 책정한 것"이라며 기존 입장을 되풀이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플로어키거 사장이 약가 책정의 기준으로 제시한 A7 조정가는 그간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고, 현재 보건복지가족부 등 정부에서는 약가 조정 시 이 가격을 참조하지 않는다.

그간 시민단체들은 "제약회사들이 약가 책정 기준으로 삼는 A7 약가 참조책자가 실거래 가격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 하고, 또 선진국과 경제 수준이 다른 한국에 이를 단순 적용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주장해왔다.

호주와 뉴질랜드만 하더라도 푸제온의 약값은 1병당 각각 2만7천567원, 2만6천140원으로 로슈가 한국에서 요구하고 있는 가격보다 낮다. 또 미 국방부, 보건소, 해안경비대, 보훈처 등 이른바 BIG4 공급가격 역시 1만9천806원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날 플로어키거 사장은 이 같은 단체들의 지적을 "A7 기준은 여전히 유효하고, 세계은행은 한국을 '상위 레벨'로 분류하고 있다"는 말로 일축했다. 또 그는 푸제온의 한국 공급가격이 BIG4 가격 보다 높은 것에 대해서는 "군대에 공급하는 가격이니, 그것과 비교할 수 없다"고 반박한 것으로 알려졌다.

"푸제온 연구개발비 나도 모른다"

한편, 그간 로슈 뿐만 아니라 스프라이셀을 생산하는 브리스톨마이어스큅(BMS) 등 초국적제약회사들은 고가약 논란이 일 때 마다 "연구개발과 마케팅에 엄청난 돈이 투입됐다"고 강변해왔다.

이에 대해 시민단체들은 "연구개발과 마케팅 비용을 감안하더라도, 초국적제약회사가 터무니없는 가격을 요구하며 폭리를 취하고 있다"고 반박하며, 연구개발비 등의 공개를 요구해왔다. 즉 푸제온 등 합리적인 약가를 책정하기 위해서는 신약 개발에 투입된 연구개발비 등 제반 비용을 공개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 같은 연구개발비용 공개 요구에 대해 이날 플로어키거 사장은 "한국로슈는 본사가 아니라서, 나도 연구개발비용이 얼마인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고 단체 관계자들은 전했다.

푸제온의 연구개발비에 대해 "나도 모른다"는 플로어키거 사장의 고백이 사실이라면, '연구개발비가 비싸서, 약값이 비싸다'는 제약회사들의 논리는 앞뒤가 맞지 않게 됐다. 한국로슈 측이 주장하는 가격(3만970원) 뿐만 아니라, 한국정부가 등재한 가격(2만4천996원) 역시 어떤 근거로 책정된 것인지 궁금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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