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참담한 현장에서 할 말을 잃었어요.”

[박병학의 글쓰기 삶쓰기] 하느님의 이름으로 노동자 몰아내는 강남성모병원

2호선 서초역에 내리니 밤 아홉 시였다. 지하철을 타고 있을 때는 몰랐는데 밖으로 나와 보니 빗방울들이 허공을 적시며 밤하늘에 뽀얗게 서려 있었다. 우산을 받으니 머리 위로 흐득흐득 물방울 듣는 소리가 들렸다.

강남 성모병원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농성을 벌이고 있는 곳에 찾아온 것은 이번이 두 번째였다. 뭔가 사들고 가야 할 것 같아서 두리번거리며 가게를 찾아보았지만 무지막지하게 커다란 건물들만 눈에 뜨일 뿐, 물 한 병 살 만한 곳도 보이지 않았다. 주변을 한참 걸어 다니며 가게를 찾다가 나는 이마를 쳤다. ‘아차, 여긴 부자 동네 강남 한복판이지!’ 대형 할인점인 줄 알고 찾아간 곳은 서울 팰리스 호텔이었다. 어이가 없었다. 도무지 정체를 알 수 없는 수십 층짜리 건물들 사이를 요리조리 파고 들어가다가 간신히 편의점을 찾았다. 가진 돈으로는 컵라면 대여섯 개밖에 살 수 없었다.

결국 열 시가 다 돼서야 성모병원에 다다랐다. 기억을 더듬어 농성장이 있던 곳으로 가니 비옷을 입은 사람들 십여 명이 비를 피해 옹기종기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나는 조심스레 다가가 말을 걸었다.

“저...... 안녕하세요? 지난주에 왔던 사람인데......”

“아, 네! 어서 오세요!”


앞으로 어떻게 싸워 나가야 할지 논의를 하는 중이었다고 했다. 지난 번에 대강 낯을 익힌 사람들이 여럿 보였다.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 보건의료노조 서울본부, 민주노총 서울본부에서 나온 사람들도 함께 있었다.

“요새는 상황이 좀 어떤가요? 제가 지난주 목요일에 오고 못 와서요.”

“저쪽 보시면 아시겠지만...... 오늘 새벽에 용역 깡패들이 또 쳐들어와서 천막 다 때려 부수고 갔어요.”


저쪽에는 무참히 허물어진 채 더 이상 천막이 아니라 쓰레기라 해야 할 것들이 너저분하게 뒹굴고 있었다. 철인지 뭔지 알 수 없는 금속으로 되어 있는 버팀목들은 그악스럽게 발길질을 당한 듯 깍둑깍둑 동강이 나 있었다. 벽에는 이런 대자보가 붙어 있었다.

‘방금 전 (새벽 5시 30분) 용역 깡패 수십 명이 아수라장으로 만든 현장입니다’

나는 그동안 이곳에서 벌어진 상황을 정리해 보기 위해 조합원들에게 물어 가며 지난주 수요일부터 오늘 월요일까지 무슨 일들이 있었는지 간단히 적어 보았다.

수요일 : 오후 5시쯤 천막 설치. 밤 11시쯤 용역 깡패 침탈. 천막 철거. 조합원들과 몸싸움. (몸싸움이라고는 했지만 사실 여성 조합원들과 우락부락한 용역 깡패들 사이에 몸싸움이란 말은 당치도 않다. 실제로 용역 깡패들이 천막을 뜯어 들고 가자 천막에 매달려 같이 질질 끌려간 조합원도 있었다고 했다.)

목요일 : 천막 없이 깔개만 깔고 농성장에서 노숙. (이날이 내가 방문한 날이었다. 싸늘한 초가을 밤을 조합원들은 천막도 이불도 침낭도 난로도 없이 버텼다.)

금요일 : 새벽에 용역 깡패가 천막 없는 농성장에 다시 침탈. 현수막과 피켓들을 몽땅 강제로 빼앗아 감. (이날에 쳐들어 온 용역 깡패들은 여자들이 많았다고 했다. 고양이가 쥐 생각해 주는 걸까? 촛불집회에 일부러 여경들을 내보내는 수작과 비슷했다.) 오전에 천막을 다시 설치함. 밤에 연대 단위 사람들이 많이 와 주어서 다행히 그 날 밤은 무사히 넘겼다고 함.

토요일, 일요일 : 별 탈 없이 지냄.

월요일 : 새벽에 용역 깡패들 세 번째로 침탈, 천막 허물어뜨림. 카메라를 가장 먼저 빼앗아 갔다고 함.


그러니까 오늘, 9월 22일 월요일이 천막 농성 엿새째 되는 날이었다. 엿새 만에 용역 깡패와 세 번이나 맞닥뜨려야 했던 조합원들은 어처구니가 없어 다들 웃기만 했다.

“무슨 놈의 기독교 신자들이 이래? 대화할 생각은 안 하고 계속 깡패들만 보내고 있어요.”

강남 성모병원은 가톨릭 중앙 의료원(CMC)이 운영하고 있는 병원이다. 병원장과 간부들이 있지만 실제로는 신부님들과 수녀님들 몇 명이 알짜배기 권리를 쥐고 있다고 했다. 지난주 목요일에 방문했을 때도 그랬지만 오늘 와서 있는데도 신부님들 수녀님들이 병원 곳곳을 돌아다니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지난 2002년에는 성모병원 정규직 노조가 217일 동안 파업을 한 적도 있다고 했다.

병원 내부 사정은 지난주에 왔을 때 얼추 들을 수 있었다. 이 병원에서 일하는 사람들 700여 명 중 400여 명이 직접 고용 노동자들이고 나머지 300여 명이 간접 고용 노동자들이라 한다. 그 중 간호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65명인데 9월 말에 계약 만료가 되는 파견직 노동자들이 그 65명 가운데 28명이나 된다.

2년 이상 고용하면 무조건 정규직으로 바꾸어 주어야 하니 병원 측에서는 계약 만료가 되는 노동자들에게 일방적으로 해고 통보를 했다. 비정규직법이라는 막돼먹은 악법 때문에 어디서든 비슷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기륭전자, 이랜드, KTX, 코스콤 같은 유명한 장기투쟁사업장들은 말할 것도 없고, 언론과 네티즌들의 관심 바깥에 있는 다른 수많은 비정규직 투쟁 사업장들에도 비정규직법 때문에 한순간에 거리로 내몰린 노동자들이 바글바글했다. 언제는 노동자들 편을 들어 주는 정권이 이 나라에 있었느냐만, 사람다운 생활을 누리기 위해 일을 하겠다고 나서는 사람들에게 이 시대 정권과 자본가들은 너무나도 교활하고 악랄하게 굴었다. 인정사정 보지 않았다. 돈이 안 된다면 사람은 얼마든지 잘라 내도 좋았다. 당장 내 손에 이윤이 생기도록 누군가 다른 사람들은 굶어야 했다. 미친 시절이었다.

8월 18일에 보건의료노조에 가입한 성모병원 비정규직 조합원들은 8월말까지 계속 투쟁을 준비해 가다가 9월 초부터 본격적으로 병원 안에서 선전전을 진행했다. 그리고 9월 17일에 처음으로 천막 농성을 시작했고 그 날 밤에 곧바로 용역 깡패들에게 침탈당했다. 매일 저녁 여섯 시 반에 농성장 앞에서 촛불 문화제도 연다고 했다. 농성은 하고 있지만 파업을 하는 것은 아니라서 돌아가면서 근무도 나간다고 했다.

역시 지난주 목요일에 들었던 이야기 한 토막.

“9월 초에는 이런 일도 있었어요. 가톨릭 중앙 의료원이랑 병원장한테 계속 면담을 신청했지만 들은 척도 안 하더라구요. 그래서 우리가 인사팀장한테 찾아가서 따졌죠. 그렇게 하니까 인사팀장이 원장이랑 만나게 해준다고 했어요. 어디론가 알아보러 가더니만 지금은 원장이 없다고 하더군요. 그러고는 자기 입으로 약속을 했어요. 다음날 원장 꼭 만나게 해주겠다고. 그런데 조금 이따가 인사팀장이 또 말을 바꾸는 거에요. 자기는 그런 말 한 적이 없다고 딱 잡아뗐어요. 그래서 우리가 열 받아서 병원장실 앞으로 가서 한참 동안 따지고 있으니까 파견업체 간부들이 몇 명 오더라구요. 간부가 두 명이었고 웬 깡패 같이 생긴 놈도 한 명 같이 왔는데 나중에 그놈이 누구냐고 물어보니 안 가르쳐 줬어요. 아마 용역 깡패였을 거에요. 아무튼 파견업체 간부들이 우리한테, 당신네들 여기 아닌 다른 곳으로 발령 내겠다고 협박했어요. 물론 부당 전직이죠. 우리가 막 항의하니까 그쪽에서 나중에 사과는 하긴 했어요. 결국 병원장이랑은 못 만났죠...... 더 웃긴 게 뭔지 아세요? 성모병원 옆에 곧 새 병원이 생기는데요. 거기는 거의 백 퍼센트를 비정규직으로 채울 거래요.”

빗발이 조금씩 엷어지기 시작했다. 진보신당 사람들이 새 천막을 가져오기로 했다는 말이 들렸다. 나는 조합원들 틈에 섞여 들어가 보았다. 민주노동당에서 나온 한 활동가가 조합원들의 이야기들을 열심히 받아 적고 있었다.

“여기 성모병원이 처음에 오면 적응하기 힘들어요. 일이 너무 많아서 커피 한 잔 마실 시간도 없고 화장실 갈 시간도 없어요. 그게 적응이 되고 숙달이 돼야 할 수 있는 일들인데 이제 일이 손에 익을 만하니까 그만두라는 거야.”

“정말 꾀 안 부리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매일 출근해서 일했어요. 안 그러면 잘리잖아. 비정규직이고 파견직이니까 밉보이면 그냥 잘리는 거야. 그래서 우리는 정규직들보다 몇 배는 더 죽어라 열심히 일했어요. 근데 그걸 병원 측은 모르지.”

“비정규직이라서 정규직들보다 인격적으로 못한 것도 아니고 일을 못하는 것도 아니에요. 그 사람들(정규직)은 예전에는 다 정규직으로 뽑았으니 그때 들어와 정규직인 거고, 우리는 시대를 잘못 만나서 비정규직이 된 거죠. 지금은 몽땅 비정규직으로 뽑는 시대잖아요.”

“아까 촛불 문화제 때 발언도 했지만, 정말 말 그대로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야.”

“이판사판이야. 우리끼리 뭉치는 수밖에 없어.”


나는 담배를 한 대 피워 물었다. 흰 가운을 입은 의사들이 두셋씩 짝을 지어 어디론가 바삐 걸어가고 있었다. 간호사들도 보였다. 그리고 늘 마음씨 착하게만 보이는 수녀님들도 보였다. 신을 믿는다는 것은 신 말고 다른 것은 아무것도 믿지 않는다는 의미일까? 하느님의 종을 자처하는 사람들이 왜 노동자들이 벌이고 있는 고단한 싸움을 모른 체하는 것일까? 왜 본체만체 싹 입 닦고 그냥 휙 지나가 버리는 것일까? ‘노조는 성경에 나오지 않는다’는 이유로 노동조합을 ‘사탄의 무리’라 낙인찍었던 이랜드 박성수 회장, 독실한 종교인이라는 그 허울 좋은 노인네가 문득 떠올랐다.

나는 담배를 피우며 그제야 주변을 둘러볼 수 있었다. 화단 여기저기에는 알록달록한 피켓들이 놓여 있었다.

‘긴급속보! 오늘(9/22) 새벽 5시 반 수십 명의 깡패들이 또 비정규직 조합원 농성장을 짓밟았습니다. CMC는 깡패 병원입니까? 항의하는 여성 조합원의 팔을 비틀고 심지어 핸드폰으로 침탈 장면을 찍으려는 사람의 핸드폰까지 빼앗으려 했습니다! 용역깡패 폭력침탈 CMC를 규탄합니다!!’

“환자들을 위해 인력 충원은커녕
간호 파견 조합원 대량 해고
이게 하느님의 뜻인가요?
- 민주노동당 서울시당 서초구 위원회

정당한 노조 활동에 보복성 부당 전직 웬 말?
필요할 땐 한 식구라 하더니 이제 와서 소모품 취급
계약 해지 철회! 부당 전직 철회!
- 보건의료노조 강남성모병원 비정규직 조합원 일동


부당 전직? 뭔가 짚이는 것이 있었다. 나는 담배를 비벼 끄고 조합원 두어 명과 잠시 이야기를 나누어 보기로 했다.

“건강은 좀 어떠세요?”

“힘들지. 잘 먹지도 못하고. 잠도 못 자고. 아예 불면증 생긴 사람도 있어. 우리 대표는 오늘 새벽에 침탈당했을 때 머리를 부딪쳐서 다치기도 했고......”

“얼마나 다치셨는데요?”

“심한 건 아니야. 근데 쉬어야 하는데 여기 또 나와야 하잖아요.”

“앞으로 어떻게 싸워 갈 것인지에 대한 계획이나 방침 같은 게 있나요?”

“우선 내일(9월 23일) 있을 ‘비정규직 행동의 날’ 집회에 결합하려고 해요. 지금 이 싸움이 우리만의 투쟁이 아니라 전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문제로까지 확대돼야 하는 거잖아요. 다른 사업장들과의 연대를 만들어 가는 것이 지금 가장 시급하다고 생각해요. 우리 문제도 알려 나가구...... 그리고 24일에는 보건의료노조 서울본부 주관으로 집중 촛불 문화제가 있어요. 그 날 병원장과 면담이 있을 텐데, 집회는 아마 면담이 끝나고 하게 되겠죠. 그 면담 결과에 따라 촛불 문화제 내용도 달라질 것 같아요. 하지만 솔직히 면담으로 상황이 크게 개선되리라는 생각은 안 해요. 면담 결과가 어떻게 나오느냐에 따라 25일 이후의 투쟁 계획을 세우려 하고 있어요. 면담이 아무런 성과 없이 끝나면 아무래도 투쟁 수위를 점점 높여갈 수밖에 없겠죠.”

“지난주에도 들었지만, 지금도 근무는 계속 하고 계신 건가요?”

“그게...... 오늘은 출근하니까 일을 안 주더라구요. 관리자 수간호사가 우리한테 대기발령자라고 일을 줄 수 없다고 해서......”

“대기발령이요?”

“농성자들 중 5명이 본사로 파견 발령이 나 버렸어요. 우리가 본사에서는 할 수 있는 일이 없거든요. 대기발령인 셈이죠. 명백한 부당 전직이어서 노동부에 고소 고발을 할 예정이에요. 노동위원회에는 부당 노동해고 구제신청도 할 거구요. 오늘 노무사랑 얘기도 했어요.”


결국 피켓에 쓰여 있는 ‘부당 전직 철회!’는 파견업체에서 들이댄 협박이 현실이 되고 나서 등장한 구호였다. 도대체 종교라는 탈을 쓰고 있는 이 병원의 정체는 뭘까? 나는 다시금 가슴이 답답해졌다.

“정규직 노동자들은 이 투쟁을 보고 어떤 반응을 보이나요?”

“정말 뜨겁죠! 저희가 농성 들어갈 때부터 정규직 분들이 많이 걱정해 줬어요. 어려울 거다, 많이 다칠지도 모른다...... 그러면서 전에 217일 동안 투쟁한 경험도 이야기해 주시고..... 농성장에 지지 방문도 많이 오셔서 격려해 주시고 먹을거리들도 사다 주시고 그래요. 오늘은 병원 로비에서 연좌 농성하고 여기로 와서 노숙하고 있는데 정말 많은 분들이 와서 격려해 주고 가셨어요. 지원금을 모아서 주시는 분들도 있었구요. 정규직 노조와도 투쟁 내용은 공유하고 있어요. 오늘 새벽에 천막 침탈당한 것 때문에 정규직 노조에서 원장실 쪽에 항의 방문 갔다고 하더라구요.”


이 자리에 지금 정규직 노조에서 나오신 분이 있냐고 물으니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정규직 노조나 보건의료노조가 이 싸움에 현재 어느 정도나 힘을 보태고 있는지 물어보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내가 다녀 본 투쟁 사업장들마다 희한하게도 열에 아홉은 상급단체에 대해 좋게 이야기하지 않았다. 성모병원 비정규직 조합원들의 투쟁은 이제 막 시작하는 단계에 와 있기에, 벌써부터 정규직 조합원들과 상급단체(성모병원 조합원들의 경우에는 보건의료노조)를 들먹이며 함부로 싸잡아 이야기할 것까지는 없을 것 같았다. 더구나 정규직 조합원들의 호응이 무척이나 뜨겁다고 하지 않았나! 보건의료노조에서도 이것저것 지원해 주고 있다고 했다. 나는 시간이 조금 더 지나 성모병원 비정규직 조합원들과 더 가까워지면 보다 깊은 부분까지 물어보기로 했다.

“뭐 필요한 물품들은 없으시구요?”

“음...... 뭐가 있을까? 워낙에 연대 단위들께서 많이 가져다 주셔서요.”

“식사는 어떻게 해결하시는데요?”

“병원 식당에서도 먹고, 후원 들어오는 음식들도 있고, 그냥 굶기도 하죠.”

“밤에 추우실 텐데 침낭 같은 건 있으세요?”

“침낭은 있어요. 아, 생각났다! CCTV가 필요해요!”


그러자 옆에 있던 다른 조합원이 웃으며 맞장구를 쳤다.

“맞아요. CCTV나 경보기 같은 거. 깡패들이 순식간에 모든 걸 걷어가서 자료 하나를 못 남겼어요. 그놈들이 다 때려 부수는 걸 찍어 뒀어야 하는데...... 오늘 새벽에도 카메라를 제일 먼저 뺏어갔어요.”

오죽하면 조합원들이 감시 카메라를 갖고 싶어 할까. 엿새 동안에 세 번 침탈. 무서운 일이었다. 병원을 운영하는 종교인들이 보기에 용역 깡패들은 성전을 수행하는 십자군이나 다름이 없을까? 병원 측 종교인들은 농성을 벌이고 있는 비정규직 조합원들을 사탄의 무리라 생각하고 있을까? 올바른 길로 이끌어야 하는 어린양들이라 생각하고 있을까? 모를 일이었다. 종교라는 것이 자본의 추악한 맨 얼굴을 가려 주는 훌륭한 가면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이미 이랜드라는 경우가 똑똑히 보여주지 않았나! 과연 성모병원은 어떨까?

“이 싸움을 아직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특별히 하고 싶으신 말씀이 있나요?”

다들 한참을 궁리하더니,

“이 참담한 현장에서...... 할 말을 잃었어요.”

“직접 와서 보세요. 그게 가장 좋을 거 같아요.”

“용역 깡패를 세 번이나 본다는 게 참......”


나는 다시 담배를 붙여 물었다. 농성장에 연대하러 온 몇몇 아는 얼굴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진보신당 당원들이 천막을 가져왔다. 원래는 농성장을 밤새 지키는 당원들이 쓰려고 구입했던 천막인데 조합원들의 천막이 치는 족족 깡패들 손에 묵사발이 되다 보니 결국 조합원들이 지낼 수 있도록 천막을 가져오게 되었다고 했다.

다 세워진 것을 보니 천막이 아니라 텐트 같은 것이었지만 그나마 추운 초가을 밤을 조합원들이 떨지 않고 지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다행이었다. 천막에는 큼지막한 현수막 하나가 걸려 있었다.

계약해지 철회! 비정규직 정규직화 촉구!
강남 성모병원 파견 조합원 천막 농성 6일차
-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강남 성모병원 비정규직 조합원 일동


곧 있으면 열 두시였다. 하루가 지난 것이다. 지난주 수요일부터 시작한 농성이 어느덧 7일째를 맞이한 것이었다. 이제는 날짜를 헤아리기도 싫은 기륭전자, 날짜를 어림해 보면 숨이 턱턱 막히는 KTX와 이랜드...... 성모병원 조합원들이 울며 웃으며 투쟁 100일 200일 문화제를 진행하는 모습은 보고 싶지 않았다. 장기투쟁사업장이라는 눈물겨운 이름을 붙여 주고 싶지 않았다. 적어도 종교의 이름으로 의술을 행한다는 이곳 성모 병원에만큼은.

나는 집에 가서 글을 써야 한다는 핑계로 그곳을 나왔다. “고맙습니다!” “또 오세요!” 조합원들의 밝은 목소리가 내 가슴을 아프게 찔렀다. 당장 오늘밤에도 깡패들이 쳐들어올지 모른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천막은 또다시 허물어지고 있을지 모른다. 이 시대는 거리로 내몰린 조합원들에게 비를 피하고 잠을 청할 조그마한 공간조차 허락해 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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