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적인 학교를 꿈꾸던 유천초 교사들, 멈춰서다

[여성, 노동의 기록] 입시 위주의 교육정책과 성차별의 억압이 만들어 낸 부당징계

  높은 아파트 앞에 위치한 낮은 유천초등학교의 모습. [출처: 정은경 유천초분회장]

쭉 늘어선 고층아파트를 마주 본 키 작은 건물에 알록달록 무지개색으로 ‘유천초등학교’라 쓰여 있다. 며칠 전 유천초등학교에서 일하다 징계당한 남정아 교사와 함께 유천초등학교에 들렀다. 입시 위주의 교육을 바라는 사교육 세력이 얼마나 세길래, 교육감은 학기 중 혁신학교 지정을 취소해야 했을까? 나는 무척 궁금했다. 비싼 아파트임을 뽐내듯 학교 주변에는 영어, 수학학원이 즐비했다. 강릉시도 여지없이 초등학생부터 입시 위주의 교육에 달궈져 있었다. 유천초에 자녀를 보낸 학부모들은 전문직도 많고 직접 학원을 운영하는 이도 있어 입시에 신경을 많이 썼다.

우리는 시원한 저녁 바람을 맞으며 교정을 걸었다. 그녀의 꿈이 녹아있는 학교라 그런지, 건물을 소개하는 남 교사의 눈빛이 빛났다. 덩달아 신나면서도 왠지 마음 한구석이 시큰해졌다. ‘얼마나 다시 돌아가고 싶을까?’

유천초등학교는 2020년 3월 1일 개교와 동시에 혁신학교로 지정된 학교라, 교사를 비롯한 교직원들은 개학 전부터 분주히 일했다. 학생들에게 필요한 설비가 다 갖춰지지 않아서 행정직원이건 교사건 간에 일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공교육의 좋은 모델이 돼야 할 혁신학교라 선생들은 이것저것 신경을 많이 썼다. 건물에서도 학생들의 권리를 보장하려 한 흔적이 보였다. 우선 교실이 남달랐다. 1학년 교실 문은 바로 밖으로 나올 수 있도록 하나 더 만들었다. 한창 친구들과 뛰어놀고 싶은 학생들을 고려한 것이다. 1학년 교실에는 학생들이 좋아하는 다락방도 있다. 건물 사이에 학생들이 놀고 쉴 수 있는 의자와 나무가 있었다. 운동장은 고학년 남학생의 축구장으로 전용되지 않도록 하나의 운동장을 더 만들었다. 젠더와 나이를 고려한 것이다. 둥그렇게 마주 보는 안전바가 있는 그네들이 눈에 띄었다. 학생들의 아이디어로 만든 놀이기구라 했다.

교장실도 교장 혼자만 쓰는 권위적이고 넓은 방이 아니라 학생들이 드나들며 책도 읽고 교장선생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곳이었다. 그러나 혁신학교가 취소되면서 교장실도 바뀌었다.

행정실의 비협조와 젠더 권력

혁신학교는 협력이 필수적이므로 다른 학교에 비해 논의할 일이 많다. 원래 민주주의는 불편하고 힘들다. 몸에 밴 구태를 빼려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 혁신학교에 대해 알고 싶지 않다던 행정실장은 학교 운영에 필요한 행정을 제대로 지원하지 않았다. 단지 공무원 시험을 보고 들어온 행정공무원이라는 직종의 차이 때문만은 아니었다. 부당하게 징계당한 김나혜, 윤용숙, 남정아(이하 김남윤) 세 명의 교사는 만약 유천초의 교장이 남성이었다면, 저렇게 노골적이고 심하게 혁신학교 운영을 방해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유천초의 교장은 승진점수를 쌓아 교감을 거친 사람이 아니라, 내부공모제를 통해 부임한 평교사 출신 여성이었다.

수업 준비를 위해 물품을 요청하면 행정실에선 예산편성을 핑계로 안 된다고 했다. 행정실 집기는 외상으로 구입하면서도, 강릉교육지원청과 협의까지 마친 물품 요청 제안은 거부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개학을 앞두고 강릉에 폭설이 온 날, 직접 포크레인을 불러 눈을 치운 것은 학교 관리 담당인 행정실 직원이 아니라 교장이었다. 모두가 아침 일찍 나와 눈을 치웠지만 행정실장은 오전 9시에 출근했기 때문이다. 그는 남성인 교감에게는 예의를 갖춰 얘기하면서도 여성이 다수인 교사들에게는 큰소리를 내기도 냈다. 이렇게 유천초 사태에는 성별 위계가 작동했다.

교육청도 행정혁신에는 무관심했다. 교장은 행정실장의 비협조 문제를 강원도교육청에 알렸다. 교육청의 행정과장이 학교에 와서 행정실장에게 협조를 지시하면 행정실장은 알겠다고 했지만 그때뿐이었다. 차기 교육감 선거 때문인지 이유는 알 수 없으나 교육청은 행정실의 해태에 대해 제대로 조치하지 않았다. 오히려 교육청은 유천초의 내부 갈등이 크다며 일방적으로 혁신학교 지정을 취소했다.

진보교육감의 일방적인 혁신학교 지정취소

혁신학교는 다른 일반 학교와 달리, 학생들을 학교의 주체로 보고 입시 위주의 교과과정에서 벗어난 학생 중심의 교육을 지향한다. 강원도에서 혁신학교의 바람은 2010년 당선된 민병희 강원도교육감의 공약 이행으로 시작됐다. 2011년부터 운영해 온 ‘강원행복더하기 학교’는 2020년 춘천지역 6개 학교(만천유치원·근화초·호반초·금병초·유천초, 창촌중)를 비롯해 총 45개 각급 학교와 유치원이 참여했다.

그러나 유천초의 위치는 고층아파트의 위세만큼 센 입시 위주의 교육 열풍 한가운데 있었다. 이는 혁신학교의 지향과 다르다. 개교한 학교라 전학 온 학생들이 많았는데 그들은 이미 학원에 다니고 있었다. 반면 징계받은 세 명은 모두 포남초등학교에서 혁신학교를 경험했다. 평등한 학교, 학생들이 자유로운 학교를 꿈꾸었다. 김나혜 교사는 포남초등학교에 자녀를 보낸 학부모이기도 했고, 포남초등학교에서 4년을 근무했기에 혁신학교가 학생들과 교사, 교직원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를 잘 알고 있었다.

  단식 중인 윤용숙, 김나혜, 남정아(왼쪽부터). 부당하게 징계된 세 명의 성을 따서 ‘김남윤’으로 부르는데 유천초 상황을 모르는 사람들은 한 사람의 이름으로 착각하곤 한다.
[출처: 유천초공대위]

“포남초 학생들은 폭력에 민감했어요. 누구도 장애가 있다고 놀리거나 차별하지 않았어요, 누군가 장난으로 상대의 약점을 말하면 ‘그거 장난 아니야’ 말할 정도였어요. 새로 온 선생님이 먹을 것을 걸고 경쟁을 시키려면 학생들이 외려 ‘선생님, 저희 학교는 그런 경쟁 안 하는데요’라고 당당하게 말하기도 했을 정도였어요. 물론 학생들도 변하기까지 2년 이상은 걸리죠. 선생님들도 변화하는 데 시간이 걸렸고요. 그리고 교직원들과도 교류하려고 애썼어요. 급식실에서 일하는 분들도 모두 선생님으로 호칭을 통일했고요.”

장애인에 대한 차별이나 괴롭힘이 없다 보니 포남초등학교에는 유난히 장애 학생들이 많았다. 특수반이 두 학급이나 될 정도였다. 화장실도 교사와 학생의 구분을 없애고 모두가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일부 교사들은 처음엔 어색해했지만 익숙해졌다. 돈이 없어 학습 물품을 못 가져오는 일이 없도록 준비물실을 따로 만들기도 했다. 포남초에서 경험한 것들을 유천초에서 실현하려고 했으나 민병희 교육감의 일방적인 혁신학교 취소로 좌절됐다.

부당징계와 합의, 그리고 합의 이행 촉구라는 싸움

혁신학교 지정취소는 마치 계획이나 한 듯이 순식간에 이뤄졌다. 2021년 6월 14일 한국노총 소속의 강원도교육청노동조합이 도 교육청에 유천초 감사요구서를 보내고, 7월 7일부터 3주간 감사가 시작됐다. 전교조가 불공정 감사를 규탄했으나 소용없었다. 8월 31일 유천초에 대한 자율학교 지정 취소 공문이 내려왔다. 사유는 “비합리적 의사결정 구조에 의한 학교 운영, 구성원 간 지속적 갈등 유발”이다. 이에 대해 학부모들로 이뤄진 유천초 학교운영위원회도 혁신학교 지정취소에 대한 유감 표명 성명을 발표했지만, 혁신학교 취소 결정을 되돌릴 수 없었다.

10월 6일 강원도교육청은 징계위원회에 징계 의결을 요구했다. 김나혜 교사와 윤용숙 교사는 견책, 남정아 교사는 정직을 당한다. 그리고 유천초가 아닌 먼 학교로 발령이 났다. 윤용숙 교사는 고성으로, 김나혜 교사는 인제로, 남정아 교사는 태백이었다. 반면 책임 있는 위치에 있는 남성 교감은 면책됐다. 세 명의 교사들을 비롯한 전교조 유천초분회는 이에 항의하며 강릉지역 시민사회단체와 유천초공대위를 구성했다. 그리고 2021년 11월부터 강원도교육청 앞에서 천막농성을 하고 단식투쟁도 했다.

단식 18일 차이던 2022년 7월 1일, 새로 취임한 신경호 교육감은 일련의 사태에 대해 유감을 표명하고 세 교사의 명예회복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합의했다. 부당 전보된 세 교사를 강릉지역의 학교로 인사발령 내겠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당시 교섭에 나가 합의했던 홍옥순 전 유천초분회장은 진보교육감도 거들떠보지 않은 문제를 새로운 교육감이 다루려고 해 기대를 했다고 했다. 그러나 그것은 착각이었다.

합의 후 9개월, 합의와 관련해 이행된 것은 하나도 없었다. 심지어 세 명의 교사가 교육감 면담을 요청하자 경찰을 동원해 폭력적으로 쫓아내기까지 했다. 선생들은 퇴거불응으로 경찰에 폭력적으로 연행됐다. 혁신학교를 통해 학생들과의 평등한 관계 맺기를 배웠다는 윤용숙 교사는 부당징계 투쟁을 하며 교사의 계급적 위치에 대해 깨닫게 됐다고 했다.

“혁신학교인 포남초등학교에 다니면서 세상을 알게 되고, 학생들에게 많이 감동받고 좋은 교사로 거듭날 수 있었어요. 이번에 강원도교육청의 행정폭력과 부당징계를 경험하고 싸우면서 계급성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됐어요. 우리 사회를 움직이는 기득권 세력을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걸 알았달까요.”

학교는 성별, 나이, 정규직과 비정규직, 학생과 교사, 교직원 등 직종과 고용 형태가 다른 주체들이 꾸려가는 곳인 만큼 여러 위계가 작동하고 차별이 발생하는 곳이다. 여기에 세월호 기억 교육이나 기후위기 교육 등을 비난하는 사교육 세력의 영향력까지 더해졌다. 여러 억압체계에 대해 직시하지 않고는 유천초 교사들에게 벌어진 부당함을 제대로 이해하기 어렵다. 그들은 평등을 가로막는 여러 억압에 맞서면서도 매번 스스로 돌아보며 싸웠다.

그렇게 싸운 지 벌써 2년째. 오는 6월 13일 부당징계와 관련한 행정소송의 결과가 나오면 투쟁의 양상은 달라질 것이다. 그러나 유천초분회 교사들은 투쟁으로 알게 된 세상에 파열구를 내기 위한 걸음을 멈추지는 않을 것 같다. 깨질 때 터지는 강력한 빛을 본 사람들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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