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주장]색깔로 대결하자

노회찬/민주노동당 사무총장
고양이답게 생긴 고양이가 쥐의 얼굴을 한 고양이를 비방하고 있다. 쥐처럼 행동했다고 욕하더니 급기야는 장인이 쥐였다는 사실까지 폭로하며 그래서 실제로 쥐일지도 모른다는 암시를 계속 주고 있다.

물론 쥐의 얼굴을 한 고양이는 자신이 쥐가 아닐뿐더러 쥐처럼 행동한 적도 없다고 항변하고 있다. 그런데도 이를 지켜보던 쥐들 중 일부는 쥐의 얼굴을 한 고양이를 쥐로 착각하기도 하고 또 다른 일부는 최소한 친쥐적인 고양이로 믿기도 한다.

물론 지난 5년간 훨씬 더 쥐처럼 생긴 고양이한테서 물려죽은 쥐가 한 두 마리가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하고 있는 쥐들도 있다. 언론도 덩달아 난리다.

실체가 쥐냐 고양이냐를 따지는 신문도 있고, 친쥐적이냐 아니냐를 판별하려는 방송도 있다. 그러나 쥐면 무슨 문제가 있냐고 성내는 언론은 하나도 없다.

진정 역사는 반복되고 있다. 한번은 비극으로, 또 한번은 희극으로. 과거 군부독재자들이 민주, 진보인사들을 좌익공방, 이데올로기공세로 탄압한 것이 비극이었다면 최근의 색깔논쟁은 차라리 희극이다.

유럽연합 15개국 중 11개국에 좌파정부가 집권하고 있는 현실에서 제1 야당의 총재까지 지내고 대통령후보로 나서겠다는 이회창씨가 '좌파적 정권'이란 표현으로 김대중정부를 '비판'하는 것은 슬픈 코메디일 수밖에 없다.

87년 김대중씨가 대통령으로 당선된 것은 좌익공방, 이데올로기공세가 실패한 것을 의미한다. 새로운 시대가 낡은 악습을 거부한 것이다.

우리가 주목하는 색깔론 공방의 핵심은 색깔론의 철학적 배경, 이데올로기적 전제에 있다. 색깔론을 제기하는 측이나, 색깔을 부정하는 쪽이나, 색깔론 공방을 혐오하고 말리는 사람조차도 모두 '붉은색은 나쁘다'는 동일한 이데올로기적 전제를 갖고 있다는 점이다.

흰색으로 통일되어야 한다는 철학을 깔고 있는 것이다. 민주노동당은 흰색을 붉은색이라 몰아 부치는 이데올로기공세를 비판하며, 붉은색은 나쁘다는 편향된 철학을 반대한다.

동시에 민주노동당은 색깔구분을 반대하는 색맹정치도 반대한다. 그것은 곧 흰색정치, 보수정치의 권력독점을 유지하자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 한국정치는 색깔별로 분별정립 되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보혁구도이다. 보혁구도가 되면 소수로 몰려 죽는다는 피해의식도 이젠 극복되어야 한다.

발전소 매각을 반대하는 국민이 80%가 넘는 것처럼, 국민들도 이젠 색깔 있는 정치, 색깔 있는 정책을 원하고 있다. 바로 보혁구도 속에서만 이런 정책대결이 이뤄질 수 있고, 정책정당도 발전할 수 있다.

민주노동당은 왜 창당되었는가? 그것은 한국정치 지형에 보혁구도를 만들어 내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보혁투쟁을 통해 좌파정부를 세우기 위해서였다.

지금의 색깔공방이 권력투쟁을 위한 시대착오적인 이데올로기 공세가 아니라 진지한 이념논쟁이라면 이인제씨와 이회창씨는 상대방을 잘못 택한 것이다.

이인제씨는 애써 부인하는 불쌍한 노무현씨를 잡고 늘어질 것이 아니라 정정당당하게 민주노동당에게 문제제기 해야 한다. 이회창씨도 좌파정부를 반대한다면 신보수주의 김대중정부를 헐뜯지 말고 민주노동당의 강령에 시비를 걸어야 할 것이다.

그래서 민주노동당은 작금의 색깔공방이 4류 정치의 추한 모습을 보이는 것으로 끝날게 아니라 이념과 정책을 둘러싼 진검승부로 발전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민주노동당이 최근 3당간에 혹은 대선후보끼리의 공개토론회를 제안한 것도 바로 국민들 앞에서 제대로 된 색깔논쟁을 벌이자는 것이다. 색깔공방이 흑색 쇼가 아니었다면 민주당과 한나라당, 이인제씨와 이회창씨는 민주노동당의 토론 제안을 회피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민주노동당은 이미 진검승부를 위한 준비를 끝내고 기다리고 있다.
[83호] 4.15 ~ 4.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