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통계약직 홍준표위원장 인터뷰 "저들은 노동조합 조직형식만을 깼을 뿐"

저들이 노동조합이라는 조직 형식을 깼을지 몰라도 노동자들이 살이 있는 한 우리 가슴속에 있는 깃발은 내릴 수도, 투쟁의 정신을 깰수도 없다. 깃발아래 만났던 동지애를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현장에 있는 한 언젠가는 다시 만날 수 있다고 확신한다.

전주희(노동자의 힘 선전부장)

2001년 3월29일 목동전화국 점거농성 건으로 구속된 한국통신계약직노조 홍준표 위원장이 14개월간의 감옥생활을 마치고 5월19일 출소했다. 홍위원장이 출소했을 때는 노조해산 건이 결정된 뒤였다. 석방 이틀전에 출소결정 사실을 알았고 "아직 어리둥절하지만, 한통 상황은 감옥에서 거의 들었다"고 하는 홍준표 위원장을 출소한지 나흘만에 노조 사무실이 있는 공공연맹에서 만났다. 517일간의 파업투쟁을 정리해내기에는 다소 무리도 있겠지만 지난 투쟁과정에 대한 생각들과 이후 전망에 대해 듣는 자리를 마련했다.

- 가석방 된다고 했을때 노조 해산총회 사실 알았나?

= 노조에서 5월7일 교도소로 전화를 해서 자세한 얘기는 없었지만 투쟁을 마무리한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인터뷰를 하겠다고 했는데, 소측이 안된다고 해서 급작스럽게 편지를 쓰게 됐다. 급히 저녁에 써서 다음날 보냈다. 투쟁 마무리 시기에 동지들의 결정이 나더라도 나는 동지들의 결정에 따를 것이고, 3.29이후 더 힘들었던 투쟁에 함께하지 못해 미안하고, 결정이후라도 500일 넘게 투쟁한 상처의 아픔을 잘 치유하기 바란다는 내용으로 쓰면서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 감옥에서 나온지 얼마되지 않아서 주변상황에 대해 아직 정리가 덜 끝났을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과정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고 계실 것이다. 한통계약직 투쟁은 신자유주의 물결의 한 가운데에서 비정규직 투쟁을 열어 나오고 또 비정규직 투쟁의 전망을 새롭게 정립할 수 있는 커다란 계기를 마련했다. 결과는 노동조합의 해산으로 마무리되었는데, 그동안의 투쟁에 대해 어떻게 정리하는가가 대단히 중요한 시점이라고 본다.

= 517일의 총파업투쟁은 2000년 12월14일부터 시작되었다. 당시 조직국장이었는데 전국조직을 어떻게 많은 동력으로 끌어낼수 있을까가 가장 큰 관건이었다. 1월부터 서울에서 부산까지 직접 돌면서 조직했었다. 생각해보면 2000년 3월 우리가 노조를 건설했지만 법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법외노조로 남아있을 때부터가 투쟁의 출발이었고 그 당시 총파업 투쟁을 조직하기는 힘든 시기였다. 7개월 여 지난 뒤 법내노조가 됐고 총파업투쟁을 조직하게 된 것이다. 법외노조 때 정규직과의 불협화음들, 그리고 합법화 이후 정규직노조 쪽의 외면을 넘어 정규직 연대를 끌어냈었다면 투쟁이 많이 달라졌을 텐데… 많은 아쉬움이 있다.
우리 투쟁이 비정규직 투쟁의 선봉이라는 커다란 의미를 부여하지 않더라도, 각자가 처해있는 불안정 노동에 대해 인식을 같이 하고, 노동자적 입장으로 활동가 못지 않게, 자본에 대항하는 자랑스런 역량들이 성과다. 우리 투쟁은 처음 단사만의 문제, 계약직 원직복직만을 요구하며 싸워오다가 정규직화 쟁취로 목표를 잡으면서 전사회적인 투쟁으로 나아갔다.
그런 한편으로 투쟁과정에서 정규직 노조들과 연대하는 데 많은 한계를 느꼈다. 민주노총이나 연맹은 주된 구성원이 정규직 노조들이지만 우리 비정규직 노동조합의 상급단체이기도 하다. 우리 노조의 상급단체 임에도 불구하고 민주노총과 연맹에서 정규직과의 연대를 잘 이끌어내지 못한 것들이 아직까지 마음의 상처로 남아있다. 그것들을 넘지 않으면 비정규직 문제는 한계를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 한국통신의 경우 특히 구조조정 과정에서 비정규직 조직화와 투쟁이 일어났던 만큼, 계약직노조의 투쟁은 구조조정 철폐투쟁의 맥락을 본질상 가지고 있었고, 바로 그 점이 정규직과의 핵심적인 연대고리가 아니었나 한다. '비정규직 철폐 정규직화 쟁취' 투쟁으로 진전했다고 말씀 하셨는데, 동의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구조조정 저지투쟁과 비정규직 문제가 투쟁 속에서 분리되면서 계약직 투쟁이 비정규직 문제로 좁혀진 측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

= 노조를 만들 당시 구조조정으로 정규직마저 비정규직으로 몰리고, 정리해고 되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정규직 문제까지 눈을 돌릴 여력이 없었다. 계약해지된 7000명의 원직복직이 최대관건이었다. 하지만 정규직 노조와의 연대를 생각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연대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정규직 노조에서는 완전히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일례로 2000년 12월19일 명동성당에서 한통노조 총파업이 6일간 진행됐었다. 그때 우리들은 900명의 동지들이 상경해 연대하기 위해 갔지만 이동걸 집행부는 집회참여조차 거부했다. 이유는 '조합원의 정서에 맞지 않다. 계약직을 끌어안을 수 없다'는 거였다. 정규직 집행부는 그렇게 판단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우리와 정규직들과는 전화국에서 형, 동생하는 사이였다. 정규직 조합원들은 오히려 우리와의 연대를 원했다. 집회참여조차 거부당했을 때 굉장히 충격을 받았다. 그냥 눈물이 나왔고, 조합원들은 많이 분노했다. 그냥 되돌아오면서 '정규직과의 연
대가 정말 쉽지는 않겠구나'라고 느꼈다. 한국통신 민영화는 정규직과 비정규직 가릴 것 없이 막아야 살 수 있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한통노조는 잘못된 판단을 했다.

- 정규직과의 연대는 반드시 필요하지만, 또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상급단체에서 비정규직 철폐나 미조직사업을 내걸고 있기는 하지만 가시적인 성과를 찾기는 힘들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하나?

= 3월29일 목동전화국 점거 다음날 연행되었을 때, 오종렬, 단병호, 양경규 동지가 면회를 와서 '미안하다. 오늘아침 뉴스를 보고 알았다'고 했다. 연맹과 민주노총을 믿고 투쟁을 결의해서 전화국 점거농성에 들어갔는데… 정말 할말이 없었다. 결국 아무말도 못했다. 속된 말로 발가벗고 달려들지 않으면 비정규직 철폐는 힘들다. 정규직 노조나 상급단체 지도부들이 정규직 조합원들간에 비정규직들과 같이 할 수 있는 내부 조직화없이 정규직 노조가 비정규직과 함께 하겠다는 것은 망상에 불과하다. 롯데호텔노조의 경우를 봐도 정규직 내부의 조직화가 이루어졌기 때문에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쟁취할 수 있었던 것 아닌가.

- 3.29 점거 이후 투쟁주체 내에서 많은 쟁점과 혼란이 있었다고 본다. 교섭과 투쟁의 문제, 투쟁의 목표와 이후 조직적 과제가 명확하게 정리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데?

= 어려운 시기에 2선 지도부가 힘든 투쟁을 끌어왔다. 그러나 정확한 목표를 조합원들에게 제시하고 조직했어야 하는데 '한풀이 투쟁' 식으로 조직하다보니까 투쟁이 질곡된 면이 있다. 그러다가 교섭에 말렸다고 생각한다. 그런 투쟁은 결코 어떤 성과도 얻지 못한다는 것을 조합원 자신들이 아마 더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 노조해산을 결정했던 총회에서 이춘하 직대가 '노조깃발은 지금에 와서 별로 중요치 않다. 중요한 것은 고용보장'이라고 했다. 그런 판단이라면 이후 도급현장에 가서 다시 현장을 조직한다는 것도 어려운일 아닌가.

= 한국통신 정규직 노조도 처음에는 20명부터 출발했다고 한다. 계약직 노조도 8명부터 시작했다. 당장은 어렵겠지만 처음 시작할 때보다야 낫지 않겠나. 투쟁했던 동지들이 있고, 사측의 탄압유형도 이제는 다 꿰뚫고 있다. 빠른시간 내에 지방순회를 할 예정이다. 나오자마자부터 전화가 많이 온다. 예전에 투쟁했다가 접은 동지들이 울면서 '내려오신다면 보고 싶다'면서. 이후 한국통신 계약직이 아니라, 한국통신에 속해있는 모든 비정규직들을 조직하고 싶다. 기회가 된다면 현장가서 뒹굴고 싶다. 앞으로 계획은 좀더 고민해야겠지만 800만에 육박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노조가 됐든 아니든 조직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 517일만에 노동조합 깃발이 내려졌다. 한통자본이 조직을 깬 것이지만, 노조깃발을 세우기 위한 과정자체가 처절했던 투쟁 그 자체였는데, 안타까움을 넘어 정확하게 짚어야 할 것 같다.

= 아직 노사합의문은 안 읽어봤다. 보고싶지 않았다. 굉장히 만족스럽지 못한 것으로 마무리되는 것이 제일 가슴 아프다. 투쟁을 하면서 조합원 하나하나에게 닥쳤던 경제적, 가정적 아픔들로 고통스러워하고, 각자가 피폐되어 있다. 조합원들이 출소 환영식을 해줬는데, 환영식이 아니라 초상집 같았다. 내 얼굴을 보자 감정들이 격해져서 눈물을 흘리는데 많이 속상했다. 그래서 중간에 마이크 잡고 5분 동안 이야기했다. 마지막에는 동지들이 웃는 모습으로 마무리했다. 이제 내가 앞으로 어떤 역할로 동지들을 추스려 나갈까를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부담스럽기도 하다. 동지들이 나를 바라보는 것처럼 처음의 그 생각들을 변치않게 간직할 수 있도록 앞으로 반드시 그 역할을 할 것이다.
저들이 노동조합이라는 조직 형식을 깼을지 몰라도 노동자들이 살이 있는 한 우리 가슴속에 있는 깃발은 내릴 수도, 투쟁의 정신을 깰수도 없다. 깃발아래 만났던 동지애를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현장에 있는 한 언젠가는 다시 만날 수 있다고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