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fore & After-매향리]폭격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르뽀, 매향리 미공군 사격장

윤재설 dllp21@kdlpnews.org
매캐한 화약냄새, 고막이 찢어질 듯한 굉음, 육안으로 조종석을 비롯한 전투기의 윤곽이 뚜렷이 보일 정도로 저공비행을 하는 A-10기가 퍼붓는 기총사격.

2000년 6월 2일 잠시 중단됐던 미군의 사격연습이 재개된 매향리의 풍경이었다. 바로 전날 한미합동조사단이 “객관적인 피해사실은 없다”는 조사결과 발표가 있자, 5월 8일 주민 6명이 다치고 7백여 가구의 벽에 금이 가고 유리창에 깨지는 막대한 피해를 일으킨 미군의 오폭사고가 일어난 후 잠시 중단됐던 사격연습이 재개된 것이다.

욕실의 타일이 떨어지고 벽이 갈라지는 피해를 입어왔는데도 “아무 이상 없다”는 조사단의 발표에 매향리 주민들은 넋을 잃었다. 50년 동안 매향리 주민들이 겪어온 고통을 뒤늦게 알게 된 민중운동진영은 그해 여름 내내 매향리 사격연습장의 즉각적인 폐쇄를 요구하는 투쟁을 벌였다.

그로부터 2년 다시 찾은 매향리는 예전 모습 그대로였다. 한 가지 달라진 게 있다면 주민대책위 사무실이 있는 언덕에 매향리 상징조형물 ‘자유의 신 in KOREA’이 설치돼 있다는 점이다. 임옥상 화백이 매향리 폭격연습장에서 나온 포탄 탄피로 만든 6미터 높이의 이 작품은 바로 앞 사격장을 내려다보고 있다. 반세기동안 주민들이 당해온 고통은 역설적인 ‘자유의 신 in KOREA’에 그대로 표현돼 있었다.

지난 4일 대책위 사무실에서 전만규 위원장을 만났다.
“기총사격을 중지시키는 성과는 있었지만 육상사격장이 반환대상에서 제외됐잖아요. 언제 다시 사격이 재개될 지 우려되는 부분이죠. 농섬 폭격은 계속되고 있고….”

기총사격이 2000년 8월에 중단됨에 따라 더이상 마을 상공으로 저공비행하는 폭격기는 볼 수 없다. 하지만 농섬의 해상사격장에서는 낮이고 밤이고 가리지 않고 폭격이 계속되고 있다. 게다가 마땅히 반환돼야 할 기총사격장은 여전히 미군이 소유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한미 양국이 합의한 연합토지관리계획(LPP)에서 미군은 매향리 사격장을 반환대상에서 제외한 것이다.

15명의 주민들이 1998년 2월 제기한 민사소송은 1, 2심에서 부분승소해 지금 대법원 계류중이며 2천여 주민들이 추가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기총사격장 인근 주민들은 투쟁한 보람을 느끼고 있어요. ‘이렇게 좋을 수 없다’며 고맙게 여기고 있죠. 노인분들도 이제 아주 사격장 없애버려야 한다고 말하고…. 주민들의 단결심이 점점 고조되고 있어요.”

이화1리 이장인 김영철씨(48)의 말이다. 실제로 주민들은 기총사격이 중단된 후 소음이 줄어든 것은 실감하고 있었다. 대책위 사무실 바로 옆 고추밭에서 일을 하던 김금단(62) 할머니가 기총사격이 실시될 때의 고통을 전했다.

“아이구. 말도 마. 바로 옆에 사람 얘기도 못 들었어. 입만 쳐다보고 알아듣는 거야. 텔레비전을 볼 수 있나, 전화를 받을 수 있나. 그래도 요즘은 꽝꽝거리는 소리밖에 안 들려서 좋아.”

이곳에서 30년 살았다는 매향슈퍼의 박순자씨(55)는 그래도 언제 다시 사격이 될 지 모르는 것 아니냐며 불안해했다.
“철조망 다시 설치한 거 보세요. 이중으로 둘러놨는데 폐쇄할 거면 그걸 왜 설치했겠어요.”

그러고 보니 기총사격장에는 2년전에 보지 못했던 철조망이 견고하게 둘러쳐져 있었다. 사격이 중단됐음에도 지난해 봄에 설치된 날카로운 철조망은 한국의 주권이 미치지 않는 ‘성역’의 경계를 명확히 하고 있다. 매향리 주민들에게 전동록씨 사건과 의정부 여중생 사건은 남다르게 다가왔다.

“우리야 뉴스에서 잠깐씩 나오는 걸로 아는 건데 억울하게 당하는 일이 한두가지겠어요. 미군들한테 한국사람들은 무시당할 수밖에 없어요.”
지난 5월말 주민들은 월드컵 기간만이라도 사격을 중단해달라고 요구했지만 사격장 관리를 맡고 있는 록히드마틴사의 책임자는 주민들의 요구서한을 접수하지도 않았다.

지난 지방선거에서 매향리 주민대책위는 최희일 대책위 고문을 민주노동당 화성시의회 의원으로 출마시켰다. 비록 24.5% 득표에 그쳐 낙선했지만 주민들을 다시 한번 묶어준 소중한 계기가 됐다. 최근 전동록씨 사건, 의정부 여중생 사건 등 미군에 의해 저질러진 범죄에 대한 투쟁이 지속되면서 매향리 사격장 폐쇄투쟁도 다시 불씨를 피울 것으로 보인다.

전만규 위원장은 “단발적인 싸움으로 끝날 문제가 아니”라며 “의정부 여중생 사건 이상의 참상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에 좀더 힘차고 과감한 투쟁을 해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돌아오는 길에 다시 들른 임옥상 화백의 조형물 옆에는 “매화향기” “가득히”라고 쓰여진 장승이 서 있었다. 화약냄새가 가시고 마을이름 그대로 매화향기가 가득할 날은 언제일까 생각하는데 후덥지근한 여름날 저 멀리서 비행기 소리가 다시 들렸다.
[ 95호] 7.8 ~ 7.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