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재설 dllp21@kdlpnews.org
“전력산업 구조개편을 강행하려는 정부나 이를 반대하는 노조, 어느 편의 손도 들어줄 수 없습니다.”
정부와 노조 사이에 발전소 매각을 둘러싼 팽팽한 대립에 대해 이필렬 방송통신대 교양과정부 교수(과학사·사진)는 “정부와 노조 양쪽 모두 늘어나는 전력수요를 값싼 가격으로 충족시키는 것을 목표로 설정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현재의 독점화된 전력체계가 유지되는 한 사기업화(민영화)가 되든 공기업으로 남든 생태주의의 가치가 담길 수 없다”고 주장했다.
또 한차례 전력산업 구조개편에 대한 논란이 재현되고 있는 지금, “생태주의의 가치를 담은 대안적인 전력산업 구조”를 얘기하는 이 교수를 만나봤다.
- 정부와 한국전력은 최근 한전의 5개 발전자회사 중 한국남동발전을 우선매각대상으로 선정하고 임기 전 매각을 완료하겠다고 밝혀 전력산업 구조개편을 강행할 뜻임을 다시한번 나타냈다. 정부가 주장하는 구조개편안의 문제점은 무엇인가.
= 한국의 전력시장을 세계시장에 편입시키려는 정부의 사기업화 정책에 대해서는 생태주의적 시각에서든 노동운동의 시각에서든 찬성할 수 없다. 정부의 방식대로 사기업화하게 되면 발전회사들이 국내 거대자본이나 해외자본에 팔려나갈 수밖에 없다.
생태주의의 시각은 현재의 한전에 대해서도 비판적이었지만 국내 거대자본이나 해외자본이 발전소를 소유할 경우 생태계 보전이나 삶의 질이라는 측면에서 현재의 한전체계보다 나아질 것이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석유, 석탄, 가스, 원자력을 에너지원으로 사용하는 기조는 유지될 것이고 오염물질 배출도 그대로일 것이다. 공공성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거대 자본 소유에서는 먹혀들기 힘들 것이다.
- 발전노조와 민주노총, 그 밖의 진보진영에서는 발전소 매각을 반대하고 오히려 공공성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 현행의 독점체제를 유지하면서 시민, 노동자, 전문가들이 대거 운영에 참여해서 공공성을 강화하겠다는 것이 실현가능성이 있겠냐는 의문이 강하게 든다. 한전은 덩치가 크다. 형식상 노동자, 시민, 전문가가 참여할 수 있겠지만 그게 과연 각 지역까지 실현될 수 있을까. 덩치 큰 한전의 구조를 유지하면서 공공성을 강화하고 환경친화적인 구조를 만들기는 어렵다.
- 그렇다면 제3의 대안은 무엇인가.
= 재생 가능한 에너지 구조로 바뀌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전력산업이 분산돼야 한다. 현재 발전은 화석연료와 우라늄에 의존하고 있다. 석유 생산량은 줄어들 것이고 원자력 발전의 원료가 되는 우라늄도 한계가 있다. 게다가 화석연료는 온실가스를 배출, 지구온난화의 원인이 되고 있으며 원자력이 위험하다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다. 이제 재생 가능한 에너지로 넘어가야 한다는 것은 ‘당위’이다. 2015년에는 전기소비량이 두 배로 증가하니 민간기업의 투자를 촉진시켜야 하는데 정부나 단기이익을 추구하는 거대자본이 장기투자를 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은 노조가 고려하지 않았다. 단기적으로는 고용안정이 중요하겠지만, 화석연료가 줄어들고 고갈된 다음에도 고용안정이 되겠나.
- 중앙집중적 구조에서는 재생가능 에너지를 이용하기 어렵다는 것인가.
= 그렇다. 석유, 석탄, 우라늄을 이용하는 구조는 중앙집중적인 구조와 딱 들어맞는다. 거대 석유회사가 석유를 채취하고 수송해서 발전하는 구조는 중앙집중적인 구조를 낳을 수 밖에 없다. 반면 태양열, 풍력, 수열, 바이오메스(생물자원) 등 재생가능 에너지는 대기업에서 에너지를 채취하고 수송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어디든 있는 햇빛이나 바람 같은 것은 소규모 에너지 생산 시설에 적합하다. 개개인이 자기 집 옥상에 발전시설을 설치하는 태양에너지 이용과 같이 재생가능 에너지는 분산적으로 이용할 수 밖에 없다. 풍력발전은 조금 규모가 커지기는 하겠지만 시민들이 돈을 모으면 소규모의 시민발전소를 세우는 것이 가능하다. 하지만 지금의 체계에서는 끼어들 틈이 없다.
- 정부는 발전부문뿐 아니라 배전 부문도 매각한다는 방침인데.
= 소비자에게 전기를 공급하는 배전은 공공이 소유하는 게 적합하다. 하지만 현재처럼 전 지역을 독점하는 형태가 아니라 지방공사형태로 분산시켜야 한다. 배전을 민간이 소유하게 되면 원자력발전을 줄이고 재생가능에너지 이용을 늘이는 등의 에너지 정책을 시행하기 어려워진다. 발전노조가 파업할 때 발전소 매각 반대만 얘기했지 배전 사기업화에 대해 얘기하지 않은 것은 아쉬운 대목이다. 배전만은 공공이 소유하고 있어야 한다.
- 한국에서는 원자력에 의한 발전의 비중이 가장 높다. 원자력 발전을 중단시킬 수 있는 방안이 있나.
= 현재 40% 이상의 전기가 원자력에 의해 생산되고 있다. 16기가 가동중인데 정부의 계획대로라면 10년 후엔 30기로 늘어날 것이다. 건드리기 어려운 상황이 되는 것이다. 지금 방향을 전환하지 않으면 시간이 흐를수록 힘들어진다. 원자력발전은 에너지 효율 등 여러 측면에서 이미 낡은 기술로 판명이 났다. 원자력발전소의 추가건설을 중지하고 수명이 다한 발전소부터 하나씩 폐쇄하면 2030년경이면 모두 폐쇄할 수 있다. 원자력발전소는 사기업화 대상에서 제외됐는데 원자력발전소야말로 사기업화하고 정부가 감독을 강화하면서 신규건설허가는 내주지 말아야 한다.
- 마지막으로 민주노동당의 에너지정책에 도움이 되는 조언을 해달라.
= 노동자의 권익을 위해 일하는 것은 기본이겠지만 노동자의 ‘삶의 질’을 좀 넓게 보면 고용안정이라든가 노동에 대한 정당한 대가의 지불, 노동환경의 개선 등과 함께 생태적 가치를 함께 고려해야 할 필요가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있어서도 생태주의와 공유하는 부분은 꽤 있다. 생태적 가치를 고려하면서 넓고 긴 안목에서 정책을 세울 필요가 있을 것 같다.
[ 98호] 7.29 ~ 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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