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일자(노동자의 힘 선전위원)
노예의 삶을 거부한다
한달 기본급 58만원. 한 여름에는 40도 가까이 되는 현장에서 차체를 만들며, 잔업을 수십 시간 뛰어도 백만원이 넘을까 말까 하는 지독한 저임금. 관리자들의 작업지시는 절반이상이 욕이었고, 상습적인 폭행을 일삼았다. 세원테크가 설립 4년만에 연 매출액 600억을 바라보는 초고속 성장을 하는 동안 노동자들은 열악한 환경에서 "잔업, 특근 열심히 해서 백만원 넘겨보자"라고 이를 악물며 살아왔다. 그러나, 더 이상은 노예의 삶을 참을 수 없었기에 2001년 10월16일, 세원테크 노동자들은 금속노조 세원테크 지회를 결성했다.
12.12 금속노조 최초의 지역 총파업
노조를 인정하지 않던 사측은 12월 용역깡패 150여명을 투입해서 당시 60여명의 조합원들을 공장 밖으로 몰아냈다. 그러나 12월12일 2천5백여명의 지역 노동자들이 연대총파업으로 용역깡패를 몰아내고 민주노조를 사수하여, 2002년 1월에는 사측과 단협도 체결했다. 작은 일이라도 잔업거부를 통해 노동자의 권리를 찾아왔고, 심지어 연대투쟁을 위해 잔업거부를 하기도 했다. 처음으로 투쟁으로 쟁취하는 것을 알았기에 조합원 분위기는 승승장구였다.
세원테크에서 민주노조를 사수할 수 있었던 것은 지역 총파업의 승리이다. 세원의 폭발적인 투쟁은 지역 노동자들의 억눌렸던 분노에 불을 지폈다. 이제, 지역에서 세원테크 투쟁은 단순히 한 단사의 문제가 아니다. 세원투쟁을 빌미로 충남 지역 노동운동 탄압이 더욱더 가속화되고 있다고 민주노총 충남본부 오은희 부장은 전한다. "세원테크 투쟁은 지역의 연대 총파업을 모범적으로 이끌었지만, 12·12총파업 후 지역에서는 세원테크 투쟁으로 지역본부 산하의 조합원을 비롯해서 지회장, 노조 위원장 각각에게 출두 요구서가 발부되었어요. 이것은 세원을 빌미로 한 충남본부 지역에 대한 노동운동 탄압의 일환입니다. 세원테크 투쟁에 결합하면 다 출두요구서를 발부하면서 지회장이나 노조 위원장을 압박해 왔어요."
공장점거 투쟁
5월22일 합법적인 절차를 거쳐 쟁의행위에 돌입하였지만, 사측에서는 물량을 무노조 사업장으로 빼내 작업을 이원화하고 조합원들에 대한 무더기 고소고발과 임금가압류 9억8천만원, 재산가압류 2억원을 청구했다. 쟁의행위 돌입 후에도 사측은 늑장교섭으로 나왔다. 7월의 공장점거 당시 사장실에서 발견 된 문서들은 '노사 갈등을 노조 갈등으로 전환, 고소고발 손배를 이용하여 조합원 이탈을 유도' 등의 내용을 담고 있었다. 사측은 노조설립 직후부터 노조를 깨기 위한 공작을 펼쳐왔던 것이다. 이 시나리오대로 사측은 구사대를 동원하여 세원문제가 마치 구사대와 조합원의 노·노 갈등인 것처럼 주장해왔다. 12·12파업을 이끌었던 집행부 중 몇은 '회사 살리기'를 외치며 구사대에 들어가기도 했다.
7월초까지 교섭도 제대로 안되고 투쟁의 뚜렷한 탈출구도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노조는 7월7일 공장을 점거했다. 공장점거 투쟁이라는 강수를 두고 세원내부와 지역에서는 '징계위를 열어야 교섭을 하겠다는 사측의 태도에 계속 강수를 두는 것은 무리다'는 의견과 '현 상황에서는 강력한 투쟁 전술을 배치해야 한다'는 의견이 팽팽히 맞섰다. 파업이 장기화되자 아산시민중재단(단장 부시장)이 구성되어 공장점거 6일 뒤인 7월13일 중재안을 내놓았다. 노조는 이를 수용했으나 사측은 거부했고, 바로 다음날인 7월14일 공권력을 투입하여 조합원들을 현장 밖으로 쫓아냈다. 공장 점거 때와 현장에서 밀려나온 시점에서 조합원들이 대거 떨어져 나가기도 했다.
7월말부터 조합원들은 민주노총 충남지역본부 사무실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계속해서 공장 출입을 시도했다. 그러나, 사측은 8월6일 직장폐쇄를 단행하고 관리자들과 구사대, 그리고 공권력을 이용해 조합원들의 공장 출입과 노조 사무실 출입을 저지했다. 공장 진입 투쟁에서 사측은 조합원들과 가대위, 연대단위에게 폭력으로 응수했고, 8월16일 공장진입 투쟁 중 쇠고리에 맞아 두개골이 함몰된 이현중 조합원은 실명의 위기에 처해 있다.
잠정합의안 부결 후
원청인 기아노조를 비롯한 연대대오와 세원테크 조합원들의 투쟁으로 8월27일, 3차 세원테크 집중연대 투쟁을 하루 앞둔 시점에서 잠정합의안이 나왔다. 그러나 전 조합원 민사 취하 외에 별다른 성과가 없었고, 특히 '부상자 치료비 대출'이라는 사측의 태도에 조합원들은 분노했다. 잠정합의안은 부결됐다. 그후인 9월초의 상황은, 사측이 잠정합의안으로 우위를 점하게 되었고, 아산 경찰서장 교체 이후 경찰은 강경 기조로 돌아선 상황이다. 계속되는 지역의 노동탄압에 운동 진영 복구도 어려운 게 사실이다. 한때 150여명이던 조합원 중에서 지금의 투쟁대오는 수배자와 부상자를 제외하면 30여명 밖에 남지 않았다. 현장에서 밀려나와 전개되는 투쟁이기에 더더욱 힘들다. "잠정합의안이 부결되면서 조합원들이 많이 흔들렸어요. 생계비 때문에 나간다는 조합원들도 있었고, 상급단체에 대해 못미더워하기도 하구요. 하지만, 부상자 문제는 확실하게 정리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동지를 잃을 뻔했는데 내가 그만 둘 수 있느냐라는 생각들이에요. 지금 사람들은 마지막까지 투쟁할 사람들이에요."
조합원을 투쟁의 주체로
하청노조의 투쟁에서 승리한 사례가 드물다. 하청노조의 투쟁은 원청자본과 하청자본 양쪽을 모두 상대해서 이중의 싸움을 벌여내야 한다. 공투본 관계자는 12.12의 경험도 있어서, "지역에서 연대투쟁을 어떻게 조직하느냐가 세원투쟁의 핵심"이라고 말한다. 기아에서 천막 농성을 진행 중인 구재보 전 사무장은 "원·하청간의 연대 투쟁을 조직해 내는 것, 더불어 부품사 간의 공동투쟁의 전개가 승리의 열쇠"라고 말한다. 하청노조의 투쟁에서 물량 이원화를 대응하지 못하면 자본에 대한 압박적인 공세를 펼칠 수 없다. 또한 아산지역의 대부분의 하청노조가 현대, 기아의 부품사인 상황을 고려할 때 부품사들간의 연대 투쟁도 반드시 필요하다. 때문에 이 투쟁을 원청인 기아, 현대와의 연대 투쟁 그리고 이에 기반한 지역의 투쟁으로 만들어가려고 하고 있다.
현재 현대자동차노조, 기아자동차노조, 금속노조, 민주노총 충남본부, 세원테크 노조가 참여한 '공동투쟁 본부'에서는 연대의 기운을 높여내고 세원자본에 대한 물량압박을 현실화시키기 위해 투쟁계획을 마련했다.
그러나 분명히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조합원'이다. 조합원이 투쟁의 주체로 서지 않는 한 이번 투쟁이 승리한다손 치더라도, 한시적인 승리일 것이다. 현재 조합원들은 매우 지쳐있다. 길고 힘든 투쟁과정에서 나타나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고비를 어떻게 넘고 가느냐가 이번 투쟁의 성패를 가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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