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우체부아저씨

전주희(노동자의 힘 선전부장)

큰 가방 메고서 어디가나요

폭설이 쏟아지는 강원도 산골 마을에 우편물을 배달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허벅지까지 내린 눈을 헤치고 가다 결국 눈 덮힌 계곡에서 죽어간 집배원 아저씨. 집배원 아저씨의 이 죽음은 널리 알려졌다. '희생정신'의 상징으로. 아주 많이 어렸을 적 주소도 우편번호도 없이 '할아버지께' '손녀올림'이라고 편지봉투에 떡 하니 써놓고, 우체부아저씨에게 보내달라고 졸라댔던 기억도 있다. '아저씨~ 아저씨~ 우체부 아저씨~ 큰 가방 메고서 어딜가세요~'라는 노래에 맞춰 고무줄 놀이를 하던 시절에는 적어도 우체부 아저씨는 멋진 모자를 쓰고 다니던 '좋은 어른'이었다.
20여 년이 흘러, 초등학교 국민윤리 교과서에 나오는 사람 좋은 얼굴을 한 우체부 아저씨는 혹독한 노동에 시달리는 쪼그라진 집배원 노동자로 나타나 '더 이상 죽고 싶지 않습니다!'며 우체국 앞에서 시민들을 향해 선동하고 있다. 그리고 그 끔찍한 '노동'에 대해 하나하나 세상을 향해 폭로하고 있다.

과로사: 일하다 픽 쓰러져 죽다

지난해 서울 여의도우체국 이노철(45세) 기능직 집배원노동자는 밤 11시30분까지 우편물을 구분하고 퇴근해 잠들었다가 아침에 일어나지 못하고 싸늘한 시체로 발견되었다. 같은 달 서울 광진우체국 임병극(53세) 정규직 집배원노동자가 우편물 2,000여 통을 대학에 다니는 딸까지 동원해 배달하다가 길거리에 쓰러져 뇌사상태로 병원에 실려갔다. 올해 인천 계양우체국 박영수(36세) 기능직 집배원노동자는 갑자기 배가 아프다더니 병원에 실려 가는 도중 사망했다. 광주우체국 김연선 기능직 집배원노동자는 전신마비로 반신불수가 되었으며, 서광주우체국 이병규(58세) 집배원노동자는 오토바이 사고로 퇴직했다….
마치 건전지 수명이 다해 기계가 작동하지 않는 것처럼 집배원노동자들은 길을 걷다가, 잠을 자다가, 밥을 먹다가 갑자기 모든 행동이 정지되면서, 이와 함께 죽고싶을 만큼 힘든 노동의 고통도 함께 정지되면서 그렇게 죽어갔다. '살인적인' 노동은 수식어로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집배원노동자들의 죽음은 소름끼칠 만큼 너무나 '일상적'이다.

한해동안 우체국 하나가 사라진다?

정보통신부의 공식 자료에 의하면 지난 한해동안 체신 노동자 24명이 사망했다. 하지만 S우체국에서 일하는 집배원 노동자가 말하는 사실은 다르다. "작년 한해만 해도 우리 우체국에서 유명을 달리한 이만 해도 기억하는 것만 24명이다. 그 중에는 인정받지 못한 사람도 많았다. 한해 사망자 수는 큰 우체국 하나가 사라지는 것 만큼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이다."
정부가 포장하고 있는 '우체부 아저씨의 희생정신'은 무엇인가? 지난 5년 간 173명의 '개만도 못한' 죽음과 학대에 가까운 착취-우편물량의 엄청난 폭증과 인력의 대대적인 감축이 일어났다. 그것은 우체부 아저씨들에게는 더 많이 들이마셔대야 하는 종이먼지와 허리디스크와 잦아지는 우편물 사고에 대한 개인 분실에 대한 책임의 증가이다. 그리고 새벽 1~2시가 되어서도 일이 채 끝나지 않아 편지더미에 묻혀 쓰러지듯 하루 노동을 마감해야 하는 일상을 반복하며 죽어가고 있는 집배원 노동자들의 처절한 삶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동지로 함께 서기

더 이상 편지봉투 뒤에 "우체부 아저씨 감사합니다"라며 그들의 희생정신을 미화하지 말아야겠다. 우체부 아저씨들의 노동과 삶이 더 이상 안녕하지 않다는 현실을 똑바로 보아야 한다. 우체부 아저씨의 큰 가방과 멋진 모자가 마냥 좋던 아이가 이제 어른이 되어 집배원 노동자들의 큰 가방에 담긴 살인적인 노동에 대해 함께 나누어야겠다. 이제 막 스스로의 안녕을 쟁취하기 위해 머리띠를 두른 집배원 노동자들의 쉽지 않은 싸움에 함께 하기 위해 운동화 끈을 질끈 동여매고 달려갈 준비를 해야겠다. 현실을 폭로하는데 주저함이 없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