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훈구(노동자의 힘 연대사업위원장)
권력재편을 위한 지배계급들만의 아귀다툼
난리다. 겉으로는 복잡해 보이지만, 새로운 평등세상 건설의 역동성을 갖고 있는 노동자 민중의 투쟁 난장판을 뒤로 한 채 큰 일(?)이 벌어지고 있다. 저마다 자본가의 이익을 보장하는데는 전쟁도 불사하겠노라고 목줄에 핏대를 세우는 지배계급들의 동네잔치가 한창이다.
한나라당은 한총련의 '한 표도 찍지 말기'라는 반이회창 전술에 코웃음을 치면서 남한사회 지배계급과 그 지지자들을 '빽'으로 삼아 똥배짱을 부리고 있다. 민주당은 '개혁적 신당' 바람을 전면적으로 타자 말자 하면서도 집권에 목숨을 걸고 내부 분탕질에 열중이다. 녹색당 등에서 활동하고 있는 소위 NGO 세력 일부는 그 뻔한 새로운 비판적 지지를 통해 정치적 지분 확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한국노총 지도부는 민주당의 정치적 색깔보다는 왼쪽에 서고 민주노동당의 그것보다는 오른쪽에 설 '한국민주사회당'을 혼자의 힘으로 만들겠다고 한다. 이들은 이구동성으로 남한 사회 전구성원의 이익을 보장해 주겠노라고 호들갑을 떨고 있다. 동시에 남한사회의 발전전략으로 신자유주의 지구화 추세에 걸맞는 경쟁력 갖추기가 불가피하다고 거침없이 주장하고 있다. 그들의 이러한 주장들이 무엇인가. 그들이 지금 국면에서 벌이고 있는 그들만의 잔치 판, 바로 노동자 민중의 피와 땀을 먹거리로 삼고 철저하게 들러리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파탄·유린·농락 당하고 있는 노동자 민중의 삶
"근로기준법을 지켜라." "죽지 못해 산다. 못살겠다 갈아엎자." 사오십 년 전의 옛날 이야기가 아니다. 삶의 벼랑 끝에 내몰린 노동자 민중 대다수가 가슴속 깊이 갖고 있는 저항·분노·희망의 절규이다. 경제위기 이후 더욱 노골화된 신자유주의 지구화 공세로 인해 노동자 민중들은 하루 하루를 살아가기가 벅찬 지 오래다.
이미 노동자의 절반이 넘어선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중심으로 한 여성, 장애, 산재, 이주 노동자 등 불안정 노동자들은 실업의 고통을 면하고 삶 자체를 유지하기 위해 인간 이하의 취급을 감수하면서 보다 강화된 착취·업악·차별을 강요당하고 있다. 중소영세사업장의 노동자들은 신자유주의 구조조정 공세가 낳은 쌍생아인 폭력과 폭압을 앞세운 전근대적인 현장통제를 감내하면서 엄청난 노동강도에 치를 떨고 있다. 대공장을 중심으로 한 조직노동자들의 경우는 자본의 분할기도를 받아들여 '적자생존법칙'의 수호자를 강요당하며 어금니를 꽉물고 파스를 붙여가면서도 "벌 수 있을 때 벌어야 하지 않느냐"며 노동중독에 시달리고 있다.
농민들의 삶 역시 WTO체제로 인한 농업포기와 한-칠레 투자협정 등으로 초국적 자본의 이익을 보장하려는 자본과 정권의 공세로 인해 바람 앞의 촛불같이 불안한 상황이다. 정감 넘치던 농촌은 해체되고 있다. 농촌도 자본의 이윤논리로 도배질되고 있는지 오래인 것이다. 농민도 더 이상 과거의 농민이 아니다. 농업노동자가 되거나 농업자본가가 되어가고 있다. 농민도 해체되고 있는 것이다.
노점상들은 죽음을 강요하는 일상적인 폭력 단속에 하루하루 버티기조차 힘들고, 철거민들은 대책 없는 폭력적 철거에 맞서 주거권을 사수하기 위한 투쟁에 힘겨워 하고 있다.
학생들은 자본의 세계와 그 질서, 신자유주의 질서에 순응할 사회성원이 되어 생존하는 방안이 무엇인지 찾아 헤매고 있다. 야만적인 적자생존의 올가미에 스스로 걸려들게 부단한 경쟁을 강요받고 있다.
하루 하루를 연명하기 힘든 현실에 천정부지로 올라가는 집 값과 감당하기 어려운 교육비가 노동자 민중의 삶의 고통을 배가시키고 있다. 동시에 노동자 민중에 대한 노골적 탄압은 오히려 더욱 폭력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근로기준법 개악을 비롯한 노동조건에 대한 공격과 경제특구 입법화 시도 등 노동기본권 자체를 해체시키려 하고 있다. 보험업법 개정을 통해 연금·보험 등 민중생계기반에 대해서도 신자유주의 초국적 자본의 질서를 법제도적으로 보장하려 하고 있다.
어느 것 하나 노동자 민중이 누려야 할 노동권·생활권의 숨통을 짓누르지 않는 것이 없다. 노동자 민중은 자신의 삶을 파탄 내고 유린하며 농락하는 지배계급의 침탈에 맞서 가슴속 깊이 갖고 있는 속내를 드러내야 한다. 그리고 '해방투쟁'의 주체로 나서야 한다.
'따라하기'와 '따라잡기'는 정치 주체를 끊임없이 대상화할 뿐
'못된 것부터 배운다'던가. 노동자 민중 운동진영 내부에서 '몹쓸 짓 흉내내기'가 시도되고 있다. 반제·반신자유주의 투쟁과정에서 정치의 주체로 서야 할 노동자 민중은 온데간데 없고, 선거에 집착하면서 노동자 민중을 한 표로 대상화하려는 행태가 그것이다. 지배세력을 비판하면서 나온 대통령 후보의 정강과 공약은 그야말로 말뿐이다. 선명성을 주창하지만 그 역시 말뿐이다. 중심이 돼야 할 노동자 민중을 들러리로 놓고 후보를 오히려 중심에 놓고 있다. 투쟁하는 노동자 민중을 배제시키고 투쟁은 언론플레이를 통해 하는 식으로 지배세력을 '따라하면서 따라잡으려'는 것은 커다란 잘못이다.
'노동자 민중을 대변하는 진보정당을 통해 보수와 진보의 대결국면을 만들고, 2004년 노동자 민중의 요구를 대신할 국회의원을 만들어야 한다.'이 주장의 핵심은 '대변'한다는 것이고, 진보정당만이 유일한 방안이라는 '당사자 중심주의'에 입각한 국회진출이라는 '집착'이 있을 뿐이다. 노동자 민중의 삶과 투쟁에 대한 실천적 결합은 욕먹지 않을 정도로 하면 된다는 식이고, 여전히 노동자 민중을 그저 '한 표' 취급하고 있다. 이들이 '전국공동투쟁본부'를 대통령선거의 바람몰이용으로 삼지 않는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2001년 김대중정권 퇴진투쟁을 받아 안지 못한 진보정당은 여전히 책임 있는 반성을 하지 않고 있다. 대선투쟁 과정에서도 반복될 여지는 충분하다. 반복되지 않게 투쟁하는 노동자 민중이 중요한 결정의 주체로 서야 한다. 그렇지만, 그러한 반복이 현실화 될 경우 노동자 민중이 반노동자적·반민중적인 본질을 구체적으로 확인하고 판단하도록 전면적인 폭로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노동자 민중의 투쟁과 계급적 경선 과정을 통해 달성해야 할 과제는 변혁의 주체형성과 민중연대투쟁질서 구축이다. 이러한 과제가 더 이상 '원론'이라는 둥 '되기나 할 소리냐'는 둥 뒷전으로 밀리게 해서는 안된다. 바로 지금시기에 그것을 전면화시켜 내야 한다.
'붉은 단심을 갖고 있는 동지들은 사회주의 대통령 후보와 함께 침체되고 분산되어 있는 민중투쟁을 전국적 계급투쟁으로 고양시키자.'
이러한 주장은 '사회주의'라는 기치가 핵심이고, 대통령후보가 중심이며, 노동자계급정당 건설이 조직적 목표이다. 대통령 선거국면에서 투쟁은 일상적 활동의 연장선에서 하면 된다며 대통령 선거 국면에서의 노동자 민중의 분출되는 요구와 투쟁력을 전국적으로 기획하고 조직하는 것은 부차적인 것으로 치부하는 듯하다. '사회주의 정치세력화와 투쟁하는 노동자계급정당 건설'을 소위 좌파들이 먼저 결집하여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남이 하면 불륜이고 내가 하면 로맨스 식의 소위 '좌파 대동단결론'에 입각한 조직통합식의 선결집을 강변한다.
다수자 변혁을 위해서는 노동자 민중이 계급정치의 주체로 서는 것이 관건이다. 민주노동당의 창당과정에서 드러난 민주노총에 의존적이며 패권적이었던 오류를 넘어서야 한다. 청년진보당과 사회당 건설과정에서 확인할 수 있는 노동자 민중에 뿌리내리지 못한 한계를 극복하는 노동자계급정당 건설투쟁이어야 한다.
'사회주의 정치세력화와 노동자계급정당 건설'을 주장하는 활동가들이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선거전술에 대한 집착을 거두어야 한다. 그토록 강조하는 '붉은단심에 대한 진정성'을 대선 투쟁과정에서 대중적·실천적으로 확인하면서 전국적 주체형성에 기여해야 한다.
전국적 정치투쟁을 조직하는 것은 먼 미래의 일로 생각하고, 현장을 작은 골방으로 만들고 제한하는 일련의 태도는 현장에 기초한 전국적 정치기획의 부재와 주체역량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을 방기하는 것일 뿐이다. 죽기를 각오하고 투쟁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죽음을 받아 안을 만큼 분명한 투쟁과제와 투쟁부대를 현실의 힘으로 가시화 하지 못한다면 듣기 좋으라고 하는 빈 말일 뿐이다.
소위 운동권이 대신하는 투쟁이 아니어야 한다. 대중투쟁을 조직하기보다는 선전선동하는 것에 그친 일체의 활동 과정을 극복해야 한다. 노동자 민중 투쟁을 대중투쟁노선에 입각하여 충실하지 못하고 기획-조직-집행-평가 해왔던 그동안의 한계와 오류를 극복하는 과정이 있어야 한다.
노동자 계급정치를 대변하려는 일체의 대리주의와 투쟁하지 않는 것은 지배세력을 '따라하기, 따라잡기'에 급급하는 몹쓸 짓을 방치하여 노동자 민중을 들러리로 만드는 결과를 낳을 뿐이다.
노동해방 대선실천단과 함께 해방투쟁의 한길로
'노동해방 실천단'은 반제·반신자유주의 투쟁을 집행 할 노동자 민중 투쟁기관으로 거듭나기 위한 활동에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대동소이에 기초한 대동단결을 넘어 노동자 민중의 정치적·계급적 단결과 진전을 이루기 위해서는 불안정노동 철폐, 노동권생활권 쟁취, 투자협정·WTO반대 민중복지 쟁취, 반제반전을 기치로 한 반미노동자 국제연대 실현 등을 핵심과제로 삼아 반제·반신자유주의 투쟁전선의 중심에 노동자 민중이 우뚝서게 해야 한다. 노동자 민중은 자본과 정권의 신자유주의 지구화 공세에 맞서 현장과 거리에서 피나는 투쟁을 해왔다. 그러나 지배계급과 자본의 전면적이고 총체적인 공격을 막아내지는 못하였다. 그렇다고 노동자 민중 투쟁이 실패한 것은 아니다. 여전히 아래로부터 면면히 흐르는 투쟁력과 총파업투쟁을 통해 정세의 주도권 강화를 위한 대중투쟁을 전개해왔다. 노동자 민중 투쟁이 자본과 노동의 힘 관계를 반전시켜왔고, 노동자 민중은 해방세상 건설을 주도할 유력한 주체이다.
노동해방 실천단은 전국적 대중투쟁을 기획 조직하고 노동자 민중 계급경선을 동시에 수행할 (가칭)전국공동투쟁본부가 말뿐이 아닌 투쟁을 조직하는 역할에 충실하게 임할 수 있도록 하는 데 힘을 모아야 한다.
현장, 지역, 부문에서 모든 착취, 억압과 차별을 끝장낼 변혁에 대한 지향을 갖고 활동해왔던 동지들! 노동해방 실천단을 중심으로 함께 모여 전국적 차원의 정치투쟁 기획을 만들고 투쟁의 힘을 모아 노동자 민중 중심의 정세 주도력을 강화해 나가자. 투쟁을 중심으로 모아진 힘은 바로 노동해방 세상 건설을 향한 주체들의 정치적·조직적 단결로 귀결시키자.
노동해방 실천단은 노동자 민중 계급경선 과정에 적극적으로 결합하여 노동자 민중을 대상화하는 일체의 대리주의와 투쟁해야 한다. 특히 선거와 투쟁을 분리하고 단지 후보 선출의 문제로만 바라보거나 득표전략으로 사고하는 '범추'의 오류를 반복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투쟁에 복무하는 선거전술을 구사해야 한다." 선거 때 수없이 되뇌고 강조해왔던 원칙이다. 선거전술은 선거주의로 경사할 위험성을 갖고 있지만 변혁의 전 과정에서 운영할 수 있는 전술중의 하나로서 집행할 때만 유의미하다.
원칙의 관철을 위해서는 투쟁주체들의 정치적 결집과 위력적인 대중행동에 기초한 노동해방 세상 건설이라는 방향을 분명히 해야 한다. 이를 위해 현장·지역·부문에서 '노동해방 실천단'과 함께 할 주체를 대선투쟁 전과정을 통해 묶어 세우자. 그럼으로써 (가칭)전국공동투쟁본부가 선거에 왜곡되지 않는 반제·반신자유주의 투쟁기관이 되도록 힘과 지혜를 모으자.
"세상을 확 바꾸자!" "노동해방 쟁취하자!" 노동자 민중 가슴속 깊은 곳의 저항과 분노 그리고 희망에 대한 이 절규는 스스로 속내를 드러내고 함께 할 전국적 투쟁을 책임 있게 추진할 투쟁기관을 건설함으로써 현실화시켜야 한다. 이 전국적 투쟁기관을 노동해방 실천단이 주도적으로 건설하자. 그것은 정치적·계급적 단결과 전진을 위해 투쟁하며, 변혁을 향한 대장정에서 조직적 주체로 서야 한다는 노동자 민중의 정치선언이기도 하다.
"잃을 것은 쇠사슬뿐이며, 얻을 것은 새 세상이다."



![[영상] 현대기아차비정규직 농성..](http://www.newscham.net/data/coolmedia/0/KakaoTalk_20180411_120413041_copy.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