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사회 편집자주] <문화사회>에서는 일본 오키나와의 평화운동과 반미운동/반기지운동과 환경운동의 결합으로서의 평화운동에 관한 정유진(주한미군범죄근절운동본부 평화교육위원장)씨의 글을 필자의 동의를 얻어 4회에 걸쳐 연재할 생각입니다. 6개월간 오키나와 평화운동가들을 직접 인터뷰하면서 작성한 이번 글의 연재가 오키나와의 평화운동을 살펴보는 것을 넘어 반미/반기지운동에 대해 깊이 고민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이 글은 <당대비평>에 실렸던 글입니다.
1. '누치도 타카라'(命こそ ) - 생명이야말로 보물!
2. 오키나와에는 왜 "양키 고 홈" 구호가 없을까?
3. 연대
4. 오키나와와 한국의 '전쟁과 평화'
5. 인간의 안전보장과 일상의 저항
6. 군사 기지 건설로 경제 진흥?
7. 소녀와 매춘여성의 인권
8. 고통에 대한 감수성
9. 다시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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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소녀와 매춘여성의 인권
오키나와 평화운동가들은 1995년 5월 미군의 소녀 성폭행 사건으로 현민 8만 5천명이 운집할 수 있었던 이유를 소녀의 안전도 지키지 못하는 군사 안보에 대한 재고(再考), 미군 기지와 공존 아닌 공존을 해온 것에 대한 반성, 소녀를 성폭행했던 미군들에 대한 분노가 한꺼번에 표출된 것이라고 말했다. 나는 분노와 반성, 인간 안보에 대한 요구로서 진보와 보수 등 정치적 입장을 달리하는 정치인들까지 결집할 수 있는 오키나와 운동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소녀 사건이 일어나기 바로 일주일 전, 미군병사가 오키나와 여성의 머리와 얼굴을 망치로 때려죽인 사건이 있었다. 악질적이고 잔인한 사건이었지만 오키나와 사람들은 별다른 반응을 나타내지 않았다. 미군에 의한 범죄가 너무 많이 일어나서 사람들이 무감각해져 있었다고 말한 사람도 있지만 나는 다른 관점에서 이 사건을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여성이 가해자인 미군과 교제 중이었다는 사실이 피해자의 '결점'이라는 생각과 미군과 사귀다 생긴 일이야 어쩔 수 없지 않냐는 반응에 대해 생각해본다. 나는 1995년 현민대회를 기점으로 오키나와 사람들이 망치에 머리와 얼굴을 맞아 숨진 사건에 대해 침묵했던 이유를 자문해 보았다면 어땠을까하는 생각을 한다. 나는 비슷한 시기의 미군범죄에 대해 전혀 다른 반응이 나온 것은 소녀의 인권과 미군과 교제하던 여성의 인권을 차별적으로 적용한 것이 근본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아무런 죄도 없는 '순수한' 피해자와 무언가 빌미를 제공했던 피해자의 인권을 다르게 평가하는 차별 말이다.
그 질문에 충실했다면 2천여 명이 모여 형식적 연설로 일관했던 2000년 현민대회는 보다 힘이 있고 감동적인 집회가 되지 않았을까.
오키나와 기지촌에는 필리핀 여성들이 주로 일하고 있는데 이러한 사실들이 금기처럼 여겨져 이에 대해서는 관심이 적다고 한다. 오키나와의 이러한 현상도 위의 사건과 연관이 깊다. 미군에게 몸을 파는 '순결하지 못한' 가난한 외국인 여성이라는 시선 말이다.
하지만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것은 인권이란 사람을 귀하게 보는 데서 생기고, 여기서 사람이란 우리가 모르는 사람까지 포함한 '모든' 사람이라는 사실이다. 우리가 모르는 사람이란 사회적으로 어려운 여건에 있는 사람, 즉 무시받고 차별받는 사람일 것이다. 그런 시점을 분명히 할 때만이 평화는 창조될 수 있다. 오키나와나 한국 등에 기지가 집중되어 있는 것도 인종주의, 군사주의, 자본주의가 결합된 결과로서의 차별이기 때문이다.
8. 고통에 대한 감수성
"저는 지금도 일상생활에서 한 순간 한 순간 제 자신에게 일어났던 혐오스러운 과거가 생각나서 고통스럽습니다. 그러나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저는 윤금이 씨를 비롯한 많은 피해자들이 더 이상 같은 피해가 일어나지 않게 해달라고 외치고 있는 것을 느낍니다. 저는 앞으로도 이런 피해자들과 함께 계속 활동할 것입니다." 이는 오키나와에서 미군에게 성폭행을 당했던 여성이 쓴 글의 일부이다.
나는 이 글을 읽으면서 여성을 비롯한 사회적 약자의 입장에서 보면 군사력에 의존한 안전 보장의 문제, 기지 폭력의 문제 등을 더욱 선명하게 볼 수 있다는 타카자토 스즈요(高里鈴代, 시의원)씨의 말이 떠올랐다. 여성의 관점(gender perspective)으로 세상을 본다는 것은, 평화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것이고 여기서 평화란 생명과 평등을 뜻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종종 50년 이상 매향리 주민들을 전쟁 아닌 전쟁 속에 몰아 놓고 침묵했던 한국 사회폭력성에 대해 생각해 본다. 죽어가는 매향리를 그저 방관하고만 있었던 개개인들은 아무 잘못도 없을까? 내가 그 끔찍한 곳에서 살지 않는 것을 다행으로 여기는 개인의 이기적인 무감성은 어떻게 평가되는가? 나는 이러한 문제를 단순히 한국과 미국 정부의 군사정책의 잘못이라고만 말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기지 문제에 대한 무관심 이전에 폭력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에 대한 철저한 무관심의 결과인 것이다. 타인의 고통을 느낄 수 있는 감성이 없기 때문에 철저하게 나와는 무관한 문제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기지 반대 운동 만큼 중요한 것이 타인의 고통에 민감해질 수 있는 감성 교육, 평화 교육이라고 생각한다.
군대가 안전을 지켜준다고 믿는 사람들은 통일 후에도 미군이 주둔해야 하고 만약에 미군이 철수한다면 그 군사적 공백을 한국군의 강화로 연결지어 생각한다. 군대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논리 속에는 그에 따르는 범죄는 어쩔 수 없다는 뜻이 포함되어 있다. 여기에는 국가 안보의 이데올로기와 더불어 범죄 피해자를 '내'가 아닌 '다른 사람'으로 대상화하는 인권 차별적 관점이 개입되어 있다.
군대는 성별 분업과 여성에 대한 차별과 폭력을 포함한 가부장제를 토대로 유지된다. 기지촌 자체가 성 차별화된 공간이라고 볼 수 있다.8) 그 결과는 군인 전용 매매춘의 정당화, 미군이 주둔한 지역의 여성에 대한 폭력, 군대 내 여성에 대한 성폭력으로 나타난다.9) 미군 폭력 문제를 거론할 때 '여성의 고통'에 대한 강조는 한국의 남성 중심적 민족주의 운동 집단으로부터 "감정적이다, 민족의 문제를 개인의 문제로 축소하지 마라"는 비난을 받는다.10) 오키나와 여성 운동가들도 "미일 안보의 문제를 개인의 문제로 왜소화하지 마라"는 비난을 받은 바 있다. 이러한 논리의 기저에는 여성의 인권은 민족모순이나 국제 정치 문제보다 부차적이라는 뜻이 담겨져 있다. 이것은 군대가 존재하는 한 매매춘이나 성폭력 범죄 등은 감수할 수밖에 없다는 체념 혹은 묵인과 연결된다. 그러나 여성에 대한 폭력(gender violence)과 전쟁과 같은 국가 폭력은 별개로 작동하는 문제가 아니며 선후의 문제 또한 아니다. 일상에서의 여성에 대한 폭력은 국가 간의 전쟁, 민족 분쟁, 제노사이드 등을 가능하게 하는 가장 강력한 요소이다.
9. 다시 생각하며
"....세상에는 정말 큰일이 닥쳤을 때 이건 정말 큰일이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과 말할 수 없는 사람이 있습니다. 특히 조직이 아닌 개인이라는 약한 입장이 되면 때로는 큰 일이 났다고 저항하는 것보다 침묵에 더욱 익숙해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저항하는 것보다 익숙해지는 편이 살기 쉽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너무 슬프지만 현실입니다. 이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혁신운동은 운동이라 말하기 어렵습니다."
"... 반드시 희생자가 나와야만 운동이 되는 겁니까? 일상 속에서 끊임없는 연구와 성찰이 있어야 합니다."
위 내용은 오키나와 평화 운동의 부족한 점은 무엇이냐는 인터뷰 질문에 대한 답변의 일부이다.
내가 이 말을 떠올릴 때마다 얼굴이 붉어지는 것은 내 삶의 태도, 나의 활동의 결에 대한 부끄러움 때문이다.
고운 마음을 가져야, 자기 자신의 삶을 사랑하는 사람이 평화운동을 잘 할 수 있다는 것을 오키나와 유학에서 새삼 깨달을 수 있었던 것은 그 곳의 사람들이 나에게 나누어준 애정과 배려 때문이다. 덕분에 나는 한 사람 한 사람 인터뷰를 마칠 때마다 국경을 넘어 친구가 될 수 있었고 오키나와에서 일어나는 많은 문제를 나의 일처럼 느낄 수 있었다. 또한 정보만으로 사람은 바뀌지 않는다는 것, 인간은 지식을 습득함으로써가 아니라 가슴속의 깊은 울림(공감)을 통해 변화하고 실천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현재 오키나와가 안고 있는 고민, 즉 기지 건설을 경제 진흥책이라고 부르는 이데올로기, 자립의 구체적 대안, 전쟁 체험을 계승하는 문제, 환경 운동과 반기지 운동 결합으로서의 평화운동, 가부장제, 인간이 겪는 모든 문제가 경제 논리로 환원되는 문제등이 바로 한국의 문제임을 느꼈다.
특히 전쟁 체험을 계승하는 문제는 매우 중요하다. 지금도 쉽게 들을 수 있는 말, '상기하자 6.25'! 우리는 왜 6.25를 상기해야 하는가? 전쟁을 일으키기 위해서? 아니면 없애기 위해서? (오키나와 사람들은 오키나와 전투 종전일인 6월 23일을 위령의 날(慰靈の日)로 정하고 희생된 넋들을 추모하고 있다)
미주>
8) 자세한 논의는 다음을 참조. 정희진, "죽어야 사는 여성들의 인권 : 한국 기지촌여성운동사",『한국여성인권운동사』(한울, 1999)
9) 미야우치 아키오(宮內秋緖). "군대·평화·여성 : 주한미군범죄를 중심으로", 한국외국어대학교 국제지역대학원 한국학과 석사 논문, 2000년 12월 미간행.
10) 정유진."'민족'의 이름으로 순결해진 딸들",『당대비평』, 2000년 여름호, 23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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