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권서 전국비정규노조연대회의 의장은 화가 나 있었다. 24일 오전, 민주노총 교섭단과의 간담회를 마치고 나온 구권서 의장은 “민주노총은 교섭을 통해 무얼 얻으려고 하는가. 명분도 없고, 실리도 없고, 원칙도 없는 교섭을 왜 하고 있는가”라며 격양되어 있었다. 구권서 의장의 출신 단위인 시설관리노조 사무실에서 구권서 의장을 만났다. 그는 긴 한 숨으로 인터뷰를 시작했다.
"민주노총은 비정규직 다 죽이려 교섭하는가“
▲ 구권서 의장은 연필로 그림을 그려가며 격렬하게 인터뷰를 진행했다. |
18일부터 진행되고 있는 노사교섭에서 노동계 최종안이 그동안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이 공동발의 한 비정규직권리입법과는 거리가 먼 것으로 드러나 전국비정규직연대회의는 성명서를 내고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전국비정규노조연대회의에 따르면 노사교섭에서 기간제 관련 노동계 안이 ‘계약기간 1년 후 사유제한을 전제로 1년 추가’로 흔히 1+1안으로 제시되고 있어 이는 비정규직권리입법에서 ‘정당한 사유의 제한’이라는 요구와는 배치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 이 안이 통과가 되면 파견법 현행 유지와 맞물려 현실에서 ‘기간제 2년-파견제 2년-기간제 2년...’의 형태가 되면서 전체 노동자의 비정규직화를 불러 오는 것과 다름없다.
이에 대해 구권서 의장은 “350만의 기간제 노동자들을 죽이는 것 뿐 아니라 전체 노동자를 비정규직으로 내모는 것이다. 입구는 좁게 출구는 넓게 만들겠다는 자본의 논리가 그대로 적용되는 것이다”며 “민주노총은 노동자들을 다 죽이는 이 교섭을 뭐하러 하고 있는가”라며 강력히 비판했다.
"10%가 동의한다면 그 사람들을 조직해서 투쟁하자“
민주노총이 비리사건 이후 비대위 체계로 들어간 상황에서 이번 비정규법안 통과를 앞두고 총파업을 결의하고 있지만 총파업 투표에서 기아자동차노조가 60%의 반대로 부결된 것이 알려지는 등 과연 제대로 투쟁을 할 수 있을까라는 우려가 짙다. 구권서 의장도 현 민주노총의 모습에 대해 많은 우려를 가지고 있었다.
구권서 의장은 “깃발은 적들에게 빼앗기고 수렁에 빠져 있는데 그곳에서 빠져나오려고 하는 의지도 보이지 않는다. 이대로 라면 정권이 만들어놓은 수순을 차례차례 밟아가는 것이다. 자본은 마른 걸레도 쥐어어짜고 있는 마당에 우리는 자본 만큼이라도 하고 있는가”라며 “40%가 이번 투쟁에 동의한다면 이 들과 어떻게 함께 투쟁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하는데, 지금은 60%의 부정적인 여론에 기대어 투쟁을 하고 있지 않다. 10%라도 동의하는 대중이 있으면 그들과 함께 투쟁해야 할 것이 아니냐”며 민주노총이 절박함을 가지고 투쟁에 나설 것을 호소했다.
또한 구권서 의장은 “사안이 엄중하다. 11월 대중들의 지지를 받으며 할 수 있는 투쟁이 바로 이번 투쟁이다. 민주노총은 비리사건으로 비틀거리고 있다. 이 때 정권과 자본은 비정규개안법안 통과로 결정타를 날리고 내년 2월 로드맵으로 마무리하려 들고 있다”며 “위기를 극복하는 방법은 오직 싸우는 것이다. 할 수 있는 만큼, 모이는 힘을 가지고 끝까지 싸워보자. 그래야 다시 시작할 수 있지 않겠는가”고 목소리 높였다.
"97년의 경험을 잊어서는 안된다“
▲ 구권서 의장은 연신 무엇이든 하겠다고 다들 투쟁에 나서자고 호소했다. |
민주노총이 정규직 대공장 중심의 노동운동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라는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구권서 의장도 민주노총이 비정규직 투쟁에 최선을 다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한마디로 정리했다. “경험해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구권서 의장은 한 편으로 “우리는 경험했다”고 이야기 하며 97년을 기억할 것을 호소했다. 구권서 의장은 “우리가 97년에 정리해고법, 파견법 통과되는 거 눈으로 보지 않았는가. 그 이후 수 많은 노동자들이 잘려나가고 파견직 노동자로 전락하고, 죽어가는 거 눈으로 보지 않았는가”며 “우리는 경험이 있다. 97년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밝혔다.
전국비정규노조연대회의는 체계를 비상투쟁본부로 전환하고 비정규개악법안을 막아내기 위해 한 판 싸움을 진행하고 있다. 구권서 의장은 “현장에 기반한 투쟁을 만들어야 한다. 현장 노동자들의 피울음에 기반한 투쟁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국비정규노조연대회의는 ‘정권퇴진’ 구호를 낼 것인지에 대해 고민하고 있으며, 노동자들의 기본권을 다 빼앗아가는 정권과 국가를 비판하는 상징적 투쟁을 벌일 것을 결의하고 있다.
"내일의 태양을 위한 오늘의 싸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라는 유명한 영화가 있다. 그 영화 마지막 장면에 스칼렛이 혼자 석양이 지는 황무지에 서서 긴 치마를 확 찢으며 유명한 말을 남긴다.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뜬다라는 말이었다. 우리는 내일을 준비하는 투쟁을 하지만 그냥 기다리는 싸움을 하는 것이 아니라 내일을 오늘로 만들기 위한 싸움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우리에게 남은 것은 이것 밖에 없다”
구권서 의장은 이미 절망의 바닥을 본 민주노총, 파견법 등의 통과로 노동자들의 죽음을 경험한 민주노총이 노동자들의 절박한 울부짖음을 듣지 못하는 것을 안타까워하고 있었다. 그리고 구권서 의장은 민주노총이 현재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해야 하는 것은 오직 투쟁임을 강조했다. 그는 서울역 앞에 있는 대우빌딩 지하 보일러실에서 일하던 기억을 떠올리며 그 때의 경험으로, 그런 절박함으로 싸움을 만들어 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