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이 되는 즐거운 상상

[285리평화행진순례기](1-2) - 청와대에서 무지개학교까지

지금 숙소인 무지개 학교 1층에서는 학교 선생님이 사주신 치킨과 맥주를 마시며 서로 인사도 하고 편안하게 이야기 중이다. 글 정리를 하고 나도 내려가 봐야겠다.

무릎 뒤가 쑤시고 허벅지 뼈가 결린다. 태어나서 하루 사이에 이렇게 오래 걷기는 처음이었다. 하지만 학생운동 6년차 운동부족으로 인한 뼈마디 결림을 제외하고는 고단함을 느끼지 못했는데, 그만큼 걸으면서 묻고 또 사람들과 즐겁게 걸었기 때문인가 보다.

비가 올 듯 말 듯한 날씨 아래 청와대를 시작으로 행진을 시작했다. 처음 뵙는 동지들, 단위들 속에서 집행부 단 둘이 참가한 행진은 늘 참여하는 집회와는 다른 느낌일 수밖에 없었다.

아무도 밟지 않은 눈 위에 남겨진 내 발자국을 보는 것처럼 지금의 투쟁에 대한 모든 것을 이 발자국에 남기며 걷는 것 같아 한걸음 한걸음에 깊은 무게가 실려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리고 왠지 설레이고 신이 났다.


행진 참가자들은 집행부 동지들이 나눠준 호루라기로 외통부, 미군 부대 등을 지날 때마다 불며 가기도 하고 재밌는 구호를 외치기도 했다. 서울역에선 한미 FTA 반대 선전전을 하고 계시던 서울 민중연대 동지들의 지지, 행진을 할 때 범민련과 사회진보연대 사무실에서 동지들이 해주는 응원의 말과 플랜카드 들 덕분에 웃음도 나고 힘도 났다.

함께하지 못하는 분들의 응원에서 단순히 순례하는 것이 아니라 이 행진이 얼마나 중요한지 현재 이 사회에 평택 투쟁이 얼마나 절박한지 더욱 느낄 수 있었다. 그분들도 함께하면 좋으려만 시대가 엄혹하여 활동가들이 요즘 같아선 몸이 두 세 개라도 모자랄 지경이다. 노무현 정권 퇴진하라~~!! 신자유주의 반대한다~!!라는 구호가 저절로 나온다.

국방부로 걸어갈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이 길은 참 삭막하다. 인적도 드물어 보이는 건도로 위에 차들 뿐이다. 게다가 싸늘하며 건조한 전쟁의 유물들이 그 앞을 떡 지키고 있다.

국방부는 월드컵 개막전에 겨우 대국민 토론회를 열더니 김지태 위원장님을 석방하지도 않은 채로 대화하자고 한다. 맘 편한대로 열었다 닫쳤다 하는 그들의 태도처럼 규탄집회를 간 국방부는 오늘도 역시 전경들을 앞세운 체 굳게 닫혀있었다. 규탄집회를 마치며 마지막으로 평화를 택하라 스티커를 붙이고 반대의 뜻을 담은 글이 적힌 리본을 국방부 쇠로된 담벼락에 묶었다. 굳게 닫힌 철문 안에서 그들은 우리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

대부분의 사람들이 한미 fta에 반대하고 평택미군기지확장 이전에 부정적이다. 그들은 철문으로 특별히 보호받는 것이 아닌, 그들 스스로 갖히기 위해 철문을 만든 느낌이다.

규탄대회 이후, 본격적으로 행진을 하며 시원한 나무그늘 아래를 지나며 구호도 외치고 함께 간 집행부와 쉼 없이 이야기를 나눴다.

지금의 느낌, 행진에 참여하는 각자의 마음도 물어보고 활동하면서 어려움, 투쟁을 어떻게 하면 될지 등 등. 이야기를 하며 고민이 풀리기도, 얻어가기도 하였다. 이야기를 하고, 구호를 외치고, 몰랐던 서울의 모습들, 시민의 표정들을 보며 내가 왜 이 투쟁에 결합하고 있는지를 끊임없이 확인하게 되었다. 청량한 물이 내 안에 잔잔한 파문을 열며 한방울씩 채워지는 듯한 느낌은, 다른 일을 제껴두고 행진에 결합한 내게 그것을 채우고도 넘을 만한 경험이었다. (비록 행진하며 과천 즈음부터 너무 힘든 나머지 아무 말도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지만.) 평택 투쟁이 "전략적 유연성 반대" "전쟁기지 건설 반대" "주민생존권 쟁취" 라는 서면속의 글씨가 아닌 내 삶에 촉촉하게 젖어드는 그런 기분이었다.


촛불 문화제를 사당역에서 진행했다. 김완동지 말처럼 처음 촛불 문화제를 보아서 그런지 광화문과는 다르게 시민들도 오래 보시고 우리의 느낌도 새로웠다. 강남 고층빌딩의 환한 불빛과 차들의 라이트 속에서 우리들이 든 촛불은 그 고유의 노랗고도 붉은 빛으로 그 공간을 꽉 채웠다. 행진단을 맞이한 과천 민주노동당 동지들의 발언, 조약골, 평클, 비나리 분들의 공연으로 유쾌한 문화제를 계속 진행해나갔다. 빈부의 양극화가 급속도로 진행되는 한국사회의 "부"의 표상인 강남에서 촛불 문화제를 했다는 것은 그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었다.

조별로 조이름, 조구호 등을 준비해서 보여주기도 하는 등 문화공연과 발언 등이 이어졌다. 이번 문화제의 이슈는 바로 예전 촛불문화제 에서도 공연했던 평클 분들이었다. 언니들의 당당하고 자신있는 댄스 덕분에 당황해 하면서도 바로 모두 웃고 신나했다. 언니들 참 멋지세요!! 서울지역 촛불문화제에 결합하면서 사람들이 없으면 힘이 쭉 빠졌다. 오늘처럼만 촛불문화제에 사람들이 있었다면 앞으로도 예전처럼 매일 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생각에 씁쓸함이 교차했다. 매주 1회로 결정한 것이 단순히 참여자 수가 점점 줄어서는 아니겠지만, 줄어드는 참여자 속에서 나 자신은 점 점 자괴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언덕을 넘어 과천에 도착하여 왠지 분위기가 차분해지면서도 묘하게 중독성이 있는 대추리 도두리 황새울 지킴이 짝짝! (우리가 누구라고요?/ -대추리 도두리 황새울 지킴이 짝짝/ 대추리에 - 생명을/도두리에 - 평화를/ 한미fta -막아내자/ 투쟁 - 투쟁/ 승리 -확신 )구호를 외치며 행진을 했다. 노래는 구호를 외치는 와중에 쉴 때에 들으며 갔는데 처음에 이제 잭을 구해서 노래를 다양하게 틀어줄 수 있다는 말에 사람들이 환호성을 내기도 했다. 과천을 가고, 넘어서면서는 진행하시는 동지들이 신청곡을 받았다다. 마치 평화 순례단 라디오 방송을 듣는 것 같이 자유롭고 유쾌한 분위기였다.

"여름안에서"가 나아왔을때 그 환호성과 기쁨이란! 이어지는 신청곡들을 들으며 이런 곡을 들으며 행진할 줄은 몰랐다고 친구와 웃으며 이야기를 했었다. 여름안에서(듀스), 항상 엔진을 켜둘게(델리스파이스), destiny(불독맨션). 행진(전인권) 등 등. 신선하고 새로웠다.


평택으로 걸어가며 동시에 평택에서 내 삶의 공간으로 나와서는 무엇을 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도 더해만 간다. 육체의 힘듦은 즐거움으로 잊고 고민들은 이야기와 투쟁을 하며 저마다 풀어가고 있는 것 같다. 결의와 투쟁과 동지와 삶이 씨실과 날실로 얽혀가며 투쟁을 승리로 만들어내가는 공간, 평화 순례단은 그래서 의미가 더 깊은 것 같다.

천근만마 같은 다리, 감기는 눈. 무지개 학교는 숙소는 조용하다. 아마 근처 맑은내 학교도 조용할 것이다. 아무쪼록 모두 건강히 순례를 마치고 반드시 한미 fta 막아내고 평택 전쟁기지건설을 막아내자! 대추리와 도두리에서 승리 기념으로 신나게 길놀이하고 마을잔치도 거하게 하는 상상이 꼭 현실이 될 수 있게! 4박 5일 참여한 동지들, 또 응원하는 동지들 모두 힘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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