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남북정상회담 개최 소식이 알려지면서 대선 정국은 또다른 국면을 맞았다. 노무현 대통령의 방북 결정 소식은 이랜드, 아프간 사태 등 중요한 계급투쟁 사안들을 일거에 흡수하는 양상을 띠고 있다.
남북정상회담 성사가 갑작스러운 소식은 물론 아니다. 참여정부 임기 내 실현이 기정사실처럼 받아들여진 사안이다. 참여정부는 북핵 문제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등 현안에 대한 획기적인 진전을 꾀해, 임기 중 평화번영정책의 성과를 집약한다는 구상을 가지고 있었고, 동시에 대선 국면에서 정국 주도권을 쥐는 정치카드로 활용한다는 점도 익히 예고된 일이다.
제2차 남북정상회담은 정부가 말하는 대로 "6.15공동선언 합의 정신을 구현하고 남북 간 평화와 번영의 시대를 실질적으로 열어가는데 기여하게 될 것"이고 "9.19성명, 2.13 초기조치 실천 단계 이행 시기에 2차 남북정상회담을 개최함으로써, 북핵 문제와 남북관계를 동시에 발전시킬 수 있는 의미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 정치지형으로 미뤄볼 때 남북정상회담이 이루어지는 것만으로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의 중대한 이정표로 남을 전망이다.
더군다나 평화선언 채택 등과 함께 한반도 비핵화, 한반도 평화, 군사조치, 남북경협 등 주요 의제에 대한 소기의 성과를 낳는다면 이후 4자회담을 통한 종전 선언, 평화협정 체결, 북미수교 등과 같은 굵직굵직한 시나리오가 구체적인 일정에 올라올 수도 있게 된다. 따라서 8월 28일-30일 개최되는 남북정상회담은 대선 레이스가 본 단계에 들어설 9월 이후 정국을 좌지우지하는 메가톤급 이슈로 자리잡을 전망이다.
다른 변수가 없다면 제2차 남북정상회담의 정치적 성과는 개혁세력이 대부분을 수렴할 것으로 보인다. 범여권은 냉전세력과 평화개혁세력의 양분 구도를 통해 지지층을 흡수하는데 유리한 위치를 차지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남북정상회담이라는 카드에 내포된 정치적 속성 자체가 이른바 ‘평화개혁세력’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기 때문이다. 북은 연초 노동신문, 조선인민군, 청년전위 등 3개 신문의 신년공동사설(신년사)에서 ‘반보수대연합’을 주장한 바 있다. 햇볕정책과 남북경협 등에 호의적인 입장을 가져온 북으로서는 남북정상회담이 반보수대연합에 유리한 환경을 조성할 것이라는 판단이고, 그런 점에서 참여정부와 포괄적인 교감을 해왔다고 봐도 틀리지 않아보인다.
노동정책, 자유무역협정, 파병정책, 민주주의 후퇴 등 갖가지 실정으로 지지세력을 잃어버린 데다 한나라당의 독주에 밀려 수세에 놓인 참여정부와 개혁세력에 있어 차기 정부에서 제2차 남북정상회담의 성과를 이어가야 한다는 여론이 형성된다면, 대선에서 범여권 후보가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도 있다는 판단이다. 더군다나 8월 한나라당 경선과 9월 범여권 및 민주노동당 후보 경선 과정에서 남북정상회담 문제가 핵심 이슈로 자리잡을 것으로 보여, 대선 레이스가 본격화되는 9월 분위기가 범여권 중심으로 흐를 것이란 데 대해 아무도 부정하지 않는 모습이다.
한나라당은 한반도평화비전 등 신대북정책을 내놓고 정책적 변신을 꾀하고 있지만 남북정상회담 시기, 장소, 절차의 문제를 들어 반대한다는 입장을 비쳐 유일한 반대세력으로 내몰렸다. 한나라당이 지난 달 발표한 ‘한반도평화비전’에 ‘비핵화, 평화정착 위해 필요시 남북정상회담 개최’ ‘남북미중 4자간 종전 선언 수용검토’ 등 획기적 내용을 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제2차 남북정상회담에 안티적 태도를 취할 수밖에 없는 지형이 만들어졌다고 볼 수 있다.
한나라당의 당론과 이명박 박근혜 두 후보의 입장에 미묘한 차이를 보이는 것도 남북정상회담 카드가 부담스랍게 작용하고 있음을 반증한다. 박근혜 후보는 9일 “대통령 임기가 6개월 남아도 필요하다면 임기 마지막날까지 할 일은 해야 한다”고 말해 당내 반발을 무릅쓰고 전향적 지지 입장을 피력했다. 임박한 당내 경선을 앞두고 중도층 흡수 등 밖에서 던져진 남북정상회담 문제를 유리하게 활용하겠다는 의도로 보이지만, 보수적 지지층의 반발을 쉽게 지나치기 어려운 형편이다.
한편 민주노동당은 남북정상회담 결정 소식에 '열렬히 환영'한다는 성명을 발표하고 5가지 회담 의제를 제안하는 등 적극적인 태도를 보였다. 김선동 사무총장은 8일 오전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민주노동당은 그동안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위해 남북정상회담이 속히 개최되어야 함을 주장해왔던 만큼 이번 2차 정상회담 개최 합의를 전적으로 지지한다"면서 "정상회담을 통해 정부 당국이 한반도 문제의 주체로 역사적 소임을 다해 나가기를 진심으로 바란다"고 밝혔다.
남북정상회담에 대한 민주노동당의 이같은 태도는 개혁세력과 크게 다르지 않은 데다, 의제 등에서도 변별점이 없어 일정한 딜레마를 안고 가야할 처지이다. 당내적으로는 자주파의 집결 효과가 있다는 진단이 있으나 9월 이후 전체 국면에서 볼 때 민주노동당에게 유리하게 작용하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남북정상회담 카드가 개혁세력의 집결 흐름으로 이어질 경우 향후 한반도 정책에 있어 얼마나 적극적이고 급진적인 목소리를 내느냐에 따라 진보적 지지층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남북정상회담에서 다뤄질 의제는 크게 네 개로 점쳐진다. 한반도 비핵화, 한반도 평화체제, 군사조치, 남북경협 등이다.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이후 미국이 대북 적대정책을 철회하거나 완화하고,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논의가 급물살을 탈 경우, 남북정상회담 카드에 이은 한반도 평화 문제는 9월 이후 대선 국면 전체를 놓고 가장 위력을 미치는 사안으로 자리잡을 전망이다.
여기에다 남북경협의 활성화는 한미자유무역협정의 연장에서 경제협력강화약정 등 ‘남북FTA’를 촉진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 대한상공회의소, 중소기업중앙회 등이 남북경협을 활성화할 뿐 아니라 한국 경제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입장을 표명한 데서 보듯이, 남북정상회담 카드의 위력은 정치적 이벤트 차원이 아니라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와 남북경제 전반에 큰 변화를 예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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