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회담, 노무현정권의 마지막 필살기인가 (2)

[기고] 노무현정부의 제2차 남북정상회담

고독하지만 여유있는 군주의 결단

한국이 고립된 채로 북한에 집요하게 접근하면, 북한의 대남 정책에서 자유 선택의 폭은 그만큼 넓어진다. 과거에 비해 현재 한국의 입지는 약화됐고 북한의 입지는 강화되었다. 현재 북한은 더 이상 한국을 과거처럼 중시할 필요를 느끼지 않을 것이다. 북한은 미국을 직접 다룰 수 있고, 일본과 관계 개선에서도 한국의 역할이 중요하지 않다고 판단할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6자 회담과 관련하여 벌어지는 여러 협상에서, 다른 국가들이 한국의 이해관계를 방어하거나 한국과 협력하여야 할 의무감을 덜 느낄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한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한국이 독자노선이면 다른 나라도 독자노선이고, 한국에 힘이 없으면 한국을 굳이 배려해야 할 필요도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북으로서는 워싱턴으로 가는 길이 멀고 험해 보인다. 직접 가는 것이 빠르고 좋겠지만 지형도 험하고 날씨도 요즘처럼 국지성 호우라 오히려 시간이 더 많이 걸린다. 언제 벼락을 맞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서울을 경유해서 가는 것이 보다 빨리 갈 수 있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대북적대시 정책이 철회되지는 않았지만 과거의 강경책이 완화되었기 때문에 더 가속을 붙여야 할 것이고, 남북관계를 긍정적으로 가져갈 경우 미국과의 관계 개선에도 긍정적인 방향으로 작용할 것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굳이 전문용어로 쓰자면 통남통미 전략인 것이다.

그동안 노무현 정부가 정상회담을 하고 싶어서 얼마나 안달이 났던가. 그토록 원하고 있는데, 한 번 응해주고 실리를 챙기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달콤한 말 한마디에 기뻐서 까무러칠지도 모른다. 벌써 경의선 도로를 통한 방북 합의에 희색이 만면하다. 대가는 굳이 현금일 필요는 없으며, 그렇게 할 수도 없다. 김정일 위원장도 남한의 상황이 변한 것을 잘 알고 있으니까 현금을 받지 않고도 필요한 것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구태여 거기에 매달리지 않아도 된다. 아마 대규모 경제지원이 훨씬 낫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북한은 이미 오래전부터 구호성 지원보다는 ‘경제개발지원’을 원해온 것을 보면, 남북정상회담은 이를 현실화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

또한 장기간의 위기상황으로 북한의 내구력이 약화된 것도 해결해야 한다. 정상회담으로 남한의 대선 이후 북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역풍을 막는 한편 이번 대선에서 일정 부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도 고려했을 것이다. 남북관계 및 대북정책을 불가역적으로 만들 필요성도 느꼈을 것이다. 한반도에서의 민족공조 모양을 대외에 비치고 싶어한 것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북으로서는 이번 회담의 주도권을 행사하면서 남한에게 군사, 정치, 경제회담에서 요구조건 수위를 높일 것이다.

노무현식 소용돌이 정치가 될 것인가

노무현 대통령은 그 동안의 국내정세가 여권에게 불리하게 작용한 것과 무관하게 개인적인 판단과 선택에 의존하여 정국을 운영하였다. 자신이 생각했던 구상대로 정치지형의 변화를 이끌려고 했지만 결과는 여의치 않았다. 한반도 정세 역시 북미관계를 축으로 한미관계와 남북관계가 맞물려 돌아가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으며, 자신의 실정이 시민사회 내 반미감정과는 무관하게 반노(또는 반여) 감정으로 팽배해 있다.

이러한 분위기와 정서는 한나라당 ‘빅2’의 돌풍을 잠재우기에는 역부족이며, 오히려 내부의 갈등과 대립으로 친노, 비노 등으로 분화되어 내부의 일체성과 응집력을 떨어뜨려 정권 재창출의 위기의식을 가져다주었다. 노무현 대통령의 의도와 무관하게 본인이 구심점이 되지 못한 것도 커다란 요인이다. 범여권의 대통합민주신당의 출범과 후보단일화 등의 구상도 탄력을 받지 못하고 있으며, 당분간 탄력요인을 찾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수많은 대선주자들의 난립이 순기능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는 기대는 오르지 않는 지지율과 한나라당의 돌풍으로 무참히 깨지고 있는 형국이다.

현재 시중에는 2000조에 달하는 유동성자금이 투자처를 찾지 못해 주식시장으로 몰리고 있다. 한국은행이 콜금리를 올렸지만 과잉 유동성 축소에는 별로 도움이 된 것 같지는 않다. 그렇다고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 대출) 부실 사태가 크게 악영향을 끼쳤다고 정부는 보지 않는다. 코스피 지수가 순식간에 80포인트(4.2퍼센트) 폭락했지만 충격이 그리 크지 않아 보인다. 정부는 이들 자금을 실물경제로 돌려야 하며 투자처를 찾아줘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물론 그 방향이 북으로 향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거대한 핵 폭풍을 만들어 모든 정치·경제 부유물들을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 들어가게 만들 필요성이 강하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이는 당사자들이 인정하든 말든 무관하다. 또한 노무현 대통령은 남북관계에서만큼은 차기 정권에서도 승계가 불가피한 업적을 남기는 데 주력하고 있다. 문제는 이번 정상회담이 그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인가이다.

정상회담 이후 4자 정상회담(남.북.미.중) 가능성이 있고, 후속조치들이 추진되는 과정에서 친노, 비노 구도는 의미가 없어질 것으로 보인다. 만약 이번 정상회담에서 한반도 평화선언이 나온다면 ‘평화통일세력’과 ‘반평화통일세력’으로 나눠 정국이 전개될 것이다. 정상회담 이후 합의 내용과 후속조치 추진 과정에 한나라당의 반발이 거세거나 남남갈등 양상으로 전개될 경우 그 전선은 더욱 뚜렷해질 것인데, 청와대와 범여권은 그것을 내심 바라고 있는 것 같다. 노무현 대통령의 정국 주도력을 통해서 그들만의 진보대연합이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노무현 변수’를 주목해야 한다.

그럼에도 대선정국에서 결정적인 변수가 되기는 어려워 보인다. 그러한 노림수가 먹히기 위해서는 후속조치가 필요한데, 정상회담 이후 진행되는 후속조치는 실무적인 것이기 때문에 한계가 명확하다. 한나라당 경선이 8월 19일이라 어느 정도 ‘김빼기’는 가능하다. 9월 15일 시작하는 대통합민주신당의 경선 분위기를 띄워 줄 수는 있다. 하지만 그 이상의 파괴력을 찾기는 어려울 것이다.

가장 효과적인 것은 일각에서 떠들고 있는 김정일 위원장의 답방이 될 것이다. 하지만 실현가능성은 매우 낮으며, 답방 카드를 만들기도 어렵다. 만약 이번 정상회담에서 가장 큰 성과가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선언 이라면, 그것을 능가할 만한 카드가 있는가? 그렇다고 통일방안 카드를 들고 나올 수도 없다. 그것은 위험부담이 크기 때문에 적절한 선택이 될 수는 없다. 북으로서도 남한 정세개입이 자신들과 범여권에게 불리하게 돌아간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쉽지 않은 선택이다.

8월 남북정상회담은 자주 거론됐던 신선도가 떨어지는 메뉴다. 이미 북핵 해법이 나온 상태이기 때문에 한반도 위기감도 희석된 상태다. 예전에는 국민들이 안보 이데올로기에 근거하여 선택하였다면 이번에는 민생문제가 가장 중요한 선택지로 작용할 것이다. 그렇다면 제2차 남북정상회담이 대선정국에서 결정적인 변수가 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고 결정적인 변수가 아니라고 해서 정권 재창출을 못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판단과 선택은 유권자의 몫이며, 정권을 획득하는 방법과 변수는 다양하기 때문이다.

예상되는 주요의제

이번 정상회담이 노무현 정부에게 어려운 것은 지난 2000년 정상회담을 뛰어넘어야 하기 때문이다. 특검 수사로 6.15정상회담을 돈 주고 샀다는 비판 여론과 정상회담 주역들이 줄줄이 사법 처리 대상이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지난 7년 동안 외적으로는 어느 정도 성과가 있었지만 각론으로 보면 내실이 없다는 것이 또 하나의 교훈이다. 2000년 정상회담이 만남에 의의를 두었다면 이번 정상회담은 실천 가능한 구체적인 성과가 도출되어야 의미가 있다. 그래서 노무현 정부에게 2000년을 뛰어넘어야 하는 부담감이 있다.

이번 정상회담 개최가 불러온 가장 커다란 궁금증은 의제 문제이다. 언론을 통해 거론되고 있는 의제를 보면 정상회담이 무슨 만병통치약인양 거의 모든 부문을 망라하고 있다. 서두에서도 언급했지만 한나라당을 비롯하여 많은 단체와 전문가들이 논의하지 말라는 것도 많다. 그만큼 정상회담에 거는 기대가 크다는 것을 반증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5일 체결된 합의서에 의하면 이번 정상회담 의제는 크게 한반도 평화와 민족공동 번영과 조국통일 3가지로 정리된다.

한반도 평화 의제와 관련해선 한반도 비핵화, 평화체제, 군사분야 신뢰구축 문제 등이 거론될 것으로 보인다. 만약 한반도 평화선언이 나온다면, 이 선언을 뒷받침하는 군사적 긴장완화를 위한 남북간 협의기구가 그 주된 내용이 될 것이다. 또한 한반도 비핵화에 대한 김정일 위원장의 천명도 예상된다.

민족공동 번영에는 대북지원 방안 및 경제협력 확대, 이산가족 등이 언급될 것으로 예상된다. 노무현 대통령이 14일 남북정상회담과 관련해 “남북간 경제공동체의 기반을 조성해 장기적으로 경제공동체를 형성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언급했기 때문에 남북경제공동체가 주된 논의가 될 것이다. 구체적인 내용이 너무 많아서 일일이 열거하기가 어려울 정도이다. 남포 및 신의주 특구, 평양공단 조성사업, 지하자원 공동개발, 발해만 자원사업, 개성공단 사업의 확대, 에너지 지원·도로 항만 개보수·공장 설립 등 사회간접자본(SOC) 투자, 철도 정기운행 등 포괄적으로 논의할 것으로 보인다. 남북경협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고 본격화한다는 합의가 예상된다. 다자 틀보다는 민족공조를 통해 먼저 푼다는 정치적 의미가 만들어질 것으로 보인다.

조국통일 의제에는 통일 방안을 다룬 6.15공동선언의 2항을 현실화시킬 수 있는 구체적 방안이 나올 수 있는지가 관건이다. 지금까지 이 문제를 논의하지 않은 것은 민감한 사안이라 남북 모두 이 문제를 공론화하길 꺼려했기 때문이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논의를 한다면 상징적인 수준에서 서로 확인만 하는 자리가 될 것이다.

물론 남북관계의 질적인 발전을 위해서는 한미 연합군사훈련 중단, 국가보안법 폐지, 서해북방한계선(NLL) 문제, 참관지 제한 철폐 문제 등 상대방 체제를 인정하는 ‘근본문제’의 논의가 불가피할 것이다. 지금은 남북관계를 적극 진전시켜 국제사회의 핵문제 해결 노력을 뒷받침하고 한반도·동북아 평화체제 논의에서 남북한이 차지하는 공간을 넓혀가야 한다. 그렇다면 북측이 제기하는 이른바 ‘근본문제’에 대한 논의를 피할 이유는 없다. 이들 문제뿐만 아니라 군비축소 문제에 대한 논의 역시 시급하다. 북한은 앞으로 꾸준히 군사적·정치적 문제를 이슈화 해나갈 것이기 때문에 오히려 북측이 이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상황에서 남북간 논의를 군사적 대결상태를 해소할 수 있는 방향으로 끌고 가는 것도 중요하다. 군사·정치 사안을 정면으로 다루지 않으면 기존 경협과 민간 교류·협력의 흐름까지도 왜곡될 수 있는 상황이 됐다.

뒤태가 아름다워야 한다는데

노무현 정부가 이번 남북정상회담에서 요구할 가능성이 있는 ‘한반도 평화선언’이나 ‘평화체제구축’을 위한 선언에 북한이 응하는 것은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북한은 이미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에 대한 자신들의 의지를 수차례 밝혔으며, 2.13합의를 통해서 확인도 하였다. 그런 측면에서 ‘한반도 평화선언’은 모양새를 갖추기 쉽다. 하지만 어떠한 의미도 부여하기는 힘들다. 북핵 문제 해법은 이미 나와 있는 상태이고 김정일 위원장은 남북문제는 ‘민족끼리’ 해결하되 북핵 문제와 평화협정 문제는 미국과 해결해야 할 과제라는 점을 분명히 해 왔기 때문이다. 북한으로서는 이 문제에 대해서 남한과 별도로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을 것 같다. 다만 배려차원에서 남한에 담보해 주는 수준으로 생각할 수 있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대규모 경제지원과 경제협력밖에 없다. 앞서 언급한 다양한 의제들을 보면 몇몇을 제외하면 굳이 정상회담에서 논의될 필요성을 못 느낀다. 지금까지 지속성을 띠고 있는 사업도 있고, 남북회담을 통해서도 충분히 논의가 가능한 의제도 있다. 북핵 문제와 평화 문제 등의 정치적 성과가 미흡한 채 경제적인 성과를 생산하게 되면 국민적 공감대를 얻지도 못하고 차기 정부에게 부담만 지우게 된다. 결국 북의 신자유주의적 편입 내지 FTA체제로의 편입을 직접목표로 하는 자본에게 대북 진출의 유리한 조건을 마련해 준다는 의미만 남게 된다. 역대 정권 예외 없이 그랬지만 노무현 정부도 퇴장할 때 뒷모습이 추할 것 같다. 아마 앞으로의 정권도 당분간은 아름다운 뒤태를 기대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투명하지 않은 이번 정상회담에서 중요한 것은 한반도 상황을 획기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상상력인데, 노무현 정부에게서 그것을 기대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언제나 그랬듯이 역시 상상력이 빈곤하기 때문이다. 한반도 평화는 국가수준에서 정치지도자들이 만나 합의한다고 해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남북한 민중들의 보편적인 가치 실현에 기여해야 의미가 있는 것이다. 북한의 수해 피해가 작년보다 심각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말 걱정이다.
덧붙이는 말

배성인 님은 한신대 교수로, 본 지 편집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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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핵 , 남북정상회담 , 한반도 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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