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 남북경협에 무게 비중
노무현 대통령은 제62주년 8.15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 균형적 실용외교, 협력적 자주국방, 신뢰와 포용의 대북정책 등의 입장을 표명하고, 남북대화와 경제협력에 보다 실용적인 태도를 가질 것을 호소했다. 생산적이고 쌍방향적인 남북협력체제 구축으로 남북경제공동체를 건설하자는 메시지로, 북핵과 군사적 신뢰 문제 등에 비해 남북경협에 무게를 실었다.
남북경협에 대해 노무현 대통령은 "생산적 투자협력으로, 쌍방향 협력으로 발전시켜 우리에게는 투자의 기회가, 북한에게는 경제회복의 기회가 되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말하고 우선 가능한 것부터 실질적인 진전을 이루어 남북경제공동체를 만들 것을 화두로 삼았다.
노무현 대통령은 “정전체제가 평화체제로 전환되고, 남북이 함께 공조하는 한반도 경제시대가 열리면 한반도는 명실공이 동북아 경제의 중심이 될 것이다. 우리는 유라시아 대륙으로 힘차게 뻗어나가면서 동북아의 물류, 금융, 비즈니스 허브로 확고히 자리 잡고, 북한은 획기적인 경제발전의 기회를 갖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남북경협의 강조는 14일 국무회의에서도 확인된다. 노무현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남북정상회담의 본질에 대해 "결국 무엇을 이루어내느냐의 문제이다. 평화, 경제 그리고 미래의 민족통합을 위해서 어떤 진전을 이루어내느냐 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북핵, 평화 이런 문제의 의제를 놓치지는 않을 것이나, 경제에 있어서의 상호 의존 관계라는 것은 평화 보장의 가장 중요한 문제"라고 언급했다. 이어 "경제협력의 단계를 한 단계 더 끌어올리고 남북 간 소위 경제공동체의 기반을 조성해나가는 것, 장기적으로 경제공동체를 형성해나가는 것이 한반도 평화에 가장 중요한 문제"라고 덧붙여, 남북경협에 비중을 두고 있음을 내비쳤다.
한편 노무현 대통령이 "이것만은 꼭 받아내라는 부담을 지우지 말아달라"고 당부하거나 "무리한 욕심을 부리지 않겠다"고 말하기도 해, 남북정상회담에 대한 과도한 기대에 대해서도 사전 포석을 놓기도 했다.
'북핵', '경협'의 함수관계
한편 16일부터 북핵 문제 실무 논의단위인 6자회담 산하 비핵화실무그룹회의가 중국 심양에서 열려 주목된다. 실무그룹회의는 북핵 프로그램 신고 및 불능화 등 북핵 2단계 조치를 끝내기 위한 단계와 시한을 설정하는 데 역점을 둔 것으로 알려졌다.
남북정상회담이 '한반도 비핵화' 의제와 '한반도 평화' 의제를 주되게 다룰 것으로 예상되는만큼 실무그룹회의가 다룰 내용은 사실상 남북정상회담 의제의 합의 수준을 규정할 것이라는 지적이다. 2차 북핵 위기를 불러온 북 우라늄농축프로그램(UEF) 문제와 핵무기 신고 대상 포함 여부 등 민감하고 핵심적인 사안을 다룸으로써 한반도 비핵화 과정 전방의 실마리가 달려있는 셈이다.
이미 영변핵시설 폐쇄.봉인 조치와 IAEA사찰단의 입북.감시활동이 이루어졌고, 중유 5만톤 지원 제공과 북미, 북일 관계 정상화를 위한 양자대화가 개시되는 등 2.13합의 초기단계가 중간단계로 진입한 상황이다. 중간단계에서 북의 이행조치인 모든 핵프로그램의 완전한 신고와 흑연감속로 및 재처리시설을 포함한 모든 핵시설 불능화가 이루어진다면, 중유 95만톤 상당의 경제.에너지의 지원과 6자 외교장관회담 개최로 한반도 평화체제 협상에 착수하게 된다.
다만 변수는 있다. 2.13합의가 '행동 대 행동'의 원칙으로 이루어지는만큼 북이 요구하는 테러지원국 명단 제외와 대적성국 교역법 적용 배제 요구에 미국은 아직 명시적인 입장을 표명하지 않는 상황이다. 또한 '납치 문제'를 연관시키려는 일본의 태도도 언제든 현재의 국면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실무그룹회의에는 천영우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과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차관보, 리근 북 외무성 미국국장 등이 참여하고 있으며, 언론에 따르면 낙관적인 회담 분위기가 전해지고 있다.
천영우 본부장은 "핵 시설 불능화 및 핵프로그램 신고단계의 시한을 설정하는 것이 우선 목표"라고 말하고 핵시설 불능화의 방법론도 이야기할 수 있기를 기대했다. 13일 베이징에서 열린 김계관 북 외무성 부상과 힐 차관보 간의 양자접촉에 이어 실무그룹회의가 열리고 있어 리근 미국국장도 긍정적인 전망이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북미 양자접촉에서 김계관 부상은 미국이 다음달 초 열릴 북미관계정상화 실무그룹회의에서 대북 정치적 상응 조치를 취할 것을 미리 약속하면 우라늄농축, 핵무기 신고 여부 등 핵심 쟁점을 16일 실무그룹회의에서 결정할 수도 있다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중간단계로 넘어가는 국면에서 미국의 '행동' 차례를 확인한다는 취지로 보이며, 미국이 명시적으로 입장을 표명할 경우, 남북정상회담 의제 준비도 탄력을 받을 전망이다.
다 잘(?) 되어, 남북FTA까지 거론되나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남북경협에 대해 정부가 강조하는 것은 지금까지의 남북경협이 일방적, 단기적, 소비적인 지원이었으며, 향후 남북경협은 생산적 투자협력으로 장기적, 쌍방향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이다.
경협과 관련 지금까지 가장 크게 부각되는 것은 개성공단 외 새로운 공단 조성 사업으로, 제2, 제3 개성공단 사업을 통해 남에게는 자본 진출 확대를, 북에게는 경제성장 동력으로 삼을 수 있도록 한다는 내용이다. 이를 위해 남포항 등 항만 인접 지역 공단 조성이 거론되고, 북의 광물자원 개발과 원자재 구입 등 경공업-지하자원 개발의 대폭 확대 가능성도 제기된다. 또한 남포 서한만 등의 유전개발에 한국석유공사 참여가 검토되고 있으며, 도로 항만 전력 등 북의 사회간접자본 투자도 구체적인 규모가 거론되는 상황이다.
한편 청와대는 22일을 전후해 남북경협 관련 재계와의 간담회를 가질 예정이다. 대한상의는 경제5단체장과 주요 자본 및 개성공단 입주 자본 100여 명 규모의 명단을 제출했으며, 삼성, 현대기아차, LG, SK 등 4대 자본 총수의 참여도 검토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남북경제공동체 건설과 관련 최근 삼성경제연구소가 발표한 남북경제협력강화협정CEPA) 체결 문제도 정부 내에서 거론되고 있다는 소식이다.
남북경협이 보다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민족내부 거래'로 규정되어있는 남북간 무관세 거래를 국제적으로 인정받아야 할 필요성이 있기 때문이다. 1992년 채택된 '남북교류협력 부속합의서'와 2005년 입법화된 '남북관계발전법' 등에 따르면 남북 관계는 국가 관계가 아니라 잠정적으로 형성된 특수 관계로 해석된다. 남북경협이 이처럼 '민족 내부거래'라는 법률적, 제도적 기반위에서 10여년 간 추진돼 온 데다 한반도 정세에 좌지우지되는 불안정한 상황이 반복돼, 지금까지 정부의 의지에도 불구하고 기대만큼 활성화되지 못한 측면이 크다. 이에 따라 북핵 문제가 해결되고 미국의 테러지원국 명단 제외와 적성국 교역법 적용 배제 등이 이루어질 경우 남북경협은 새로운 법률적, 제도적 환경을 요구하게 될 것이라는 이야기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청와대 관계자는 남북FTA 또는 CEPA 문제가 남북정상회담 의제로 될 가능성에 대해 "민간에서 그런 의견들이 나온 것으로 알고 있고, 정부에서 아이디어 차원에서 배제할 필요는 없다. 모든 방안들이 검토되고 있다"고 답해 남북정상회담 공동선언에 이 내용이 반영될 지 여부도 관심을 모은다.
제2차 남북정상회담에서 노무현정부의 구상대로 경제와 평화가 선순환하는 남북관계의 실질적 진전이 이루어진다면 지난 10년간의 남북경협의 질적 변화도 불가피할 것이고, 이는 남북FTA에 준한 새로운 정치 경제적 조건의 형성을 부른다는 점에서 주목되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사실상 한미FTA의 연장으로 읽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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