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동당 정책위원회가 '2차남북정상회담, D-15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를 주제로 토론회를 가졌으나 임팩트가 없다. 발제자와 토론자 모두 역사적, 정세적 맥락을 강조한 나머지 남북정상회담 자체를 초월적으로 인식한 탓으로 보인다.
정책위원회와 천영세 의원실 주최로 17일 오전 10시부터 열린 토론회는 김민하 전 민주평통 수석부의장(제1차 남북정상회담 수행단장)과 김은진 민주노동당 최고위원(한반도평화운동본부장)이 발제를 하고, 정창현 현대사연구소 소장과 민경우 한국진보연대 정책위부위원장이 토론자로 참석했다.
김은진, "남북정상회담 역사적 산물로 이해해야"
김은진 최고위원은 남북정상회담 성격과 의제에 대한 의견을 밝혔으나, 통일, 평화, 협력 등 세 가지 내용에 대한 일반적인 수준의 입장을 표명하는데 그쳤다. 당 입장이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8월 8일 민주노동당이 남북정상회담을 환영하며 의제로 제시한 내용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고, 15일을 앞둔 시점에서 준비와 관련해서도 특별히 부각되는 내용은 없었다.
민주노동당은 제2차 남북정상회담 의제로 △통일방안 합의를 위한 공동추진기구 구성·1단계 통일기구 구성 △남북 신뢰구축을 위한 법.제도적 문제 정비 △남북 군사분야 신뢰 구축을 위한 방안 마련 △남북경제공동체 건설을 위한 전략 마련 △남북 사회문화 교류 전면화 등을 제시한 바 있다.
김은진 최고위원은 우선 남북정상회담의 성격을 역사적 맥락에서 살폈다. 남북정상회담을 "당시 정권의 성격이나 정치지형, 정치적 계산에 규정되지 않는 한반도 역사의 흐름 속에서 합의, 추진, 무산되기도 하는 역사적인 산물"로 이해했다. "노무현정부가 친미사대적이고 반북대결적인 정책에 편승해온 정부여서 정상회담에 얼마나 기대를 걸 수 있겠는가 하는 우려가 있지만, 정상회담은 한반도 통일의 시대적 산물이지 정치전략이나 전술 문제가 아니"라는 주장이다.
김은진 최고위원은 2차 남북정상회담이 "대선 문제나 노무현정부의 한계, 무능력의 문제를 초월해 새로운 역사적 성과를 가져다 줄 것"이라는 신념을 표현하기도 했다. 또한 정상회담에서 다룰 의제도 포괄적으로 이해했다. "정상회담의 의제가 남북간 전체적인 문제를 논의하는 자리이기 때문에 어떤 진영의 요구를 들고 들어가거나 (특정) 의제를 반드시 논의해야 한다는 생각은 버리는 것이 좋다"는 제언이다.
그러나 북핵 해결을 요구하는 것에 대해서는 "비정치적, 비과학적, 몰정치적"이라며 배제하고 "남북간 분단된 현실을 어떻게 극복하고 통일로 가느냐가 가장 중요한 의제"라며 의제에 대한 가치판단을 하기도 했다. 덧붙여 2000년 제1차 남북정상회담에서 합의한 통일방안에 따라 구체적인 기구나 조직을 만들어 7년 동안 진전이 없던 통일방안을 안정되게 논의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김은진 최고위원은 이번 대선에서 한나라당의 당선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반북, 친미, 보수적인 정치세력들과 집단의 남북정상회담에 대한 폄하에 강력하게 대응하고, 한미동맹 문제와 주한미군 철수, 군사훈련 문제에 대한 대국민적 여론화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은진 최고위원은 아울러 국가보안법 문제도 거론, 이른바 북이 주장하는 근본문제와 관련한 민주노동당의 대응을 역설했다.
정창현, "정치권 의제 논의 협소"
남북정상회담에 대한 초월적인 인식은 정창현 소장의 토론에서도 드러난다. 정창현 소장은 "이번 정상회담으로 몇 가지 비약이 이루어질 것이다"라고 말하고 "북미관계 연장선상에, 동북아 정세의 변화 속에 남북정상회담이 위치해 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따라서 정치권의 논의는 굉장히 협소한 논의라며, 예를 들어 "NLL을 양보하면 문제가 있다고 이야기할 수는 있지만 그것보다 열 배 강도의 합의로 덮을 거다" 라며 대부분의 의제가 이미 합의가 된 만큼 세레모니와 발표만 남았다고 주장했다.
정창현 소장은 남북정상회담 이후 민주노동당의 활동에 대해 "남북제정당사회단체연석회의를 하는 것은 의미가 있지만 남북상설위와 제정당사회단체연석회의는 질적으로 다르므로, 당적 기구로서의 민주노동당이 연석회의를 요구하는 것이 맞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민경우, "천지개벽하는 상상할 수 없는 정세 온다"
민경우 부위원장 역시 이번 정상회담이 한반도 통일과 국제정세의 비등점이 될 것이라고 보았다. "2000년처럼 후퇴하거나 돌아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 새로운 시대, 극적 변화가 불가피한 조건에서 정상회담이 열린다"는 주장이다.
민경우 부위원장은 정상회담의 의제와 관련한 토론에서 '대담한', '파격적' 등의 수사를 빈번하게 사용, "내년 중순 쯤이면 천지개벽하는 상상할 수 없는 정세가 열릴 것"이라며 흥분된 모습을 감추지 않았다. 핵 문제가 풀리면 남북 군축 문제도 풀리고, 평화문제나 경협 부분도 대담한 수준에서 이루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통일방안도 민주노동당이 생각하는 정도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민경우 부위원장은 "북은 남쪽의 예상대로 잘 안 해 준다"며 "작년 핵 실험 당시 전문가들이 이야기를 많이 했는데 맞춘 사람은 거의 없다"는 사례를 들었다. 북의 특징이 그렇다는 변호를 곁들였다. 그리고 북은 남의 대선과 정치지형에 상당한 수준으로 개입할 것으로 보았다. 현재 대선 국면이 "한나라당이 주도하고, 대통합신당이 죽 쑤고 있는 상황이어서 외부적 자원을 동원해야 하는데 그게 남북관계"라고 말하고, "(북은) 평화와 통일이냐 반평화와 반통일이냐의 파격적인 안을 낼 거다"고 주장했다.
이와 연동하는 대규모 경협과 납북자, 국군포로 등 인도적 문제도 상당한 조치가 있을 것이고, 이에 따라 한나라당과 범여권 사이에 큰 전선이 그어지게 될 거라고 판단했다. 따라서 민주노동당은 주도권을 잡기 어려운 만큼 통일방안과 남북관계를 가로막는 조치들을 중심으로 실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민경우 부위원장은 대선 이후 북의 태도에 대해서도 "한나라당 후보가 당선되면 북은 강력하고 강도 높은 조치를 취해 남에서 진보적이고 자주적인 정치세력이 성장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 것"이라고 말해 북의 대남 정치 개입을 강하게 시사하기도 했다.
남북정상회담을 보름 앞두고 열린 민주노동당 토론회, 당직자와 참가자들의 들뜬 표정이 확인된 자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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