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랜드 조합원들에게 보내는 편지

[박병학의 글쓰기 삶쓰기] 제겐 세상과 맞서는 무기가 글밖에 없어서요

어느 시인은 날씨가 좋지 않아 글을 쓰지 못했다지만 날씨는 둘째 치고 이상하게도 오늘은 아침부터 마음이 너무 안 좋았어요. 간밤에 방에서 혼자 웅크리고 앉아 마셔댄 술 탓인지 아니면 벼락처럼 들려온 강남 성모병원 농성장 침탈 소식 때문인지, 티끌 한 점 없이 높푸르기만 한 가을 하늘이 괜히 눈꼴시어 보이더라구요. 아, 인사가 늦었네요. 아까 집회 때 뵈었지만, 거리 행진은 잘하고 들어가셨는지 모르겠네요.

저는 아까 오후에 있었던 신촌 이랜드 본사 앞 집회가 끝나고 잠시 일을 나갔다가 밤에는 강남 성모병원에 갔었어요. 아마 이 글을 마치고 성모병원에서 취재한 것들을 뒤적이며 또 다른 글을 써야 할 것 같은데, 이미 한 번 써먹었던 ‘편지’운운 하는 글꼴을 받는 이만 살짝 바꿔 다시 쓰고 있는 이유는 얼마 전 귓등으로 듣기엔 너무나 찔리는 소문을 들었기 때문이에요. 제가 성모병원 조합원들에게는 참세상에 편지도 써서 올렸는데 이랜드 조합원들에게는 편지를 쓰지 않은 이유가 따로 있다나요? “성모병원 조합원들이 또래라서 그래!” 저도 그 자리에선 흐하하 웃고 말았지만 왠지 미안하고 죄송스럽고 그러더라구요. 한두 번 본 사이도 아닌데 순서대로라면 먼저 이랜드 조합원들에게 술푸념 같기도 하고 넋두리 같기도 한 글을 보내드렸어야 하는 게 아닌가 싶기도 했구요. 그래서 늦은 밤, 눈을 비벼 가며 지금 이 글을 쓰고 있어요.

마음이 좋지 않았어요. 며칠 전 어떤 술자리에서 한 선배랑 크게 싸운 일이 있었지요. 주거니 받거니 얼근하게 술이 오르던 중 장기투쟁사업장들 이야기가 어쩌다 나왔는데, 그 선배는 특정 사업장 이름을 거론하며 대강 이런 말을 했던 것 같아요. ‘거기는 제발 좀 싸움 접었으면 좋겠다. 장기투쟁사업장 늘어나는 거 더 이상 보기 싫다. 승산이 없는 싸움을 왜 하고 있나’ 저는 술기운 탓이었는지 그 말을 듣고 그만 열이 확 오르고 말았지요. 그래서 저 자신도 깜짝 놀랄 정도로 언성을 높여 소리를 질렀어요. ‘아, 그럼 거기 가서 조합원들에게 직접 이야기하세요! 여기서 우리끼리 그런 소리해서 뭐하게?’ 그때부터 시작된 싸움은 결국 ‘왜 현장에 잘 나오지도 않으면서 그런 말을 하느냐’ ‘내가 너보다 많이 나갔다’ ‘내가 유세 떨기 위해 현장에 갔느냐’ ‘그러는 너는 농성장에 가서 있지 왜 여기 왔냐’ 이런 막말로까지 치달았고 저는 같이 핏대를 세우고 소리를 지르면서도 속으로는 ‘이게 아닌데’를 연방 되뇌었지요. 술자리는 난장판이 되었어요. 해서는 안 될 말도 비수를 던지듯 선배에게 마구 내던졌고, 들어서는 안 될 말도 던진 비수를 되던져 받듯 고스란히 들어 버린 밤이었어요.

틀린 말은 아니었지요. 장기투쟁사업장이 하나 둘 늘어나 자꾸만 노동자들이 삭발하고 단식하고 노숙하고 끌려 나가고 얻어맞고 아파하고 슬퍼하고 가난해지고 하는 것들을 누가 보고 싶어 하겠어요? 하지만 노동자들의 삶에 대해서, 흔히 연대 단위라 뭉뚱그려 부르는 바깥사람들이 함부로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지요. 어찌 되었든 바깥사람에 지나지 않아 차마 입 밖으로 내지 못하던 말들, 그 선배나 저나 속에서만 위경련처럼 꿈틀대던 그 말들이 뜻하지 않게 튀어나와 보기 싫게 엉키고 말았던 게 아니었을까요? 해고 노동자들이 복직돼서 일터로 돌아가도 금방 그만두는 경우가 많다고, 어차피 꼴 보기 싫은 회사에 다시 들어가느니 그까짓 것 때려치우고 다른 길을 찾아서 회사 엿 먹이는 게 낫지 않겠느냐고, 그래요, 그럴 수도 있을 거예요. 하지만 저는 그렇게 잘라 말하기엔 아는 게 너무 없었어요. 막연하게 집회 일정이 있으면 나가서 팔뚝질하고 노래 부르고 취재하고 글 쓰고 하긴 하는데, 밤에 천막 농성장 지키면서 조합원 분들이랑 술 한 잔씩 하며 이야기도 나누긴 하는데, 그 많은 조합원 분들이 저마다 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정작 하나도 알지 못했어요. 지금도 그래요. 잘 몰라요. 어쩌면 저는 그 선배에게 화를 냈던 것이 아니라 조합원 분들의 속내를 더듬어 보는 것조차 버거운, 아는 것 하나 없이 나대기만 하는 저 자신에게 울컥 짜증이 났는지도 모르겠어요.

그 후로 마음이 안 좋아 며칠 동안 계속 술을 마셔 댔지요. 현장들을 다닌답시고 차비 쓰며 돌아다니는 것도, 수첩을 팔락거려가며 글을 쓰는 것도 하나같이 다 너절해 보였어요. 모임 사람들과 연신내 쪽으로 엠티를 갔었는데 새벽까지 술을 들입다 퍼먹다가 쓰러져 잠들었으면서, 늦은 아침에 일어나, 다른 사람들은 짐 정리하고 있는 와중에도 저는 가을볕이 좋다는 핑계로 김치보시기 하나 꺼내 놓고 아침부터 또 혼자 술을 마셨어요. 모르긴 해도 그 날 아침에 주변 사람들에게 엄청 폐 끼쳤을 거예요. 신도림역에서 전철을 갈아타려고 내렸는데 하늘을 보니까 들이붓는 햇살이 봄볕처럼 따사로운 게 괜히 서러워지더군요. 플랫폼 구석에 비틀비틀 주질러 앉아 친구 놈에게 전화를 걸었어요. 아니, 그 녀석이 먼저 걸었나? 하여튼 중얼중얼 통화를 하는데, 취직하고 잘 나가는 동기 녀석들, 벌써 애 엄마가 된 동기들, 누구는 유학 가고 누구는 대학원 가고 누구는 새 차 뽑고...... 얘기를 하다가 저도 모르게 끅끅 울게 되더라구요. 글이랍시고 폼 잡고 쓰고는 있는데 별로 좋은 글도 아닌 것 같고, 사람들 사이에서 배겨나는 건 갈수록 어려워지고, 사랑도 마음대로 안 되고, 글 쓰는 거 하나 붙잡고 아등바등 목말라 하는 건 또 왜 그리 너절하게 보이는지. 친구 놈이 그러더군요. “야, 우냐? 다 그런 거 아니겠냐? 아무리 철학자 같이 말하며 잘난 척하는 새끼들도 다 코 나오면 코 풀고, 똥마려우면 똥 누고......” 대낮에 신도림역 플랫폼에 주저앉아 술 냄새 풍기며 끅끅 우는 것도 남부끄러워져 저는 얼른 목소리를 가다듬고 말했어요. “야, 씨발, 그나마 내 맘대로 되는 게 글 쓰는 거밖에 없다. 다른 건 다 망했어. 글이나 쓸란다. 죽어라 글이나 써야지.”

저는 두려웠지요. 지난 9월에 이랜드 추석 집중 투쟁을 1일차부터 9일차까지 꼬박 따라다니며 글을 쓰면서도, 노동자들의 삶을 글로 옮기고 그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읽혀서 어떤 다른 힘을 만들어 낼 수 있도록 하는 일이, 그게 과연 가능할지 제 능력도 의심스러웠지만, 글쎄요, 너무나 어렵고 힘들게 느껴졌어요. 요새는 강남 성모병원 농성장에 자주 다니며 글을 쓰고는 있지만 뭔가 좋은 글을 쓰고는 있는 건지 잘 모르겠어요. 좋은 글? 도대체 어떤 글이 좋은 글일까요? 그것도 모르겠어요. 인간의 삶이 자본에 시달리며 겨울 허수아비처럼 외롭게 픽픽 쓰러지고 있는 판국에 저 혼자 가만히 있을 수는 없고, 뭐라도 하긴 해야겠는데 할 줄 아는 건 글 쓰는 것밖엔 없는지라, 저는 지금껏 글을 쓰고 있는 걸까요? 더우면 땀을 흘리고 추우면 털을 곤두세우는 것처럼, 순전히 주위 환경에 되는 대로 반응하고자 저는 취재를 다니고 글을 쓰는 것일까요?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너무 제 얘기만 했네요. 아무튼 이랜드 일반노조 김경욱 위원장님과 홍윤경 사무국장님에게 이랜드가 7200만 원 짜리 손배 청구를 했다는 소식을 들으니 가뜩이나 안 좋은 마음이 더 착잡해지더군요. 이제 다 끝나간다, 투쟁 마무리 단계다, 승리하면 모여서 조합원들이랑 엠티 한 번 가자, 이런 말이 오가는 분위기에도 아랑곳없이 이랜드 조합원들을 끊임없이 거리로 불러내는 이랜드 자본이 왜 그리 밉살스럽게 느껴졌는지. 이랜드 본사가 무슨 물귀신도 아니고 찰거머리도 아니고 낮도깨비도 아니고 아둔패기도 아니고, 정말 어처구니가 없었어요. 홈플러스에 매각했으면 됐지 이제 와서 무슨 놈의 손배 청구? 추석 전날에 조합원들에게 징계 내린 것도 모자라 이제는 치사하고 더럽게 돈으로 장난을 쳐?

흔들리지 말고 독하게 살아야 한다, 독하게, 내 할 일만 하고 사는 거다, 글이나 쓰는 거다, 자꾸 중얼거리면서 신촌 이랜드 본사 앞에 도착한 것은 세 시가 조금 넘었을 때였지요. 본사로 들어가는 골목 앞 인도에는 이미 조합원 분들이 모여 앉아 있었고 저쪽으로는 무전기를 들고 돌아다니는 양복쟁이 경찰들이 보였어요. 집회는 아직 시작하지 않았구요. 저는 조합원 분들에게 인사를 드리고는 혼자 슬며시 이랜드 본사 앞까지 가 보았어요. 전경 버스 세 대인가 네 대가 본사 정문 부근을 울타리처럼 둘러치고 있었지요. 정문 안에는 전경들이 우글거렸고 저는 차마 그 앞에서 사진을 대놓고 찍을 수 없어 그곳에서 조금 벗어난 곳에 가서 이랜드 본사와 전경 버스들이 사이 좋게 나오도록 한 장 찍었어요.

집회가 시작되었고 사회를 보는 홍윤경 사무국장님이 첫 발언으로 김경욱 위원장님을 지명했어요. 저쪽 구석에서 전화를 받던 김 위원장님은 한동안 통화를 계속하다가 전화를 끊고 헐레벌떡 앞으로 달려 나와서, 내일 상견례를 하는 삼성 테스코와 연락하던 중이었다고 했죠. 발언이 끝나고 손배 청구에 대해서도 물어볼 겸, 김 위원장님에게 가서 말을 걸었어요.

“그게...... 손배 청구가 정확히 어떻게 된 거예요?”
“2006년 7월에 본사 앞에서, 그때는 까르푸, 뉴코아, 이랜드가 같이 싸우던 시절이었는데, 그때 있었던 일로 지금에 와서 이랜드 자본이 손배 건 거죠. 뉴코아 노조 위원장은 안 걸고 홍 사무국장과 저만 걸었어요. 아직까지 투쟁하고 있는 노동자들을 탄압하겠다는 속셈이겠죠.”
“액수는요?”
“두 명에게 떨어진 게 7200만 원. 근데 어차피 한 사람이 못 내면 다른 한 사람이 대신 내야 하는 거니까, 한 사람에게 7200만 원씩 떨어진 거나 마찬가지예요.”
“그때 상황이 어땠나요? 기물 파손 같은 게 있었나요?”
“저희 과실로 파손된 기물은 없었구요. 그때 본사 노조 사무실에 오전부터 있던 여성 조합원들이 있었는데 본사가 정문을 폐쇄하는 바람에 그 조합원들이 갇히게 돼 버려서 구하러 들어간 거였죠. 조합원들이랑 연대 단위랑 합해 천여 명 정도 있었어요. 보안 직원들이랑 옥신각신하다가 유리창 하나가 빠졌고 CCTV도 하나가 깨졌는데, CCTV는 연대 동지가 깬 거였죠.”
“그때 혹시 다치신 분들은......”
“조합원 한 명이 손가락 골절상을 입었어요. 유리문에 손이 끼어 있는데 보안 직원들이 그대로 밀어 버려서 손이 확 꺾였죠. 민중의소리나 오마이뉴스 기사 찾아보시면 아마 2006년 7월쯤에 나온 기사들이 있을 거예요.”
“내일 삼성 테스코와 상견례를 하신다고 했는데, 교섭을 하게 되면 어떤 문제들이 쟁점이 될까요?”
“해고자 복직 문제랑 비정규직 문제가 가장 크죠.”
“그런데 삼성 테스코는 지금까지 그런 문제들에 대해 어떠한 언급도 하지 않았죠?”
“언급 같은 건 없었죠. 교섭 때는 아무래도 법과 원칙을 들고 나오지 않을까요?
저는 망설이다가 결국 물어보고야 말았어요.
“손배......는 어떻게 하실 건가요?”
“지금으로선 못 내죠. (웃음) 변호사 선임하고...... 법정 싸움으로 가야죠.”


뜨거운 음식을 손에 쥔 아이처럼 징징대던 이랜드 자본은 결국 홈에버를 삼성 테스코에 무책임하게 팔아 넘겼지만, 이미 다른 식구가 돼 버린 조합원들에게 무슨 까닭인지 자꾸만 시비를 걸고 있었어요. 같이 죽자는 걸까요? 아니면 먹지도 못할 감 찔러나 보자는? 왜 2년도 더 전에 벌어졌던 일을 하필이면 지금에 와서 문제 삼는지, 한두 푼도 아니고 7200만 원이면 박성수 회장에게는 푼돈인지 모르겠지만 조합원들에게는 굉장히 큰돈이잖아요. ‘내 늘그막을 망쳐 놓은 노조 놈들에게 복수를 하고 말 거야 히히히’ 혼자 어딘가에 숨어 음흉하게 킬킬거리는 박성수 회장의 잔뜩 꼬부라든 모습이 떠올랐어요. 정말 그럴까요? 복수라는 돼먹지 못한 꿈을 꾸며 박성수 회장이 남몰래 이랜드 간부들에게 이래라 저래라 지령을 내리고 있는 것일까요? 황선영 월드컵분회 직무대행의 발언을 들어 보니 이랜드의 지저분한 짓거리들은 그뿐만이 아니었지요.

“똥이 무서워서 피하나 더러워서 피하지, 이 말을 생각하며 그동안 똥을 피해 다니다가 우리가 그 더러운 오물을 치워버리자 마음먹고 시작한 싸움이었죠. 그래서 결국 우리가 똥을 치워 버린 거잖아요. 그런데 오물은 끝까지 냄새를 피우고 있습니다...... 지난 9월 27일 오전에 문자가 왔어요. 직원용 시계를 준다고 받아가라는 거였어요. 일요일(28일)에 갔더니 직원이 없어서 줄 수가 없고 다음날 준다더군요. 그래서 월요일에 또 갔죠. 그랬더니 28일까지 안 와서 시계를 못 준다는 거예요. 이거 보세요. 저희는 그딴 시계 안 받아도 됩니다...... 점장이 그랬대요. 28일까지 안 가져가면 시계는 불우이웃 돕기에 쓴다고. 그래서 본사에 물어보니까 본사에서는 그런 지침을 내린 적이 없대요. 저 말고 매장 안에 있는 직원들도 시계 많이 못 받았어요. 위로금도 그렇고...... 그 시계가 이랜드 홈에버 월드컵점 직원 일동 명의로 불우이웃 돕기에 쓰였는지 아니면 점장 명의로 쓰였는지 확인해 봐야 하겠죠? 오물을 꽁꽁 싸서 아예 지구 밖으로 던져 버려야 했는데 그냥 옆으로 치워 놔서 아직도 냄새를 풍기고 있는 것 같습니다. 싸움이 조만간 끝난다 해도 이랜드 불매는 끝까지 이어 가려고 합니다.”

위로금? 위로금은 또 뭘까? 저는 궁금해져서 이남신 수석부위원장님이 발언하는 중에 홍 사무국장님한테 가서 물어봤어요.

“위로금이라는 말을 들었는데 그건 뭔가요?”
“이랜드가 홈에버를 떠나면서 위로금이라고 한 달치 기본급 100%씩 직원들에게 지급했거든요. 근데 그걸 파업 노동자들한테는 안 줬고, 파업했다가 복귀한 노동자들 중에서도 못 받은 경우가 많아요. 도대체 위로금을 주는 기준이 뭔지 모르겠어요.”


이랜드는 코흘리개 애새끼들이 운영하는 기업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문득 떠올랐어요. 어쩌면 이렇게 유치해질 수 있을까요? 박성수 회장은 기륭 전자 최동열 회장과 누가누가 더 더럽고 추악해질 수 있나 내기라도 하고 있는 걸까요? 파업 일자로는 기륭을 당할 수 없으니 이랜드 조합원들 속이라도 마구 긁어 놔야겠다고 박성수 회장은 지금도 새로운 아이디어를 짜내고 있을까요? 홈에버는 팔아 넘겼지만 나머지 계열사들이라도 확실히 휘어잡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이랜드 자본이 너무나 딱해 보였어요.

집회가 끝나고, 조합원 분들은 이대 후아유 매장까지 피켓을 든 채 행진을 한다고 했지요. 저는 학원으로 출근을 해야 해서 인사를 드리고 6호선 광흥창역 쪽으로 갔어요. 지하철역 입구가 끼어 있는 사거리에 서서 지나가는 자동차들을 바라보며 담배를 피우는데 담배 맛이 꼭 삶의 비린 맛 같기도 하고, 씽씽 달려오는 자동차들이 “똑바로 살아라! 알았냐!”라고 윽박지르는 것 같기도 해서 기분이 이상해졌지요. 이따 밤에는 또 강남 성모병원에도 가야 하는데......

역시 방에서 혼자 술 마시며 괜히 시시껄렁한 생각에만 젖어 있는 것보다는, 집회에 나와서 조합원 분들 만나고 낄낄대고 얘기 듣는 게 훨씬 좋은 것 같아요. 머릿속으로 사람 모양을 그려보는 것과 실제로 사람들을 만나는 건 차이가 정말 큰가 봐요. 하지만 그렇다고 제가 이랜드 조합원 분들과 무슨 살붙이처럼 가까운 존재가 되려고 집회에 나오는 건 아니에요. 인연이야 어떻게든 되겠지요. 지금처럼 허물없이 웃으며 이야기 나눌 수 있는 게 어딘가요? 물론 말 한 마디 못 섞어본 조합원 분들이 훨씬 더 많지만, 적어도 우리의 입김은 같은 공간에서 여러 번 섞였을 테니 그것만 해도 꽤 큰 인연이라 우길 수 있지 않을까요? 인연이야 앞으로 어떻게든 되겠지요. 어떻게든. 다음부터는 처음 뵙는 분들에게도 싹싹하게 인사를 좀 드려야겠어요. 제가 원래 낯을 무지 가리는 성격이거든요.

이제 와서 드리는 말씀이지만 저는 지난 이랜드 추석 집중 투쟁을 기록하면서 현장 글쓰기라는 것에 대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고 또 그만큼 잘 몰라서 엇나간 부분도 많았어요. 현장에 나가서 글을 쓰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누구도 제게 가르쳐 주지 않았지요. 그때도 그랬지만 지금도 솔직히 수첩과 볼펜과 사진기만 달랑 들고 무작정 뱃심으로만 현장에 나가고 있어요. 거리에서 싸우고 있는 노동자들이 절반을 써 주고, 제 발과 귀가 나머지 절반을 써 줄 것이라는 (가당찮은?) 믿음 때문일까요? 결국 거리에서 모든 걸 배울 수 있으리라는 기대 때문일까요?

다른 글도 많은데 왜 하필이면 집회 현장을 돌아다니며 글을 쓰려고 하는지 저 자신도 잘 모르겠어요. 저는 남들보다 착하지도 않고 곧지도 않고 강단이 있지도 않은데, 차라리 글을 쓰려면 뒷동산에 담배 한 대 피워 물고 앉아 일기나 끼적이지 왜 몸도 힘들고 마음도 팍팍하게 집회 현장을 돌아다니려 하는 건지 저도 참 영문을 알 수 없어요. 어쩌면 저 앞에 쓴 것처럼, 이 세상과 정면으로 맞설 수 있는 무기가 제게는 글을 쓰는 것밖에 없어서인지도 몰라요. 황금을 처발라 놓은 듯 겉으로만 번쩍번쩍 빛나고 있지만 속으로는 곪아 들어가고 있는 이 세상은, 맞서지 않기엔 너무나도 유혹적이에요.

싸움은 제대로 해 나가지 못하면 결국 어리광이 되지요. 저도 지지 않고 열심히 싸울 거예요. 악랄한 자본들과도, 자꾸 허물어지려는 저 자신과도.

투쟁이 전부 다 끝나면 조합원 분들이랑 연대 단위들이랑 모여서 기차 여행 떠나기로 했었지요? 차량 한 대 전세 내서 거기에 한꺼번에 타고, 차창 열어 소리 지르며 술 마시고...... 비록 집회 때마다 발언 한 마디 제대로 못해 마이크 잡고 쭈뼛거리기만 하는 저도, 그 날이 오면 그럴 듯하게 노래 한 자락 뽑을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런 날, 곧 오겠지요?

날씨 추워지는데 다들 건강하시구요. 조만간 천막 농성장 밤샘하는 날에 또 찾아갈게요. 글쓰기를 요 며칠 사이에 몇 번이나 때려치우고 싶었는데, 이제 와선 그런 생각이 드네요. 때려치우니 뭐니 거창하게 말할 정도로 글쓰기라는 게 대단한 것은 아니라는 생각. 오늘을 살아가는 인간의 삶에 비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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