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어이가 없다. 그동안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이 이른바 민주대연합과 진보대연합을 놓고 별 설득력도 없는 설왕설래를 주고받고 갑론을박을 벌여왔지만 그래도 내심으로 그 속에서 뭔가 의미 있는 결론이 도출되기를 기대했던 한 가닥 바람마저 한낱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은 지금 노동자 민중이 도저히 이해할 수 없고 납득할 수 없는 정치 행보를 걷고 있다.
민주노동당은 속내로는 민주대연합을 선호하면서도 속내야 어찌됐든 당론으로 진보정당의 통합을 전제로 한 진보대연합을 결정했음에도 이를 헌신짝처럼 버림으로써 자신들의 결정이 처음부터 위선과 허구였음을 만천하에 드러냈다. 진보신당은 더욱 심각하다. 진보신당은 전면적 진보대연합을 주장하면서 그동안 힘주어 내세웠던 ‘대안연대’, ‘가치연대’가 사실은 순전히 자신들이 처해 있는 불리한 입지를 감추기 위한 정치적 수사에 불과했다는 것을 아낌없이 보여줬다.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은 2월 10일 민주당, 창조한국당, 국민참여당과 함께 ‘2010 지방선거연합 합의서’에 동참했으며, 설 이후 ‘공동협상기구’를 발족한다는 것에 합의했다. 민주노동당은 이에 대해 아직까지 그 어떤 설명도 하고 있지 않다. 아마 자신들이 원했던 바가 이루어졌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별도의 설명을 해야 할 필요성조차 느끼고 있지 않는 것이 아닌가 짐작할 뿐이다. 아니면 설명을 하려들면 들수록 자신들이 했던 말을 주워 담아야 하는 상황만 펼쳐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어서일 수도 있다.
이에 비해 진보신당은 일단의 해명을 내놓고 있다. 그 요지는 이번 합의는 단순한 ‘반MB연대’가 아닌 ‘반MB대안(가치)연대’며, 여전히 ‘진보대연합’이 그를 위한 필수요건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논리적 궤변일 뿐이다. 우선 자신들이 주장한 ‘진보대연합’은 이제 사실상 더 이상 발붙일 명분도 공간도 없어졌다. 또한 ‘반MB연대’와 ‘반MB대안연대’를 구별하는 것은 순전히 주관적 언사에 불과하다. 진보신당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하고 있다.
지금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은 점점 더 헤어 나오기 어려운 깊은 수렁으로 빠져들고 있다. 이것이 문제가 되는 것은 그들의 이 같은 행위가 노동자 민중을 정치적 패배주의, 허무주의로 이끄는 원인이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은 부르주아 야당과 그들의 정치적 영향력 아래 있는 일부 시민단체의 압력에 끝내 굴복하고 말았다. 역으로 말하면 그들은 지금 노동자 민중에 대한 돌이키기 어려운 정치적 배신을 부지불식간에 저지르고 있는 중이다. 이명박 정권에 대한 노동자 민중의 불만과 분노가 쌓여가고 있으며, 부르주아 야당에 대한 실망감이 갈수록 커지고 있고, 반면에 진보세력에 대한 기대와 바람이 없지 않음에도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은 엉뚱한 행보를 걷고 있다.
그들은 노동자 민중의 고통과 분노를 제대로 그리고 올바르게 투쟁으로 안내하고 조직하는 데에 역량을 쏟기보다는 힘 안들이고 쉽고 편하게 어떤 정치적 성과를 낳고자 하는 유혹에 빠져있다. 말하자면 노동자 민중과 함께 고통을 나누고 앞장서서 투쟁을 이끌 생각은 하지 않고 젯밥에만 관심을 보이고 있다. 그러면서 마치 자신들이 젯밥을 많이 차지하는 것이 곧 노동자 민중의 고통을 덜 수 있는 것인 양 노동자 민중을 속이려들고 있다.
지금 민주노동당은 이명박 정권으로부터 극심한 탄압을 받고 있다. 공무원노조와 전교조에 대한 탄압이 민주노동당에 대한 탄압으로 번져나가고 있다. 노동자 민중은 민주노동당을 이명박 정권의 탄압으로부터 방어해야 한다. 민주노동당은 지금 이명박 정권의 탄압 때문에라도 부르주아 야당의 협조와 협력을 이끌어 낼 필요성을 더욱 절실하게 느끼고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것하고 이번 합의하고는 성격이 다르며 구별해야 한다.
진보신당은 이번 지방선거에서 최소한의 정치적 입지를 확보해야 할 절박한 사정에 놓여 있다. 동시에 통합 압력을 이겨내기 위해서라도 민주노동당과 차별화를 이루어야 하는 속사정도 안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대안(가치)연대’를 말하는 것을 전혀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그러나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 모두 엄청난 착각과 혼돈에 빠져 있다. 그들은 마치 자신들이 기성 정당인 것처럼 활동하고 있다. 노선과 이념 문제를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선거정당, 의회주의를 굳이 비판하지 않더라도 그들은 자신들의 생각을 실현하기 위해서라도 노동자 민중에게 투쟁할 것을 호소하고 스스로 앞장서 투쟁을 이끌어 내는 것을 최우선적인 과제로 삼아야 한다. 이것이 노동자 민중의 지지를 얻을 수 있는 가장 유력하며, 가장 유일한 방안이다.
부르주아 야당과 분명하고 단호하게 결별할 것을 선언하고 노동자 민중운동진영을 향해 공동으로 선거대응을 할 것을 제안하고 주장해야 마땅하다. 그를 위해 필요하다면 작은 기득권이나마 과감히 포기하겠다는 것을 밝혀야 한다. 즉 자신들이 민주당을 향해 하고 있는 요구와 주장을 자신들 스스로 행동에 옮겨야 한다.
이명박 정권/한나라당과 나머지 부르주아 야당들 사이의 차이보다도 그들 모두와 노동자 민중 사이에 놓여 있는 적대가 훨씬 크며 그것이 현 정세를 규정하는 핵심적인 동력이다. 이는 단지 본질적인 차원에서만 그런 것이 아니라 가장 현실적인 수준에서 관철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은 더 늦기 전에 지금이라도 정신을 차리고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고통에 휩싸여 있는 노동자 민중을 위한 방안인가를 다시 판단해야 한다.
세계공황은 여전히 진행 중에 있다. 이명박 정권은 갈수록 반민주성과 반노동자성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부르주아 야당은 자신들의 정치적 입지와 집권에 필요한 딱 그만큼만 이명박 정권과 대립하고 있을 뿐이다. 특히 민주당은 이미 지난 집권 10년 동안 노동자 민중과 적대 관계를 자처한 바 있다. 일부 시민세력이 그 속에서 혜택을 누린 바 있지만 그들을 위해 노동자 민중이 더는 고통과 희생을 감내해야 할 이유가 없다. 노동자 민중 자신의 독자적인 정치력을 확보하지 않고 세계공황, 이명박 정권, 부르주아 야당에 맞설 수 있는 다른 방안은 없다.
대의민주주의, 선출민주주의에 더는 안주해서는 안 된다. 노동자 민중 자신이 직접 권력의 주체로, 행위자로 나서야 한다. 진보정당들이 이를 앞장서 이끌어내지는 못할망정 그를 방해하거나 막는 일은 중단해야 한다. 적어도 지금 시기에 요구되고 있는 최소한의 정치 행위를 해야 할 의무가 그들에게 있다. 그들이 오늘과 같은 정도로나마 정치활동을 할 수 있게 되기까지 노동자 민중이 치른 고통과 희생에 비하면 그 정도는 예의이다.
민주대연합을 말하지만 그 속에 ‘반민주’가 서려 있으며, 진보대연합을 말하지만 그 속에 ‘반진보’가 녹아 있다. 지금까지 회자된 민주대연합과 진보대연합은 폐기해야 한다. 민주의 이름으로 민주를, 진보의 이름으로 진보를 욕되게 하는 일을 지속해서는 안 된다. 노동자 민중운동진영이 공동으로 선거대응을 해야 할 필요성은 충분하다. 이를 성사시키려면 원점에서부터 생각을 다시 해야 하며 판을 다시 짜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이 지금의 정치 행보를 거두어야 한다. 지금도 늦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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