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통진당을 떠나 한국 사회 화두가 되어버린 종북 이야기를 듣고 있자면 이명박 정권의 상상을 초월한 부패 문제도, 폭발적으로 증가한 비정규직 문제도, 민주노총의 총파업 문제도 모조리 잠수한 분위기다. 지배세력의 종북 프레임에 단단히 낚시질 당하고 있는 것이다. 금융사기 보이스피싱도 아니고 이렇게 쉽게 걸려들 줄 누가 알았겠는가. 한시라도 빨리 이 프레임을 걷어 치워야 하지만, 민주당의 작태를 보거나 통진당을 보거나 보이스피싱에 어쩔 수 없이 넘어가 주민번호를 대 줄 판이다.
이번 사태를 보면서 당혹스러운 단어가 생각난다. 종북좌파, 진보좌파라는 생뚱맞은 언어조합이다. 종북주의가 왜 좌파이고 진보가 왜 좌파란 말인가. 좌파는 이참에 종북과 진보의 언어와 결별해야 한다.
좌파는 노동에 중심을 둔 반자본주의 세력이다. 졸지에 좌파가 종북을 만나게 된 이 사태를 뭐라 설명해야 할까. 참으로 황당한 일이다. 일차적으로 노동 대 자본이라는 적대의 전선에 서있는 것이 좌파다. 좌파는 북한을 비판한다. 그런데도 종북좌파라니? 북한은 나라 전체를 3대에 걸쳐 세습하는 북조선왕조일 뿐이다. 거기에는 민주주의도 반자본주의도 노동운동도 존재하지 않는다.
대한민국은 그에 비하면 규모는 작지만 북한처럼 조선왕조 500년을 답습하고 있다. 삼성, 현대, SK 등 재벌의 세습이나 거기에 덧붙여 언론사, 병원, 대학 등 공공성을 갖추어야 할 기관이 세습되고 있다. 북한에 김일성이 있으면 남한에는 박정희가 있고 북한에 김정은이 있으면 남한에는 박근혜가 있을 뿐이다. 북한이나 대한민국이나 일란성 쌍둥이라는 얘기다. 나머지 노동자 민중들은 성 밖의 무지랭이들일 뿐이다. 그러니 박근혜 의원이 종북세력에게 나라를 맡길 수 없다는 국가주의적인 발언을 하거나 궐 바깥의 서민을 위한 정치를 하겠다는 공주스러운 이야기나 하고 다니는 것 아닌가.
노동현장에서 평상시에는 조용히 있다가 선거철만 되면 부시럭거리며 일어나 주민번호를 도용하면서까지 노동자를 자기들 당의 선거판으로 끌어들이는 작태를 벌이는 당이 왜 노동자정당이고 좌파정당인 듯 혼란을 야기시키는가 말이다. 이것이야말로 과거 러시아혁명 당시 독일 사민당 혁명 자금을 빼돌리고 노동자를 노조에서 은근슬쩍 빼내간 멘셰비키의 작태일 뿐이다. 진보 또한 좌파를 참칭하지 말아야 한다. 좌파가 진보는 될 수 있어도 진보는 좌파가 될 수 없다.
진보와 좌파의 이 비대칭성을 호도하며 진보가 좌파연 해서는 안 된다. 적대와 차이의 변증법이 중요한 과제이긴 하지만, 좌파가 적대의 전선에 서 있다면 진보는 차이의 전선에 서 있을 뿐이다.
민주당이 종북 프레임을 벗어날 수 있는 역량을 갖추었는지 알 길은 없지만 의회 안에서든 의회 바깥에서든 종북 프레임을 다른 곳으로 돌려야 한다. 통진당이 의회 안에 설 자리마저 상실한 마당에 의회주의에 기대를 걸 부분은 존재하지 않는다. 민주당이 노동 의제를 전면에 걸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지배세력의 종북 프레임을 걷어 찰 세력은 의회 바깥에 존재한다. 민주노총이 제 2의 노동자정치세력화를 진정으로 원한다면 종북 프레임이 지배하는 현 상황을 총파업으로 돌파해 나가야 한다. 통진당 조건부 지지철회 식으로, ‘목욕물 버린다고 애까지 버릴 수는 없다’는 애매한 이야기를 할 때가 아니다. 사실은 애마저도 버려야 한다.
이명박 정권 들어서서 민주주의가 한참 후퇴하더니 이제는 7-80년대로까지 회귀할 참인가. 하지만 민주노총에 신뢰가 가지 않는다. 민노당에 1% 가입한 지도부가 아래로부터의 노동자의 요구를 묵살하며 대기업 정규직 남성 보장 소득 노동자를 위주로 움직이는 민주노총이자 입으로만 그리고 정당 안에서 노동자 정치를 외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느 주체가 종북 프레임을 걷어 치우고 진정한 노동자 정치를 구현할 것인가. 현재로선 좌파가 나서는 것 외에는 해답이 없다. 좌파가 나서 현장을 엄호 포위하는 가운데 파업의 불씨를 당겨야 한다.
종북 프레임이 종북좌파라는 가면을 쓰고 좌파 공격의 빌미를 주는 시간이 올지 모른다. 종북좌파란 종북주의 세력과 좌파를 일거에 소탕하고 말겠다는 지배세력의 음험한 언어다. 좌파를 종북에 접붙여 새로운 가지치기를 시도하는 지배세력의 의도는 앞으로 기세를 더할 전망이다.
이명박 정권 하에서 노골적인 환율 방어로 재벌을 지원한 강만수조차 1930년대 공황보다 큰 공황이 닥칠 거라고 얘기하는 형국이다. 스페인에 유럽연합과 독일이 지원을 하겠다고 나섰지만 현재 전 세계적으로 풀린 돈은 사실상 계산이 불가능하다. 미구에 닥칠 특대공황과 땅거미처럼 깔리기 시작하고 있는 파시즘의 그림자가 몰고 올 국가주의에 맞서려면 지배세력의 프레임을 걷어차고 새로운 전망을 세우는 좌파의 전략이 새롭게 수립되어야 한다.
진보정치의 쇄신, 배타적 지지 같은 이야기는 이제 너무 식상하고 지쳤다. 좌파가 나서야 한다. 그 첫걸음은 노동자 민중의 정당한 계급적 생존권을 요구하는 파업이다. 학생운동과 노동운동의 기가 꺾이고 소위 말하는 진보정치는 통진당 사태로 풍비박산 났으며 총파업은 기대난망일 것 같은 상황, 종북좌파니 종북주사파니 하는 메카시즘 언어로 기세등등한 우익세력의 발호, 이대로는 2012년이 이미 다 지나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라는 절박한 심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