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뚝농성 하늘징역 1년, 스타케미칼 차광호

[기고] 5월 26일, 굴뚝농성 1년...해고자들에게 자유를!


2015년 5월 26일이 되면 스타케미칼 해고자복직투쟁위원회(해복투) 차광호 대표가 고공농성을 시작한 지 만1년이 되는 날이다. 분할매각하려는 자본과 투항한 집행부, 절망하며 떠나버린 그의 동료들. 도대체 무엇을 위해 차광호는 공장 굴뚝에 자신을 가두고, 10명의 해고자들은 고공농성사수 천막과 목동 노숙농성장에 붙박이가 되어 처절하게 싸우고 있는 것인가? 이른바 3승계가 이들의 요구이다. 3승계란 구조조정에 의해 인수합병되는 회사의 노동조합이 고용승계, 단협승계, 노조승계를 핵심적으로 요구하는 것을 의미한다.

공장을 분할매각하고 떠나겠다는 스타케미칼 자본을 향해서 자신들의 생존권과 민주노조의 사수를 위한 요구를 하며 온몸으로 저항하는 노동자들. ‘청춘을 다 바쳤다. 현장으로 돌아가자’라고 외치는 그들의 20년 사연은 이러하다.

한국합섬 어용노조 민주화와 민주노조의 현장투쟁

스타케미칼의 옛 이름은 폴리에스테르 원사를 생산하는 섬유업계의 탄탄한 중견기업 한국합섬이다. 한국합섬 초기의 노동조합은 회장 조카가 위원장으로 있는 어용노조였다. 현장을 자본이 완벽하게 통제하던 사실상의 유령노조와 진배없었다. 이러한 현장상황에서 시작된 노조민주화투쟁은 1994년에 민주노조 건설로 이어졌다.

1995년 12월 차광호의 입사동기 2명이 공장 가동을 위해 일하다 사고로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재발방지와 보상을 논의하던 노사협상 자리에서 위원장이 사측 대표인 공장장에게 뺨을 맞았다. 이에 분노한 노동자들의 투쟁 과정에서 사측은 17억6천만원의 손배소를 청구했다. 공권력의 무차별적인 공격이 가해졌다. 그러나 노조는 1996년 4월7일부터 전면파업을 벌였다. 2명이 분신할 정도로 격렬했던 파업투쟁은 38일간 진행됐다. 이 투쟁과정을 통해서 노동자들은 이 시기에 민주노조의 중요성을 절감했다고 한다.

한국합섬노조의 5년 투쟁과 이어지는 민주노조 승리의 역사

섬유업계의 건실한 기업이었던 한국합섬은 2005년 말부터 경영난을 이유로 350명에 대한 정리해고를 추진했다. 한국합섬 사측은 2006년 2월 단체협약의 합의조항을 파기하고 정리해고를 강행했다. 3월 11일 300명의 용역깡패를 투입하고 구사대를 동원해 노동자들이 지키던 공장을 폭력적으로 침탈했다. 이에 굴하지 않고 노동조합을 중심으로 똘똘 뭉친 노동자들은 결국 2006년 9월 정리해고를 철회시키고 공장 가동에 합의했다. 감격적인 승리였다. 그러나 원료대금과 경영자금을 확보하지 못해 2007년 5월 한국합섬은 파산을 선언하게 된다.

한국합섬 노동자들은 파산을 선언한 자본이 내팽개친 공장을 사수하며 치열한 투쟁을 전개했다. 주채권자인 산업은행과 삼성 그리고 정부의 책임을 요구하며 민주노조의 자존심을 걸고 투쟁했고 전국적인 연대의 물결이 함께 했다. 2010년 한국합섬을 인수한 스타케미칼 자본으로부터 투쟁의 목표였던 자산 인수와 이른바 3승계(고용, 단협, 노조)를 쟁취했다. 5년 투쟁의 결과로 100명의 노동자들이 당당하게 현장으로 돌아갔다. 한국합섬노조의 5년 투쟁은 구미를 포함한 대구경북지역은 물론이고 전국적인 관심과 연대에 기반한 ‘민주노조’가 쟁취한 소중한 승리였다.  

먹튀예비 스타케미칼 자본과 투항한 집행부, 떠나는 노동자들, 저항하는 11명의 스타케미칼 해복투

스타플렉스는 2010년 한국합섬을 399억에 인수하였고 사명을 스타케미칼로 변경하였다.  스타플렉스는 공장부지와 설비만 인수한 것이 아니라 노동자들의 고용, 단협, 노동조합을 승계했다. 당시 스타플렉스가 한국합섬 인수과정에서 저가인 399억에 한국합섬을 인수할 수 있었던 주요요인 중 하나가 스타플렉스 김세권 사장이 3승계를 약속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숙련된 기술력을 가진 노동자들의 존재는 어려운 화섬산업의 현실을 고려할 때 경쟁력 확보차원에서도 노사 상호 필요했던 것임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노동자들의 환호와 스타케미칼 자본의 약속은 오래 가지 못했다. 또다시 구조조정이 추진됐다. 당시의 경영상황을 고려대 정흥준 교수는 이렇게 예리하게 지적했다.

“공시자료를 통해 스타플렉스의 영업이익을 살펴보면, 스타케미칼을 인수하기 전 3년(2007~2009)과 비교하면 인수 후 3년(2011~2013)동안의 영업이익은 276억 원이 늘었다. 이처럼 영업이익이 늘어난 이유는 스타플렉스가 스타케미칼의 원자재를 싼 값에, 수월하게 공급받을 수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그런데 스타플렉스는 더 싸게 원자재를 구매하고자 스타케미칼의 인력구조를 비정규직으로 대체하여 인건비를 절감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노동조합의 반대에 부딪치자 스타케미칼을 재매각하는 방향으로 사업전략을 바꾼 것이다. 경영진의 입장에서는 어차피 스타케미칼을 인수하는데 사용된 399억 중 상당부분을 영업이익을 통해 회수한 상태였다. 실제, 회사는 인수를 위한 대여금의 대부분을 갚은 상태였고 스타케미칼의 부지와 설비를 따로 따로 매각하여 추가적인 수익을 원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스타플렉스의 경영전략에서 한 가지 간과된 것이 있다. 바로 회사를 위해 일해 온 노동자들이다.”

하지만 김세권 사장은 2년여 만에 노동자들을 헌신짝처럼 내쫒고 분할매각을 추진했다. 이에 대해 ‘먹튀 자본’으로 규정되는 것을 김세권 사장이 억울하다지만 ‘자초위난’이 아닌가. 문제는 노동조합 집행부도 이에 못지않았다는 것이다. 당시 노조집행부는 스타케미칼 자본의 구조조정 계획에 발맞춰 민주노조운동의 역사를 단절하고 ‘투항적 역진’을 함으로써 기댈 둔덕이 없던 노동자들은 안타깝게도 길거리로 나앉게 된다. 다만 이에 동의하지 않고 민주노조와 생존권 사수를 결의한 소수의 해고노동자들이 ‘스타케미칼 해복투’를 결성해서 가열찬 투쟁을 전개 중인 것이다.  

이른바 민주노조운동에 묻는다. 민주노조는 무엇인가?

승리의 소식을 전국에 전하며 2년여의 공장 가동과 함께 회복했던 일상은 공장가동 중단과 폐업, 분할매각이 추진되면서 한순간의 꿈처럼 지나갔다. 노조 집행부는 굴복했고 아수라장이 된 현장은 11명의 해고 노동자들을 제외하고 모두 떠나버렸다. 민주노조 파괴와 몰아치는 구조조정 공세에 결사적으로 맞선 11명의 해고자들. 결국  2014년 5월 27일 새벽 차광호가 어둠을 헤치며 위장폐업과 부당해고 철회를 요구하며 자신이 일하던 공장의 굴뚝에 올랐다. 5월 26일이면 만 1년이 된다.

자본의 동의할 수 없는 ‘먹튀’ 행각에 단호하게 ‘아니오’라고 저항할 수 있는 노조, 민주노조이다. 해고자들이 어떤 어려움도 돌파하고 현장으로 돌아가 민주노조 재건을 하겠다고 저항하는 노조, 민주노조다.

5년 투쟁 승리의 상징인 한국합섬노조는 ‘11인의 스타케미칼 해복투’로 앙상하게 남았지만 민주노조 재건과 생존권사수 투쟁의 깃발처럼 우리 곁에서 버티고 있다. 스타케미칼 해복투 투쟁 승리를 위한 엄호와 지지가 가장 처절하게 무너진 민주노조의 기풍을 바로 그 현장에서부터 재건하고 진작시키는 첩경이다. 이러한 현장을 외면한 민주노조의 연대성은 참칭이고 구두선이 아니겠는가?

11인의 해고자들이 처절하게 사수해온 자신들의 생존권과 민주노조의 깃발을 포기하지 않도록 민주노조운동이 함께 하기를 간곡한 심정으로 바란다. 그동안 연대하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리며 민주노조의 승리를 보람으로 보상받는 날을 하루라도 앞당기기 위해 조금 더 함께하자. 지상과 고공에서 농성붙박이로 자신과 가족들의 삶을 저당잡힌 대가로서 차광호를 포함한 11인의 해고자들에게 농성감옥에서의 자유와 현장복귀의 희망은 과하지 않다.

우선, 5월 26일 만1년을 맞는 차광호의 고공농성 문화제와 준비되고 있는 스타케미칼 해복투 후원주점에 함께 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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