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세상

제1차 세계대전 직전 급격한 쇠퇴에 빠졌던 대영제국은, 한 세기 뒤 몰락해 가는 미국 제국에 경고의 메시지를 던진다.

매진(Sold Out). 출처: Mr. Fish

20세기 초, 제1차 세계대전을 앞둔 시기의 영국 제국은 오늘날 미국 제국의 모습과 마찬가지로 급격한 쇠퇴의 길을 걷고 있었다. 영국 남성의 60%가 군 복무에 부적합했고, 오늘날 미국 청년의 77%도 마찬가지다. 자유당은 오늘날 민주당처럼 개혁의 필요성을 인정했지만, 노동계급이 열악한 주거 환경 속에서 오염된 공기를 마시며 기본적인 위생과 의료 서비스조차 누리지 못한 채 가혹하고 저임금 노동에 시달리게 만든 경제적·사회적 불평등을 해소하려는 노력은 거의 하지 않았다.

이에 대응해 보수당 정부는 '일부 계층의 신체적 열화'를 조사하는 부처 간 위원회를 구성했고, 이 위원회는 도시 빈민을 지칭하며 이를 “우리 인종의 퇴보”라고 명명했다. 당시 많은 이들이 로마 제국 말기의 퇴폐와 쇠락에 비유하며 경각심을 가졌다.

제국과 군대를 미화하고 낭만화했던 러디어드 키플링(Rudyard Kipling)은 1902년 시 「섬나라 사람들」(The Islanders)에서 영국이 오만과 나태, 특권으로 인해 나약하고 무기력해졌다고 경고했다. 그는 도시에서 보호받으며 자란 “미숙하고 다뤄지지 않았으며 준비되지 않은” 청년들이 제국을 지탱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고 한탄했고, 강제 징병제를 도입하자고 촉구했다. 그는 영국군이 점점 더 용병과 식민지 병력, 즉 “말 타고 총 쏠 줄 아는 자들”에 의존한다고 비판했고, 이는 오늘날 미국이 해외에서 점점 더 용병과 민병대에 의존하는 모습과 닮았다.

키플링은 대중이 장신구나 스포츠 같은 오락에 몰두하는 현실을 질타했다. “크리켓장에서 뛰노는 흰옷 입은 바보들이나, 진흙투성이 축구 경기장의 얼간이들”은 남아프리카 전쟁에 참전해야 했을 존재들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보어 전쟁 중 이어진 영국의 연이은 군사적 참패에서 제국 몰락의 징조를 보았고, 이는 중동에서 20년 넘게 이어진 미국의 군사 실패가 미국 패권을 약화한 방식과 흡사했다.

오늘날 육체적 쇠퇴, 나아가 도덕적 퇴락에 대한 집착은 국방장관 피트 헤그세스(Pete Hegseth)가 “뚱뚱한 장군들”을 비난하고 여성 군인들에게 남성과 동일한 최고 수준의 체력 기준을 요구하게 했다. 그는 이를 “전사 정신 강화 과제(Warrior Ethos Tasking)”로 추진했고, 이는 신체 단련, 외모 규정 강화, 군 대비 태세 향상 계획을 포함한다.

2025년 9월 30일, 미국 국방장관 피트 헤그세스가 버지니아주 콴티코에서 고위 군 지휘관들에게 연설한다. 전 세계에서 800명에 달하는 장군, 제독, 그리고 그들의 고위 부사관들이 갑작스러운 명령을 받고 한 장소로 집결했다. 출처: DOW Rapid Response

우리는 지금 당시 영국과 기묘하게 닮은 역사적 순간을 살고 있다. 키플링이 절망의 시를 쓴 지 12년 만에, 영국은 1차 세계대전이라는 집단 자살의 구렁텅이로 뛰어들었고, 백만 명이 넘는 영국 및 연방군 병사가 목숨을 잃었으며, 영국 제국은 결국 몰락의 길로 접어들었다.

참호전, 전차, 기관총을 예견했던 소설가 H.G. 웰스는 당시 영국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인식한 몇 안 되는 인물이었다. 그는 1908년 『공중전』(The War in the Air)에서 미래의 전쟁은 국가 간의 갈등에 국한되지 않고 전 지구적으로 확산할 것이라 경고했다. 그는 에티오피아 침공, 스페인 내전, 2차 세계대전 등에서 민간인에 대한 무차별적인 공습이 벌어질 것이라 보았고, 『해방된 세계』(The World Set Free)에서는 원자폭탄 투하까지 예견했다.

에드워디언 시대의 영국에서는 인구의 거의 3분의 1이 극심한 빈곤에 시달렸다. 사회학자 시봄 라운트리(Seebohm Rowntree)는 빈곤의 원인이 보수파가 주장한 알코올 중독, 게으름, 무책임이 아니라 “요크에서 비숙련 노동자들이 받는 임금이 가족을 최소한의 신체적 생존 수준으로 유지하기에 턱없이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미국은 현재 서방 산업국가 중에서도 빈곤율이 가장 높은 수준에 속하며, 실제 빈곤율은 공식 수치인 10.6%보다 훨씬 높다고 많은 경제학자가 지적한다. 실질적으로는 미국인의 41%가 빈곤층 또는 저소득층이며, 67%는 월급날만 바라보며 생계를 이어간다.

영국의 골턴 유전학 연구소는 '우생학(eugenics)'이라는 단어를 만든 프랜시스 골턴 경의 지원을 받아 '긍정적 우생학'을 주장했다. 이는 '우수한' 백인 중산층 이상 가정의 출산을 장려하는 방식이었다. 반대로 ‘부적합한’ 사람들에 대해서는 강제 불임 수술, 성별 격리 등을 통해 출산을 막는 ‘부정적 우생학’이 추진됐다.

윈스턴 처칠은 1910~11년 자유당 정부 내무장관 재직 당시 “지적장애자”를 “국가와 인종의 위협”이라 규정하고, 이들을 강제 불임 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들이야말로 광기의 근원”이라며 인종 청결을 주장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스티븐 밀러(Stephen Miller)의 주도로 이와 유사한 방식의 사회 ‘정화’를 추진하고 있다. 인종을 기준으로 부정적 유전 특성을 가진 사람들은 ‘인간 오염자’로 규정되고, 가면을 쓴 이민세관단속국(ICE) 요원들에 의해 테러를 당하고, 구금되며, 추방되고 있다.

2019년 유출된 이메일에서, 밀러는 장 라스파이(Jean Raspail)의 1973년 소설 『성인들의 캠프(The Camp of the Saints)』를 찬양했다. 이 소설은 남아시아 이민자들이 프랑스를 침략해 서구 문명을 파괴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여기서 이민자들은 “곱슬머리에 어두운 피부를 가진 유령”이자 “백인의 편의를 위해 일하는 개미 떼”로 묘사된다. 이들은 “캘커타 거리의 기괴한 거지들”이며, ‘배설물 먹는 힌두교 거인’이 이들을 이끈다.

이러한 세계관은 “거대 대체 이론(Great Replacement Theory)”의 극단적 형태로, 유럽과 북미의 백인들이 ‘열등한 인종’에 의해 대체되고 있다는 음모론이다.

도널드 트럼프는 자신을 “출산 장려 대통령(fertilization president)”이라 자처한다. 그의 행정부는 백인 부부들에게 출산 장려 인센티브를 제공해 출산율 감소에 대응하겠다고 약속한다. 극우 진영에서는 이를 “출산주의자(pronatalists)”라 부른다. 트럼프 행정부는 2026년 미국의 난민 수용 인원을 상징적인 수준인 7,500명으로 줄일 계획이며, 대부분은 백인 남아공인으로 채워질 예정이다.

트럼프의 실리콘밸리 동맹들은 ‘우수 유전자’를 가진 아이들을 설계하는 출산 인프라를 구축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로부터 2억 달러 규모의 1년 군 계약을 받은 샘 올트먼(Sam Altman)은 부모가 유전자 편집을 통해 ‘디자이너 베이비’를 갖도록 돕는 기술에 투자하고 있다.

트럼프의 대규모 추방 정책을 지원하는 팔란티어(Palantir)의 공동 창업자 피터 틸(Peter Thiel)은 오키드 헬스(Orchid Health)라는 배아 선별 기업에 투자했다. 오키드는 배아 유전자 테스트와 선별 기술을 통해 “건강한” 자녀를 설계할 수 있다고 약속한다. ‘위대한 대체 이론’을 신봉하는 열렬한 출산주의자 일론 머스크도 이 회사의 고객인 것으로 알려졌다. 월스트리트 저널에 따르면, 이 기술은 “부모가 자녀의 지능을 사전에 선택할 수 있게 한다.”

우리는 현재 영국 제국의 몰락을 초래한 정치 엘리트와 똑같은 자멸적 실수를 되풀이하고 있다. 우리는 빈곤의 원인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돌린다. 백인이 다른 인종보다 우월하다고 믿고, 다양한 목소리와 문화, 경험을 억압한다. 우리는 경제적·사회적 불평등과 불의를 해결하기 위해 과도한 남성성, 군국주의, 폭력에 의존하고, 이는 내부의 부패를 가속하며 파국적 세계 대전, 아마도 중국과의 전쟁으로 우리를 몰아간다.

웰스는 자신이 만든 사회 문제조차 분석하거나 해결하지 못하는 특권계층의 어리석음을 조롱했다. 그는 영국 정치 엘리트를 무지하고 무능하다며 신랄하게 비판했다. 그는 그들이 인종주의, 과잉 민족주의, 선정적 언론이 퍼뜨리는 피상적이고 상투적인 대중 담론으로 민주주의를 타락시켰다고 주장했다.

그는 경고했다. 위기가 오면, 이 권력자들은 결국 제국의 장작더미에 불을 지를 것이라고.

[출처] Decline and Fall - The Chris Hedges Report

[번역] 하주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