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기후위기, 폭염과 재난이 일상이 된 지금, 에너지 전환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필수 조건이 되었다. 그러나 현재 한국의 전환 방식이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지는 다시 물어야 할 때다. 지금의 에너지 전환은 민간 투자와 시장 논리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그 결과 막대한 공적 자금이 투입되면서도 소유와 통제권은 민간에 집중되고, 비용은 사회 전체로 전가되는 구조가 반복되고 있다. 이러한 구조적 한계와 저조한 민간 투자는 에너지 전환 속도마저 뒤처지게 만드는 원인이 된다.
이런 상황에서 에너지 전환은 단순한 기술 변화가 아니라 재생에너지 투자와 소유, 통제권의 귀속, 그리고 일자리와 사회적 배분을 둘러싼 정치·경제적 전환이다. 특히 2050년까지 약 1,550조 원에 이르는 투자 규모는 이 전환이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질 것인가를 결정짓는 핵심 쟁점이다. 본 연재는 에너지 전환의 공공적 경로를 밝히기 위해 발전공기업 통합부터 해상풍력, 지역분산에너지, 태양광, 그린수소 및 녹색공공은행 설립까지, 에너지 공공성을 노동자와 시민의 손으로 되찾기 위한 구체적인 로드맵을 제시한다.
한편, 이 글은 2023년 발간된 <공공재생에너지 확대 전략>에 이어, 전력과 가스 등 에너지 체계 전반에서 통합적인 공공적 경로를 구상한 연구보고서 <에너지 전환의 공공적 경로>(사회공공연구원 외, 2026)를 요약·소개하는 글이다.
출처: Philip Oroni, Unsplash
에너지 지산지소(地産地消) 말이 다시 화두다. 지역에서 생산된 에너지를 해당 지역에서 직접 소비한다는 의미다. 그 이면에는 아픈 역사가 있다. 밀양 765kV 송전탑 갈등을 겪으면서 2019년 ‘전기사업법’ 개정을 통해 154kV 이상의 송전선로 건설을 최소화할 수 있는 분산형 전원의 법제화가 이루어졌다.
2021년 정부의 ‘분산에너지 활성화 추진전략’은 태양광, 풍력 등 재생에너지 증가에 따른 계통 변동성 확대와 전력의 생산-소비 측면에서의 지역 간 불균형 발생을 단기 현안 과제로 제시했다. 이렇게 분산에너지에 대한 관심은 주로 생산-소비의 근접성과 인프라 규모에 초점을 맞춘다. 하지만 에너지전환의 소유·운영·관리에 주목하는 공공재생에너지 관점에서 대안적 접근을 검토할 수 있다. 분산에너지는 물리적, 기술적 공간성과 함께 정치적, 사회적 공간성을 동시에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에너지전환을 위한 에너지 분권
마침 광역 행정통합 특별법을 둘러싸고 에너지 분권의 의미와 그 실체를 검토할 기회가 생겼다. 사실 에너지 전환을 위해 합리적 수준에서 에너지 분권이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주장은 오랫동안 제기되어 왔다. 이런 입장은 보충성의 원칙, 재정적·기술적 역량 확보의 원칙, 단계적·실험적 확대의 원칙, 중앙정부의 역할 조정 원칙, 지방정부의 수평적 협력 원칙, 에너지 주민자치의 원칙 등을 강조한다.
그러나 에너지 분권의 이상과 현실 적용 사이에는 상당한 쟁점과 모순이 존재한다. 무엇보다 지방정부와 지역사회의 역량 강화를 보장하지 않으며, 민간기업이 주도하는 ‘시장 분권’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전기사업법’ 개정에 이어 2023년 ‘분산에너지법’ 제정 등 일련의 법제도 변화를 통해 에너지전환을 위한 ‘지방 분권’보다는 자본과 기술 우위를 바탕으로 민간기업이 재생에너지 생산은 물론 배전·판매 단계에서 지배적 행위자로 등장할 가능성이 상당하기 때문이다(500MW 이하 규모라면, 화석에너지와 핵에너지도 분산에너지에 포함된다는 에너지원의 쟁점은 지면 제약상 제외한다).
최근 분산에너지특화지역으로 지정된 경기 의왕, 경북 포항, 부산 강서, 제주 전역, 울산 미포 산단, 충남 서산 등에서 이런 우려는 현실이 되고 있다. 우선 수도권 등 전력수요 밀집 지역에 발전설비를 확대하겠다는 공급자원 유치 모델은 지정하지 못했다. 이는 지금과 같은 특구 방식으로는 수도권의 전력수요를 해결하는 데는 효과가 미흡하다는 점을 방증한다.
다음으로 전기·에너지신산업을 대상으로 하는 규제 특례를 통한 실증사업이라는 점에서 기존 사업 관행과 차이점이 거의 없어 보인다. 대신 민간기업이 소비자에게 직접 전기를 판매하도록 전력시장을 본격적으로 개방한다는 점에서 차별화된다. 결과적으로 분산에너지특화지역은 민간기업이 주도하는 시장형 분산에너지 활성화를 위한 테스트베드로 평가할 수 있다.
재생에너지 보급 확대와 함께 공공기관의 역할 강화, 주민참여 활성화 관련 제도가 바뀌고 있는 상황에서 ‘시장 분권’과 경합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2006년 ‘제주특별법’ 제정 이후의 풍력자원의 공공적 관리를 위한 추진 방안, 즉 지구 지정, 지방공기업 운영, 공유화기금 조성, 공동체 참여를 포함하는 ‘제주 모델’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2023년 ‘전북특별법’의 재생에너지의 공공적 관리 조항이 제주 사례를 따른 것이다. 최근 국회를 통과한 ‘전남광주통합특별법’은 공공주도 재생에너지와 이익공유 조항을 포함한다. ‘공공재생에너지연대’가 법률 제정 운동 과정에서 제안하는 ‘공공재생에너지 및 공공협력’에 유용할지는 추가 검토가 필요하다.
‘전남광주통합특별법’에 숨겨진 문제는 따로 있다. 에너지 수요관리의 관리·감독을 강화할 수 있는 분권적 요소가 없다. 재생에너지든, 분산에너지든, 지역 내 생산 증대와 수익 확대를 에너지전환 및 분권의 전부로 설정한다는 점에서 근본적 한계가 있다. 다른 한편, 환경영향평가와 기후변화영향평가에 관한 특례 등을 통해 에너지 개발 인허가와 관련 영향평가의 권한이 특별시장에게 과도하게 집중되는 부작용이 우려된다. 그러나 특별시장의 권한 비대화에 대한 통제 장치는 찾아보기 어렵다.
분산에너지의 전환관리 방안과 ‘지역분산형 공공재생에너지’
배전망에는 분산에너지 발전기 99%(설비용량 76%)가 연결되어 있어 배전망 운영과 분산에너지 확대는 밀접하게 관련된다. 기존 배전망의 역할은 송전 전력의 최종 소비자 공급에 한정되었으나, 재생에너지가 배전망에 주로 연계됨에 따라 배전망 운영의 필요성이 대두된다. 재생에너지 수급관리(예측, 관리, 제어)는 배전망 중심으로 이루어져야 하지만, 배전사업자인 한전의 역할은 단순 관리에 집중되어 있고 송전계통과의 관계도 정립되어 있지 않았다.
정부는 전력계통 혁신대책(2023년), 에너지스토리지(ESS) 산업 발전전략(2023년), 출력제어 최소화 계통포화 해소대책(2024년) 등을 발표했다. 그리고 ‘분산에너지법’의 배전망 관리·감독 조항에는 다음과 같은 기술적 방식들이 포함된다. △ 분산에너지 수용 관련, 기준에 적합한 배전설비 설치·관리, △ 배전망 관리방침 공개(배전망 접속 및 연계조건, 접속·차단 및 출력제어 절차, 배전사업 정보 제공 등, 전기위원회 심의 및 공포), △ 분산에너지 출력예측·감시·평가 등을 통한 안정적 전력망 운영(차세대 배전망 관리 시스템 등), △ 소규모 분산에너지 지능형 인프라 구축, △ 배전망 증설·운영 계획 제출(분산에너지 실태조사 등을 반영한 5년 이상의 계획 수립). 이에 따라 한전은 제1차 장기 배전계획(2024~2028)을 수립했다.
재생에너지를 비롯한 분산에너지의 비중 증가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유연성 자원과 전력계통(배전)을 새롭게 통합하는 단계별 전력시스템 개편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런 도전과제는 기술적 접근을 포함해 분산에너지에 대해 한전이 주도하는 공공적 전환관리 개념을 적용하는 것이 바람직하고 효과적이다. 이를 통해 기술 편향과 자본 편향을 초래하는 전력산업구조개편 시도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다른 한편, 분산에너지 중심의 시스템은 에너지 공급 측면만으로는 달성할 수 없고, 지역에너지 자립과 소비의 분산화가 동시에 달성되어야 가능하다. 따라서 지역·공간별 재생에너지 자립 의무화와 같은 규제적 방식이 도입될 필요가 있다.
이상의 논의를 종합하면, ‘지역분산형 공공재생에너지’는 지역별 재생에너지 전환·자립을 추구하면서 발전, 계통(배전), 판매의 공공성을 유지·확대하고, 지방정부 및 지역에너지공사, 공동체에너지 및 사회적경제(협동조합)가 (통합)발전공기업과 한전과 협력하는 공공재생에너지의 지역 버전으로 규정할 수 있다.
(통합)발전공기업은 대규모 재생에너지 발전을 주도하되 지방정부 등과의 공공협력에 적극적인 역할을 수행해야 하며, 한전은 분산에너지 활성화를 위해 전력시스템 통합에 능동적으로 나서야 한다. 그리고 자유시장적 분산형 에너지시스템을 경계하면서도, 지방정부는 적극적으로 행사하지만 동시에 관리받는 에너지 분권이 보장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제12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맞춰 수립될 송변전계획과 배전계획에 공공적 전환관리 개념이 반영되고, 마찬가지로 지방정부의 지역에너지계획에도 수용되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공공재생에너지의 범위를 전력산업에서 제조·건설산업으로 확대하고, 제주도와 같은 일정한 조건을 갖춘 에너지 권역에서 배전과 판매를 포함하는 ‘지역분산형 공공재생에너지’에 대한 규제적 실험을 검토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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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필은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에서 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