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공공은행’, 공공재생에너지 전환의 조타수

에너지 전환, 시장을 넘어 공공으로 (4)

[편집자 주] 기후위기폭염과 재난이 일상이 된 지금에너지 전환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필수 조건이 되었다그러나 현재 한국의 전환 방식이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지는 다시 물어야 할 때다지금의 에너지 전환은 민간 투자와 시장 논리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그 결과 막대한 공적 자금이 투입되면서도 소유와 통제권은 민간에 집중되고비용은 사회 전체로 전가되는 구조가 반복되고 있다이러한 구조적 한계와 저조한 민간 투자는 에너지 전환 속도마저 뒤처지게 만드는 원인이 된다.

이런 상황에서 에너지 전환은 단순한 기술 변화가 아니라 재생에너지 투자와 소유통제권의 귀속그리고 일자리와 사회적 배분을 둘러싼 정치·경제적 전환이다특히 2050년까지 약 1,550조 원에 이르는 투자 규모는 이 전환이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질 것인가를 결정짓는 핵심 쟁점이다본 연재는 에너지 전환의 공공적 경로를 밝히기 위해 발전공기업 통합부터 해상풍력지역분산에너지태양광그린수소 및 녹색공공은행 설립까지에너지 공공성을 노동자와 시민의 손으로 되찾기 위한 구체적인 로드맵을 제시한다.

한편이 글은 2023년 발간된 <공공재생에너지 확대 전략>에 이어전력과 가스 등 에너지 체계 전반에서 통합적인 공공적 경로를 구상한 연구보고서 <에너지 전환의 공공적 경로>(사회공공연구원 외, 2026)를 요약·소개하는 글이다.

출처: Unsplash

한국의 에너지 지형이 거대한 변곡점에 서 있다. 재생에너지 전환 계획을 현실화하려면 매년 평균 62조 원, 2050년까지 누계 1,550조 원이라는 천문학적인 자금이 투입되어야 한다. 이는 단순히 발전소의 외형을 바꾸는 기술적 공정을 넘어, 재생에너지 전력 생산과 공급의 소유 구조, 투자 결정의 권한, 전환 비용의 분담 방식, 그리고 에너지를 둘러싼 사회적 관계 전반을 재구성하는 국가적 장기 프로젝트다. 하지만 이 거대한 숫자에 매몰되어 우리가 놓치고 있는 본질적인 질문이 있다. 이 막대한 투자의 주도권은 누구에게 있으며, 그 결실은 누구에게 귀속되는가 하는 점이다.

시장주의가 초래하는 '전환의 불균형'과 공공성의 위기

지금껏 우리 사회의 에너지 담론은 '얼마나 빨리 전환할 것인가'라는 속도론에만 매몰되어 왔다. 그 과정에서 투자의 주체는 당연하게도 민간 자본과 시장 경쟁의 영역으로 상정되었다. 그러나 에너지 전환을 시장 논리에 맡길 경우, 우리는 치명적인 사회적 부작용에 직면하게 된다. 자본은 본능적으로 수익성이 높은 영역에만 집중하는 '체리 피킹(Cherry-picking)'을 선행하기 때문이다. 

수익성이 보장되는 대규모 해상풍력이나 태양광 일부 단지에는 민간 자본이 몰리겠지만, 재생에너지 발전원 전체의 총 투자액이 제한될 뿐만 아니라 수익성 기준에 따라 이미 투자된 프로젝트에서 철수하는 일도 발생한다. 수익이 잘 나지 않는 송전망 확충이나 지역의 에너지 복지, 기술적 난도가 높은 수소 생태계 등은 외면받기 쉽다. 결국 민간 기업의 이윤은 극대화되는 반면, 에너지 불균형과 계통 불안정이 발생하고 전환 과정에서 발생하는 막대한 인프라 구축 비용과 계통 보강의 위험은 전기요금 인상이나 국가 재정 투입을 통해 시민들에게 전가되는 구조가 고착될 가능성이 크다.

더 심각한 문제는 '에너지 공공성'의 약화다. 민간 주도의 분절된 투자 구조에서는 발전 부문은 급격히 민영화되는 반면, 수익성이 낮은 발전원이나 망 사업은 공공의 짐으로만 남는 기형적 구조가 반복된다. 그 결과 재생에너지 전환 투자는 애초 계획에 한참 미치지 못해, 에너지 전환이 지연될 뿐만 아니라 포기해야 할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 

따라서 에너지 전환의 핵심 질문은 얼마나 빨리라는 속도론이 아니라 이제 "누가 전환을 책임지고 통제할 것인가"의 문제 즉 공공성의 문제로 전환되어야 한다. 공공이 주도권을 상실한 전환은 기후위기 대응이라는 명분 아래 진행되는 또 다른 형태의 '에너지 약탈'이 될 수 있으며, 전환 속도도 늦추기 때문이다.

'공공 투자'의 경제학

재생에너지 전환을 공공투자로 추진해야 하는 이유는 비단 당위성 때문만은 아니다. 경제적 효율성 측면에서도 공공 주도 모델은 압도적인 우위를 점한다. 첫째, 자본비용의 획기적인 절감이다. 민간 자본은 높은 기회비용과 위험 프리미엄을 요구하며, 이는 필연적으로 금융 비용의 상승을 초래한다. 반면 국가적 신용을 바탕으로 한 공공조달과 공공금융은 저리의 장기 자금을 조달할 수 있게 한다. 이는 발전 원가(LCOE)를 낮추어 종국에는 전기요금 안정이라는 실질적인 혜택으로 국민에게 돌아간다. 또한 수도권으로 집중되어 있는 중앙집중형 방식에서 지역 분산형으로 전환을 공공주도로 이룰 수 있다면, 대형 송전탑(HVDC) 건설을 줄이고 장거리 송배전을 합리화 할 수 있어 더 많은 사회적 비용을 줄여나갈 수 있다. 

둘째, 에너지 시스템 전체의 최적화다. 개별 민간 사업자는 수익성 추구 때문에 종국에는 전력망의 과부하와 계통 불안정으로 이어진다. 단순히 정부가 민간의 투자 대상만 관리한다고 해서 에너지 불균형과 그로 인한 계통 불안정이 해소되지 않는다. 하지만 공공이 투자 주체로 나설 경우, 발전시설 건설과 송배전망 확충을 하나의 포트폴리오로 묶어 통합적으로 추진할 수 있다. 단일 사업 단위에서는 해결할 수 없었던 변동성 문제를 전체 계통 관리 차원에서 최적화함으로써 사회적 매몰 비용을 최소화하는 전략적 대응이 가능해진다. 

셋째, '정의로운 전환'의 실질적 구현이다. 공공투자는 투자 조건으로 고용 안정, 노동 안전, 성평등 기준을 엄격히 설정할 수 있는 강력한 레버리지를 갖는다. 이는 재생에너지 산업이 저임금·불안정 노동의 새로운 집적지가 되는 것을 사전에 차단한다. 또한, 전환 재원을 소득세제의 누진성 강화와 연계한다면, 기후위기 대응은 사회적 부담의 문제를 넘어 복지 정치와 결합된 재분배 전략으로 확장될 수 있다.

'녹색공공은행', 공공재생에너지 전환의 제도적 보루

이러한 1,550조 원의 재생에너지 전환 공공투자의 효과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단순한 예산 배정을 넘어선 정교한 제도 설계가 필요하다. '공공투자기금-녹색공공은행'으로 이어지는 2단계 전략은 그 핵심이다.

1단계인 공공투자기금은 태양광, 육상·해상 풍력, 수소터빈 등 재생에너지 발전원, 송배전망 확충, 전환적 가스 및 저장장치 관리 등 부문별 투자를 집행하는 실질적인 '집행 기구'로 기능한다. 이는 민간 자본을 유인하기 위한 '마중물'이 아니라, 국가가 에너지 산업의 핵심 포스트를 직접 소유하고 운영함으로써 시장의 변동성을 제어하는 고정축 역할을 수행한다.

그러나 부문별로 분절된 기금만으로는 수백조 원 규모의 장기 투자를 통합 관리하는 데 한계가 있다. 여기서 2단계인 녹색공공은행은 전환 전략의 질적 도약을 의미한다. 녹색공공은행은 흩어진 공공기금들을 하나의 거대한 금융 체계로 통합하고, 대출·여신·채권 발행 등 은행 고유의 기능을 통해 장기·대규모 자금을 유동화한다. 이를 통해 에너지 전환의 성과가 특정 기업의 배당금이 아닌, 사회 전체의 이익으로 환류되도록 보장한다.

특히 지역 차원에서의 효과는 결정적이다. 지자체 소유의 재생에너지 발전과 공공임대주택, 농촌 분산형 에너지 시스템에 녹색공공은행의 저리 융자(또는 무이자 지원)가 결합할 때, 전기는 지역에서 생산되고 여러 혜택과 에너지 복지는 지역 공동체에 남는 '에너지 민주주의'가 실현된다. 이는 에너지 비용 부담 완화와 지역 활성화를 동시에 달성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든다.

결국 녹색공공은행은 기후위기 시대에 국가가 어떤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가에 대한 구조적인 해답이다. 기후위기 대응과 에너지 공공성은 분리된 과제가 아니다. 공공 주도의 강력한 투자 체계 안에서만 우리는 기후 위기 대응과 에너지 전환이라는 거친 바다를 안전하게 건널 수 있다. 녹색공공은행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에너지 전환을 다시 국민의 선택과 공공의 책임 영역으로 되돌려 놓기 위한 가장 현실적인 조타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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