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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테이너앞 논쟁은 논쟁도 아니고 대중투쟁의 승리였다. 6월10일 촛불집회에서 벌어진 컨테이너앞 스티로품 논쟁이 많은 이들의 관심과 중요한 이야기 거리가 되고 있다. 어느 신문에서는 이 문제를 “평화파”와 “행동파”로 구분하면서 이 두파가 논쟁을 벌인 것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고 어느 진보단체에서는 “비폭력”과 “직접민주주의”로 구분하면서 컨테이너앞 논쟁을 이야기 하고 있다. 또한 이날 벌어진 논쟁(?)의 당사자인 인권활동가를 자칭하는 조직이 “6.10 촛불집회 인권활동가들이 드리는 글”이라는 자신들의 입장 글을 올리기도 하였다. 아무튼 이 문제가 현재 여러 언론의 집중을 받으면서 기사화 되었다. 나는 이러한 글들을 보면서 그 당시 스티로품을 쌓았던 직접 당사자로서 언론이 이 문제를 얼마나 많이 왜곡시켜 기사화 시켰는지 그리고 자칭 “인권활동가”라고 한 사람들이 그 당시 얼마나 잘못된 행동을 하였는지 직접 거기에 참석한 대중의 한사람으로서 그 당시 사항을 좀 더 올바르게 알리고 그리고 다수 대중의 행동이 옳았다는 것을 알리고자 이글을 쓴다. 6월10일 촛불집회에 참석한 사람들은 누구나 알다시피 경찰이 광화문 세종로 사거리에 겹겹이 설치한 컨테이너를 보고 모두가 분노하였고, 현재 이명박 정권이 얼마나 잘못하고 있는지를 규탄하였다. 수십만이 넘는 시위대가 촛불집회를 벌인 10일 자정이 넘어, 다수의 군중 뒤에서부터 세종로 네거리를 가로막은 컨테이너 앞으로 대형 스티로폼이 옮겨졌다. 처음 나는 그 광경을 뒤에서 목격하면서 당연히 스티로폼을 컨테이너 앞에다 쌓아 컨테이너를 넘어가는 것으로 생각하였다. 물론 그 당시 내 주변 사람들도 모두가 그렇게 생각하였다. 하지만 스티로폼은 내가 생각한 것 가는 다르게 컨테이너와 다소 떨어진 상태에서 탑처럼 쌓아졌고 발언대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발언대위에서는 자칭 인권활동가(나중에 안 사실이지만)라는 한 여성이 뭐라고 계속 떠들고 있었다. 처음 그 당시에는 연단의 마이크도 성능이 안좋아 뒤에서는 무슨 소리를 하는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그리고 나서 조금 뒤에는 다수의 대중이 내려오라는 소리가 내 주변에도 들리기 시작하였다. 나는 그 장면을 목격하면서 그 인권활동가라는 여성이 대중의 뜻과 맞지 않게 계속적으로 연단에서 자기 목소리만 이야기하고 자기의 입장만 관철 시키려는 생각이 들었다. 이후에는 나의 생각과 비슷하게 다수 대중에 의해서 연단을 독점 하다시피한 그 여성은 연단에서 거의 쫒겨 나다 시피 내려 올 수밖에 없었다. 한편으로는 컨테이너 뒤에서 일부가 몸싸움 비슷한 것을 하는 장면이 목격되었다. 그래서 나는 그 속에서 무슨 일 때문에 그러한 일이 일어나는지 직접 확인도 할 겸 긍금해서 다시 다수의 군중을 헤집고 직접 컨테이너 앞으로 밀치고 들어갔다. 컨테이너 앞에서는 수십명의 기자들과 그리고 기껏해야 20-30명 정도의 사람들이 결사적으로 스티로품이 컨테이너 안쪽으로 옮겨지는 것을 막고 있었다. (이 일이 있기 전에 나는 먼저 스티로폼이 옮겨지는 것을 향해 따라갔다가 당연히 컨터이너 안쪽으로 스티로폼이 쌓여질 것으로 생각하였는데 그렇지가 않아서 그것을 옮긴 사람들과 그 스티로폼위에 올라간 사람들한테(스티로폼이 안쪽으로 옮기는 것을 막기 위하여 인권활동가를 자칭하는 사람들과 몇몇 사람들) 왜 스티로폼을 안쪽으로 쌓지 않냐고 강력하게 항의를 하고 뒤에 있는 다수의 사람들이 그것을 원한다고 이야기 하였지만 그 당시 인권활동가를 자칭하는 사람들은 위험해서 안 된다는 말만하고 그 주변에 있는 몇몇 사람들은 강력히 항의하는 나의 말을 무시하였다. 당시 뒤에 있는 다수의 사람들은 앞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오히려 그 당시에는 내가 하는 말이 그들에게 프락치로 몰린다는 생각이 들어 그 자리를 급히 빠져 나왔다. 그리고 나서 조금 뒤에 연단을 독점한 인권활동가라는 여성은 다수의 대중의 의해 내려오라는 소리에 그만 내려오고 자유발언의 시간이 이어졌다. 다행이도 그 당시 두 번째로 자유발언에 올라온 한 시민에 의하여 지금 밑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항을 정확하게 전달하고(한쪽에서는 스티로폼이 컨테이너 쪽으로 옮겨지는 것을 결사적으로 막고 있고 한쪽에서는 스티로폼이 컨테이너 안쪽으로 붙여서 쌓아야 한다는 사항) 다수의 대중에게 의견을 물어 보았다. 그 당시 절대다수의 대중은 당연히 스티로폼을 안쪽으로 쌓아야한다는 입장에 찬성하였고 그 입장에 의뢰와 같은 박수를 보냈다. 그러나 인권활동가를 자칭하는 단체의 입장에서는 다수대중의 의견을 무시하고 이상한 논리로 그것을 지속적으로 막으려 하였다. 지금 국민다수가 이명박을 찍어 주었기 때문에 지금 이런 문제가 있는데 무조건 다수가 옳은 것은 아니다 소수의 입장도 중요하다며 그러한 사항에서 말도 되지 않는 이상한 논리로 자신들의 입장을 관철시키려하였고 그러면서 중재안(?) 비슷한 방법으로 지금상태보다 더 높이 스티로폼을 쌓아 이명박에 대항하자는 말로 대중을 의견을 기만하고 무시하려고 하였다. 하지만 절대다수의 대중은 인권활동가들이 주장하는 것을 무시하고 스티로폼을 컨터이너 안쪽으로 쌓는것에 지지하고 다수가 행동으로 나서기 시작하였다. 그러한 과정 속에서 자칭 인권활동가라고 하는 사람들과 소수 몇십명이 결사적으로 다수 대중이 원하는 (스티로폼을 안쪽으로 쌓아 올리자는)의견을 무시하고 그것을 막으려 하였다. 하지만 다수의 대중은 그들의 잘못된 의견을 무시하고 하나하나 그들을 물리력으로 끌어내렸고 컨테이너 안쪽으로 탑을 쌓아 올렸다. 오히려 자칭 인권활동가라고 하는 사람들과 몇몇 사람들은(여기에 예비군복을 입은 사람들도 포함됨) 그곳에 탑을 쌓는 것이 위험하고 현 정권에 폭력의 빌미을 주고 그렇게 하는 것이 저들에게 함정에 걸린다는 이상한 논리를 펴면서 결사적으로 막는 바람에 스티로폼 쌓는 것이 시간이 지체 되었고 그들에 의하여 스티로폼을 안정적으로 쌓는 것에 방해가 되었다. 하지만 그들의 잘못된 생각과 행동은 다수 대중의 의견과 행동에 밀려 스티로폼은 컨테이너 안쪽으로 쌓여졌고 이후에는 깃발을 꽃는데 있어서도 몇몇 사람들에 의하여 소수 특정한 깃발만 올라가는 것을 빼고는(처음에는 태극기와 아고라 깃발만 올라갔음) 다른 깃발을 든 사람들이 올라가는 것을 강제로 저지하고 막았다. 하지만 이것도 다수 대중의 현명한 판단과 그들의 함성과 힘에 의해 이후에는 공평하게 다른 깃발도 모두 올라갈 수가 있었고 모든 깃발들이 함께 시위대 앞에서 힘차게 휘날렸다. 물론 그들이 주장한 위험한 사항이나 사고는 하나도 없었다. 오히려 소수 몇몇 단체에 의하여 결사적으로 스티로폼이 옮겨지는 것을 막고 특정한 깃발 외에 다수 대중이 원하는 깃발을 막았다는데 나는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지금 언론이나 그 당시 사항을 직접경험하지 않은 진보단체 조차도 그것을 무슨 비폭력과 직접행동과의 커다란 대립 속에서 일어난 것처럼 말하는데도 문제가 있고 그 당시 스티로폼을 안쪽으로 쌓는데 저지한 사람들과 다른 깃발이 올려지는 것을 반대한 사람들의 행동(물론 이러한 행동이 다수 대중의 의해 저지되고 무력화 되었다)은 오히려 소수 특정한 단체의 입장을 관철 시키려는 다수 대중의 의견에 반하는 행위이고 밑으로부터 끊어 오르는대중투쟁을 저지하는 반동적인 행위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리고 절대다수의 대중의 의견에 반하는 소수 몇몇 사람들이 저지른 잘못된 행위를 “평화파” “비폭력” “논쟁” 운운하면서 이야기 거리를 만드는 일반 언론른 말할것도 없고 진보단체에서 만드는 진보적인 언론도 좀더 정확한 사실 확인과 사항을 판단하면서 글을 썼으면 한다는 생각이 든다. 끝으로 나는 다수의 언론이나 글들에서 이 문제에 대하여 다수 대중의 의견과는 무관하게“스티로폼 논쟁” 등등 하면서 왜곡된 글을 써대는 것을 보면서 분노를 느끼지 않을 수가 없었다. 또한 이번 밑으로 올라오는 6.10 촛불집회의 대중투쟁을 보면서 대중의 판단은 옳았고 대중은 한걸음 한걸음씩 전진한다는 것을 그 투쟁의 현장에서 느낄 수가 있었다. 또한 지금으로서 활동가들은 대중이 투쟁하는 현장에 무조건적으로 결합해서 그들과 함께 투쟁을 하여야 하고 우리는 지금시기에 그들로 부터 배우는 자세가 필요하다. 어즙짢게 그들을 가르친다는 활동가들이 오히려 대중투쟁을 그릇칠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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