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 온 마스, 화성 사회주의

[이슈]

화성, 어쩌다 사회주의



화성과 지구의 관계

달은 이제 더 이상 계수나무와 토끼 한 마리가 쪽배를 타고 가는 그런 한가하고 한적한 공간이 아니다. 지구 궤도는 이미 상업화했고, 이제 달을 지구의 식민지로 만드는 수탈 초읽기에 들어갔다. 그러면 화성은 어떨까?

화성과 화성 이주민에게 지구 국가의 주권과 소유권이 적용되는지는 화성 이주에서 결정적인 문제 중 하나다. 지구와 화성 간의 관계는 화성 정착지의 정치, 사회, 경제 관계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이 된다. 화성 기지, 정착지와 인공 돔, 생명 유지 시설 등은 화성 이주민이 처음 도착했을 당시 화성 이주를 주도한 국가 또는 민간 우주기업에 의해 만들어진 상태일 것이다. 이제 이주민들이 도착하면, 이 공간은 누구의 것인가? 또한 화성 정착지는 어느 나라 땅이고, 누구에게 귀속되는가? 또는 기존 국가와의 관계에서 이주민들의 자치권은 어디까지 보장될 것인가? 완전한 자치, 즉 독립적인 정치구조를 갖는가? 아니면 어떤 방식으로든 지구 국가의 통제를 받는가? 이 이주민들은 지구 국가의 국적을 유지하는가, 없어지는가 등의 문제가 제기된다.

우주 조약이나 달 조약상 원래 화성에 귀속된 부문에 대해서는 일체의 소유권을 주장할 수 없다. 하지만 이미 달 개발과 관련해서 미국, UAE, 룩셈부르크, 일본은 새로운 국내법을 만들어 달의 상업적 이용까지 보장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달 조약을 개정해 비전유-비사유화를 국제법으로 확립하자는 주장이 나온다. 달 접근의 불평등 문제를 해결하는 방향으로 달 조약을 개정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어 최종적으로는 어떻게 수렴될지 미지수다.

화성에 인간이 진출하고 인공 정착지가 건설되고 확장하면 사람이 영주하지 않는 달보다 더 강제력 있는 조치들이 필요하게 되므로, 화성에 진출한 국가들 중심으로 또는 UN 등을 중심으로 이에 대한 규제와 규칙이 마련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이는 아직 현재로서는 추측의 영역이며 국제 협력의 필요성은 이미 화성 정착과 인공 정착지 건설의 초기 단계에서 인정되고 있다.

문제는 화성과 이주민 또는 지구의 국가 간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이주민과 개별 국가 사이의 의사결정 범위인 ‘자치’에서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 정착지가 주로 민간 우주기업에 의해 건설된 경우, 이들과의 관계도 문제가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일론 머스크와 스페이스X가 화성 이주 비용의 상당 부분을 지원하고, 이들이 소유한 로봇, 장비, 기술을 사용해 화성 정착지를 건설한다면, 스페이스X가 해당 정착지의 전체 의사결정 권한 또는 주요 부분을 갖게 된다. 스페이스X는 화성 정착지의 소유주가 되며, 이주민들은 임대료나 사용료를 지불하는 세입자가 될 수도 있다. 이주민들이 화성에 도착해 이전에 보낸 건축자재 등을 사용해 직접 정착지를 건설하더라도 상황은 크게 변하지 않는다. 이주민과 스페이스X가 맺은 계약 조건에 따라 ‘자치권’에 제한이 가해질 수도 있고, 독립을 보장받을 수도 있다.

한편, 화성 정착지는 화성 이주민들의 생존지일 뿐만 아니라 기업 입장에서는 공장이나 생산 단위로 기능할 수 있다. 화성과 화성 이주에 투자한 비용을 회수하고 이윤을 남기는 것이 화성 상업화의 조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주민들은 정착지의 생존 가능성을 높이는 활동뿐 아니라, 경제성을 확보하기 위해 광물을 채취하거나 물자를 생산해야 한다. 스페이스X는 26개월마다 대규모 우주선단을 화성으로 보내 이주민들을 실어 나르고, 화성에서 생산된 광물 자원 등을 지구로 운반해 이윤을 실현할 것이다.1

이러한 조건이 충족되지 않으면 스페이스X는 화성 정착지를 건설하기 위해 많은 자금을 투입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스페이스X가 이런 방식으로 정착지의 소유권을 행사하거나 미국 등 국가가 주권을 강제한다면 결국 화성 정착지와 화성의 ‘자치권’은 제한되고 지구의 식민지가 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동시에 화성 이주민들의 정치적 독립 요구와 조직적 반발도 확산할 수 있으므로, 화성의 정치적 독립 문제는 지구와 화성 간 중대한 갈등 요인이 된다. 과거에 제국주의 식민지 독립이 본국과 식민지 간의 정치적 위상과 관련된 문제였던 것과 마찬가지로, 화성에서도 거리, 시간, 비용 등의 문제가 더해진다면 더 복잡한 상황이 초래될 수 있다.

화성 이주 초기에는 생산과 생존 기반이 충분치 않아 지구로부터의 공급이 필요하며, 일정 기간은 지구에 의존적인 경제 형태가 형성된다. 그에 따라 국가 또는 우주기업들의 영향력 속에 ‘자치권’이 제한될 수 있다. 우주 조약이나 달 조약 등 화성 이주에 관한 국제법적 합의에 따라 부분적으로 서로의 관계가 다르게 규정될 수 있지만, 별도의 계약 조건이나 사전 합의가 없는 한 화성 이주 초기, 국가나 우주기업들의 정치적 영향력은 클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화성 정착지가 자체 생산 기반을 갖추고 자급자족할 수 있으면 지구와의 관계는 다시 정의된다. 화성 이주는 물리적인 공간뿐 아니라 심리적, 문화적으로도 지구와의 거리가 멀어진다. 초기 이주민 세대는 지구에 대한 향수를 일정 정도 가질 수 있겠지만, 화성 이주 2세대부터는 지구를 낯설고 이질적인 공간으로 이해하며, 지구와 독립적인 삶을 살게 될 것이다. 화성 이주민들의 삶은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도 독립적이며, 화성 경제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독립 행성 경제’로 나타날 것이다.

초기 화성 이주; 고도 문명을 가진 ‘원시 공산제’

초기 이주민들은 어떻게 구성되고 얼마나 가야 할까? 일론 머스크는 2029년부터 매 2년 2개월마다 10만 명을 이주시켜 2050년까지 총 100만 명을 이주시키겠다는 계획을 공언했다. 이는 스타십 1천 대에 10만 명씩의 이주를 의미하는데, 이는 스타십 요금과 유지비를 맞추기 위한 기계적 계산에서 나온 결과다. 그러나 2년마다 10만 명씩 이주한다면 화성의 정착지에서 그 인원을 수용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는 2년마다 도시가 새로 생길 정도로 많은 인원이며, 도착 후에도 생존과 정착지 구축을 위해 힘들게 일해야 한다. 게다가 스페이스X와의 계약으로 받은 것이 있다면, 생존에 필요한 활동 이외에도 스페이스X를 위해 ‘노동’을 제공해야 한다.

생존과 생활이 제대로 보장되지 않는 화성에서, 잘못하면 정착민 전체가 희생될 수도 있는 위험한 방식으로 화성 이주를 진행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다. 더구나 자본의 이해에 따라 수익을 내기 위해 10만 명 규모의 이주민을 모집하고 구성해야 하는 것이라면, 자본을 위해 이주민들이 희생되기를 바라는 것이므로 더 문제다. “에베레스트 탐험하다 보면 원래 많이 죽는다”는 식으로 죽음과 희생을 정당화하는 것은 더더욱 문제다. 그러므로 수익성을 맞추기 위해 한꺼번에 가능한 많은 사람이 이주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이보다 가장 생존 가능성이 높고 안전한 방법으로 화성 이주가 이뤄져야 한다. 초기 화성 이주민은 1만 명 이내로 하고, 화성 거주의 안전성이 확보되고 확인될 때 감당할 수 있는 규모의 대규모 이주가 가능할 것이다.

초기 화성 이주민들은 화성에 인간이 거주하고 살아갈 수 있는 환경, 사회, 문화, 정치, 경제적 토대와 기술적 조건을 만들고 안정화해 나가야 한다. 따라서 초기 화성 이주민은 사회 유지와 재생산 관련 필수 업무, 항공운항, 산업기술 등 전문 분야 기술자, 엔지니어 등 화성 생활과 생존에 필요한 관련 분야의 사람들 중심으로 이주하게 될 것이다. 프랑스 보르도 대학교의 장 마크 살로티(Jean-Marc Salotti) 교수는 화성에서 자급자족하며 생존할 수 있는 최소 정착민 수를 5개 분야 110명으로 추산한다.2

화성에서 연간 활동(노동) 시간은 생존에 필요한 모든 필수 인간 활동의 집합을 결정해 추정할 수 있다. 숨 쉬고, 먹고, 자녀를 양육하는 것과 같은 기본적인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다양한 산업(생산) 공정이 수행돼야 한다. 예를 들어, 건물을 짓고 수리하려면 화성의 토양과 특정 광물을 채굴하고 철이나 금속으로 만든 도구를 사용해야 하는데, 이는 곧 제철 또는 금속 산업을 의미한다. 적은 인원으로 생존하려면 작업 시간을 효율적으로 최소화해야 한다. 결과적으로 산업의 수를 최소화하면서 현대적인 도구를 사용해 생산성을 극대화해야 한다. 장 마르크 살로티는 이를 위한 인간 활동을 5가지 영역으로 나눴다.

➊ 생태계 관리 및 생존 영역인 물, 공기, 생명 유지, 농식물 재배
➋ 에너지 생산 영역인 전력, 난방 등
➌ 산업 활동 영역인 금속, 화학, 제련, 건축자재, 의약품
➍ 건축 및 건설 영역
➎ 재생산과 사회 활동 영역인 교육, 돌봄, 스포츠, 문화 등

이렇게 시작된 화성에서의 삶은 이주민 수가 증가하고 기술적으로 안정화하면서 5가지 영역에서 더 복잡한 사회적 영역이 생기고 분화해 하나의 정치사회 공동체를 형성하며 발전할 것이다.

무엇보다 화성에서의 일(work)은 노동(labor)이 아닌 생존과 생활을 위한 활동이다. 독립적인 행성 경제가 구축되면, 개인들은 자본에 고용돼 임금노동을 하는 것이 아닌 역할을 수행하고 이 역할(role)은 일종의 직업(job)이 된다. 또한, 이주민과 정착민 수가 증가하면서 개인들은 더 많은 자원을 공유한다. 예를 들어, 결혼이나 다양한 생활 공동체를 형성해 같은 주거 공간에서 살 수 있으며, 개인 주거 공간뿐만 아니라 정착지 사이에서도 공기 재생 시스템, 물 처리 시스템, 에너지 생산 시스템 등을 공유할 수 있다. 자원을 공유하면서 개인들은 전문화와 사회화를 꾀하고, 효율적인 도구를 사용하면서 다른 산업까지 발전이 촉진된다. 이러한 공유와 협동은 생산성을 향상하기 위한 요소로 고려된다.

또한, 화성에서의 생산(활동)은 인간의 생존과 재생산을 위한 필수 유지(산업) 및 필수 업무(활동) 분야가 가장 효율적으로 설계된다. 이주 초기부터 스포츠나 기타 문화 활동도 필수 활동에 포함되는데 화성의 다양한 위험 요소를 고려해 전략적인 선택과 대비가 필요하다. 위험에 대비한 별도의 산업을 구축하거나 각 영역에서의 생산량을 사회적 필요보다 약간 더 생산하는 방법이 있다.

이처럼 초기 이주민의 경제생활에서는 직업 또는 역할이 사회적으로 주어지며 생필품, 재화, 사회적 서비스 등이 생산된 물자에 맞게 공동으로 분배되고 보급된다. 돌봄 노동 등 재생산 활동 시간과 여가 시간은 집단으로 결정되며 평등하게 분배된다. 이를 통해 일종의 ‘원시 공산주의’와 유사한 정치·경제 구조가 형성되는데, 다만 이들은 석기시대 돌을 다듬는 원시인이 아닌 고도의 과학기술을 가진 문명화한 집단이다.


원시 공산주의 사회에서는 채집과 수렵을 통해 생존하며, 자연이나 동물로부터 보호받기 위해 씨족 공동체를 형성해 공동생산과 공동분배를 실시했다. 화성의 초기 정착민들도 화성의 거친 환경에서 생존하기 위해 협력하며 집단 활동(역할)을 하고, 생산 수단, 주거, 생산물도 공동으로 생산하고 분배한다. 그러나 그들은 돌을 깨서 돌도끼를 만드는 수준이 아닌, 고도의 과학기술과 문명체계를 갖춘 사람들이다. 화성의 가혹한 환경에서 기도하거나 제사를 지내지 않고도 문제를 극복할 수 있는 과학적 지식을 소유하고 있으며, 정치, 사회, 문화적으로도 자본주의를 거쳐 나온 가장 문명화한 사회 질서를 가진 집단이다.

화성, 시장경제 가능성 없어

시장경제는 교환경제로 민간 자본이 생산수단과 시설을 지어 재화를 생산하고 용역을 공급하는 경제체제다. 이를 위해 생산수단을 갖추고 노동자를 고용할 자본이 있어야 하고 생산 활동의 결과 자본 축적이 일어나야 한다. 그러면 화성의 경제적 조건에서 이런 시장경제가 발생할 수 있을까?

화성 이주 초기는 물론이고 화성 이주민이 수백만 명에 달해 규모의 경제를 달성할 만한 규모가 된다고 하더라도 화성에서는 민간 자본이 존재하기 어렵고 자본 축적도 불가능하다. 이른바 시초축적, 자본의 원시적 축적(Primitive Accumulation of Capital)도 발생하지 않는다. 화성에서는 화폐의 개념 자체가 지구와 완전히 달라 화폐가 축적되지 않기 때문이다.

기본 물자 외에 다양한 소비재의 생산까지, 화성에서 거의 모든 물자를 자체 생산할 정도로 기술 수준이나 생산성이 발전한다. 지구에서 화성으로 투자가 이뤄져 생산수단을 민간 자본이 소유하고 화성에서의 생산이 확대한다. 이제 화성에도 산업자본이 출현한다고 가정해 보자. 그러나 화성의 생산 조건상 인간 노동이 귀하고 노동계약을 맺기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생산물은 로봇과 기계에 의해 생산된다. 또한 화성 이주 이전 생존에 필요한 돔, 필요한 물자의 생산도 로봇과 기계 중심으로 이뤄졌다.

이러한 산업자본의 생산방식에서는 생산물의 가치구성에서 고정자본(불변자본)의 비중이 절대적으로 크기 때문에 이윤이 거의 없거나 실현하기 어려워 상업적으로 생산하기가 어렵다. 그러나 화성은 독점 시장으로 초과이윤을 실현할 수 있어 산업자본에 의한 생산이 가능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높은 독점가격은 화성 이주민에 대한 수탈을 확대하는 것이기에 사회적, 정치적 반발을 초래한다.

자본과 노동이 결합하는 유일한 생산방식으로 스페이스X가 자본이 되고 이주민이 노동자, 식민지 주민으로서 스페이스X를 위한 생산 활동을 한다고 가정해 보자. 하지만 현실적으로 이런 상황은 오지 않는다. 감옥 수형자들이 아니고서야 이렇게 중노동이 계속되면 제국주의 식민지 독립과 같은 조직적 저항에 직면할 것이다. 이는 이주민에게 오히려 정치적으로 완전히 독립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줄 공산이 크다. 이런 형태의 임금노동 관계는 장기적으로 유지할 수가 없다.

만약 일론 머스크와 그의 회사가 로켓에 지구의 물품을 실어 날라 화성 정착지 내에 판매점이나 유통망을 구성해 물자(주로 소매품)를 판매한다면 어떻게 될까? 이 방식은 판매하는 상품이 대부분 지구에서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 지구와 화성이 교역하고 교역품의 유통을 일론 머스크의 회사가 담당하는 것과 같다. 다시 말하면 이는 상업이윤의 축적, 상업자본의 축적 과정을 예시하는데, 화성에서 이것이 가능할까?

화성의 경제는 시장교환경제가 아니기 때문에 거래를 매개할 화폐의 필요성이 매우 적거나 없다. 특히 초기 화성 이주민 사회는 계획에 따라 필요한 물자를 생산하고 기술을 발전시키고, 노동이 아니라 역할을 하며, 생활에 필요한 모든 물자는 배급(보급)된다. 이런 상황에서 물자의 교환 필요성은 최소화하며 필요하더라도 화폐를 매개로 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 내가 가진 물건을 다른 사람이 필요할 시, 대가를 받고 거래하는 것이 아니라 ‘선물(gift)’로 준다. 때에 따라 물물교환도 존재하겠지만 그때에도 두 재화의 등가교환이 아니라 각자의 선물 제공이 시기적으로 일치했을 뿐이다. 선물경제와 같은 형태의 이 같은 경제체제는 인구와 경제 규모에 있어서 소규모 경제의 특징이지만, 이주민이 늘어나 100만 명이 넘는 규모가 되더라도 기본적인 경제체제는 ‘교환’이 아니라 필요에 의한 제공, 즉 ‘사용가치’ 생산 경제다.

한편, 지구와의 교역, 지구 상품의 판매, 지구인 방문 때에도 지구의 화폐 또는 공동통화나 비트코인 같은 암호화폐 등 화폐의 형태로 매개하거나 거래하지 않는다. 화폐가 지구와 통합되거나 화성 화폐와의 교환 비율을 정해야 할 텐데, 지구의 경제를 현재의 자본주의 시장경제, 화폐 경제 체제라고 한다면, 화성의 화폐 개념과는 완전히 차이가 나기 때문에 화폐를 통한 교환거래가 불가능하다. 금 같은 화폐의 대체재도 지구와 화성은 ‘가치 있는 것’의 개념이 다르기 때문에 교환의 등가물로 될 수 있는 상황은 극히 제한적이다.

가장 쉽게 생각해 볼 수 있는 화폐 수요의 조건은 ‘영구 이주’가 아니라 언젠가는 지구로 돌아오는 ‘일시적 이주’이며, 이주자의 경제적, 사회적 기반이 지구에도 존재해야 한다. 간단히 말해, 화성에 살기 위해 온 것이 아니라, 돈을 벌기 위해 왔거나, 여행이나 관광 목적으로 온 경우다. 이때 화성에서도 지구의 화폐와 교환할 수 있는 교환의 등가물이 필요할 수 있다. 그러나 영리 목적의 이주라 하더라도 화폐 형태로 부를 축적할 수 없어, 이를 개인적인 방식으로 화성 외부로 이전시킬 수 없다. 그리고 방문의 경우 필요한 가치만큼 사회의 공유자원에서 차감되기 때문에 지구 화폐와 교환이 필요 없다.

실제 지구와 화폐를 공유하거나 공동통화가 생겨날 수 있을지, 또는 비트코인과 같은 가상화폐가 지구와 화성에서 공동통화의 역할을 할 수 있을지 등은 매우 논쟁적인 이야기다. 만약 그런 게 가능하다면 초기 화성 이주민들부터 이를 적용하고, 민간 자본의 상업적 활동 및 자본 투자와 자본 축적이 화성에서도 이뤄져야 함을 의미한다.

이렇게 기계에 의한 생산이 일반화한 사회에선 굳이 산업자본에 의해 생산이 이뤄질 필요가 없다. 기술 발달로 생산수단의 일부가 생산과 소비의 최소단위인 ‘개인’에 귀속되거나 또는 사회(공동체)에 속해 공유되기 때문이다. 화성의 생산은 소비재는 물론이고 생산재의 일부도 각 가정이나 기본 생활 단위에서 로봇이나 3D프린터로 큰 어려움 없이 직접 만들어 사용하는 그런 사회일 수 있다. 공장에서 만들어지는 재화도 서비스(용역)처럼 생산과 소비가 동시에 발생한다.

이때 오히려 문제가 되는 것은 ‘기술’(Technology)과 ‘설계’(Planning, Designing)이며, 원재료의 분배 또는 할당에 있다. 생산수단으로서 로봇, 3D프린터, 인공지능(AI)의 기술 수준과 구체적으로 어떤 것을 만들지 설계하는 것이 곧 생산의 핵심 영역이 된다. 또한 이를 구현할 원료를 적절하게 할당받는 것이 관건이 되는데, 이 원료는 화성에서 추출한 것이므로 화성 사회에 귀속되고 자원(량)의 한계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화성 경제에서 지적재산권이 배타적, 상업적으로 존재하지 않고 ‘기술과 설계’가 공공재로 공유되면, 생산은 이제 더 이상 ‘자본’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재화와 서비스도 생산과 소비가 동시에 이뤄짐으로 ‘교환’이 필요가 없어 ‘시장경제’가 나타나지 않는다.


화성은 사회주의 행성 경제

따라서 화성 경제의 특징을 다음과 같이 살펴볼 수 있다.

첫째 화성에서 생산은 기계에 의한 생산이 일반화하면서 산업자본 의존이 없어지고, 기술 발달로 일부 생산수단이 개인이나 사회에 속해 공유되며, 소비재 및 생산재의 일부도 로봇이나 3D프린터로 가정에서 직접 생산 가능해진다.

둘째 화성의 생산은 시장에서 화폐로 교환하기 위한 ‘상품’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필요한 용품을 생산한다. 이는 재화 및 서비스에 대한 생산이 소비와 동시에 일어나는 방식으로 변하는 것을 의미하는 이는 ‘교환’이 필요 없는 ‘사용가치’ 생산 경제다. 교환이 필요 없으므로 화폐의 필요성이 없어져, 화폐 경제도 아니며, 일반적인 등가물로서 화폐는 존재하지 않는다.

셋째 ‘기술’과 ‘설계’가 생산의 핵심 영역이 되며, 이 부분을 주로 인간 활동(노동)이 담당한다. 생산과정에서 활동(노동)은 자본에 구속된 임금노동이 아니며 그 자체로 역할이자 활동이다. 직업은 화성 정착지 내에서 사회적 역할로 주어진다.

넷째 원료의 적절한 할당과 배분이 사회적 결정의 중요 대상이 된다. 창의적인 기술과 설계는 자원의 제한이 없으므로 누구나 접근과 소비가 가능하지만, 이 기술과 설계를 바탕으로 생산물을 생산의 원재료의 자원의 제한이 있고 대부분 화성에서 가공 추출한 것이므로 사회적 공유자산에 속한다.

다섯째 경제적으로는 제한된 자원과 변화무쌍하고 척박한 환경 속에서 계획 경제 체제가 만들어진다. 5년 이상을 내다보는 장기 계획과 함께 연간, 월간, 주간, 일간 단위로 생산요소와 필요(수요)를 파악하고 적극적으로 바꾸면서 본인과 타인 즉, 사회적으로 필요한 ‘용품’을 수요(계획)에 맞게 생산한다. 낭비를 최소화하고 최적의 효용가치를 산출하기 위해 연간, 월간, 주간, 일간별로 변화한 필요와 수요를 반영해 필요에 맞는 ‘용역’을 생산한다. 이 구조는 화성 생존을 위한 필수요건이기 때문에 교환가치 대신 사용가치가 전면화하고 계획과 필요에 따라 물자와 서비스가 공급된다.


이처럼 화성의 경제는 교환가치에서 사용가치로 가치생산이 변화한 것이며 이때 생산의 목적과 의미도 변한다. 어떤 사회, 경제체제에서든 생산의 목적 또는 사회적 가치의 대상이 생산관계에 따라 모두 다르다. 고대국가 노예제 사회에서 사회적 가치는 ‘국왕에 충성’하고 더 많은 노예와 영토 획득을 위해 타국을 전쟁으로 점령하는 것이다. 서양의 중세 봉건제 사회에서는 봉건적 농지 소유, 토지 소유가 최고의 사회적 가치였으며, 이를 위해 종교 전쟁도 불사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임노동 관계와 상품생산을 통해 더 많은 ‘이윤’, 더 많은 ‘화폐’를 축적하는 것이 최고의 사회적 가치였다. 이제 화성 경제에서는 기술발전과 설계를 통해 나타나는 생산물의 차이 즉, ‘창의력’이 최고의 사회적 가치로 등장한다.

살펴본 바와 같이, 화성 경제는 사회주의 경제체제로 시장경제, 시장을 전제로 한 교환가치의 생산은 이뤄질 수 없다. 화성의 생활과 생존을 위해 사용가치가 전면에 등장하고, 무정부적인 시장 교환이 아니라 계획에 따른 생산과 분배가 이뤄질 수밖에 없다. 이는 초기 화성 정착민뿐 아니라 대량 이주가 이뤄져 수백만 명의 화성 이주민이 거주하는 화성에서도 마찬가지다. 화성의 경제체제는 계획경제, 민주적 사회주의 경제체제를 갖춘다.

화성 경제가 민주적 사회주의 계획경제라는 사실은 화성 이주의 경제적, 정치적 조건 일부를 보여 주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지구 경제도 사회주의 경제체제가 주류가 될 때 화성 이주가 현실화한다는 점이다. 이는 지금의 자본주의적 동인으로는 화성 이주가 어려울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화성에서 상업적인 이윤을 형성할 수 없으면 투자가 일어나지 않을 것이고 기술개발도 이뤄지지 않기 때문이다. 만약 화성 이주민을 노동자로 통제하지 못해 이주민들의 ‘자치권’이 보장되고, 공유를 기반으로 사회주의적 발전을 한다는 사실을 확인하면 화성까지 가는 기술이 있어도 이주민조차 모으려 하지 않을 것이다. 화성 이주의 사회적 조건 중 가장 중요한 부분은 지구에서 사회주의의 확산일 수도 있다.


<각주>
(1) Dastagiri M.B. (2017) The Theory and Economics of MARS and MOON Colonization: Steps and Policy Advocacy, European Scientific Journal October 2017 edition Vol.13, No.28
(2) Jean-Marc Salotti. (2020). Minimum Number of Settlers for Survival on Another Planet. Scientific Report. https://www.ncbi.nlm.nih.gov/pmc/articles/PMC7297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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